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프롤로그
♣ 가는 세월 그누구가 잡을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수 없어요.
새들이 저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산천초목 다 바껴도
이내 몸이 흙이되도 내마음은 영원하리!......................................서유석님의 노래중에서
♣ 엇그제 에어컨을 켜고도 잠을 못자도록 더웠던 날씨가 이제 새벽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정도 기온이 떨어졌다.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창문 밖에 와 있는 것이다.
마음은 아직도 십팔세 순이마음인데 얼굴에는 세월이 흘러 가버린것처럼 어느사이 세월이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것이다.
♣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인생이고 세월인것을.......
# 강천산으로 출발전
♣ 강천산은 멀리 전북 순창군과 전남 담양군에 걸쳐있는 산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아침 5시반에 집에서 나섰다.
전에는 동이 틀 시간인데 아침 5시반인데도 아직도 날이 덜센듯 어둑어둑하였다.
목동아파트 14단지에 도착하였으나 아직은 관광버스도 목일산악회 회원들도 안보인다.
언제나 선착순에는 1등인 나다.
잠시 의자에 앉아 있으니 저쪽에서 관광버스가 한대 오는데 우리버스는 아니었다.
우리 관광버스는 동백관광인데 그 차는 유진고속관광버스였다.
우리 동백관광버스가 곧 올터인데 이 넘은 우리 동백관광자리에 멈추어 서더니 마치 제 자리인양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나는 우리차가 올때까지 잠시 시간을 이용하여 상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아직도 유진고속관광버스가 서있는게 아닌가!
아니! 버릇없는 이 눔이!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유진고속관광버스 옆에는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 서 계셨다.
8월달 산행은 없었고 나는 집안일때문에 7월달 산행은 빠졌으니 석달만에 만나는 회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 차는 요?"하고 물으니
오늘은 동백관광 정요섭기사분이 시골에 일이 있어서 유진고속관광이 우리를 데리고 강천산으로 간단다.
♣ 일단 유진고속관광버스에 올라가니 이미 회원분 몇분이 차를 타고 계셨다.
반갑게 눈 인사를 하고 보니 김영선 사장님부부가 앉아 계셨다.
나는 그 뒤에 자리를 잡고 차장가에 앉았다.
♣ 처음타는 유진고속관광버스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새차였다.
좌석도 깨끗하고 창가엔 가지색 커튼이 드리워져있고 조명도 에어컨 옆에 있고 한가운데도 별도로 조명이 있는데
영등포 금마차 카바레에나 있을법한 조명이었다.
아마 이 조명이 산행을 하고 돌아올때는 여러사람을 죽여줄것만 같았다.
♣ 새차!
세상 어디가나 새것은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명절날에는 같은 돈도 신권으로 바꿔서 나누어 준다.
새차,새아파트,새 물건....
새것이 참 좋다.
♣ 그러나 새것만이 다 좋다고는 할수없다.
친구도 옛친구가 더 좋고 사랑도 옛사랑이 더 좋은것 같다.
친구나 사랑은 오래되면 될수록 정이 더 깊어 진단다..
♣ 그런데 오늘은 차도 새차에 회원들도 새회원이 많았다.
그렇다고 항상 같은차 같은 회원들 하고만 같이 가는걸 원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특히 예전에 같이 가든 회원들이 많아 안 보이고 새로운 회원들이 많아 보였다.
안면이 있는 회원들에게는 인사를 하고 내 옆자리에는 작년인가? 우리 목일산악회 카페를 만들기 이전에
전북 진안의 마이산에 갔을때 그곳이 고향이라면서 이것 저것들을 설명해주시든 공무원과장님이 이시었다.
# 강천산으로 출발
♣ 이윽고 출발시간인 6시반이 조금 지나자 우리 버스는 서서히 목동아파트를 출발하여 멀리 전라도에 있는 순창 강천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목일산악회 운영진들이 고생하여 준비하신 생수,계란그리고 김밥그리고 국물등을 나누어 주셨다.
동쪽하늘에는 어느새 아침해가 살포시 떠올랐다.
목일산악회가 등산을 가는 오늘도 날씨는 맑고 좋은 날씨였다.
♣ 잠시후 목일산악회 신선주 총무님의 사회로 박순주회장님의 인사말씀과 장옥선 산악대장님의 산행소개가 있었다.
오늘 강천산산행은 산은 낮으나 능선이 길어서 천천히 걸으면 6~7시간정도 걸리는데 코스를 단축하여
돌아오는길에 전북 정읍군 산외면에 있는 한우마을에 들려서 추석명절에 앞서서 값싼 한우고기를 사러 갈예정이니까
산행에 자신있는 분은 A코스,산행에 조금 자신있는분은 B코스,아주 자신없는 분은 C코스로 나누어서 산행을
하시라고 설명을 하였다.
♣ 나는 그런말을 들으면 부담이 앞서서 마음속으론 벌써 A코스는 포기해 버리고,B코스나 갈까?아니면 C코스?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이번 산행은 자신이 없다.
8월달 한달동안 몸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체중도 75kg에서 68kg으로 7kg정도 줄었다.
체중이 줄다보니 몸은 가벼워서 좋지만 몸에 적응이 안되니 출퇴근시에서도 어지러웠다.
지하철역에서 발을 헛딛어 넘어져서 아직도 손가락이 아프고 넘어진 정강이도 상처가 나고 아프다.
그래서 옆지기도 이번 산행에 안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명색이 카페지기고 내가 안가면 사진을 많이 안찍을텐데.... 가야한다고 우기면서 이번 산행에 동참하였다.
지난 7월달 백운산 산행때에도 윤달이라 집안 산소이장때문에 산행에 동참을 못했다.
다행히도 들레님께서 백운산 사진을 찍어주셔서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에 올리긴 했지요.(항상 감사드려요!)
# 정안휴게소 도착
♣ 초요일밤에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버스는 어느새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에 접어 들었다.
우리는 정안휴게소에 도착해서 각자 볼일을 보고 나는 휴게소 뒷편으로 갔다.
거기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 벌써 가을인가?
하긴~
입추!가 8월 7일이었으니 절기상으로는 가을인것이다.
요즈음은 절기와 기온이 조금은 다른것 같다.
가을인데도 아직도 한낮은 더웁고 지하철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있다.
♣ 이쁜 코스모스랑 노천어장에 있는 비단잉어들을 사진에 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 강천산 정류장에 도착
♣ 버스는 고개를 구비구비 돌며 강천산 주차장에 10시 10분경에 도착했다.
아침 이른시간인데도 많은 관광버스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있었다.
관광버스들은 마치 갓 시집온 새 색시가 하루종일 직장에 간 새 신랑을 기다리는 것처럼 하루종일 저자리에서
눈이 빠져라 손님이 올때까지 기다릴것이다.
♣ 나는 개인적으로 2년전에 신월동에 있는 호남향우회를 따라서 강천산에 왔었다.
친구가 호남향우회 회원으로 같이 가자고 해서 동행을 했다.
그때는 등산은 하지않고 강천사만을 구경하고 향우회에서 준비한 돼지바베큐와 막걸리등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났다.
♣ 강천산 주차장에서는 아줌마들이 밤이며 나물그리고 칙즙,복분자등을 팔고 있었다.
어떤 아줌마는 군밤을 한개씩 나누어주면서 등산갔다가 산에서 내려올때 자기를 잊지말고 꼭 찾아달라고 하였다.
아직은 철이 이른가을인데 벌써 밤이 나왔나?하자 올해 딴 햇밤이라며 말을한다.
그러자 어떤 이가 작년 밤인데 밤송이채 땅속에 묻었다가 꺼내면 올 햇밤처럼 윤기가 난다고하였다.
# 매표소 유감
♣ 주차장에 있는 시장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강천산 군립공원 안내도가 있고 그 옆에 매표소가 있다.
강천산 군립공원 매표소에는.....
어른...................1,000원
군경,중고생...........600원
초등생..................400원
단체(30인이상)---10%할인
♣ 등산을 갈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공원은 입장료를 받고 어떤 공원은 입장료를 안받는데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모르겠다.
또한 입장료 수입이 정확히 입금되어 산 관리에 쓰이는지 아니면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지도 잘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산 입구 매표소에서 기다릴때는 기분이 언짢해진다.
♣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리니까 우리차례가 되고 줄을 선 우리를 직원들이 소풍간 돼지들 머리를 세듯이 하나,둘..... 세기시작
했다.
김영선 사장님을 월남전투에 참가하셨는데 면제대상이라면서 앞으로 가시고 어떤 회원은 "65세이상은 공찌야!"하시며
앞으로 가셨는데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오셨단다.ㅋ
# 병풍폭포
♣ 매표소를 지나 도선교가 나왔다.
도선교옆에는 병풍폭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멋지게 떨어지고 있었다.
♣ 병풍폭포!
병풍폭포는 병풍바위를 비단처럼 휘감고 있는 폭포로 높이 40m,물폭15m,낙수량이 분당 5톤이며,그옆에 작은 애기폭포가
있는데 그 폭포는 높이가 30m,물폭이 5m로 전설에 의하면 병풍바위밑을 지나오면 죄지은 사람도 깨끗해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병풍폭포밑의 도선교 난간에서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과 신선주총무님등 여러회원들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 산행시작
♣ 병풍폭포를 지나 깃대봉 삼거리에 도착한 우리는 드디어 A코스,B코스,C코스로 나뉘어 헤어질 운명에 놓였다.
A코스 : 매표소 - 우측 - 강천사 - 능선 - 승낙바위 - 산성산 - 북바위 - 강천시(6시간코스)
B코스 : 강천사 - 강천제2호수(3시간코스)
C코스 : 산책코스
♣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이 코스별로 회원들을 나누었다.
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몸이 많이 아파서 체중이 빠진 탓에 B코스나 C코스를 택할려고 했는데 김영선사장님이
가다가 힘들면 강천사 방향으로 내려오면 되니까 포기하지말고 A코스를 가자고 권해서 자신없지만 A코스로
줄을 섰다.
♣ 등산갈때는 언제나 자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특히 자신이 없고 다리는 후둘거렸다.
재작년에 투타산에 등산가서는 다리에 쥐가 났었다.
그때는 옆지기가 옆에 있어주고 같이 산행을 포기했다가 한참을 쉬니 쥐가 풀려서 다시 산행을 했던 기억이 났다.
♣ 이번에는 옆지기도 없고 혼자라서 자신은 없었지만 올라가다가 강천사쪽으로 내려오는길이 있다고 하니 힘들면
낙오할 작정으로 A코스를 따라서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 강천산은 해발 583.7m라고해서 별거 아닐줄로 생각했는데 산행을 시작하지마자 계속해서 오르막길이 시작되어
끝이 날줄을 몰랐다.
♣ 나는 개인적으로 지난 6월달에 대야산에 갔다가 7월달도 집안일로 빠지고 8월달은 휴가와 곂쳐서 목일산악회에서
산행을 안가고 3달만에 모처럼 산행이어서인지 처음부터 너무 힘들었다.
♣ 산행시작과 함께 마음도 뒤쳐지고 몸도 뒤쳐져서 거의 포기하면서 맨 꼴등으로 산행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도 산행을 힘들어하셨다.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은 살이 빠져서 다리가 후둘후둘하는 나보다도 더 뒤에서 오셨다.
최근에 손주를 보셨다는데 진짜 할아버지가 되어서 그런가!ㅋ
♣ 맨뒤에서 간신히 뒤를 따라 왕자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목일산악회 장옥선 대장님은 연신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인 남편의
걱정을 하셨다.
♣ 왕자봉 삼거리에서 선두그룹에서 산행을 하던 회원들을 만나서 과일이랑 초코렛과 물등을 마시면서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과
나는 강천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 낙오해서 내려간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목일산악회 장옥선 대장님은 남편인 전 회장님에게 오늘따라 왜 등산을 잘 못하냐시며 핀잔을 주셨다.
전에보면 언제나 선두그룹에 가시는 전 회장님인데 오늘따라 나보다도 더 못따라가시는 것같았다.
김영선 사장님이 물이 부족할것 같다고 하여서 나는 이미 산행을 포기했으니 나머지 물까지 모두 꺼내서 드렸다.
♣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였다.
한참을 가니 형제봉 삼거리가 나왔다.
여기서 하산할 사람은 왼쪽으로 가면 강천사가 나오니 내려가라고 했다.
그런데 목일산악회 장옥선 대장도 남편인 전 회장님이 낙오한다고 하니 산행에 재미가 없는듯했다.
지도를 보면서 한참을 고민하면서 승낙바위로 갈려면 오른쪽으로 가서 산성산 그리고 북바위로 해서 강천사로 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하면서 한참을 망설이더니
비밀이지만 오늘 산행은 땡땡이를 치자면서 하산조인 우리와 동행해버렸다.
# 하산길
♣ 우리는 강천산 제2호수를 바라보면서 하산을 시작하였다.
어떤회원은 오늘처럼 쉬운 산행은 처음이라고도하고 어떤회원은 가끔은 등산 땡땡이도 기분좋다면서 낄낄거렸다.
나도 이제까지 낙오는 팔봉산에서 한번하고 감따러 갔었고 오늘이 두번째 낙오자였을텐데 이제는 낙오자가 아닌 땡땡이자로
전환되면서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산을 하다가 강천산 제2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소나무밑에서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 우리옆지기는 내가 기운없다고 하니 오늘따라 김치대신 장조림을 가득 싸주었다.
회원들이 이제는 하산할 일만 남았고 조금만 내려가면 강천산제2호수이니 하산주를 마시라고해서 소주를 3잔이나 마셨드니
기분이 구름에 떠있는것처럼 붕~~하였다.
♣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하산주도 마시고 우리는 다시 하산을 시작하였다.
# 강천산 제2호수
♣ 조금 내려가니 강천산 제2호수가 있었다.
우리는서울목일산악회 카페메인에 올릴 사진을 두장찍고 강천산 제2호수를 구경하였다.
다른때는 많은 회원이 있어서 눈을 감거나 앞회원에 가리는 회원이 있어서 사진을 두번씩 찍었는데
오늘은 한번씩만 찍었드니 나중에 보니 앞회원에 가리는 회원이 있어서 죄송했다.
♣ 강천산 제2호수라!
그러면 강천산 제1호수도 있나보다.
강천산 제2호수 속을 바라보니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고 아주 큰 올챙이가 있었다.
아마도 황소개구리 올챙이가 아닌가 싶었다.
♣ 황소개구리 올챙이!
외국에까지 와서 "니들이 고생이 많다!"
그러나 우리 토종물고기는 없애지 말아다오.
♣ 강천산 제2호수를 아래를 내려다보니 댐이 아주크고 웅장하였다.
댐에서 내려와서 위를 올려다 보아도 엄청나게 큰 댐이었다.
강천산 제2호수 댐밑에는 산행이 지친 나그네들에게 물을 내어줄 식수대가 있었다.
지하200m에서 뽑아올린 암반수였는데 갈증난 목을 축여주는 고마운 식수대였다.
# 강천산 성 테마공원
♣ 선두그룹은 이미 하산을 하였고 산행도 땡땡이를 친터라 출발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면서 멋있는 풍경은 사진에 담을 요량으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 그런데 조금 내려가자 참이 상하게도 남자또는 여자 성기모습을 한 돌이나 조각들이 많이 있었다.
참 묘하게도 비슷하게 생겨서 부끄러워서 다는 안찍고 사진에 몇장만 담았다.
♣ 알고보니 강천산에는 성을 주제로한 테마 공원이 있었다.
♣ 성 테마공원 조성이유.............순창군청 이야기.
"이곳 강천산 구장군 폭포에는 음과 양이 서려있는 재미있는 곳이다.
폭포 중간부분이 낙수와 풍화로 자연스럽게 여성"음"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왼쪽에 수직으로 형성된 바위산은 남"양"형태를
닮아 음과 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환경오염,각종질병,삶의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고있다.
따라서 이곳은 신성한 테마공원의 자연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정화하여 자연의 음과 양의 기운을 받아
생활의 활력과 삶의 재충전을 할수있는 문화공원으로 조성하였다.
♣ 성 테마공원옆에는 산수정(山水亭)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앞에는 구장군폭포가 있었다.
# 구장군 폭포
♣ 구장군 폭포는 옛날 마한의 아홉장군들이 전장에 패하여 자살하려고 이곳에 왔다가 장쾌하고 웅장한 폭포의 기상에
마음을 돌려 다시한번 전장에 나가 승리했다는 전설이 서린곳이다.
♣ 구장군폭포는 높이가 120m가 되는 폭포가 3개가 있는데 구장군폭포를 유심히 관찰하니 성 테마공원을 조성할만한
이유를 알듯 말듯하였다.ㅋ
♣ 사진을 찍다보면 사람들의 특징이라는게 보인다.
어떤분은 나이에 비해 귀여운 분도 계시고,어떤 분은 보조개가 매력적인 분도 계신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산행후에 사진을 편집하고 카페에 올리다보면 느껴지는 부분이다.
♣ 구장군폭포에서 이번에는 보조개가 이쁘신 분과 이쁘신분그리고 점잖으신 분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옆을 보니
우리 회원들과는 관계없는 분인데 아들 둘과 계곡물속에서 장난치며 미소짓는 새 댁의 사진을 담았다.
♣ 나는 가끔 길을 가다가도 멋진 장면이나 이쁜 사람이 있으면 사진을 찍는 버릇이 있다.
한번은 다정한 남여가 서있는데 그 모습이 이뻐서 사진을 찍다가 그만 카메라를 빼앗길뻔 한 일도 있었다.
본인들 앞에서 사진을 지우는 걸 확인시키고 간신히 도망왔는데....
도망오다가 생각해보니 그들은......불륜인것 같았다!ㅋ
# 발과 인체조직과의 연계도면
♣ 구장군폭포를 지나 아래로 내려오니 모래가 깔린 부드러운 오솔길이 나타났다.
관광객들이 저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 저런!
맨발로 걸어가다가 가시에 찔리우면 어쩌노!
♣ 그런데 발과 인체조직과의 연계가 아주 오묘하여 맨발로 걸으면 그렇게 좋다고하내요.
♣ 맨발로 걸으면 우리발에는......
발가락은 눈과 귀에 좋고
특히 엄지 발가락은 코와 대뇌 그리고 목과 갑상선,식도 위에 좋고요.
발바닥을 삼등분해서
발바닥의 윗부분은 폐와 기관지에 좋구요.
발바닥 중간부분은 간장,췌장,십이지장,신장,방광에 좋답니다.
그리고 발 아랫부분은 항문,생식선,좌골신경에 좋다고하니 고은 모래밭에서는 맨발로 걸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강천산 계곡길
♣ 강천산 계곡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자 많은 관광객들이 물놀이나 계곡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중에는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외국인들도 이런 좋은 계곡을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옆에서는 못찍고 먼 발치에서 외국인들도 사진에 담았다.
옆에서 찍다가는 말도 안통하는데 영락없이 카메라를 뺏길지모르니...
외국인들도 불륜인지 모르니까~ㅋ
# 강천산 구름다리
♣ 사진을 찍다보면 언제나 다른 회원들에 뒤떨어져서 간다.
일부러 혼자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어느 사이에 다른회원들은 저만치 멀어져가고 나 혼자만이 가게된다.
나도 그런 고독이 좋다.
고독해야 좋은글도 써지고 고독해야 좋은 풍경도 눈에 들어오고 사진에 담아진다.
♣ 고독을 혼자서 씹으며 가고있는데 눈앞에 강천산 구름다리가 나타났다.
호남제일의 현수교인 구름다리의 높이는 50m,길이는 70m로 보는 이나 보이는 이가 서로들 까맣게 보였다.
♣ 벌써 시간이 4시가 다되었다 또 혼자 고독을 씹다가 낙오해서 버스출발에 방해할까봐서 강천산 구름다리도 안 올라가본체
부랴부랴 발길을 재촉했다.
2년전에 신월동 호남향우회를 따라 왔을때는 강천산 구름다리에 올라가 봤었다.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면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구름다리가 흔들리는 정말 실감나게 무서웠었다.
♣ 구름다리를 못 올라간 아쉬움을 뒤로한체 조금씩 물들기시작한 단풍사진을 찍으면서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천산 계곡물에는 송어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송어들은 관광객들이 새우깡이며 과자들을 던져주면 우루루 모여서 먹이를 먹었다.
# 강천사
♣ 강천사의 유래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번창하여 고려 충숙왕 3년(1316년) 덕현선사가 사찰을 중창하고 5층 석탑을 세웠고 한때 12개 암자와 1천여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 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선조 37년 (1604년)에 소요대사 가 재건했으나 다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9년 원상태로 복원하였다.
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 순창객사, 순화리 3층 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다.
그런데 스님들의 재주가 관음보살의 능력을 받아서 인지 아주 대단한 것 같다.
2005년 산불에 소실된 강원도의 낙산사를 최근에 다시 재축하였는데....
전에 사찰보다 더 잘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ㅋ
# 꽃무릇의 전설
♣ 나는 항상 9월 이맘때 사찰에 가면 생각나는게 하나 있다.
바로 그건 꽃무릇이다.
애절한 전설을 지닌 슬픈 사람의 결정체!
꽃무릇.......................
♣꽃무릇의 전설...........
꽃무릇은 외형의 화려함과는 달리 슬픈 사랑과 그리움을 지닌 애절한 꽃이다.
한뿌리에서 나오는 잎과 꽃이 평생 단한번도 만나지못하고,서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운명을 지닌
꽃이다.
꽃무릇은 9월초부터 피기시작하여 보름정도 만개한뒤 꽃이 진다.
꽃잎이 모두 떨어진뒤에야 비로소 푸른잎이 하나.둘씩 돋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꽃무릇을 상사화라부르기도 하고 슬픈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어느 깊은 산속 절에서 열심히 불도를 닦던 젊은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날 여름날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이절에 불공을 드리기 위해 왔다가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마을로 내려가지못하고 사찰마당 나무아래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있는데 이때 젊은 스님이 비에 젖은 그 여인을 보고 그만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젊은 스님은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그 여인만을 연모하다가 시름시름 앓더니
석달 열흘만에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고 한다.
노스님이 이를 불쌍히 여겨 그를 양지 바른곳에 묻어 주었는데 그무덤에서 처음보는
풀이 자라더니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긴 꽃줄기에서 선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그꽃이 바로 붉은 피를 토하며 죽은 젊은 스님의 넔이라고 한다.
그 뒤에 사람들은 이꽃을 상사화(相思花)라 불렀다고한다.
상사화는 9월초순에 꽃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잎이 올라와 평생 꽃과 잎이 만나지못하는
슬픈운명을 지닌 꽃이다.
마치 젊은 스님과 여인이 못만나듯......
그래서 꽃말이 “이룰수없는 사랑”또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꽃“이랍니다.
# 강천사의 삼인대
♣ 강천사의 경내로 들어서자 먼저 삼인대가 있었다.
♣ 삼인대(三印臺)의 유래
삼인대는 조선 중종 10년(1515년) 폐비신씨(영조15년 1739년 단경왕후로 추존)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담양부사 박상,무안현감 류옥의 행적을 기념하기위한 곳이다.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근의 딸인 폐비 신씨는 후환을 염려한 반정공신 박원종등에
의해 폐출되었다.
그후 새왕비가 된 장경황후가 사망하자 이 세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
하고 폐비 신씨의 복위상소를 올렸다.
후에 유림들이 이들을 추모하기위해 비와 함께 비각을 세우고 삼인대라 불렀다.
삼인대의 삼인은 세개의 인장인란 뜻이다.
♣ 삼인대에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의 사모님과 총무님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다시 발길을 강천사 경내로 돌렸다.
# 강천사의 절의탑
♣ 삼인대앞에 있는 절의 탑은 삼인문회선양회주관으로 순창군내 300개마을에서 돌을 2개씩 쌓아서 만든 탑이다.
♣ 절의탑주변에는 "사랑과 행운을 기원하는 돌탑을....공든 탑은 무너지지않습니다.가족,친구,연인과 함께........."
라는 팻말이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삼인대의 삼인을 추모하고 또한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작은 조약돌을 한개씩 한개씩
올려놓아 만든 탑들이 많이 있었고
특히 강천사앞 계곡에 백여개의 작은 탑들이 물속에서 꿋꿋이 서있었다.
그런데 여름철 홍수나 비가 많이 올때에도 계곡물위의 작은 탑들은 쓰러지지않는지 궁금하였다.
# 강천사의 대웅전
♣ 절의탑을 지나니 강천사 대웅전이 나타났다.
강천사의 대웅전은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적었으나 여러채의 별채가 있았다.
대웅전밖에서 기도하는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 사모님의 사진을 찰칵찍고,대웅전 안에서 참배하는 김영선사장님도
찰칵 찍었지요.
# 강천사의 석탑
♣ 강천사의 대웅전앞 경내에는 석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년) 덕현스님이 강천사를 지을때 세운것이다.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만든 5층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부른다.
2,3,4층의 덮게 돌에는 6.25때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있다.
강천사는 풍수지리설을 체계화한 도산국사가 신라 진성여왕 1년(887년)에 지은 사찰이다.
임진왜란(1592년)과 한국전쟁(1950~1953년)때 이 탑을 제외한 모든 사찰이 불에 탄 바 있으며,현재의 사찰은 1961년에
지은 것이다.
# 강천사의 망배단
♣ 강천사 대웅전옆에는 망배단이 있으며 그옆에는 절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 망배단은 강천산을 찾은 도선국사가 서쪽에 부처님 형상으로 보이는 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보시고 강천사를 창건하셨다고
하며 그래서 강천사에서는 부처바위(관세음보살상)가 보이는 이곳에 망배단을 만들어 놓고 참배객들이 절하는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 강천사의 강천문
♣ 망배단을 지나 내려가자 강천사의 입구문인 강천문이 나타났다.
우리는 등산을 하여 거꾸로 내려오나까 중요한 것을 다보고 강천문에 도달한것이다.
♣ 강천문앞에는 극락교가 있었고 그 옆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물 깊은곳에서는 송어가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계곡옆에는 숲속의 산책로를 만들어서 산림욕하기에 안성맞춤인 산책로도 있었다.
양옆 산속에는 이른 단풍나무가 하나 둘씩 가을옷을 입고 있었다.
♣ 또 한참을 내려가니 "강천산을 보고느낀 점을 적어 주세요"라고 씌인 대형칠판이 걸려있어서 나도 칠판에
"잘있어!담에 다시올께!강천산그리고 송어야!"라고 몇자 적어두고 왔다.
♣ 조금더 내려가니 어떤 아저씨가 작정을 하고 송어들에게 물고기에게 주는 사료를 던져주고 있었다.
♣ 멀리 산속 중턱에는 전망대가 보였다.
시간이 있으면 여기저기 다 가보련만 하산시간이 다 되어서 다음으로 미루고 발길을 재촉했다.
♣ 계곡물속에는 여자 어린애가 물안경을 쓰고 잠수를 하여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 강천산 계곡물에 발 담그기
♣ 언제나 꼴찌로 산행을 가는 나는 정신없이 앞만보고 가는데 "목일산악회!목일산악회!"라고 부르는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먼저 내려온 목일산악회 장옥선대장님과 전 회장님그리고 김영선 사장님 그리고 여러 회원들이 강천산 계곡의 맑은물에
발을 담그고 돌탑을 쌓는등 물놀이를 하고 계셨다.
♣ 나도 산행에 지친 발을 물속에 담그니 시원하고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쉬었다가 발길이 바쁜 우리는 다시 길을 따라 내려왔다.
# 강천산의 주차장
♣ 강천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하산한 회원들은 조껍데기로 만든 막걸리를 드시고 계셔서 나도 두어잔을 마셨다.
목일산악회 신선주총무님은 옆에서 밤을 파는 아줌마를 도와서 밤을 파시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은 산에서
내려온 회원들에게 식사며 술과 안주등을 권하고 계셨다.
# 전북 정읍시 산외면 한우마을로 출발
♣ 추석이 10월3일로 한달정도 남았다.
그래서 순창에 왔으니 이웃한 정읍 산외면 한우마을에 들러서 한우를 산다고 산행도 단축하고 왔다.
♣ 목일산악회에서 미리 정읍에 전화를 하여 "보배한우골"이라는 점포앞에 관광버스를 세웠다.
둘러보니 여기저기 한우를 판매하는 점포가 많이 있었다.
나도 장조림용 소고기를 샀는데 600g에 11,000원씩 5근을 샀다.
# 서울로 출발
♣우리는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어느듯 서쪽하늘에는 해가 지고있었다.
여산휴게소에서 휴식을 마친후 버스속에서는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노래자랑에는 기존 회원들보다는 오늘 새로 참석하신회원들이 산에서는 거의 안보였었는데 버스속에서
노래할때는 온통 그분들 뿐이었다.
♣버스는 호남고속도로와 논산-천안간 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서서울
톨케이트에 도착하였다.
♣서서울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뒤에서 맥주를 많이 드신 분들은 빨리 물을 버려야 한다고 난리였다.
이윽고 버스가 서서울 톨케이트를 지나서 옆길에 세웠다.
우리는 내려서 자연스럽게 길가에다 물을 버릴려고 하는데 유진고속관광기사님이 큰소리로 외쳤다.
길가에다 버리지말고 서서울휴게소 직원들이 쓰는 화장실로 가라는 것이였다.
다른 기사님 특히 우리 동백관광 정요섭기사님을 아무데나 버스를 데는데 이분은 톨케이트를 지나서
직원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하며 버스를 데는데 물버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안않았다.
# 목동아파트 도착
♣물을 다 버린 우리는 서부간선도로를 따라
목동아파트에 무시히 도착하였습니다.
♣ 끝으로 목일산악회 강천산 산행을 위하여 애쓰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과 장옥선 산악대장님또 사회를
봐주신 신선주 총무님그리고 산행음식을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운영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안전하게 운전해주시느라고 수고하신 유진고속관광버스 기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10월은 추석연휴라서 산행을 쉬고 11월달 산행에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요즈음은 신종플루가 대 유행이내요.
감기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늘~~~행복하셔야 해요! ^*^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지기"너랑나랑"(김재홍)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