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닝은 아침부터 두터운 구름이 곧 비를 쏟아낼 듯한 기세로 가라앉아 있었다.
청해호를 향하는 버스에 올랐을 때, 마침내 그 기세는 기어코 비가 되어 차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청해호가 보이기 시작하는 직선도로에 들어서며 고민은 점점 깊어진다.
해발 3,200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에서 찬 비를 맞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산병에 노출될 위험이 훌쩍 높아지기에,
가이드 경광 씨에게 도착하면 먼저 내려서 우비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경광 씨가 서둘러 우비를 구해 오고,
입장권을 사면서 셔틀버스 표를 잘못 산 덕분에 20분 정도 차를 타고 원래 목적지보다 훨씬 멀리 안쪽으로 들어가는 해프닝이 겹쳤다.
덕분에 관광지 초입을 벗어나 인적 드문 깊은 곳으로 밀려들어 간 그곳은 번잡한 관광지보다
훨씬 한가롭고 고즈넉해 도리어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빗속에 촉촉이 젖어든 호숫가 주변으로는 거친 모래사장과 함께 소박하게 피어난 야생화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는 고원 유목민들의 오랜 삶의 방식을 담아낸 전통 검은 천막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야크 털 등으로 짜여 비바람을 막고 초원의 거친 기후를 견뎌내는 이 검은 천막은,
안팎으로 소박한 휴식처이자 유목 문화의 숨결을 전하는 무형문화재의 자취를 품은 채 낯선 여행객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 곁으로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표지판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어,
발길이 뜸한 고원의 쓸쓸하면서도 아늑한 정취를 더해 주었다.
그 거친 모래사장 한켠에는 청해호의 풍경을 시적으로 읊어낸 커다란 비석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시는 짙은 구름 아래 펼쳐진 호수의 아득한 초원과 산색,
그리고 잔잔한 물결 위로 날아드는 철새들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며 머무는 이의 마음을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청해호여!
호수 사이로 풀들이 자라나고,
초원이 빼어나게 뻗어 오르니 산색 또한 눈부시다.
구름과 아지랑이가 여름날을 감싸 안고,
온갖 들꽃들은 다투어 비단처럼 화려하게 피어난다.
호수물은 맑은 하늘을 그대로 품어 비추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너울너울 춤을 춘다.
비단결 같은 풀밭은 달콤하고 푸르며,
파릇파릇한 풀꽃들은 고운 옷을 지어 입은 듯하다.
물고기들도 깊은 잠에 빠져 평화롭고,
너른 풀밭은 나의 모든 근심을 말끔히 씻어준다.
내가 머무는 이 풍경 속의 깊은 뜻은,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는 넓은 포용이어라.
비 내리는 궂은 날씨와 예기치 못한 착오 속에서 마주한 청해호는 그러나 여전히 거대하고 아득했다.
끝없이 펼쳐진 고원의 하늘 아래, 신이 흘리고 간 한 방울의 푸른 눈물이 고여 있다. 몽
골어로는 콕코노르, 곧 '푸른 바다'라 불리는 이 호수는 중국 최대의 내륙 염호이며,
면적은 제주도의 2.4배에 달하는 4,456제곱킬로미터, 둘레만도 360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물의 대륙이다.
지도 위의 푸른 점 하나로 축약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수천 년 인류의 역사와 대자연의 경이가 함께 잠긴 생명의 서사시다.
이 호수의 탄생은 약 200만에서 300만 년 전,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 초에 이르는 격렬한 지각 변동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베트고원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그 거대한 대륙의 숨결 속에서,
단층 운동으로 가라앉은 함몰분지에 물이 서서히 고이며 지금의 모습을 빚어냈다.
부하강을 비롯한 수십 개의 하천이 끊임없이 흘러들지만 정작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줄기는 하나도 없어,
수백만 년의 증발이 거듭되는 동안 염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은 약간의 짠기를 머금은 기수호로 남았다.
나가는 길 없이 오직 받아들이기만 하는 호수,
그래서 더 깊어지고 더 짙어진 물이라는 사실이 묘하게도 이 땅의 오래된 성정을 닮아 있다.
지리적으로 이곳은 중국의 농경 문화와 유목 문화가 극적으로 맞닿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호숫가로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샛노란 유채꽃밭이 여름 한철 장관을 이루다가,
겨울이 오면 영하의 냉기 속에 호수 전체가 두껍게 얼어붙어 하얀 은빛 대지로 탈바꿈한다.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래에는 변함없이 같은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호수가 지닌 이중의 표정이다.
역사의 갈피 속에서 청해호는 언제나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문화가 서로 뒤섞이는 용광로였다.
고대로부터 티베트와 중앙아시아와 중국 중원을 잇던 당번고도와 실크로드 남로가 이 호수의 남북을 스치듯 지나갔고,
수많은 상인과 군대와 구법승들이 이 푸른 물결을 이정표 삼아 거친 고원을 넘어갔다.
그 발자국들 가운데 가장 애틋하게 남은 것은 당나라의 문성공주다.
토번의 송첸 감포 왕에게 시집가던 그녀가 이 호수를 지날 때,
고향을 그리며 흘린 눈물이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질 만큼,
이곳은 중원과 티베트가 역사와 감정 양쪽에서 교차하던 상징적인 자리였다.
오랫동안은 토욕혼 왕국의 중심 무대이기도 했고,
훗날에는 티베트 제국과 몽골 제국의 세력이 서로 각축을 벌이던 격전의 땅이기도 했다.
평화의 상징과 전란의 무대가 한 호수 안에 함께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 물빛을 유난히 깊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호수를 둘러싼 유목민과 티베트인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적 이 땅은 물이 극도로 부족한 메마른 곳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이를 가엾게 여긴 하늘의 신이 한 사내아이에게 신비한 거울을 내려주었는데,
아이가 그 거울을 실수로 땅에 떨어뜨리자 거울은 순식간에 깨어나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고 한다.
그 거울이 바로 청해호이며, 그 물속 어딘가에는 지금도 하늘의 기운을 품은 보물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호수 북쪽에 떠 있는 작은 섬, 조도 역시 그 신성함을 이어받은 곳이다.
수만 마리의 물새와 기러기와 황오리가 날아드는 이 새들의 낙원을 두고 현지 유목민들은 하늘의 신이 지상에 내려와
잠시 쉬어가는 신성한 정원이라 부르며, 이곳을 찾을 때는 소리를 높이거나 새를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을 오랜 불문율로 지켜왔다.
수백만 년 전 대지의 신음 속에서 태어나,
문성공주가 탄 마차의 바퀴 소리를 들었고, 유목민들의 처연한 노랫가락을 오래도록 품어온 청해호.
가이드의 착오로 엉뚱한 길을 20분이나 더 달려 들어가고, 찬 비를 맞으며 고산의 기습에 긴장하던 궂은 날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마주한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청해호는 더욱 깊은 여운을 남겼다.
대자연의 장엄함과 인류의 애환이 푸른 물결 위에 빗방울과 함께 스며드는 하나의 거울이자,
시간 그 자체의 얼굴이었다.
오늘도 청해호의 찬 바람은 유채꽃 향기와 젖은 흙냄새를 실은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너머로 아득히 흘러가고 있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