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4:44-49, 선포된 율법, 2019.10.16., 박홍섭 목사
신명기는 모세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언약의 법, 십계명과 그에 따른 규례와 법도들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전하면서 유언적으로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이들에게 전하는 내용들은 새로운 법도가 아니라 이미 40년 전에 출애굽 1세대에게 주셨던 법과 규례와 법도들입니다. 5장부터 그 진리들을 구체적으로 설교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 설교의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4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율법을 선포했다고 하죠.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있는 출애굽 2세대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45-49절은 이 율법을 어디에서 선포했는지 장소를 언급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 자리와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아래 아바라의 바다까지이니라.”
이곳은 이스라엘이 조금 전에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곳, 즉 요단 동편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서 얻은 땅입니다. 2:26-3:22절까지 어떻게 그 땅을 얻게 되었는지를 이미 말하였죠. 왜 여기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와 법도가 선포될까요? 이제 이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여기에서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법과 규례와 법도들이 선포되는 이유는 앞으로 너희들이 건너가야 할 땅도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이 가르침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서 멸하여 너희들에게 주신 것처럼 가나안 땅도 너희들의 기업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듣지 않으면 너희들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처럼 될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무슨 뜻이죠? 앞으로 이스라엘의 살고 죽음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이 4장 내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4:1절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25-26절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내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면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4장만 아닙니다. 5장에서도 그 후에도 신명기는 계속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자의 운명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음을 믿으십니까? 신명기의 내용이 전부 이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기는 들어가지 못하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이 설교를 하고 있는 모세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오. 특별히 오늘 이 설교를 하고 있는 장소는 나중에 자신이 죽어 묻히는 장소입니다. 자신이 죽어서 묻히는 장소에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모세가 무엇을 설교합니까?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그동안 섭섭했던 것, 그동안 이들이 모세를 반역했던 것, 배신했던 것 그런 것 말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을 말하지 않습니다. 군사학을 말하지 않습니다. 토라,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율법을 그대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요? 여기에 그들의 생사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북적북적 하는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샤 어샤 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분위기를 만들어 무엇인가를 해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씀이 선포되지 않고 선포된 말씀이 실종되어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를 맡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으로 먹이도록 위임 받은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을 진리의 말씀을 최대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채로 회중들에게 잘 선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에 모든 시간과 열정과 재능을 다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말씀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기 위해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을 일곱 집사들에게 이양한 것처럼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제가 지금 말을 하면 이 말이 마이크를 타고 기계장치로 들어가서 증폭이 되고 스피커를 통해 여러분에게 전달됩니다. 거의 동 시간으로 전달이 되죠. 저의 원래 목소리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 말이 음색이나 볼륨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내용은 그대로 전달이 됩니다. 설교자의 역할이 그러합니다. 마이크와 엠프와 스피커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설교자는 자기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은 그대로 진리의 말씀을 전달해야 합니다.
어떤 스피커가 좋은 스피커입니까? 어떤 마이크가 좋은 마이크입니까? 원음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는 마이크와 스피커입니다. 설교자가 해야 하는 사역과 그 사역을 위한 준비 과정이 어떤 의미입니까? 모두 이 의미입니다. 왜 공부하고 기도하고 묵상합니까? 어떻게 해야 내 생각이 섞이지 않고 최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원래의 뜻 그대로 주의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입니다. 그걸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기도하고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회중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 선포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교회의 사활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스피커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삑삑거리지 않고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마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성적이 잘나오는 과목을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광야 40년의 역사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지도자요 설교자요 마이크와 스피커였습니다. 모세라는 마이크와 스피거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이 스피커 역할을 하는 모세를 존중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가르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결과는 백성들의 불행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 세월이 지난 40년의 광야 시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이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보다 쉽게, 보다 빨리 가나안에 정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 선포해주신 말씀은 회의의 의제가 아닙니다. 우리와 의논해서 결론을 내린 내용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규례와 법도들은 우리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고 선포되는 말씀들입니다. 완전하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마련해주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들입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고 내 경험과 맞지 않아도 선포된 말씀, 가르침을 나의 행복과 나의 생사가 달린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생명과 은혜와 복의 길로 가게 됩니다.
선포된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망하고 죽는다고 했습니다. 신약은 이렇게 적용됩니다. 갈5:19-21절이죠.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육체의 현저한 일이 나타납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선포해주신 말씀들은 언제나 두 가지로 나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명의 길과 육체의 일을 만드는 사망의 길입니다.
미련한 우리는 선포된 말씀은 잘 안 듣고 사탄이 가만히 육체의 소욕을 자극하는 소리는 잘 들을 때가 많습니다. 망하는 길이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자를 통해 내 귀에 들리고 내 가슴에 떨어지면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사망의 길을 떠나 생명의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삽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선포된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했을 때는 승리하였고, 불순종했을 때는 패배했습니다. 참된 마이크와 스피커를 멸시하고 거짓된 스피커를 따른 결과 망하고 쫓겨났습니다. 모세가 지금 이 중요한 시점에서 온 백성을 말씀으로 재무장시키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