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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4장 하나님의 창조 2항, 24.9.1 박홍섭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하면서 2항에 인간 창조를 설명합니다.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우주 만물의 모든 피조 세계를 만드신 후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존재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창조를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지를 공부하겠습니다.
2항.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후에, 이성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을 지닌(창 2: 7, 전 12:7, 눅 23:43, 마 10:28)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으며(창 1:27), 그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그들에게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부여하셨으며(창 1:26, 골 3:10, 엡 4:24),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셨고(롬 2:14, 15), 게다가 그 율법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전 7:29). 그러나 그들은 의지의 자유를 허락받은 상태에서 죄를 지을 가능성 아래 놓여 있었고 그들의 의지는 언제라도 변할 소지가 있었다(창 3:6, 전 7:29). 인간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에 더하여,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도 받았다(창 2:17, 3:8-11, 23). 그들이 그 명령을 지키는 동안은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행복에 가득 찼으며, 또한 피조물들을 지배하며 다스렸다(창 1:26, 28).
1. 인간은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을 다 만드신 뒤 창조된 창조의 면류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이 거주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갖추어놓고 그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창조하시되 이성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을 지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남자는 흙에서 창조되었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창조하셨습니다. 먼저 남자 아담을 만드신 후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고, 그를 도와줄 돕는 배필로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 하와를 만드시고 둘이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 속에서 삼위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과 그리스도가 교회와 연합된 신비가 들어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함부로 나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6). 하지만 이 시대는 제멋대로 짝지어 주신 것을 찢고, 동성애와 트랜스 젠더 등 거룩한 성을 왜곡시키고 남용합니다. 교회는 이 큰 도전 앞에서 더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되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른 창조 질서와 성을 잘 가르치고 교육해야 합니다.
2.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의존적 존재입니다. 또한, 사람은 피조물만이 아니라 인격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부의 힘으로 만사가 결정되는 로봇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힘과 독립성을 가진 인격체로 지었습니다. 인격체는 결단력을 지니며, 목적을 세우며, 그 목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유를 소유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독립성은 절대적이 아닌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하는 상대적 독립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조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말 한마디조차 내뱉을 수 없으나 인격체로서 나는 나의 손가락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내가 말하고자 할 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로서 우리는 진흙에 불과하며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지만(롬 9:21) 인격체로서 우리는 우리의 결단들로 우리의 삶을 설계해 나갑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함과 동시에 우리가 인격체로서 누리는 결단의 자유가 동시에 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신비로울 뿐입니다. 모든 비기독교적 인간학은 인간의 피조성을 거부하며, 모든 결정론적 인간학은 인간을 마치 하나님이 줄을 잡아당기거나 버튼을 눌러 조종하는 꼭두각시나 로봇으로 생각하여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나타내지 못하기에 우리는 사람의 피조성과 인격성을 함께 가르치고 있는 성경적 인간론을 지키고 가르쳐야 합니다.
3. 삼위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자신의 형상 또는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창 1:26).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똑같이 복제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일부 자신의 영적인 속성과 능력을 본 떠 서로 사귐이 가능한 이성적인 피조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말을 하나님의 본질을 부여받았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본질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로버트 쇼, p.127). 천사나 다른 피조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고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신원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3가지 성경 핵심교리』, 64.) 피조물 중 유일하게 온전히 하나님을 알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골 3:10, 엡 4: 24). 모든 피조물이 창조의 결과이고 하나님의 흔적과 발자취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특별히 구별된 존재이며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며 살아있는 계시입니다(Herman Bavinck. Dogmatiek.2:566).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인간 이해의 열쇠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이 성경의 진리를 놓치면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창 1:26-27, 5:1, 9:6, 시 8편, 약 3:9, 롬 8:29, 고후 3:18, 골 3:9-10, 엡 4:22-24).
4. 수메르와 바벨론의 창조 설화에서는 인간 창조의 목적을 신들의 멍에를 메고 가기 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즉 신들이 해야 했던 무거운 고역의 짐을 지우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아트라카시스 서사시'(The Atrachasis Epic)에서는 인간창조의 설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매일 고된 노동의 책임을 진 하층계급의 신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들은 회의를 소집한 후, 인간에게 그 고역을 맡기기 위해 인간창조를 결정하였다. 그래서 신들은 고역의 멍에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인간 창조를 축하했다. 수메르에서는 아주 고대로부터 대대적인 민중 부역이 있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성전건축과 종교의식을 위한 것이었다. 인간은 바로 이런 부역을 위해, 신들을 섬기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바벨론의 아카드 제국의 창조설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 제6편도 같은 내용을 전해준다: 마르둑(Marduk) 신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피를 모으고 뼈를 만들겠다. 내가 야만인을 창조하겠다. 그의 이름은 '사람'이라고 하겠다. 진실로 야비한 인간을 나는 창조하겠다. 그는 신들을 섬기는 책임을 맡을 것이다. 신들이 편안해지도록!" ). 그러나 성경은 인간 창조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인간이 그 목적대로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인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 되게 합니까? 호모 사피엔스(이성적 존재, 지혜), 호모 파브르(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호모 로퀴언스(언어를 구사하는 존재), 자기반성, 이성, 영혼, 등등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을 놓치면 사람을 바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5. 창 1:26-28은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씀합니다. ‘형상’은 ‘첼렘’이라는 단어이고 ‘모양’은 ‘데무스’라는 단어로, 이 두 단어는 서로 다른 뜻이 아니라 둘 다 ‘~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교차 사용되었습니다(Keil and Delitzsch의 주석,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1, The Pentateuh, trans. James Martin, p63에서 루터를 인용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70인 역과 라틴어 번역은 형상과 모양 사이에 접속사를 삽입했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이 두 단어 사이에 접속사가 없으므로 의미적 차이가 없습니다. 창 1:26에서는 형상과 모양이 같이 사용되었고, 27절은 형상으로만 인간창조를 설명하고 창 5:1절에는 모양이라는 단어만 사용되고(한글 성경은 형상으로 번역) 또 창 5:3절에는 다시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므로 두 단어가 같은 뜻으로 혼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마치 거울이 실체를 반영하듯이 하나님을 투영하며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야 말로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시켜 주는 유일한 특성이며 인간에게 어쩌다 덧붙여진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6.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을 광의적인 형상(구조적)과 협의적인 형상(기능적)의 두 측면으로 구분합니다. 넓은 의미의 하나님 형상은 구조적 측면의 형상으로 인간이 맺고 있는 삼중적인 관계성과 소명들 속에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도록 하는 모든 은사들과 재능들이 총체적으로 부여된 상태를 말합니다. 좁은 의미의 하나님 형상은 그 모든 것을 바르게 작동하게 하는 올바른 기능성으로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입니다(골 3:10, 엡 4:24). 그러나 이 둘은 구분하는 것이지 분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7. 타락 이전의 사람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여 구조적, 혹은 넓은 의미의 하나님 형상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기능적, 좁은 의미의 하나님 형상도 생생하게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사람은 좁은 의미의 하나님 형상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형상인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재능과 능력들조차도 악한 동기와 방법들로 사용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죄의 심각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부패한 하나님 형상은 성령의 거듭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은총을 통해서만 회복이 가능합니다. 성도에게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은총의 문제인 동시에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야 하는 성화의 과제이며 동시에 온전케 된 형상을 입는 영화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의 주제입니다.
8.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성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을 지닌 존재로 창조했다고 고백합니다. 창 2:7에 따르면 하나님은 흙으로 육체를 만드신 후에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생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살아 숨 쉬는 육체와 함께 불멸하는 영혼을 가진 신비로운 존재로 만드신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육체와 함께 늘 영혼을 직시하고 살펴야 합니다. 특히 죄와 구원의 문제와 직결된 영혼의 문제를 소중히 다루는 동시에 육체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9.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자신의 율법을 새겨 놓았고, 능히 따를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타락 전 인간은 자신에 새겨진 율법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 도적적 존재였습니다. 반면 동시에 범죄할 가능성도 같이 가졌습니다(창 3:6, 전 7:29).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로 순종 대신 불순종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며 하나님의 사람 창조가 실패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불순종이 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순종하는 인격적 존재로 만드심을 더욱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11. 하나님은 사람과 매우 특별한 언약 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창 2:17). 그리고 만약 이를 지킨다면 영원한 생명을, 그렇지 않는다면 영원한 죽음을 벌로 내리신다는 조건이 있는 약속을 맺으십니다(행위언약). 이는 단순히 먹고 안 먹는 문제가 아닙니다. 계시 된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생명과 죽음이 결정되는 중요한 삶의 문제입니다. 본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신 8:3).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가 약속한 생명으로 사는 언약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참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12. 하나님은 언약 관계 속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과 함께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라는 특별한 명령과 지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고 명령하셨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까지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를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아담은 이 명령과 주어진 권세를 따라 피조물들의 이름을 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영원한 안식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과 함께 피조 세계를 돌보며 영원히 교제하길 원하셨습니다.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깊은 사랑의 사귐이 가득한 참된 안식을 누리고자 하셨습니다.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대로 자신의 모든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가꾸어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안식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 안에서 회복된 형상을 가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참된 안식을 누리는 새로운 문화명령에 동참하고 그 영광의 완성을 소망해야 합니다.
13.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은 늘 새롭게 정의됩니다. 특별히 지금 4차 산업혁명과 AI 등장은 기존과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려갑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은 진화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힘써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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