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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竹西樓)는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한 누각으로 보물 213호로 지정되었으며, 관동팔경 중의 하나이다.
다른 관동팔경의 누, 정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죽서루의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 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건자 및 건립 연대는 미상이나,
이승휴의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년)에 이승휴가 안집사(安集使)였던 진자후와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따라서 1266년 이전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3년(1403년), 부사 김효손이 대대적으로 중창하였고,
그 뒤 오늘날까지 여러번의 보수 및 증축이 이루어져 왔다
누각 내에 걸려 있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는 현판은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삼척부사 허목의 글씨이며, 전면에서 보이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41년(1715년)의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이다. 그리고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라고 적혀있는 현판은 조선 헌종 3년(1837년)의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이 외에도 부사 허목이 쓴 "죽서루기"(竹西樓記)와 당성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 중수기"를 비롯하여, 여러 현판과 일중 김충현이 쓴 율곡 이이의 "죽서루차운"(竹西樓次韻), 조선 정조가 직접 지은 시판 등 26개의 현판이 죽서루에 걸려 있다.
또한 죽서루 내에 존재하는 작품 외에도 죽서루에 관한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이었던 김극기(金克己)가 지은 죽서루 시가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이자 조선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청북도 옥원군수를 지냈던 이봉의 서녀 였던 옥봉 이원이 지은 시도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지은 여러 편의 시도 현재까지 남아 있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는 이유로 죽서루로 명명되었다.
또한 죽서루 동편에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