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개정 초등 통합교과 유감
지난 12월 2일 2022개정교육과정 통합교과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평일 오전 10시에 진행하겠다는 통보를 하며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전화는 열흘 전에 왔다.
“현장교사는 오지 말라는 거죠? 수업 빼고 심의회 참석하는 게 쉬운 일입니까?”
통합교과 심의위원으로 위촉받은 것은 작년 3월이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이유로 다들 정신 없는 와중에 온라인 화상회의로 심의회를 열고 위원장과 간사, 총무를 선임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공지도 없는 시간이 하릴없이 지나갔다.
2022년 4월 19일 뜬금없는 메일이 왔다. ‘2022개정 초등통합교과 교육과정 1차 시안 개발 연구’ 자료를 첨부하니 심의위원들이 의견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4월 27일 제출한 의견서는 다음과 같다.
➊ 초등 통합교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방향
■ “학교교육내용에 대한 인식론→존재론으로 시간 전환하는 기회 마련” (시안 11쪽)
- ‘시각’ 전환인 것으로 보임.
- ‘인식론’과 ‘존재론’을 이항대립적으로 보는 듯하여 아쉬움. 학문적 정합성을 위해 분리해서 궁구하기는 하지만 인간 삶의 실재에서는 둘은 하나임. 스피노자는 “자기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행동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지일 뿐이다(에티카, IIp35s), 무지는 노예의 한 형태이며(IVp66s),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인 개념을 형성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자기원인에 의해 일어나도록하는 길이고(IIp21), 자기 자신의 행동이 자기원인에 의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Vp42)”라고 정의하였으며, 이는 근대 이후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
- 철학적 사유에 대한 전문적 논의 필요한 것으로 보임.
■ “삶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 때문에 삶에 대한 이야기는 편집과 수정이 가능하도록 열려 있다. 고정적이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계속 구성하고 표상하는 것이다. 이에 지금-여기 나의(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 만들기는 학문(교과)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참’인가 ‘거짓’인가보다는 임의성 즉시성을 특성으로 한다. 한편으로는 일관성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그 일관성을 위반하려는 경향, 즉 비논리적인 임의성을 특성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의 발달적 특성에 부합하고, 그들의 발달을 풍부하게 자극할 수 있다.” (시안 10쪽)
- 어린이의 발달에 근거한 방향 설정이 필요함. 초등학교 1-2학년 어린이들의 자아 개념은 형성되는 중이며, 해석과 성찰의 의미가 성인의 것과 질적으로 다름. 학교에서의 학습을 통해서 경험을 공동일반화하며 구체와 추상을 넘나드는 배움을 통해 개념 체계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봐야 함. 임의성과 즉시성을 일반성과 논리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함. 학습은 발달의 다음 영역을 예비하는 것인데 아이들의 특성이 임의성, 즉시성이기 때문에 임의성 즉시성을 가르치는 것은 과거의 것을 가르치는 것이 될 것임.
- 어린이 발달에서 글말의 학습이 지닌 의미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참고하여 임의성과 즉시성을 넘어서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수정해야 함.
■ “그 동안 학교교육은 인류의 문화 유산인 각 학문분야의 주요 지식을 학교교육을 통해서 전수하면서 지식기반 사회로의 변화에 기여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학문분야의 핵심 지식을 전달하고 그것을 학생이 성취했는지 평가하면서 학교의 지식 전달교육의 편향성 문제도 키워왔다. 이제 교수학적 측면에서 교육내용을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선회 할 시기다.”(시안 10쪽)
- 이런 인식 자체가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편항적인 시각으로 보임.
- 2022년 현재 통합 교육의 문제는 오히려 거꾸로 각 학문 분야의 주요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무시하고 기본적인 지식이나 내용조차도 전수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임.
■ “통합교과에서는 초등학교 1, 2 학년 학생들이 일상적인 관심사나 생활하는 중에 만나는 자신과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문제 상황을 반영한 탈학문적 주제를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맥락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한다.”(시안 12쪽)
- 학문적 주제가 지식 전달 중심의 학교 교육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지식 전달 중심의 평가 관행이 그런 현상을 만들었음. 과정중심평가를 하고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관성을 강조한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초등학교에서 지식중심, 전달교육을 논하는 것은 이런 연구가 철저하게 현장에 기댄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으로 읽힘.
- M. F. D. 영을 중심으로 ‘Powerful Knowledge‘에 대한 담론이 전 교과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봄.
➋ 과목별 내용체계, 성취기준 구성안, 누리과정 및 3~4학년군 연계사항, 총론 주요사항(입학초기 적응활동, 안전한 생활, 초등 저학년 신체활동 강화) 등
■ 통합교과 내용체계, 성취기준의 문제는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할 1-2학년 교육, 그것도 시수상 가장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교과의 성취기준을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임. 이 성취기준으로 무엇을 가르치라는 것인가? 여기저기 이것저것 다 갖다 붙여도 되는 성취기준은 누리과정보다 자기폐쇄성에 갖힌 성취기준이라고 생각함.
■ 통합교과라는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에 의문을 표함. 모학문을 이식하는 통합교과라는 관점에는 반대하지만, 기존의 교과 영역에 대한 기초 중의 기초를 다지는 것은 도외시하면서 추상의 세계에 빠진 것으로 보임.
■ 4-6학년 가르치다가 처음 개정 교육과정의 통합교과 성취기준을 읽어보는 교사들은 이게 뭐하는 교과냐, 교과서를 보면 그림책 수준, 국어교과서는 1년 동안 텍스트의 양과 질에 변화를 주면서 확대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책 수준인 교과서는 있으나 마나한 교과서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임.
■ 그런 교과서로 공부하고 3학년에 올라가서 10권이 넘는 교과서를 받아든 아이들은 멘붕에 빠짐. 그게 단원 하나 신설해서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님.
■ 성취기준 진술 방식,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 체계에 대한 수정을 요구함. 기초 기능에 대한 외면 혹은 무시로 색연필, 크레용 하나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고, 음정에 맞게 노래 부르는 연습도 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조사’를 하게 해서 부모 숙제를 만들어 버리는 관행을 수정해야 함.
➌ 초등 통합교과 교육과정 시안의 학교 현장 적용시 개선 필요 사항
■ 대주제 중심 교육과정 개발에 반대함. 대주제 내부의 정합성을 추구하면서 중요한 내용 및 기능 요소들을 무시하는 현상, 오히려 시수만 많고 가르칠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음.
개정 시안에서 더 요상한 것은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교사 두 명이 개발진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시안 3~5쪽에 있는 ‘연구 개발 위원회’ 조직표였다. 그 중 한 명은 심의회 총무까지 맡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것인가? 통념상 심의를 할 사람이 심의받을 내용을 개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어떤 답변도 응답도 없었다.
7개월이나 지난 11월 말 심의회 개최하니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확인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심의회 참석을 위해 ‘행정예고본’을 찾아보면서 필자의 의견서는 가볍게 무시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문을 먼저 보내주시죠? 공문을 보내주셔야 참석 가능 여부를 교장 선생님께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공문을 받고 시간강사를 구하고 심의회에 참석했다. 심의위원 15명 중 7명이 참석했고, 8명 전원이 위임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개발진에서 3명이 참석했는데 그 중 2명이 심의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개발진으로 심의회에 참석하면서 위임장은 제출했다는 거다. 이런 말 참 싫어하지만, 교사가 저래도 되는 걸까? 같이 연구하는 교수들은 저렇게 눈감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교육부 관계자들은 그렇게 넘어가도 되는 걸까? 눈 가리고 아웅, 좋은 게 좋은 거?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현 대통령도 자기 편이라면 눈감아주고 넘어가니까 괜찮다고 보는 걸까?
2022개정교육과정에서 초등 1-2학년 통합교과는 안전한 생활의 64시간을 모두 흡수해 704에서 768로 시수가 늘었다. 1-2학년 시수의 절반에 가까운 그 절대적인 시수를 확보한 통합교과의 영역명은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서 살까,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이다. 이 교육과정 영역명이 그대로 고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누구일까’ 영역명으로 평가계획을 세우고, 나이스에 입력하고, 교육과정 재구성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정도야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진짜 묻고 싶다.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서 살까,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개발진들은 답할 수 있나? 다른 교과처럼 ‘개념’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건 통합교과만의 독자성이 아니라 학문적 체계 없음의 반증이라고 본다. 게다가 심의진을 개발진으로 구성하면서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후안무치 아닌가?
원글링크: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1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