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한글 입술소리(ㅁ)가 土인데 水로,
목구멍소리(ㅇ)가 水인데 土로 잘못 전해진 역사적 까닭
훈민정음은 세종이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1443년 창제하여 1446년 반포하였다.
그런데 1446년(세종 28)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던 원본 『훈민정음』인 『훈민정음해례본』 책자가 갑자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무엇 때문일까?
어떤 역사적 사실이 감춰진 것일까?
연산군 재위 10년째인 1504년,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 윤씨의 폐비 사건과 관련된 신하들을 처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갑자사화(甲子士禍)이다.
핏빛 조선 4대 사화 두 번째, 갑자사화
곧이어 연산군의 폭정을 비방하는 언문(諺文) 투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여파로 크게 분노한 연산군의 명으로 훈민정음 관련 문서들이 모두 불살라지면서(분서焚書) 『훈민정음해례』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훈민정음인 한글이 창제된 원리와 이치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였고 숱한 낭설만 난무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436년이나 흘러, 안동의 진성이씨 문중에서 소장되고 있던 『훈민정음해례』를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구입 후 비밀로 하였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과 간송 전형필
1940년 전형필 선생이 입수한 원본 『훈민정음』은 경북 안동시 와룡면 진성이씨 이한걸 집안의 가보(家寶)였다.
퇴계 이황의 종파(宗派)이며, 일찍이 먼 조상이 여진 정벌의 공이 있어 세종대왕으로부터 『훈민정음』 1권을 상으로 받아 가보로 전해 오다가 연산군 때 언문책 소지자를 엄벌할 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득이 첫머리 두 장을 뜯어 버리고 돌돌 말아서 상자에 넣어 비밀리에 보관해 오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1504년 갑자사화 때 사라졌던 원본 『훈민정음』인 해례본이 1945년 광복 후 441년 만에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사이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원리와 이치를 모르다 보니 입술소리(ㅁ)가 土인데 水로, 목구멍소리(ㅇ)가 水인데 土로 잘못 전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자음과 오행의 상생 관계
한글 자음과 모음의 오행 배속
목구멍[喉]은 입의 안쪽에 깊이 있고 물기에 젖어 있으므로 오행으로는 물(水)이다. 그 소리가 공허하고 잘 통하는 것은 물이 형태가 없고 맑아(허명) 흘러 통하는 것과 같다. 계절은 겨울이 되고 소리는 수(水)음이다.
입술[脣]은 (입모양으로) 모나고, 위아래 입술이 합해지니 오행으로는 흙(土)이다. 그 소리는 속으로 머금고 넓으므로 마치 땅이 만물을 함축하여 넓고 큰 것과 같다. 계절은 늦여름이 되고 소리는 토(土)음이다.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제자해(制字解)>
오행 상생 순서의 자음 상형도
글 ; 김만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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