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강해14 (눅17:5-6) 믿음의 시작(1)
오늘은 믿음에 관한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아마, 2주에 걸쳐 말씀을 드릴텐데, 오늘은 그 첫 번째 말씀을 좀 드릴까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나도 저런 분처럼 믿음이 좋았으면, 혹은 믿음이 컸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태도는 참 좋다고 봅니다.
이런걸 두고 선한 욕심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속적인 욕심이고
거룩한 욕심이 있는데 이것은 영적인 욕심, 신앙적인 욕심은 늘 품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믿음에 대한 욕구, 욕심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좀 더 알고 싶다든지, 좀 더 깊이 있는 기도를 하고 싶다든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 깊이 가지고 싶다든지 하는 이런 모든 것은
선한 욕심, 거룩한 욕심에 해당합니다.
그 중에 하나 믿음에 대한 욕심을 가지는건 좋은 욕심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이 믿음이라는게 하루 아침에 생길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믿음이 커지는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오래 믿었다고 믿음이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오래 믿고 살아도, 믿음이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예수님께서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예수님은 믿음에 대한 비유를 겨자씨에 비유 했을까...하는 것입니다. 다른 씨도 많을텐데 왜 겨자씨인가?
여러분, 혹시 겨자씨를 보셨습니까?
겨자씨는 들깨만합니다. 좁쌀 크기정도 되죠. 그것보다 조금 더 작습니다.
왜 예수님은 믿음을 이 겨자씨 같이 보잘것없이 작은 씨에 비유했을까요?
그 이유가 뭘까?.......
여러분, 믿음이라는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볼 때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믿음이라도 믿음은 그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말인 즉, 믿음은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한 본질만 알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한 두 번째 본질은 뭔가?
그것은 생명에 있습니다.
씨의 본질은 그 안에 생명이 있느냐 없냐에 달려 있습니다.
보기에 아무리 큰 씨라도 그 안에 생명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보기에는 장로, 목사, 권사...뭐 여러 가지 그럴듯한 교회 직책을 가져 있다고 해도
그 안에 예수생명의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없는 씨에서 어떻게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작은 믿음이라도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으면 거기서부터 믿음은 시작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외형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신자라도, 그 안에 믿음의 생명력이 없다면
그것은 죽쩡이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생명력 있는 믿음의 씨가 과연 뭐냐는 겁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이 어떤 믿음을 말하는건가?
여러분, 생명력이란 살아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가 뭡니까? 산것과 죽은 것의 차이.....
간단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뜻고, 반대로 죽은 것이란 움직이지 않는거죠.
간단합니다.
산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 생명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생동력이 있으냐 없느냐? 움직이느냐 못 움직이느냐의 그 차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산 믿음, 생명력 있는 믿음이란, 살아 움직이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듣고 공부해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을 의미하고,
그 말씀대로 어찌든 살아 볼려고 몸부림치며 사는걸 산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력 있는 믿음만 있으면 언젠가는 그 믿음의 씨가 크든 작든, 자라서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늘 말씀을 듣고, 성경공부를 하는데도 그 삶의 변화가 없다.
죽은 믿음이고, 생명이 없는 씹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즉 죽은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변화가 없습니다.
왭니까?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별볼일 없고, 작은 겨자씨라도 그 안에 생명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우리 가운데, 내 마음 가운데, 생명력 있는 믿음이 있는가를 항상 체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죠.
왜냐하면,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믿음이라는게 아무나 가질 수도 생길수도 없기 때문에
어떤 작은 믿음의 씨앗이라도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 바깥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해보세요.
예, 예수 믿겠습니다라고 하고 교회 나오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분은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전도자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제가 여럿봤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의 선물입니다.
왜요? 아무나 못 믿거든요. 아무리 믿어라 그래도 안믿어지거든요.
저도 길을 가다가 전도 받았는데, 그 후로 제 친한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된게 믿음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을 쉽게 가진 사람보다,
믿고 싶어도 안 믿어진다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믿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혭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믿음, 지금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다면, 큰 믿음, 더 좋은 믿음이 과연 뭘까요?
뭐가 더 큰 믿음이고, 더 좋은 믿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성숙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큰믿음, 좋은 믿음은 얼마만큼 내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한가에 따라
그 믿음의 크기가 좌우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다른말로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되어 가는 단계가 바로 믿음이 자라는 단곕니다.
예전에는 막나니처럼 내 멋대로 살았는데, 믿음을 가진 뒤부터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어졌다.....
성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걸 또 다른 말로 표현하는게 있는데 바로 거듭남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밉니다.
믿음을 가지면 반드시 거듭남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바뀐다는 뜻이거든요. 새롭게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성숙된 믿음으로 살 수 있고, 더 큰 믿음을 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충이 알에서 깨어나야 하고, 탈피를 해야 멋진 모습으로 비행할 수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게 바로 거듭남이고, 이게 바로 성숙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은지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는데 내 삶의 아무 변화가 없다.
죽은 믿음인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하루하루 이렇게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성숙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들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제가 늘 여러분들에게 주문하는게 뭡니까?
성숙한 신앙인이 되자는거 아닙니까?
교회 다닌다고 다 교인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 수십년, 아니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녀도,
그 안에 믿음의 생명력이 없으면 그건 죽은 믿음이요, 껍떼기 믿음에 불과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고, 성경공부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의 그릇을 더 크고 단단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겨자씨만한 별볼일 없는 믿음이지만, 내 믿음의 씨가 자라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고 휴식을 줄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두란노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런 생명을 가진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