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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동쪽의 여덟 하늘나라로 가다
하늘나라 사람들은 우주나무(Cosmic Tree)에 둥지를 튼 새처럼 산다. 새처럼 가볍게 날고 가볍게 살아간다.
하늘을 떠받히는 거대한 나무둥치에 가지들이 쭉쭉 뻗어있고 푸른 잎이 무성하다. 천인들은 가지에다 집을 짓고 사는데 새의 둥지 같다. 천인들의 몸은 인간보다 훨씬 크고 용모도 수려한데 몸은 아주 가벼워 날아다닐 수 있다.
그러기에 집이 견고할 필요가 없다. 집의 크기는 큰 대궐집 같은 규모로 나무 가지위에 지어져 있다. 천인의 몸이 가벼우니 집도 가볍다. 그래서 집이 아무리 많이 들어서도 우주나무의 가지가 부러진다거나 무거워서 축 처지는 법은 없다.
가지마다 지어진 집들을 멀리서 보면 거대한 숲속에 누각이 층층이 겹치기도 하고,
나란히 배열되기도 하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나무 가지 하나에 백 호쯤 되는 가구가 모여 사는데 그것이 하나의 마을 단위가 된다. 이런 마을이 백 개 정도 모이면 좀 더 큰 단위의 마을이 될 것이다. 한 그루의 우주나무에는 몇 억의 가구가 산다. 우주나무 한 그루가 한 개의 하늘나라이다.
이런 우주나무가 여덟 그루 모인 것이 바로 동쪽의 여덟 개 하늘나라가 된다. 여기에서는 먹고 살기위해서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다. 학교 가서 공부할 필요도 없고 머리를 굴려 출세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천천히 돌아가는 슬로우 라이프(Slow Life)이다. 천인들의 생활은 여유만만하며 자연환경은 쾌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보이는 곳이 모두 녹색 그대로 이니, 우주나무 세계에서는 녹색이 주된 색깔이다. 녹색무정부자연주의 라고나 할까, 권위적인 권력의 입김이 일체 작용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 이것은 주민들의 정신적 수준이 아주 고양된 하늘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기 천인들의 거주지는 숲으로 구역이 나누어진다. 마치 아파트 단지별로 거주지가 정해지듯이
만주사카 숲, 난다카 숲, 미사카 숲, 파루사카 숲 이런 식이다.
특히 파리찌트라(Paricitra,산호나무) 숲 아래 있는 <환희원>은 마야부인의 별궁인데, 그것은 도리천의 중앙에 있는 제석천궁 선견성외곽에 있는 수정궁(水晶宮)으로 외부인은 방문할 수 없다고 한다.
천인들은 날아다니되 서로 충돌하거나 사고 나는 일이 전혀 없다. 천인의 의식은 전 방위로 깨어있기에 저절로 주위를 배려하게 된다. 그리고 일상에 관용적 자세로 살아가기에 자기 앞 길에 집착하여 남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끼어들지 않는다.
자연스런 흐름에 맡긴다.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배가 고픈 느낌이 들면 먹고 싶은 음식이나 과일을 생각만 해도 눈앞에 척 나타난다. 그러기에 먹는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더구나 집안에서 음식을 요리하거나 저장해둘 필요가 전혀 없으니 부엌일이라든지 가사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인간 세상에서는 일생동안 돈을 벌어야 되고, 먹고 나서는 집안 청소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만 여기에서는 그럴 일이 전혀 없다. 노동에서 해방되어, 노동과 여가, 노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삶이 인간 세계의 이상이라면 이상이겠는데,
여기 하늘나라에서는 그 같은 이상이 벌써 실현되었다. 하늘 사람들은 하는 일이 휴식하거나, 노래 부르고 춤추거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예술창작 활동을 하거나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일이다.
하늘 사람 중에 종교적인 사람들은 꽃과 과일, 향을 준비해서 부처님이나 보살, 성자들의 회상으로 날아가 공양 올리고 법문이나 설교를 듣고 그 세계를 두루 유람하고 돌아온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보낸다. 꽃을 올리고 싶다고 상념을 일으켜 꽃의 종류와 색깔, 몇 송이, 몇 묶음정도를 상상하면 그 즉시 눈앞에 나타난다. 꽃집에 가서 돈을 주고 사러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하늘 사람들은 남녀 사랑을 어떻게 나눌까? 인간처럼 몸과 몸이 부딪혀 섹스를 하는데 부드럽고 우아하게 동작하여 마치 유희하듯이 춤추듯이 이루어진다. 양쪽 파트너가 동시에 모두 만족할 때 정액이나 애액이 배출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바람(wind energy)이 ‘훅’하고 불면서 남녀 양쪽의 몸속을 운행하면서 환희를 느끼게 해준다. 금슬이 아주 좋다. 결혼한 배우자들은 의리를 배신하거나 외도를 한다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인간사회처럼 사랑에 속고 배신에 울고 하는 일 따위는 없다. 이혼도 없다. 한 번 맺어지면 평생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자식은 인간처럼 모태에서 출산하는데 인간세상의 여자들이 겪는 산고(産苦)는 없다. 모두 자연 분만하는데 별 고통 없이 그냥 쑥 나온다. 그래서 산부인과나 조산원이 없다. 여자 혼자서도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 아버지 될 사람이 옆에서 기다리다가 태아의 탯줄을 끊어주면 아기 낳는 일은 끝난다. 아쇼카 나무칼로 탯줄을 끊는데, 아쇼카나무(Ashok Tree, 무우수, 無憂樹)는 ‘근심이 없어지는 나무’라는 의미 뜻이니, ‘아가야, 너는 이제 근심하지 말라. 너는 축복 받은 존재로 태어났느니라.’ 이런 축하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동네 전체의 경사다. 꽃을 가지고 오랴, 향을 가지고 오랴, 과일을 가지고 오랴, 예물을 가지고 오랴,
축하행렬이 이어진다. 인간세상의 여인은 아이 키우랴 가사 돌보랴 쉴 틈이 없다. 더군다나 교육문제, 취직문제는 산 너머 산이다. 그래서 결혼을 않고 독신으로 사는 여성이 많은데, 여기는 그런 문제가 아예 없다. 아기는 부모가 육 개월만 돌봐주면 금새 자라나 인간세상의 8살에 맞먹는 아동이 된다. 그리고는 제 할 일을 제가 알아서 한다. 부모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모두 부모와 스승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학교에 간다든지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다. 그렇게 성장하여 16세가 되면 제 짝을 스스로 찾게 된다. 그리고는 20세의 미모와 청춘의 몸을 간직한 채 너머지 여생을 살아가게 된다. 천인에게는 질병이 없으므로 병원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양로원이나 요양원도 필요 없다. 여기에서는 죽을 때까지 피부나 몸매가 노화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청춘그대로 유지하다가 죽을 때가 가까워오면 기력이 점점 떨어져 활동반경이 줄면서 멀리 날아다니지 않는다. 그러면 자연스레 관조적이고 명상적으로 변한다. 천상에는 홀애비나 독거노인이라는 게 없으니 노인문제가 전혀 없다.
마을마다 나그네를 위한 ‘손님의 집(게스트하우스,Guesthouse)’이 있어 누구라도 쉬어갈 수 있다.
두 사람은 잘란다리(도리천녀의 이름)를 따라 날아다니며 동쪽의 우주나무 세계를 유람한다. 잠시 어느 마을로 내려와 마을 가운데 있는 ‘손님의 집’에 들어가 쉰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과일과 단약(丹藥)을 가지고 온다.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이다. 포도알이 오색이다. 빨간 포도 노란 포도 파란 포도 하얀 포도 검은 포도가 한 꼭지에 옹기종기 붙어 있어 무슨 예술작품 같다. 오색 바나나에 오색 단약도 있다. 먹으면 나는(飛行) 힘이 강해진단다.
우리는 포도알을 따먹고 단약도 하나씩 먹었다. 기력이 회복되었는지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져 저절로 날아갈 것 같다.
칼라무드라가 잘란다리 천녀에게 묻는다.
<도리천녀 잘란다리>
‘여기 하늘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예, 그때는 천인오쇠(天人五衰)라는 현상이 일어나요.’
‘하늘 사람은 전생에 많은 복을 지어 하늘나라에 올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서 복을 누릴 만큼 누리다가 복의 힘(福力)이 다하면 쇠퇴하기 시작하죠. 마치 저금통장에 잔고가 고갈되면 경제적 압박을 당하듯이 말이죠.
복이 바닥이 나버렸으니 이제 곧 하늘나라에서 밀려나게 될 터인데 그러면 극도의 공포가 엄습해오죠. 그리고 문전에 드나들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요. 그러면 고독해지죠. ‘하늘나라에서의 고독’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사실이예요. 하늘 사람이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花冠)의 꽃이 시들죠. 그 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말이죠. 그리고 하늘 옷이 때가 묻거나 얼룩이 지죠. 하늘 옷에 어떻게 때가 묻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더러워진다는 것은 하늘나라에 있을 자격이 박탈된다는 징조이죠. 그리고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하늘 사람의 몸은 불로장생이요 만년청춘인데 어찌 냄새가 나고 땀이 날 수 있겠어요. 이지경이 되면 이제 천인의 몸이 쇠잔해지기 시작했구나 하고 받아드려야죠. 그리고는 살던 마을에서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게 되죠.
그러면 천인들은 ‘아, 그 분이 떠나셨구나.’ 이렇게 생각만 할뿐이지 조문이나 장례의식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하늘 사람은 죽을 때 시체를 남기지 않거든요. 그냥 공중분해해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거든요. 자기의 죽음을 누구한테도 보이지 않고 홀로 사라져 버리거든요.’
‘하늘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하늘사람에게도 공포와 불안이 있네요.’
‘예, 그래요. 아무리 하늘나라라고 해도 영원히 살 수는 없죠. 유한자의 한계와 비애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죠.’
‘그리고 하늘사람에게 나타나는 불길한 징조 다섯 가지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즐거운 소리가 부족해지고, 몸에서 나는 빛(身光)이 사라지며, 눈을 자주 깜박이게 되죠. 그리고 목욕한 물이 몸에 달라붙어요. 하늘사람의 몸은 맑고 투명하기에 연잎처럼 물이 묻지 않는 법인데, 목욕한 물이 몸에 달라붙는다는 것은 수명이 다 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그렇게 되면 좌불안석이 되요, 이럴 때 좋은 인연을 만나거나,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한다면 타락하지 않고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갈수 있게 되죠.
이런 불길한 징조를 경험하게 되면 개중에 지혜가 명민한 천인은 수행할 마음을 일으키죠.
그래서 수행공동체를 찾아 나서게 된답니다. 말하자면 구도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죠. 하늘나라의 구도자가 되는 것이죠.’
하늘나라에는 곳곳에 수행하는 모임이 있다. 두 사람은 그런 곳을 방문해보고 싶어 한다. 그것을 눈치 채고 잘란다리(천녀의 이름)는 여러 곳으로 안내해준다.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 사이를 한참 날아가니 황금빛 광명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비쳐 나오는 곳이 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고 그 회중의 가운데에 흑발의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빗은 하얀 얼굴을 가지신 분이 우아한 몸짓으로 천인들에게 설교를 하고 계신다. 그분의 머리 둘레에 원광이 빛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이 공간 가운데 모든 존재를 나 자신인 듯이 느끼게 하소서. 모든 생명이여, 행복하소서’라고 기도할 것을 권유하신다. 잘란다리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예수스 크리스토스(Jesus Christos)라 한다. 두 사람은 사랑의 기운을 흠뻑 느끼고 다시 다른 회상으로 날아간다.
어느 마을가운데 있는 큰 회당에 들어갔는데 사방이 하얀 벽으로만 둘러 싸여 있고 장식이나 상징적 조형물이 하나도 없다. 단지 전면의 하얀 벽에 쿠란(Quran)의 성구가 아름다운 금자(金字)로 씌어져 있다.
남성들은 하얀 가운을, 여성들은 검은 가운을 걸치고 예배와 송경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무형상의 순수한 의식과 아주 맑은 기운을 느꼈다. 절대 초월적인 유일신에 대한 순종과 질서, 의무와 봉사가 가르쳐진다. 리듬미컬하게 들려오는 쿠란의 독경소리를 들으면서 셋이 날아 다른 회상으로 간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 반짝 반짝 빛나는 첨탑의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갔다. 들려오는 조용한 음성;
‘오, 빛의 영혼이여. 들어라, 세계는 암흑과 광명의 대립이 아니요, 선과 악의 투쟁이 아니니라. 빛과 어둠이 부딪히면 빛의 입자와 어둠의 입자가 골고루 섞이어 은은한 빛이 되는 동시에 그윽한 어둠이 되나니 여기에 만물이 포근히 안기는 보금자리가 되도다. 나는 재림한 예수요 환생한 붓다(부처님)이로다.’
모임에 들어있는 천인들은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형제애를 나누면서 명상에 든다.
마니(Mani the Prophet)는 이란(Iran)에서 태어나 초기 기독교의 신비전통을 배웠고 박트리아(Bactria)에서 대승불교를 접했다. 사랑과 관용, 광명과 구원이란 그의 가르침은 인간 세상에서는 실크로드의 종교였던 것이다.
그는 하늘나라의 광경을 그려가면서 설교를 한다. 마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요, 예수와 붓다를 아우르는 성자이다.
<마니 성인>
마니 성자에게 예배를 드리고 다시 우주나무 숲 위를 날아가다 거대한 폭포가 내려 꽂히는 강을 보았다. 강가에 하얀 옷과 오렌지 빛 옷을 걸친 사람들이 모여서 요가자세로 명상에 들어 있다. 다른 무리들은 늙은 요기(요가수행자)를 중심으로 둘러 앉아 그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그 요기는 인간 세계의 인도에 수 천 번 태어났던 요기로서 히말라야의 성자라고 한다. 하늘 사람들은 꽃을 뿌리고 향을 태우면서 예배를 올린다. 그 분이 설법하자 위대한 천신 대범천의 영상이 하늘 가득히 떠오른다.
‘오, 위대한 브라흐만(Brahman)이시여, 스스로 존재하시며 만물의 시원이 되시며, 우주에 편재하시어 내 영혼에 깃드시니 아트만(Atman)이 됨이라. 내가 아트만을 자각함으로 말미암아 브라흐만과 둘이 아님을 깨닫는도다.’
그리고는 서서히 사라지니 크나큰 평화와 자비의 기운이 회중에 가득하다.
칼라무드라와 칼라다나, 잘란다리는 또 다시 몸을 솟구쳐 강물을 굽어보면서 날아올라 황금대탑을 찾는다.
황금대탑에서 찬란한 빛이 비쳐 나오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눈에 띈다. 셋은 대탑 아래로 내려와 모임에 참석하니 관세음보살(Avalokiteshvara)의 회상이다. 세상의 고통을 들으시고 자비의 손을 펴신다는 관세음보살. 과연 천개의 팔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 미묘한 활동을 하신다. 무수한 팔들의 움직임은 빛이 공간을 퍼져나가는 형상이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모든 생명이여 영원히 행복 하라. 모든 중생이여 안심하라, 너희는 우주적인 사랑 속에 안겨 있나니, 너희는 영원 전부터 구원되어 있었다. 너희는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수명이요, 고통을 받을 수 없는 금강의 몸이니라. 오직 자비심을 길러라. 자비를 실천하라. 자비가 모든 것을 이기느니라.’
순례자들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그 회상을 세 바퀴 돌고 날아올라 다음 차례를 찾아간다.
다시 날아올라 다른 회상을 찾아간다. 저 멀리 구리로 된 산(Copper covered Mountain)이 나타난다. 그 산 가운데로 내려가니 금강저(Vajra)의 울타리가 동서남북 사면과 공중에 까지 중중히 둘러 쳐져있다. 난공불락의 성이요,
절대불가침의 성역이다. 그러나 잘란다리가 휘파람을 불듯이 ‘옴 마니 뻬메 훔’이라고 외우니 금강저의 바리케이드가 저절로 사라지며 다키니(Dakini, 티벳 불교의 수호여신)들이 줄을 서서 나와 맞이한다. 셋은 수정 다키니에게 이끌려 회상의 주인되는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존자를 배알한다. 칼라다나는 수정다키니를 알아본다. 카쉬가르 시장에서 그에게 동방으로 가라는 예언을 주었던 바로 그 수정다키니. 수정다키니는 신비한 미소를 띠고는 ‘잘, 오셨어요. 여기가 바로
다키니의 나라 우디야나(Uddiyana)입니다. 구루린포체(Guru Rinpoche, 보물처럼 귀중한 근본 스승이란 뜻으로
파드마삼바바 존자의 애칭)를 친견하세요. 당신은 뜻을 이루었어요. 훔 펫(Hum Phet)!'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셋은 우러러 보니 머리에 투구를 쓴 구루린포체가 좌정해 계신다. 두 눈을 부릅뜨고서 세상을 굽어보신다. 그분의 눈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만물이 있는 그대로 비쳐진다. 애증과 호오, 고락과 흥망성쇠에 흔들리지 않는 절대 평정 부동심이다. 둘은 그 분의 눈길을 느끼면서 이심전심으로 대화를 나눈다.
‘존자여, 우리가 과연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본래의 순수를 지켜갈 수 있을까요? 윤회하는 수레바퀴에 깔려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흩어지지는 않을까요?’
‘한 쌍의 순수한 영혼이여, 들어라. 너희는 윤회를 넘어서는 인연이라, 완전한 합일을 이루어 평화의 경지로 녹아들 것이니라. 그 뒤에는 어찌 될 것인지 묻지 마라. 오직 그 경지에 이른 자만이 아는 법이니.
너희는 근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다르마(Dharma)가 너희의 등불이요 의지처가 되리니 자신의 진정(True Heart)을 따라가라. 옴아훙 벤자 구루 뻬마 싯디 훙(Om Ah Hum Benza Guru Pema Siddhi Hum)!’
이에 둘은 기쁨에 넘쳐 꽃잎을 뿌리며 존자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며 ‘옴아훙 벤자 구루 뻬마 싯디 훙’을 외운다.
둘은 잠시 깊은 명상에 들어 있다가 홀연히 깨어나 다시 다른 회상을 찾아간다.
잘란다리는 <옴아훙 벤자 구루 뻬마 싯디 훙>은 존자의 축복을 받는 미묘한 힘을 가진 만트라(Mantra)라고 칭찬한다.
그 만트라를 외우는 즉시 존자와 영적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다음 회상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평화로운 고요가 대숲에 가득한 위빠사나(Vipassana)명상처가 나온다. 거기에 있는 하늘 사람들은 고요히 정좌하고 있는가 하면 나비가 나르듯이, 그림자가 물위를 걸어가듯이 경행(walking)을 하고 있다.
누구도 특별 대접을 받거나 스승을 자처하는 존재가 없다.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다만 자기 마음을 또렷이 깨어있도록 훈련할 뿐이었다. 모든 존재들이 자애로운 분위기 가운데 우아하게 움직이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평화를 체험한다.
두 사람도 그 분위기에 동참하여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생각과 의도, 감정과 몸동작을 일일이 알아차린다. 상큼한 바람이 불어오니 대숲을 흔드는 소리, 처마 밑의 풍경이 댕그렁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더 없이 맑아진다. 잘란다리가 기다릴 것 같아 사막의 아들은 월광공주에게 눈짓을 주어 나오게 한다.
위빠사나 수행처의 입구들 다시 돌아다보니 <Veluvana Vihara, 죽림정사(竹林精舍)>라고 써져 있다.
죽림정사를 뒤로 하고 푸른 소나무 숲속으로 걸어간다. 아담한 산 아래 멋지게 지어진 누각에 회색 장삼(長衫,Robe)을 입은 하늘 사람들이 벽을 보고 침묵의 명상에 들어있다. 그 침묵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여 주변의 모든 사물의 운동을 멈추게 할 정도이다. 바람도 나뭇잎의 흔들림도, 새의 날개 짓도 모두 멈추어버렸다. 두 사람도 그 침묵에 빠져든다.
눈 뜬 돌사람(石人)이 된 듯이 무심(無心, No minded-ness)을 경험한다. 그러자 홀연히 지도자가 죽비(竹篦,Bamboo Clapper)를 세 번 딱 딱 딱 친다. 그러자 하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누각 안을 삥삥 돈다. 두 사람도 따라서 같이 돌았다.
움직임과 침묵, 활발발함과 부동평정심이 혼연일치가 된 경지를 체험한다. 회중의 생활은 모두 질서정연하고 반듯반듯하다. 앞마당은 명경처럼 깨끗하여 유리알 위를 걷는 듯하고, 마당 앞에는 연못이 있어 오색 연꽃이 만발하여 있다. 연꽃 향기가 도량에 가득히 풍겨오는데 잘란다리가 가자고 한다.
다시금 누각을 우러러보니 <마하연 선원, Mahayana Jhana Vihara>라고 써져 있다.
인간세상에서 닦던 도는 천상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계속된다.
도닦는 인연은 귀중하다. 수도(修道)는 사다리와 같아 인간계에서 천상계로 올라가는 계단이 된다. 영적인 수행을 놓지 않는 존재는 끝없이 상승하고 진화해간다. 그리고 가끔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겨가기도 한다. 영적인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종교 수준도 달라지기에. 인간세상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서로 자기 종교가 최고라고 선전하고 다른 종교를 폄하하거나 배척하고 심지어 핍박하고 탄압하고 이단이라 죽이기까지 한다. 아니 종교전쟁을 일으켜 으로 인류의 반이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종교 지도자는 다만 자기 종교의 가르침만 가르칠 뿐 다른 종교를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서로 생명의 영적인 진화의 길을 가는 동지이기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 대신에 서로 존경하는 친구로 지낸다.
잘란다리가 말하길 붓다의 어머니이신 마야부인은 선견성 외곽 산호나무(珊瑚樹)아래 수정궁(水精宮)에 거하신단다.
마야부인은 자애의 빛을 인간세상의 모든 여성과 어머니들께로 항상 보내고 있다고. 두 사람은 문득 마야부인을 향한 그리움이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한다.
‘붓다의 어머니시여.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시여. 여기 당신의 아들과 딸이 간절히 당신의 현존을 느끼기 원하나이다.’ 그랬더니 선견성 위로 높이 솟은 황금 대탑 위에 자애의 구름이 드리우더니만 보름달빛과 같은 조명이 은은하게 확 퍼져나간다. 한 개의 보름달이 아니고 열 개의 보름달이 합쳐서 비치는 듯 환한 광명 속에 자비로운 마야부인이 허공중에 둥두렷 나타난다. 그분의 몸에서 비쳐 나오는 빛은 달빛처럼 온 세상을 두루 감싸며 흘러내린다. 임의 빛이 우리의 피부위로 와 닿을 때 마치 어머니가 아기의 몸을 만져주듯 그렇게 따스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니.
가슴 속에 찌들어 있던 상처와 고통이 다 씻어지는 듯. 치유의 빛이 세상에 가득 찬다.
‘어머니시여. 어찌하면 우리가 세상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겠나이까?’
‘이렇게 기도하고 마음을 닦아라.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인 듯 느끼게 하여지이다.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풍만하고, 광대하고, 원한과 고통이 없는 자애(慈愛)가 함께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물라. 그러면 살아서 하늘세계의 평화(梵住,범주)를 누리게 되리라.’
May I feel everyone as myself!
May I take everyone as myself everywhere I go, and fill the world with abundant, boundless kindness without hatred and pain!
Then you will live the heavenly peace(brahmavihara) ever.
마야부인
마야천궁 수정궁
마야부인의 음성이 귀속에 가득 담기면서 가슴이 뿌듯해올 때 우러러 보니 임께서 사라짐 후 현존의 은은한 빛이 세상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렇게 하여 동쪽 하늘에 있는 여덟 개의 하늘나라를 둘러보았고 수행모임도 체험하였다. 그와 같은 식으로 남쪽 하늘,
서쪽 하늘, 북쪽 하늘에 있는 각각의 여덟 나라를 돌아다녔다. 하늘나라 시간으로 여드레가 지났다. 도리천에 처음 들어왔을 때 황금탑에서 하루를 쉬었기 때문에 아흐레가 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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