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실수 (室宿)
28수(宿) 중 열세 번째 별자리인 실수(室宿)는 두수ㆍ우수ㆍ여수ㆍ허수ㆍ위수와 함께 수기운(水氣運)을 맡아
다스리는 북방 현무 7수(宿)에 속하며, 거북과 뱀이 한 몸으로 이루어진 현무의 형상에서 반룡(蟠龍) 부분에
해당한다.
『천문류초(天文類抄)』01에 따르면 실수는 11개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실수의
수거성(宿距星)02인 실성(室星)은 2개의 주황색 별로 이루어져 있다. 실성이 밝으면 나라가 번창하며,
밝지 않고 작아 보이면 사당에 제사를 지내도 귀신이 흠향하지 않아 전염병이 돈다고 한다. 또 별이 움직이면
토목공사를 해야 할 일과 병사들이 출병할 일이 생긴다고 전한다.
실수의 ‘실(室)’은 집을 뜻한다. 그래서 거처나 건물인 태묘(太廟)03와 궁실(宮室) 또는 군량을 쌓아두는 곳간을 뜻한다. 토목공사의 일을 주관한다. 실수는 28수를 관장하는 신명들 중에서는 풍이(馮異)04신명이 관장한다.
실성은 24절후 중 처서(處暑 : 양력 8월 23일경) 때에 동쪽에서 떠오른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한 날씨 때문에 파리ㆍ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는 때이다.
실성의 제일 위에 20개의 별로 이루어진 는 물에 사는 벌레인 수충(水蟲)을 주관한다.
『산해경(山海經)』05의 「대황서경(大荒西經)」에는 천지창조 신화의 여신인 가 오색 돌을 빚어 하늘의
갈라진 틈을 메우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 하늘을 떠받친 후 쉬기 위해 용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로
가는데 그 뒤를 등사가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별빛이 미미하면 나라가 안정되고 남쪽으로 이동하면 큰
가뭄이 들며, 북쪽으로 이동하면 큰 홍수가 일어난다고 한다.
실성 주변을 둘러싼 6개의 별은 천자의 별궁인 이궁(離宮)이다. 이궁은 휴식하는 장소를 주관하므로 이 별이
움직이거나 흔들리면 토목공사할 일이 생기고, 별이 잘 보이지 않으면 천자에게 근심이 생긴다고 전한다.
토목공사를 할 때 담당하는 사람이 있듯이 실성의 옆에 위치한 토공리(土公吏)가 그 일을 맡는다. 2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별이 움직이거나 흔들리면 공사 시 보수해서 다시 짓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실성 밑에 6개의 별로 이루어진 뇌전(雷電)은 우레를 치게 하고 벌레들을 움직이게 하는 일을 맡는다. 별이 밝거나 움직이면 큰 우레가 친다고 한다.
뇌전의 아래에 길게 12개의 별로 이루어진 누벽진(壘壁陳)은 무운(武運)을 주관한다. 천자가 거처하는 곳의 담장 벽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군대 병영을 주관하기도 한다. 그래서 별들이 밝으면 나라가 조용하고 편안하지만 별이 보이지 않으면 천하에 대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누벽진 아래에 45개의 별로 이루어진 우림군(羽林軍) 또한 무운(武運)을 주관한다. 그리고 천자의 군사로 군대의 기마대를 관장하며 왕을 보필하는 일을 맡고 있으므로 별이 보이지 않으면 천하에 난이 일어난다고 한다.
우림군의 옆에 3개의 누런 별로 이루어진 은 변방의 동쪽 오랑캐를 다스리는 일을 주관한다. 자리를 이동하면
병란이 일어나고, 달과 목성ㆍ화성ㆍ토성ㆍ금성 중 하나라도 별자리 안으로 들어오면 나라의 대신을 베어 죽이게 된다고 한다.
부월 옆에 1개의 별로 이루어진 북락사문(北落師門)이 있다. 북락은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사문이란 ‘군대의 문’을 뜻하므로 합쳐서 ‘하늘나라 북쪽 변방마을에 있는 군사용 성문’이란 의미이다. 주로 적의 형편이나 조짐을 살피는 척후병 일을 하며, 별이 밝고 크면 군대가 편안하다고 한다.
북락사문 옆에 있는 또 다른 1개의 별은 군대의 장막을 뜻하는 천강(天綱)이다. 천자가 사냥을 나갔을 때 들판에 세우는 천막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림군의 아래에 9개의 별로 이루어진 팔괴(八魁)는 그물로 새나 짐승을 잡는 사냥꾼이다. 객성ㆍ
혜성ㆍ금성ㆍ화성이 다가오면 도둑이 많고 병란이 일어날 조짐으로 생각했다.
『홍연진결(洪煙眞訣)』06에 따르면 하늘의 현상이 인세에 영향을 준다고 믿어 땅에 별자리를 대응해 놓았다.
우리나라 땅에서 실수는 강원도 동북지역인 봉화ㆍ평해ㆍ울진ㆍ삼척ㆍ정선ㆍ영월ㆍ강릉ㆍ횡성ㆍ평창ㆍ양양ㆍ
홍천ㆍ춘천ㆍ인제ㆍ간성ㆍ고성ㆍ양구에 해당한다.
서양의 황도 12궁과 비교해 볼 때 실수(室宿)는 물고기자리(Psc)에 해당한다. 실수의 수거성인 실성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1개의 별과 페가수스자리(Peg)의 α (Alpha)별을 비교할 수 있다.
고유명은 마르카브(Markab, 2.5등성)로 말안장을 의미한다.
서양별자리는 춘분점을 기준으로 적경과 적위를 정하고 별자리의 경계를 정하여 황도 상에 12개의 별자리,
황도 북쪽에 28개, 황도 남쪽에 48개로 전체 하늘을 88개의 별자리로 확정하였다. 그래서 실수가 황도 상으로는 물고기자리에 해당하고 수거성인 실성의 위치는 황도 상으로 물고기자리에 속하는 페가수스와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수에 딸린 별들 중 북락사문은 남쪽물고기자리(PsA)의 으뜸별인 포말하우트(Fomalhaut)와 비교되고, 45개의 별로 이루어진 우림군은 전반적으로 물병자리(Aqr)와 비교된다.
페가수스는 머리카락이 뱀인 괴물 메두사(Medusa)의 피와 바다의 물거품으로 만들어진 천마이다. 신화에서는
우아한 날개에 눈처럼 하얀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테네의 도움으로 벨레로폰(Bellerophon)은
페가수스를 타고, 전반신은 사자와 양의 혼합이고 후반신은 용의 형태를 하고 불을 뿜는 키메라(Chimaera)를
죽일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페가수스를 타고 여러 모험을 하면서 승리를 하자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결국 오만에 빠진 벨레로폰은 제우스(Zeus)가 보낸 파리에 의해 페가수스에서 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페가수스는 올림푸스로 돌아가 제우스의 천둥과 번개를 나르게 되었고 훗날 별자리가 되었다.
페가수스는 상반신만 별자리가 되어있다. 제우스가 보낸 곤충 말파리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으로
보통 페가수스가 뒤집어진 형태로 묘사된다. 하지만 반대의 방향으로 히포크레네 샘을 앞발로 파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동양에서 실수의 수호동물은 돼지이다. 돼지는 먹을 것을 밝히며 게으르고 욱하는 성질에 온갖 잘난 체를 다하는 성품을 지녔지만, 옛 선조들은 단순하고 순박한 성질을 지닌 돼지를 귀하게 여겨 큰 제사에 돼지 머리를 썼다고 한다. 본능에 충실해서 먹을 것과 자는 것을 좋아하는 돼지를 흉볼 수만은 없지만 오만한 성향은 페가수스의
이야기에 나온 벨레로폰처럼 자만해지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01 세종의 명에 따라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06(태종6)∼1465(세조11)]가 편찬한 천문학 서적.
02 각 수(宿) 구역의 서쪽에 위치한 가장 밝은 별로 28수의 위치를 쉽게 찾는 기준이 된다.
03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04 광무제 때 상봉하솔(上奉下率)의 귀감이 되었으며 광무제를 도와 하북(河北)을 평정하였던 장군이다.
05 중국 선진(先秦)시대에 곽박(郭璞)이 기존의 자료를 모아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이자 지리서.
06 화담 서경덕 선생이 짓고 토정 이지함 선생이 수정한 고대 천문, 기문, 둔갑술에 대한 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