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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북문~남한산~은고개~용마산~
~고추봉~검단산~팔당대교(종착지)
분당선상의 산성역 2번 출구 앞의 버스승강장에서 10~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9번 시내버스를 타면 산성리 교차로인 남한산성 종점까지는 20분쯤이면 넉넉하다.
여행객들을 위한 식당과 카페, 그리고 펜션이 줄느런한 북쪽 방면의 도로를 수긋
하게 따르면 10분도 채 안되는 발품이면 남한산성의 북문인 전승문(戰勝門)에
득달하게 된다(9시36분).남한산성을 포위한 12만의 청나라 군대를 기습하곤 하던
성문이라 붙여진 전승문은 병자호란 당시 적과의 일전불사의 옥쇄작전을 펼치자고
부르짖는 척화파의 마지막으로 남은 숨구멍이다.
작가 김훈은 그의 작품 '남한산성'에서, 척화파의 우두머리 벼슬아치 김상헌은 한강을
건너 남한산성으로 몸을 급히 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어렵사리 건네 준 늙은 뱃사공을
뒤를 쫓는 적군의 전령이 될까 염려스러워 참혹하게 칼로 베어 죽인다. 역사를 바탕으로
꾸민 허구라고 하지만 벼슬아치가 누구를 위하여 척화(斥和)를 주장하고,주화(主和)를
부르짖은 건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남한산성 전승문(북문)
백성이 곧 나라이고, 나라가 곧 백성이 아니던가.한 쪽은 분명히 충신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것이고,그 반대 쪽은 간신이나 역신의 오명을 뒤집어 쓸게 틀림없다.그러나 역사가
는 둘 다 나라를 위하는 충심은 다를 게 없다고 적바림하고 있으니, 작가 김훈은 백성의
목숨은 항상 역사의 뒷전이었던 사실(史實)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한 생활이 어려워 월북을 선택한 월북자의 목숨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고,탈북을
감행한 탈북자는 당국의 귀찮은 존재로 전락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오랜 옛날이나 작금
의 21세기나 여전히 일반 백성은 헌신짝 취급을 벗어날 수가 없는 모양이다.그러한 역사
적인 사실을 진작에 알아차렸을까? 공무원 시험으로 수험생들과 공직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그 방면의 언저리에서 언제나 악머구리 끓듯 하는 세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벼슬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거였다.
남한산성과 산성길
전승문을 뒤로하는 지맥의 산길은 남한산성을 좌측으로 바짝 끼고 이어진다.산성길은
기실 초병들의 경계나 방어를 위한 교통로다.산성길 길섶에 드문드문 장방형의 철책이나
금줄을 두른 군포지(軍鋪址)가 모습을 드러낸다.군포란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인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는 거다.서양의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을 보면 우람하고 높직한 돌기둥
이나 집채 만한 주춧돌이 아직도 남아있어 당시의 건축물의 윤곽을 대충이라도 가늠할 수
가 있는데, 우리의 옛 건축물들은 대부분 목조 건물이라서 불에 한 번이라도 소실이 되면
건축물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빈 터만 황량하게 남아 있으니 건축물의 윤곽조차 가늠할
수가 없는 거였다.
그리고 성 안과 바깥을 은밀하게 드나 들 수 있는 암문(暗門)인 제4암문(북암문)의 곁을
지나고 대여섯 군데의 군포지의 곁을 차례로 지나고 나면 머지않아 제3암문인 봉암성
암문으로 산객은 안내가 된다.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봉암성,한봉성,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다.이 중에서 봉암성
은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東將臺)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다(안내문 참조).
봉암산성과 산성길
지맥의 산길은 제3암문인 봉암성 암문을 통과하며 산객을 안내한다.제3암문을 빠져나가
면 봉암성의 구역 안으로 접어드는 셈이다.여지껏 남한산성 본성 안에서는 산성을 좌측
으로 끼고 이어지는 산성 길이었는데,봉암성 구역으로 들어서니 이번에는 산성을 우측
으로 끼고 꼬리를 잇는 산성 길이다.봉암성의 산성은 유지와 보수의 손길이 적었는지
허물어져 무너지고 갈라진 상태로 남한산성 본성에 비하면 그냥 방치되어 있는 행색이다.
이곳에도 군데군데 군포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하고 있다.이러한 행색의 산성길은
머지않아 해발522m의 멧부리로 산객을 안내하는 데,이 봉우리가 남한산(南漢山) 정상
이다(10시17분).정수리 한복판에는 1976년 건설부 시절에 심어놓은 삼각점이 아직까지도
멀쩡하지만,북한산이 수도 서울의 북쪽 방벽이라면 남한산은 남쪽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의 지명이 틀림없는데, 남한산의 산세가 북한산에 비하면 턱없이 빈약하기만 하다.
남한산 정상을 뒤로하고 나면 지맥의 산길은 이제 남한산성의 성곽 바깥으로 꼬리를
잇는다.지맥의 산길은 머지않아 큰골과 한봉성 방면(맞은 쪽)으로의 갈림길에서 좌측
9시 방향으로 급커브를 그리며 이어지고, 쉼터용의 긴 의자 서너 개가 마련이 되어 있는
평지나 다를 게 없는 납작스레한 쉼터봉을 넘어서고 나면 PE로프와 통나무 말뚝을
이용한 안전난간과 통나무 계단이 안내하는 완만한 내리받이가 기다린다.
엄미리 계곡(우측) 방면으로의 갈림길을 지나고 쉼터용의 긴 의자 두어 개가 마련이
되어 있는 납주그레한 해발346m의 쉼터봉을 넘어선다.부드럽고 다소 밋밋한 산길은
수렛길처럼 널찍하고 말쑥하다.그러한 행색의 산길은 골리앗 덩치의 송전철탑을 곁에
두고 있는 해발338.1m봉으로 이어지고,엄미리 계곡(우측) 방면으로의 갈림길을
한 차례 더 지나게 된다.그런 뒤에 머지않아 오르게 되는 넙데데한 멧부리가,정수리
한복판에 낡은 삼각점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해발303.1m봉이다(11시9분).
303.1m의 삼각점봉을 뒤로하고 나면 도로의 고갯마루를 넘나드는 차량들의 숨가뿐
바람가르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리기 시작한다.완만한 내리받잇길은 우승지 벼슬을
거친 안동김가의 묘역의 곁을 지나고 나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왕복 4차선의 차도
고갯마루로 슬며시 꼬리를 드리운다.하남시 쪽과 그 반대 방향인 고개너머 남쪽의
광주시 방면 사이를 잇는 43번 국도가 연락부절인 고갯길,은고개다(11시20분).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비스듬한 도로 건너 쪽으로 버스승강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버스승강장 뒤편으로 '지장사 가는 올랫길'이라고 써 있는 작으마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데크계단이 오르막을 안내하고 있다.지맥의 산길은 이 데크계단을 따르면 수월
하다.데크계단을 거쳐 등성이에 이르면 지맥의 산길은 우측 3시 방향이다.산길은
울창한 잣나무 숲길로 이어지고, 붕긋한 멧부리를 곧장 넘어서면 동쪽 산비탈에는
경주손가의 묘역이 터전을 이루고 있다.
은고개/ 43번 국도
지맥의 산길은 이 묘역의 묘짓길인 널찍한 수렛길을 따르면 곧바로 중부고속국도와
제2 중부고속국도를 거푸 통과할 수 있는 두 개의 암거로 산객은 아금받게 안내가
된다.두 개의 암거를 가볍게 벗어나면 양회임도가 맞은 쪽의 골짜기로 꼬리를 잇는데,
엄미리 안말의 들머리인 거다.안말 어귀에서 좌측의 등성이가 지맥의 산줄기다.그러나
전원주택 등으로 진입이 버거운데다가 매우 가풀막진 산비탈이라 지맥의 등성이로
붙기가 여간 아닐성 싶다.
양회임도는 머지않아 임도 삼거리로 산객을 안내하는데,어귀에 산행안내를 위한 이정
표가 세워져 있다.우측은 용마산,고추봉,검단산을 가리키고 있으니 앞으로 오르게 되는
멧덩이가 아닌가.그러나 우측은 지맥의 방향과는 다르니 좌측의 양회임도를 따라야 한
다.좌측으로 연신 꼬리를 잇는 양회임도는 7,8 분쯤의 발품이면 지맥의 등성이로 산객을
안내한다.지맥의 등성이에서 우측 3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 산길은 광주이가의 묘역의
곁을 지나고 나면 가파른 산비탈로 금세 행색이 바뀐다.
해발425.8m봉
가파른 오르막 산길은 다소 희미하다.그러한 행색의 가풀막진 오르막을 헐떡거리며
올려치면 쉼터용의 긴 의자 두어 개가 마련이 되어 있는 쉼터봉이 기다린다.해발425.8m
봉이다(12시47분).해발425.8m봉에서 지맥의 산길은 북쪽 방면인 좌측 10시 방향이다.
산길은 널찍하고 번듯하다.수많은 입산객들이 잦았음을 증거하는 산길인 거다.성남시
상산곡동 어진말 버스정류장(좌측) 방면으로의 등하행 갈림길을 지나고 나면 이번에는
우측으로 광주시 삼성리 방면으로의 등하행 갈림길을 잇따라 만나게 된다.
그런 뒤 오르게 되는 붕긋한 멧부리가 해발595.5m의 용마산(龍馬山) 정상이다(13시
12분).정수리 한복판에는 1987년에 복구한 삼각점(이천21)이 번듯하고 용마산 정상임
을 알리는 빗돌은 아담하다.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는 남한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울창한 나무가지 사이로 남한강을 조망하면서 꼬리를 잇는 산길은
삼성1리 방면(우측)으로의 등하행 갈림길로 이어지고,맞은 쪽 저 멀리로는 고추봉과
검단산이 나무가지 사이로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부드럽고 넉넉한 안부를 거쳐 다시 가파른 치받잇길을 헐떡거리며 올려치면 붕긋한
해발536.1m봉으로 산객은 안내가 된다.536.1m봉을 넘어서고, 돌탑1기가 덩그런하고
넙데데한 멧부리를 거치고 나면 신갈나무 등이 헐겁고 성긴 멧부리가 기다린다.해발
569m의 고추봉(두리봉) 정상이다(14시).좌측으로 하남공영차고지(2km) 방면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기도한 삼거리 갈림봉인 고추봉 정상을 뒤로하면 등성이 좌측 저 멀리 중부
고속국도가 아스라하게 부감이 되고, 그 쪽에서 들려오는 차량들의 웅성거림이 도시의
소음과 한데 합쳐져 산객의 귓전을 가만가만 두드린다.
고추봉(두리봉) 정상의 이정표
등성이 좌측은 중부고속국도가,그리고 우측은 나무가지 사이로 남한강이 부감이 되는
지맥의 산길은 두 차례의 넉넉하고 수더분한 안부를 거치고 골리앗 덩치의 송전철탑의
곁을 지나고 나면 우측으로 수자원공사 방면으로의 등하행 갈림길과 산곡초교(좌측) 쪽
으로의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기도 한다.PE로프와 통나무 말뚝을 이용한 안전난간과 침목
계단 등이 안내하는 부드러운 산길은 곱돌약수터(좌측) 쪽으로의 갈림길을 거치고 나면
널찍한 헬기장이 닦여 있는 붕긋한 멧부리로 산객은 안내가 된다.
해발658.4m의 검단지맥의 간판인 검단산(黔丹山) 정상이다(14시45분).남한강과 북한강,
그리고 경안천이 한데 모여 일궈놓은 큰 물그릇 팔당호와 강변의 풍광이 한폭의 그림처럼
부감이 되는 절처의 전망대봉이 아닐 수 없다.사방팔방의 거침이 없는 조망은 한동안 산객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그러한 검단지맥의 맹주인 검단산 정상에서 산객의 발걸음은 좌측
10시 방향이다.귀갓길을 염두에 둔 행보인 거다.
남한강,북한강,경안천 합수점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돌탑 1기가 쌓여 있는 언덕 같은 등성이를 거치고 나면 PE로프
와 통나무 말뚝을 이용한 안전난간이 안내하는 내리막으로 이어지고,이내 산길은 가파른
내리받이로 행색이 바뀌게 된다.그리고 침목계단이 안내하기도 하고 데크계단이 뒤를 잇더니,
조망을 위한 데크전망대로 이어지기도 한다.자연석을 이용한 돌계단이 안내하는 가파른 내리
받이가 뒤를 잇고, 뒤를 잇는 PE로프와 통나무 계단이 안내하는 내리받이는 군데군데 쉼터용
의 긴 의자가 마련이 되어 있는 쉼터를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행색의 내리받잇길은 넙데데한 해발292m봉으로 산객을 안내하는데,정수리 한복판에는
1994년에 재설한 삼각점(성동489)이 반듯한 삼각점봉이다(15시30분).해발292m의 삼각점봉을
뒤로하는 내리받잇길은 다소 희미하다.희미한 내리받잇길이지만 잡목이나 넝쿨 등의 저항이
느껴지지 않으니 이동의 어려움은 없지싶다.이러구러 비탈을 내려서면 한강변의 45번 국도가
기다린다.도로 좌측 7,8백 미터쯤에서는 한강을 넘나들 수 있는 팔당대교가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팔당대교
도로를 건너 도로 옆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좌측 저 만치의 팔당대교로 발걸음을 옮긴다.북한강
과 남한강,그리고 경안천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합수의 물그릇 팔당호을 만들어 내더니 합수의
물길은 첫대바기로 팔당댐을 거쳐 수도 서울 한가운데를 점령군처럼 가로질러 서해의 난바다로
유유하게 흐를 기세가 아닌가. 팔당댐의 첫 관문을 벗어난 물길이 첫 번째로 맞닥드리게 되는 관문
이 전장 935m의 팔당대교다.전장 935m의 팔당대교를 자전거 도로의 도움으로 넘어서면 우측으로
꼬리를 잇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500여 미터쯤의 발품을 더 보태면 로마가 귀갓길의 역참으로 삼은
팔당역이다.귀갓길의 역참인 팔당역에 득달함으로써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도상거리 45km의
검단지맥을 비로소 마무리 짓는다.(산행거리;18km.소요시간;6시간45분) (2020,9/29)
검단지맥 3구간(남한산성-은고개-용마산-검단산(657m)-팔당댐)終.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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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지맥 3구간(남한산성-은고개-용마산-검단산(657m)-팔당댐)終.지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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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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