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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how 와 Know-will
(레11:1-47)
오늘 읽은 이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Know-how 와 Know-will>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Know-how 와 Know-where에 관한 말씀 함께 나눴는데 오늘은 Know-will 의지라고 번역할 수가 있겠죠? 의지라고 번역할 수 있는 will이라는 단어를 써서 제목을 붙이고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영국이 일찍이 해상로를 장악하면서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해상을 통한 무역을 장악했던 그 시절에 영국 사람들의 마음에 전설처럼 되어지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위친턴의 고양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위친턴이라고 하는 한 어린아이가 런던의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자라자 마땅히 할 것도 교육도 할 수 없는 형편에 아주 대무역상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무역상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 무역상에서 배를 하나 대형선박을 무역을 위하여 띄우게 되는데 위친턴이라고 하는 이 젊은이가 갖고 있는 것이 없어서 선장을 통해서 뭔가 좀 무역을 하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할 게 없어서 자기가 갖고 있던 고양이를 이 선장에게 주면서 이 고양이를 팔아다가 나에게 그 값을 돌려주세요 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선장이 위친턴의 고양이를 배 안에 올려놓고 출항을 하고 항해를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항해 길을 벗어나서 스페인의 어떤 항구로 들어가게 되고 불시에 들어간 그 선장을 잡아다가 왕 앞에 놓게 되고 사정을 말하면서 왕과 함께 선장이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근데 선장과 왕이 식사를 하는 그 자리에 그 왕궁에 살고 있던 쥐들이 나타나서 감히 왕의 식탁 위로 왔다 갔다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더럽히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선장이 물어봅니다.
"왕이시여. 어찌하여 이 왕궁에 쥐들이 이렇게 활보를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이때 왕이 하는 말이 "나는 도대체 이 쥐를 잡는 방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쥐를 잡아야 될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자 위친턴의 고양이가 생각난 이 선장이 배에서 고양이를 왕궁에 풀어놓게 되고 왕궁에 풀어놓자마자 이 고양이가 왕궁에 있는 모든 쥐들을 다 잡아먹고 다 쫓아내고 왕궁의 쥐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너무너무 신기해서 그 고양이를 거금을 주고 사고 그 거금을 선장이 위친턴에게 갖다 주자 위친턴은 그 돈으로 장사를 잘 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영국 사람들이 그 해운업이 발달했던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의 꿈으로 자리잡고 전해내려 왔던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위친턴의 고양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느껴지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고양이를 만드실 때 천적이라고 하는 것, 쥐의 천적이 고양이 아닙니까?
천적(天敵). 하늘이 맺어준 적입니다. 천적인데 고양이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 어디에 있었습니까?
쥐잡기에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없는 곳에서 있는 곳으로 아니면 그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간 위친턴의 고양이가 거금의 가치의 고양이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어요. 여러분.
소금이라고 하는 것. 바닷가에서 처음 바닷가 사람들만 사용을 했습니다. 육지의 뭍에 사는 사람들이 와서 볼 때 그 소금이 너무너무 신기했습니다. 닭고기를 먹는데 소금을 찍어 먹으니까 너무나 맛이 있었습니다. 그 소금을 산에 갖고 갔습니다. 산마을에서 소금을 풀어놓자마자 산마을 사람들이 눈이 뒤집힙니다. 이게 어디서 난거냐?
그래서 세상의 모든 길은 누가 만들었다? 소금장수가 만들었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건 학설이 아니고 전설입니다.
바닷가에서는 소금은 밟히는 겁니다. 그런데 산골마을에 들어가자 소금이 너무너무 귀한 것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곳에, 하나님의 의지가 미치는 곳에 내가 서 있게 되면 위친턴의 고양이가 스페인의 왕 앞에 서 있는 것이고, 소금이 산골에 서 있는 것과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는 위친턴 고양이처럼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는 능력과 지혜와 사회적인 신분에 있어서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갔더니 내가 갑자기 위친턴 고양이의 가치와 같은 변화의 가치가 주어지고 경험될 수 있다.
이게 Know-how 와 Know-will에 관한 이야기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자, 이제 내가 가장 시급하게 찾아야 될 것은 무엇이냐?
위친턴의 고양이를 만드실 때 그 하나님의 뜻과 같은 그 뜻이 미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의 의지를 찾아내는 것,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라는 것을 마음 속에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한번 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뭐 그렇게 할 일이 없으셔서, 뭐 그렇게 한가하셔서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 되새김질하는 것은 먹어라, 되새김질하는 것들 중에서는 뭐는 먹지 말라 뭐는 먹어라 이런 얘기를 하시다가 주검, 주검이 뭡니까? 죽은 시체를 말하는 거예요. 죽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니라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하십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이 먹지 마라, 먹어라, 이건 먹어도 좋다, 안 된다 하는 이런 모든 얘기가 신약성경 사도행전 9장에 오면 어떻게 되느냐?
고넬료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베드로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광주리에 온갖 부정하다고 여겨진 짐승을 다 담아서 꿈에서 이렇게 내려오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얘기합니까?
위에서 뭐라고 그래요? 꿈에서 이걸 잡아 먹어라 그럽니다.
베드로가 "나는 부정한 것과 더러운 것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깨끗하게 여긴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차피 신약성경에 오면 바뀔 이야기인데 왜 구약에는 시시콜콜하게 말씀을 하셨을까?
부정하다, 정결하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돼지고기도 먹지 말래요. 돼지고기도 먹지 말라고 그러면 우리집 아이는 벌써 죽었습니다. 걔는 돼지고기 삼겹살 밖에 먹는 게 없어요. 김치하고 김하고.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벌써 정말로 어떻게 비참하게...
근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먹지 말라고 하신 이 짐승의 이야기들이 요즘 적용할 수 없는 거라고 이 말씀을 제껴놓는 사람도 또 어떤 사람?
정말 돼지같은 사람이에요.
이 말씀 속에 먹어라,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의미가 엄청난 겁니다. 요즘 잘난 분들이 하신 말씀이 레위기는 우리 문화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가 어렵다. 이거 아니에요. 여러분.
자, 어디에 뜻이 있을까요?
시시콜콜이 먹어라, 먹지 말라 하신 말씀은 우리의 삶에 날마다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는 그러한 식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리에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살면 죽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먹어라, 먹지 말라.
그러면 낙타를 보면서
“낙타는 먹지 말아야 돼.”
“왜 먹지 말아야 돼? 아빠?”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야.”
라고 생각하며 살 때,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곳에서 생활할 때 우리의 가치와 우리의 삶의 질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뭐냐?
天氣에요. 하늘의 기운이고, 하늘의 사랑이고, 하늘의 은혜가 내려오는 통로입니다.
근데 이게 끊겨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밥 먹을 때는 하늘의 기운이 안 내려와도 됩니까? 밥 먹는 식탁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아도 됩니까? 안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먹는 문제를 가지고 시시콜콜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건 먹어라, 이건 먹지 마라.
그러니까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순간도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하여 먹고 안 먹고를 이렇게 스스로 하나님께서 정말 시시해보이는 일까지 다 얘기해주신 것이에요.
그러면 주검에 손대면 부정하다.
부정하다는 게 뭡니까?
하나님과 의절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의절하는 겁니다. 이 의절하는 건데 주검을 만지면 부정하다, 즉 의절하다. 하나님과 끊어진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여러분?
주검. 시체입니다.
저는 상을 많이 치러봤어요. 영락교회에 있을 때는 1년에 30장례를 치르고 어떨 때는 30장례가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근데 제가 맡은 교구마다 장례가 많이 나가지고 제가 이쪽 교구로 옮기면 이쪽에서 장례가 많이 나요. 그래서 목사님들이 뭐라 그랬느냐면 하늘 문을 여는 목사라고 별명을 붙여 줬어요. 하늘 문의 통로가 넓어져서 제가 맡은 교구에선 막 올라가는 거예요. 막 올라가... 그랬어요.
그래서 장례를 마치고 영락동산에서 내려오다보면 또 장례가 잡혀. 이런 경우도 있고. 이랬는데 이 주검이라는 것 한번 보면 신기합니다. 여러분.
어제까지 따뜻한 몸이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거든요. 입관기도를 하기 위해서 시체에 손을 얹으면 이마에 살이 바짝 말라서 이마가 이런 돌덩어리 같아요. 지금 이렇게 만지면 여러분 중에도 돌덩어리 같은 분도 계실 것도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짜 껍질이 싹 말라서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주검이에요.
그 주검에 손대지 말라는 의미가 뭐겠어요?
주검에 손대면 하나님과 의절한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주검이라는 것은 어제까지 살아있던 분이 죽은 시체는 어제까지 믿던 하나님의 뜻이 끝나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손을 댄다는 것은 하나님과 의절하는 것이고 하늘의 기운과 하늘의 기쁨과 하늘의 평강이 내려오다가 멈춰진다는 얘기입니다. 의절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 생활에 확대시킵니다. 레위기의 말씀이 아니라 레위기 때의 문화에 속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얼마든지.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업 그게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것인데 손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의절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이를 어느 대학교를 보내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시체에 손을 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돼야 돼. 이렇게 돼야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자식을 끌어다가 시체에 손을 만지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업이 뭡니까? 그게 시체에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대학이 뭡니까? 그게 시체에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계획이 뭡니까? 그게 시체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임하지 않고 있는 것에 자꾸 손대게 만들어.
내가 왜 이렇게 기쁨이 없지?
내가 왜 이렇게 평안이 없지?
내가 왜 이렇게 불평과 불만만 생기지?
왜 그렇긴 왜 그래요. 하나님과 의절했기 때문에. 통로가 끊어졌기 때문에 그렇지요.
왜 통로가 끊어져요?
하나님의 뜻이 임하지 않는 시체에 손대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세요? 여러분?
지금 마음이 하늘의 평강이 임합니까?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입이 삐그시 웃게 되고, 내가 왜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사나. 이런 생각이 듭니까 안 듭니까?
안 들지요? 그러면 하나님과 의절한 거예요.
그리고 의절된 이유가 뭡니까? 부정해서.
부정한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시체에 손을 대고 있고 그 시체를 만지고 있는 거예요. 그걸 갖고 어떻게 한번 살려보겠다고. 소위 활성화해보겠다고,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고 죽어 있는 것을 활성화해보겠다고...
활성화가 뭡니까?
살아서 성하게 만든다는 것 아니에요? 죽은 시체를 붙들고 활성화한다는 거예요. 말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 뜻을 지금 가르쳐주고 계시는 거예요.
뭐 낙타를 안 먹는 게 중요하고,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게 중요하고,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맨날 이 말씀 가지고 그것 가지고 싸워. 특히 안식교인들.. 먹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먹지 말란 돼지고기를 왜 그렇게 먹느냐? 이 돼지 같은 놈아. 이러고 싸우지 않습니까?
이거 아무 소용없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 되지요.
하나님의 의지가 식탁에 까지, 너희가 하루 세끼를 먹는데 그 식탁에서조차 식탁을 준비하는 어머니 마음에서조차 하나님의 뜻이 미치고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그러한 음식들을 만들어내놓고 기도함을 통하여 식탁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장소로 만들어라 하는 뜻으로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 안에 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를 들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한번 생각해봐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어요. 그건 뭐 주님에게만 주어졌던 형벌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옆에 강도들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때 옆에 강도들 두 사람은 하나님 뜻 밖에 있습니다.
같은 장소라도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뜻이 미치는 곳에 있어요.
하나님 뜻이 미치는 곳에 있을 때 그 주님의 십자가는 지구가 멸망될 때까지 복음으로 역사합니다.
이 두 사람의 십자가는 주님의 뜻 바깥에 있어. 현상은 똑같아요. 현상은 똑같은데 완전히 길이 다르게 보입니다.
똑같은 직장에 들어갔어요. 하나님의 뜻으로 들어간 사람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자기 실력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직장이 시체를 만지는 것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라고 들어간 그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요. 일이 저절로 돼요.
무슨 말일까?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게...
여러분 제가 밴쿠버에 있으면서 한 5년 가까이 있었는데 해결하지 못하고 나온 질문이 하나 있어요.
뭐냐 하면 호트무디라고 하는 조그마한 시에 저희 집이 있었거든요. 언덕입니다. 내려다 보이는 아래는 바닷물이 빙하가 들어와서 육지를 파고들어온 바다 있지요? 그걸 뭐라 그러지요? 피요르드라고 그러나? 그런 바다가 앞에 주욱 들어와 있고 그 바다 건너편에는 산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구름이 쫙 깔려있는 그런 곳에서 살았어요. 제가 그런 데서 살았어요. 사람 무시하지 마요.(^**^) 그런 집이었어요.
그런데 그 집 앞에 널찍하고 한적한 길이 있거든요. 그 한 단계에 아래에 또 주택이 있고.
근데 그 길에 하수도가 그려져 있는데 하수도 맨홀이 있지 않습니까? 맨홀을 창살처럼 만들었어요.
근데 그 창살 옆에 인도 바로 끝에다가 물고기를 하나 그려놨어요.
근데 그게 우리집 앞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동네 전체에 물고기를 그려놨어요. 하수도 맨홀이 있는데에.
그게 뭔지를 모르겠는거에요.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고. 인터넷 같은 걸 잠깐 뒤져보기도 했습니다만 답을 못 얻었어요. 하수도 옆에 물고기 그림 이렇게 찾아봐도 무슨 말인지 답이 없더라고.
근데 어떤 오래된 이민자되신 성도님께 물어봤더니 그 곳으로 연어가 올라온대요. 근데 이해가 안 가는거야.
아니, 집사님. 이게 하수도잖아요. 하수도... 그랬더니 그 분 말이 하수도인데도 워낙 물이 깨끗하니까 연어가 올라온대.
연어가 여러분 어떤 건지 아시지요? 이 조그마한 연어새끼가 자기가 태어난 개천 모천에서 나가서 강에서 3-4년을 지내다가 수만킬로 떨어진 그곳을 고대로 돌아오는데 고 우리집 앞에 있는 하수도와 같은 작은 개천에까지도 올라와서 알을 또 낳는다는 거예요. 연어라는 놈이 참 지독한 거예요. 그렇죠? 대단한 거죠.
제가 그것을 알았으면 시간이 있었으면 맨홀 뚜껑을 열고 얼마나 많이 연어를 잡아먹었을 텐데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연어를 연구합니다. 동물학자와 식물학자들이 다 모여서 연구를 하는데 어떻게 모천에서 출발한 조그마한 송사리 같은 새끼들이 바다에서 3-4년을 지내다가 그 수만킬로 떨어진 자기의 실개천을 다시 기억해서 찾아오는지에 대해 연구를 하는데 없어요. 연구의 결과가 없다는 거예요. 연어가 어떻게 알고 오는지 알 수가 없어요.
박쥐같은 것은 소리를 내면 벽에 부딪치는 반사음을 듣고 방향을 찾아가는데 연어는 발견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 제가 그랬습니다. 나한테 오지. 뭐 그렇게 애를 쓰나...
세상 사람들은 조그마한 연어가 그 모천을 다시 찾아오는 경이로운 능력의 노하우를 찾습니다.
근데 믿는 사람들은 그 노하우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연어를 잡아서 연어를 붙잡고 연어야 연어야 너는 어떻게 몇 만 킬로를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니? 물어보면 연어가 가르쳐줄게 그러겠어요? 연어도 몰라.
단지 연어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뜻이 미치는 그 안에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어떻게 그 연어를 접근하느냐 하면 연어가 돌아오는 노하우가 무엇인가를 연구를 하려고 그래요.
그러지 말고 연어를 감싸고 있는 태어날 때부터 돌아와 죽을 때까지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의지를 찾으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지를 연어 자신조차 몰라도 연어는 그 경이로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내 삶의 문제에 대한 노하우를 내가 몰라요.
그러나 노하우를 몰라도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이 내려오는 곳에 있기만 하면 연어가 나타내는 경이로운 능력과 삶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자꾸 노하우를 생각하세요. 내가 무엇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착각이라는 겁니다.
연어 아무 것도 몰라도 누차 말씀 드렸잖아요. 연어의 아이큐가 얼마라고요? 붕어의 아이큐와 같아요. 물고기의 아이큐가 다 비슷하잖아요. 포유동물인 고래 아이큐 돌고래가 70이래요. 엄청난 놈이에요. 여기 왠만한 사람 돌고래만큼도 못할 걸요.(^**^). 돌고래가 70이래요. 개가 40이고, 닭이 3이고, 붕어가 얼마? 2래요.
그러니까 연어가 붕어보다 나으면 얼마나 낫겠습니까?
아이큐 2 가지고 돌아옵니다.
우리 아이큐 2 가지고 삽시다!
아이큐 2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의지가 미치는 곳에만 있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큐 150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내는 겁니다. 살아내는 거예요.
이거 얼마나 쉽습니까?
머리가 나쁜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마음이 편합니다.(^**^)
좋은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괴롭습니다. 인생이 힘듭니다. 한 수간 순간 넘어가는 게 쉬운 일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연어처럼 사시면 됩니다. 아이큐 2가 되어서 그 아이큐 2를 가지고 하나만 기억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면 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죽는다. 요거는 아이큐 2의 용량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다 잊어버리고 아이큐 2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된다는 그 기억 하나만 가지면 도저히 이 인간의 과학으로 찾아낼 수 없는 노하우, 연어의 회귀의 노하우를 우리의 인생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의 뜻 속에는 my way가 있어요.
연어가 그렇다면 여러분 중에 그런 분 계세요.
우리 자식은 가만히 키워보니까 어렸을 때는 자식에 대한 꿈도 많았는데 뭐 난다 긴다 하는 아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걸 보니까 우리 아이의 능력은 그저 이만큼 밖에 안 되는구나.
결국 그 아이의 능력이 뭡니까?
노하우를 찾아내는 능력이에요. 세상이 가르치는 것은 노하우를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우리 아이가 참 덤해요. 아니 내 아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를 대표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 내 아니만 덤해? 여러분 아이들은 다 스마트해요? 우리 아이가 덤해.
그러나 그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이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어떻게 노하우를 찾느냐?
그러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공부를 하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얘가 장난감 하나를 사달라고 해도 “야, 장남감 그것 가지고 노는 게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한번 우리 물어볼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빠가 빚을 내서라도 사 준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돈이 암만 많아도 안 사준다.”얘기를 하고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큐가 2인 아이들을 상상도 못할 일을 하게끔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을 찾도록 만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아버지의 뜻을 만들려고 하는데 제일 큰 방해가 되는 게 뭐예요?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고 아버지의 뜻이 지금 하늘에서 미치고 있는 그 자리를 찾아가게끔 하는데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생각입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이 아버지의 뜻 있는 데로 가는 것 그것을 제일 크게 막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의 뜻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결국은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다 시체를 만지고 있는 겁니다.
아이가 그 대학에 들어가는 게 아버지의 뜻이 아닌데 그걸 만지고 있으면 계속 아이로 하여금 시체에 공동되게 해서 살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우리 아이가 대학을 들어가야 되는데 아버지 하나님 생각에는 우리 아이가 어느 대학을 들어가는 게 제일 좋겠습니까? 라는 의문과 질문과 대답과 대화가 있지 않고 어떻게 들어갑니까?
왜 결정했어요? 우리 아이 성적을 보고 이 성적이면 서울대학을 갈 수 있다. 왜 결정했게요? 세상의 뜻을 따라서.
아버지의 뜻이 미치지 않고 있는데 이 성적이면 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세상이 정해놓은 이 뜻을 따라서 그냥 된다고 들여보내고 좋아합니다.
이제 그 아이는 어디고 들어갑니까?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체를 만지는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서운 거예요. 여러분.
가치관을 바꿔야 돼요. 아버지의 뜻이 임해야 돼요.
아버지의 뜻이 서울대에 들어가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버지의 뜻이 전문대에 들어가는 거가면 전문대에 가세요. 아버지의 뜻이 있는 곳이라면 연어 같은 능력이 발휘됩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제일 방해가 되는 게 생각이라는 것이에요.
제가 요즘 우리 아파트 주변에 참 아파트가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산책로를 만들어 놨어요. 한 바퀴를 주욱 돌면 40분 쯤 넘습니다. 요즘은 수련회를 갈 생각을 하니까 아무래도 수련회를 가면 양복을 입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바닷가에서 양복을 입고 있을 수 없잖아요. 그렇죠? 바닷가에서 조개잡이하면서 아! 나는 양복입고 간다... 이럴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웃통을 벗어야 될 것 같아. 티를 입으면 티의 문제가 뭡니까? 옷 중에서 티는 나쁜 놈이야. 그게 뭐냐? 다 드러내줘. 다 드러내줘. 안 되겠어. 내가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조금은 조절을 하고 가야 될 것 같아서 운동삼아 산책을 한다구요. 제 몸매에 대해서 기대해주세요. 어떻게 바뀌어서 가는가..
산책을 하는데 참 너무너무 좋아요. 그 산책로가 잘 만들어졌어요.
근데 산책하는데 요즘 아주 특이한 게 있어요. 요즘에만 느낄 수 있는 것 밤나무꽃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밤나무꽃 향기가 진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갈 때는 과일가게가 아파트 입구에 있는데 그 아파트에 요즘은 제일 두드러진 과일이 뭡니까? 제 머리통만한 수박들이 있어요.
그걸 볼 때마다 제가 느끼는 또 목사님들께 들은 예화가 하나 기억이 나요. 여러분 다 아실 거예요.
농부가 농사를 짓다가 더위에 더위를 식히면서 밤나무 그늘 밑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자는데 밤나무 알이 탁 떨어졌어요. 이제 가을을 넘어가면서 탁 떨어졌는데 그래서 깜짝 놀라 깨어나서 무릎 꿇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농부가 생각한 게 있어요. 자기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거야. 머리통만한 수박은 손가락만한 줄기에 붙어 땅에 기어다니고 요만한 주먹만한 밤태이들은 그 굵은 밤나무줄기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하나님도 참으로 무식하시지. 이 큰 수박을 저 큰 나무에 달아놔야지 이 작은 밤탱이들을 요런 줄기에 달아놔야 어울리지.
그랬다가 아! 내 생각대로 수박이 달렸었더라면 나는 오늘 죽었다. 그러면서 무릎 꿇고 감사 기도했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쉽게 얘기합시다.
우리 자녀에게 서울대학에 연계시킵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게 기가 막힙니다. 근데 하나님 뜻 안에는 내 자식에게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게 줄기처럼 약한 아이인데 수박만한 그런 열매가 어울리고, 내 아이는 다소 트틋한 밤나무 같은 아이인데 밤톨 같은 것이 연결이 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근데 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못 받아 들여. 내 생각이 있어서 그 생각이 다 하나님의 뜻을 빠개버리고 다 망가트리는 거예요.
그래서 만사를 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잘라버려요. 그리고 생활 전체를 부정하게 만들고 생활 전체를 공동묘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어느 게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아이가 연애하면서 여자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딱 봅니다. 도저히 내 마음에 안 맞아. 그렇게 또 내 생각을 가지고 내 아들과 여자 아이를 다른 모양으로 연결를 시켜버립니다.
거꾸로 우리 딸이 남자 아이를 데려 왔습니다. 어디서 건달같은 놈을 데려 왔냐? 이러면서 또 그래요. 그러지 마요. 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에요. 다 장가보내고 시집보낼 거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도 그렇게 결혼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결혼했어요.
저의 처갓집에서 온 집안이 도시락 싸들고 반대했습니다. 나같은 놈한테 못 보낸다고. 참 정말 별 꼴이야. 나 지금 암만 생각해도 나 그때 왜 그렇게 쫓아다녔는지 모르겠어. 알았다. 관두자. 이럴 건데... (^**^)
여러분, 그 생각 때문에 애매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순교하는 마음으로 연애를 했는지 아십니까? (^**^) 왜 힘들게 만들어요. 저야 하나님 뜻 찾아가는 거예요. 모든 게 이래요. 우리 생각 때문에 죽어요.
이 생각을 어떻게 죽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우리 생각이 죽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요. 십자가에서 주님이 돌아가셨지만 주님만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은거다 믿는 거예요. 그걸 이론으로 설명하자는 게 아니야. 그걸 믿는 거야. 내가 죽은 거다.
내게서도 특히 뭐가 죽었다? 세상에 대해 갖는 나의 생각이 죽었다.
나의 생각이 죽었다고 하는 생각이 나의 마음에 실감되자 마자 부정함이 없어지고 하늘과 뚫리면서 하늘의 뜻이 임하는 장소가 됩니다. 그째 하늘의 천기가 확 나를 감아서 연어의 삶과 같은 경이로운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서 뜻이 끌고 간다는 거예요.
이걸 서울대학에 비교하겠어요? 남편의 사업이 잘 되는 것과 비교를 하겠습니까?
이 놀랍고 경이로운 하나님의 뜻에? 비교가 안 되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에서 뭐 하면 된다?
내 생각이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어떤 사물과 어떤 사건과 사람이 주어지면 내 생각으로 딱딱 돌아갈 겁니다. 아, 이건 이런거야. 저건 저런 사람이야.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예쁜 사람 미운 사람 막 돌아갈 겁니다. 그걸 꽉 죽여! 꽉 죽여버리면 하나님의 뜻이 팍 임하게 되고 그 자리가 생명의 자리로 바뀌고 연어에게 일어난 경이로움의 자리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지 않고 계속 내 생각을 강화시켜서 저거 마음에 안 들어. 나한테 찍혔어. 두고 두고 좋은 것도 나쁘게 해석하고 계속 꼬나보고. 아니면 좋다고 봐요. 그 좋다고 하는 것에 반드시 배반당하고 나쁘다고 보는 것에 반드시 다 뒤통수 맞게 되어 있어요. 같은 말인가? (^**^) 하여간 제가 어휘가 부족해서...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일, 미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 미치지 않는 사건 다 주검입니다. 시체입니다. 그 시체를 만지면 하늘과 끊어지게 됩니다. 하늘의 평안도, 하늘의 능력도, 하늘의 은총도 다 끊어지게 됩니다.
이제 하나만 하세요.
하나님의 뜻이 내려오는 것을 방해하는 나의 생각을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인정하는, 입으로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내 생각은 십자가에서 죽었다. 나는 생각이 없는 놈이다. 여자는 나는 생각이 없는 여자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면 되는 거예요.
한번 연습해보지요.
나는 생각이 없는 놈이다!
시작.
나는 생각이 없는 놈이다!
여러분 큰일 났어. 이제...
하나님의 뜻이 임하고 연어에게 나타난 경이로운 삶이 이루어지시게 될 겁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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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