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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13. 혜월혜명 무심도인으로 깨달음 향기 전한 ‘지혜의 달’
근세 한국불교 중흥의 씨앗을 뿌린 경허스님 법제자인 혜월혜명(慧月慧明,1862~1937)스님은 무심도인(無心道人)이다. 덕숭산에서 남방으로 내려와 부산 백양산 선암사에서 대중들에게 깨달음의 향기를 전했던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무심도인으로 깨달음 향기 전한 ‘지혜의 달’
○…일제 강점기. 부산 선암사에는 많은 대중이 모여 들었다. ‘남방의 도인’인 혜월스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따르는 이유도 있었지만, 농사를 짓지 않고는 대중 외호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암사에서는 소를 키워 농사일을 거들도록 했다. 지금처럼 농사를 기계로 짓지 않던 시절에 소는 가장 큰 재산이었다. 소에게 ‘우순(于順)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혜월스님은 “너무 일만 시켜 미안하다. 다음 생에는 사람 몸 받아라. 농사철만 지내면 편히 쉬도록 해줄게”라며 아꼈다고 한다.
절로 돌아온 수좌들은 원주에게 “대중공양 때 맛있는 반찬을 해 달라”며 소판 돈을 건넸다고 한다. 시장에 다녀온 혜월스님이 소를 찾았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아무리 천진불이라지만 소를 팔아버렸으니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혜월스님은 꾸중대신 “살던 소 갖고 오너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이때 소를 판 ‘주모자’인 고봉스님이 앞으로 나와 네발로 기어 다니며 “음매 음매”라고 소 울음을 냈다. 이를 본 혜월스님은 “내 소는 애비소요, 애미소이지, 이러한 송아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혜월스님 전법제자 운봉(雲峰)스님의 손법제자 진제스님(조계종 원로의원.부산 해운정사 조실)은 “깨달음을 찾는 납자들의 세계에서는 소를 판 ‘엄청난 일’도 공부의 방편”이라고 말했다.
만공스님 일행과 합류한 혜월스님은 경허스님 법구가 모셔진 산에 도착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로 법구 수습에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이때 혜월스님은 “내가 하지”라며 법구를 모셨다. 철우스님 법어집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혜월선사는 철우스님을 앞세우고 다른 스님 몇 분과 수덕사의 만공스님을 모시고 가서 경허선사의 무덤을 파 화장을 하게 되었다. 경허선사의 뼈는 장대한 황골이었고 장례 중에 혜월선사는 그냥 말없이 눈물만 흘리셨는데, 철우스님은 그날 혜월선사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1937년 2월 어느 날. 그날도 스님은 평소처럼 절로 돌아오고 있었다. 늘 쉬어가던 곳에서 한숨 돌린 스님은 백양산과 마을을 한번 바라본 후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는 자세를 취하다 원적에 들었다. 가고 옴이 따로 없는 선지식의 열반을 혜월스님이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다. 길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처럼 혜월스님은 집착하지 않는 삶의 가르침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었다.
■ 운봉스님에게 내린 전법게 ■ 혜월스님의 법맥은 운봉스님을 통해 향곡.진제스님에게 계승됐다. 또한 철우스님에게도 게송을 지어주었다. 절도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혜월스님의 필체는 평생 무심도인으로 자유 자재했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1902년 쓰인 운봉스님의 전법게 한글풀이는 진제스님 법어집 <고담녹월(古潭月)>을 인용했다. 한글풀이는 다음과 같다.
일체의 유위법은 본래 진실 된 모양이 없으니 저 모양 가운데 모양이 없으면 곧 이름하여 견성이라 함이라. 세존응화 2951년 4월 경허문인 혜월 설함”
世尊應化(세존응화) 二九五一年(2951년) 四月(사월)
■ 행장 ■
천장암 근처 바위굴서
1862년 6월19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신씨(申氏)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3세에 덕숭산 정혜사로 입산해, 15세에 혜안(慧眼)스님을 은사로 출가사문이 됐다.
<사진설명>부산 선암사 전경.
관음정진을 하던 혜월스님은 24세 되던 해에 경허스님을 만나면서 새롭게 발심 했다. 얼마나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지 경허스님이 “혜명(혜월스님의 법명)이의 화두일념은 마치 새끼 잃은 어미 소가 새끼소를 생각하는 것과 같고, 3대 독자를 잃은 홀어머니가 죽은 아들 생각하듯 하는 구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了知一切法(요지일체법) 自性無所有(자성무소유) 如是解法性(여시해법성) 卽見盧舍那(즉견노사나) 依世諦倒提唱(의세제도제창) 無生印靑山脚(무생인청산각) 一關以相塗糊(일관이상도호)” 우리말 풀이는 이렇다. “일체법을 요달해 알 것 같으면,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곧 노사나불을 보리라. 세상 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문자와 도장이 없는 도리에 청산을 새겼으며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 열반송 ■
[출처 : 불교신문 2418호/ 2008년 4월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