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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곡리고개~남산~중태산~용당공원
고개의 형태를 거의 잃은 사곡리 고개,그 고개의 고갯마루 주변에
자리한 클레시움 아파트 앞을 지나가는 차도 건너 편의 야트막한
숲으로의 진입에 나선다(10시).아파트 건너 좌측 인도를 따라 이동을
하면 선답자들의 표시리본이 작은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는데,
산길은 뚜렷하지 못하고 희미하다.희미한 흔적도 곧바로 흩어져
사라진다.지맥 산행에서는 흔하게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우려할 일은
아니다.내쳐 곧장 등성이를 올려쳐 능선에 붙으니 능선에는 번듯한
산길이 반질거린다.그러나 지맥꾼들이 이렇게 무지막지 올려친
비알은 '서천읍성'인데,서천고을을 침입한 도적이나 왜구들이 저지른
행위와 유사한 몸짓이었을게다.
끌밋한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줄을 잇고 있는 능선,저 앞에서 나이가
지긋한 사내 한 분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내려가시는 쪽이 혹시
클레시움 아파트 앞이 아니시냐?"하고 물으니,"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한다.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서천읍성을 월담한 도적들이나
왜구가 저지른 행위와 다를게 없어 보인다.차후로는 들머리를 지금
이 노인장의 말대로 클레시움 아파트 맞은쪽에서 들머리를 물어야
한다.
서천읍성(舒川邑城)!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된 읍성인데
지금은 주민들의 산책길로 사랑을 받고 있는 처지의 읍성이다.
이 서천읍성은,서천 시가지의 동쪽 야산에 축조한 포곡식의 성곽으로
조선시대 초기,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고을과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쌓았는데,이 읍성도 그 과정에서 세종 때
축조되었다.현존하는 읍성은 동서로 긴 직사각형에 가까우며,
둘레는 1190m이다.성벽은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돌을 사용하여
쌓았으며,성돌과 성돌 사이에는 작은 돌로 쐐기돌을 끼워 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부대시설로 치성 14개소가 확인되고 있는데
외벽만 돌로 쌓고,내부는 흙으로 채웠다.출입구는 동문과 남문 2곳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성벽 밖에는 동-서-남벽에서 8~10m떨어져
폭 5~6m,깊이 2~3m로 도랑을 판 해자시설이 남아있다.
서천읍성을 뒤로하면 곧바로 읍내 시가지로 들어서게 된다.
문화의 전당과 서천 도서관 입구를 지나면 한복판에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5거리에 닿게 된다.이 오거리에서
군산과 장항으로 이어지는 차도의 인도를 따른다.대성목재 앞을
지나면 '맑은 소리숲'쉼터도 만난다.앞을 가로지르는 4번고가차도의
밑을 빠져나가서 계속 차도를 따른다.'작은 남산 장기요양보호센타'
입구를 지나면 길 우측으로 허름한 공장건물이 보이는데 이 공장 직전의
좌측 절개지로 오름을 시도한다.산길은 없는데 기중의 만만하게
보이는 지점을 노린거다.그런만큼 잡초와 갖은 넝쿨식물들이
앞을 막아서며 진행을 저지하려 안감힘을 쓴다.
이악스러운 저지선을 뚫고 간신히 능선에 올라붙으니,앞서 올랐던
동료들이 산길주변에 널려있는 밤알을 줏느라 정신이 없다.
잡풀과 잡목으로 산길조차 사라진 오르막 산길이지만 벌초를 말끔하게
끝 낸 묘지 곁을 지나기도 한다. 성가시게 얼굴을 때리는 잡목들의
잔가지가 산객의 심기를 연신 집적댄다.
거추장스러운 산길을 빠져 나오니 산길은 수렛길로 바뀐다.
감나무 밭 곁을 지나면 끌밋하고 범강장달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노송들이 줄을 잇는 산길이 산객을 안내하며 의자 세 개가 놓여있는
쉼터 봉우리를 내놓는다.작은 남산 정상이다.울창하게 우거진
녹음으로 조망을 기대하려면 낙목공산(落木空山)에나 가능할려나
모르겠다.
작은 남산을 뒤로해서 내려 선 안부,거대한 느티나무가 우선 시선을
끈다.그 아래로는 갖은 운동기구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한 구석에는 정자도 점잖게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 길로 들어서면 공동묘지 옆을 따르게 되며
오르막을 지쳐 오르면 이동통신탑 곁도 지나치게 된다.
능선 오른쪽 길섶에 이곳은 사유지이고, 친환경 농법으로 임산물을
재배하고 있으니 무단채취를 엄금한다는 내용의 경고가 담긴
입간판이 눈에 띤다.
남산 정상
갈색의 밤송이들이 산길바닥을 뒤덮은 곳을 지나고 데크 계단을
내려서서 다시 올려친 능선길,좌측 저 멀리 썰물로 드러 난 갯벌이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 군산이 조망이 된다.
그늘아래 쉼터용 의자가 입산객을 기다리는 커다란 노송을 지나면
통신 중계 철탑만이 독야청청 우뚝 선 밋밋한 봉우리에 닿게 된다.
해발 146.9m의 남산이다.KBS서천 TV방송 중계소의 통신철탑이
온통 차지한 남산의 멧부리 한복판은 절반은 뭉개진 봉분을 닮았으며,
함께 자리한 빙충맞게 생긴 돌무더기도 그와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다.
비록 통신중계소의 입주로 몰골은 말이 아니게 찌그러져 있지만
명색이 서천의 주봉으로서의 보살핌이 아쉬운 감은 떨칠 수가 없다.
4거리 안부,까치 한 마리가 안내하는 고개,봉남리와 남산리 방향이
좌우로 엇갈리며 등하행 산길이 보이고 지맥의 산길은 맞은 쪽을
바라보면 된다.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지고 산길은 수렛길이다.
나주정가의 부부묘를 지나면, '참살이 영농법인'임업후게자의 농장
앞도 지나가게 된다.농장 입구의 임도를 벗어나면 정면으로 도로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2차선 차도를 가로질러 도로공사장과
궤를 같이하다가 곧바로 도로공사 중인 도로위를 따른다.
벌겋게 맨땅이 드러 난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의 절개지를 올려쳐서
숲으로 기어든다.초입의 산길이 대개 그러 하듯이 산길은 청맹과니
당달봉사가 무엇을 더듬듯이 희미한 선답자들의 흔적을 더듬거리며
비탈을 올려친다.잡목의 잔가지들이,잡풀들이,넝쿨들이,산초나무의
억센 가시들이,거미줄 등의 온갖 거추장들이 심기를 북북 긁어댄다.
애면글면 올려친 멧부리는 밋밋한 평지나 다를 게 없는 붕긋한
봉우리다.간신히 선답자들의 흔적과 빛 바랜 표시리본만이 그들의
발길을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언덕이나 다를 게 없는 무명의 멧부리를 내려서면 비교적 잘 조성된
묘역도 지나고 대숲에 기댄 묘지도 거푸 지나치게 된다.
대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빠져나오면 작은 마을이 오른쪽 산기슭으로
내려다 보인다.이내 산길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차도로 꼬리를
내린다.차도 우측의 건너 편으로 숲으로 진입하는 임도가 보이는데,
그 임도를 따르면 트랙터 한 대가 눈에 띠고 임도 우측으로는
따비밭이 널찍하게 펼쳐진다.빛 바랜 낡은 옷을 뒤집어 쓴 허수아비도
우두커니 밭둑에서 경계근무에 열중하고 있다.수렛길은 양갈래로
바뀌는데 오른 쪽 수렛길을 따른다.
걸핏하면 산길 주변에 모습을 나타내곤 하는 묘역에서 좌측의 산길을
따르면 산길 좌측으로 수십통의 벌통이 자리하고 있는데,
벌통 주변으로는 수많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분주하다. 트랙터로 온통
갈아엎은 밭을 지나면 감나무 과수 밭 곁을 지나가게 되며
성긴 PE망으로 울타리를 친 고구마 밭도 울을 들락거리며 지나친다.
갑짜기 앞이 훤하게 트인다.산등성이를 뭉턱 잘라내고 도로를
개설하려는 도로공사 장이 앞을 가로막아 선게다.
절개지를 미끄러지듯이 내려가서 도로공사 중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잰걸음을 치면 머지않아 2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차도는 직진과 좌측 방향으로 갈라진다.
오가는 차량이 뜸한 좌측의 차도를 따르다가 오른 쪽 숲으로 드는
희미한 족적과 표시리본 그리고 스마트폰에 내장된 GPS의 안내로
절개지 오르막을 올려친다.산길 바닥으로 쏟아진 굵직한 밤톨이
갈색의 윤기를 반짝이며 산객의 눈길과 발길을 잡아 당긴다.
능선위로 올려치니 널찍한 개활지 형태의 밋밋한 능선인데
여기저기 묘지들이 산재한 공동묘지다.너도나도 걸머졌던 배낭을
내려놓고 피난민들 허기채우듯이 산상에서의 중화참 시간을
보낸다.
간단하게 행동식을 비우고 자리를 털고 나서면 수렛길이 산객을
기다린다.수렛길이 다하면 수십개의 벌통이 자리하고 빈 농가가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4거리 고개에 닿게 된다.
홍덕리 고개다.옥북1리와 홍복리를 넘너드는 고개,지맥의 산길은
맞은쪽의 물때가 거뭇거뭇하게 눌어붙은 양회임도 오르막이 된다.
오르막 임도를 오르는 사이에도 갈색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빛나는
밤알들이 연신 발목을 붙잡는다.
연신 붙잡아대는 손길을 뿌리치며 오르막 길을 올려치면 이동통신탑이
우뚝 서 있는 멧부리로 오르게 된다.해발 101.7m의 중태산 정상이다.
우거진 잡목으로 조망을 잃은 중태산의 멧부리를 떠나면 평해구가의
부부묘를 지나가게 되며 검은 차광망을 뒤집어 쓴 비닐 하우스와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농막 곁도 지나가게 된다.
곧바로 산길을 가로막은 양회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접어든다.
거대한 송전철탑 곁을 지나면 묘역 옆으로 산길은 끊임없이 꼬리를
이어 나간다. 고구마 일색의 밭들 사이로 이어지는 임도는 4차선 차도를
가로지르는 육교로 이어지는데,이 4차선 차도는 4번 국도가 된다.
육교를 넘어서 차도를 쭈욱 따르면 차도 오른쪽 산비탈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온다.'임마누엘 동산'이라는 빗돌이 어귀에
세워져 있는데 천주교 공원묘지다.묘지 오른 쪽 숲길의 오르막을
올려쳐 무명봉을 넘어서면 '물댄 교회'내를 가로지르게 된다.
곧바로 구절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가면 이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는데,좌측 방향의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야 한다.
이 도로를 따르면 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자리한 삼거리 차도 변에
이르게 되고 우측으로 차도를 가로지르는 철길도 넘어서게 된다.
장항(우측)과 군산,동서천IC,금강하구둑 등(좌측)이 엇갈리는 삼거리,
이 삼거리 갈림길에서는 좌측의 찻길(21번 일반국도)를 따른다.
21번 국도는 고가차도 밑을 지나는데 고가차도 밑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우측으로 치켜보이는 산비탈을 올라야 한다.이곳에도
산비탈에 공동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천주교 공동묘지이다.
묘지를 뒤로해서 무명봉을 넘어내려가면 좌측으로 농가들이 보이고
맞은 쪽 숲길을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 방향은 '쉼터'를
가리키고 우측의 산길은 '빗그매'라 씌어있다.
통나무 계단을 기신거리며 올라서면 온갖 운동기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자리한 멧부리에 올라서는데, 한 켠에는 전망데크도
마련되어 있다.가파른 내리막 길을 곧장 따르면 '도인정사'방향의
산길이 있는 삼거리,그리고 얼마 못가서 닿게 되는 안부 삼거리는
'왕제산'으로의 산길이 나있는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좌측의 왕제산 방향의 산길을 따르거나,직진의
산길을 따르거나 상관은 없다.스마트폰에 내려받은 트랙(산악GPS)이
두어 가지 존재하고 있으니, 내려받은 종류에 따라 제 각각의 방향으로
산길을 이어나가는게다.그러다보니 이 후의 산행은 함께하는 동료들의
숫자도 내려받은 GPS의 나뉜 숫자 만큼 엇갈리는 현상이 발생한게다.
나는 직진의 방향을 따랐다.장항읍의 주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을 즐기며 소나무 숲이 울창한 숲길을 따르면 산길은 갑짜기
산길 같지도 않은 잡목의 숲으로 GPS속의 젊은 여자는 지껄여 댄다.
희미한 족적을 따라 더티한 숲을 빠져 나오면 묘지들 곁을 지나서
농가들이 이곳 저곳의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 길로 내려서게 된다.
마을 길을 따르면 길 좌측으로 '등산로'라고 씌어있는 작은 이정표가
눈에 띠는데 그 지시를 군말없이 따른다.
애면글면 무명봉을 올려치고 또 다시 통나무 계단길을 따른다.
오른쪽 저 아래로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차량들의 거친 숨소리가 귀청을 울려댄다.
비탈을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지하도로가 빼꼼하게 뚫려있다.
성주1리와 원수1리가 엇갈리는 삼거레에서 성주1리 방향의 산길을
따르는데 산길은 수렛길이나 다름없는 길이다.
곧장 올쳐친 멧부리에는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입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원수근린공원인게다.그곳을 빠져나오면 4차선 차도가 앞을
가로 막아선다.차도 건너 쪽에는 LH아파트 단지다.차도 변 인도를
따라 우측으로 이동을 하여 차도를 가로 질러 곧장 이동을 하면
우측으로 용당체육공원 입구가 나오는데, 그 입구로 들어서면
계단 오르막이 지친 지맥의 산꾼들을 기다린다.
멧부리에는 2층 누각 형태의 '龍堂亭(용당정)'이라고 씌어있는
현판이 걸려있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용당정에서의 조망은 화려하다.군산항이 손을 뻗으면 곧바로
손을 내밀 만큼 가깝게 한눈에 들어오고, 아직 완공이 안된 군장대교의
위용도 한눈에 조망된다.밀물로 만조를 이룬 갯벌의 흙빛을 띠는
물 빛위로 잿빛 갈매기들의 날갯 짓이 한가롭다.
비 구름을 아직도 떨궈내지 못하고 있는 하늘의 빛깔도 여전히
잿빛을 머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15시)
오늘 구간은 금북기맥을 마치는 마지막 구간이다.쫑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가까운 횟집(서해횟집)으로 이동을 하여, 모듬회와 복찌게를
주 메뉴로 그동안의 금북기맥 종주를 추억하며 주변정담(酒邊情談)을
즐긴다.하루 온종일 우중산행을 예상하였는데,비교적 예상을 훨씬
벗어난 날씨에 감읍한다.대부분의 지맥 산행이 분깃점을 출발하여
날머리에 도착할 무렵이면, 산의 형태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건축물들이
그 빈 곳을 차지하고 있다.그러므로 지맥이나 정맥의 날머리인
물가에 가깝게 이를 즈음에는 맥을 잇는다는 실질적인 행위보다는
우리들의 터전인 취락의 구조물 지하에 흐르고 있는 맥의 숨결을
숨죽여 듣는, 그러한 내밀한 맥박을 감지하는 소프트한 행위가 될
터이다.(2016,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