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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발이 용해 꺼지러?”
문밖에서 헌무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 진이 방문을 열자 헌무는 한 발짝에 문턱을 넘어들어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반가워했다. 그의 손에는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다섯 깡 선금받았지러. 늬가 온다카이 제대파티 열 돈 준비했는기라. 부산에만도 구십일기 생이 열 명이 넘는다이.”
“성의는 고맙지만 내 처지에 그런 대접은 과분하니 생략하자.”
“미친놈, 늬 처지가 어떻다 말고? 도둑질을 했나 사기를 쳤나? 나맨크로 험한 놈도 큰소리치고 사는데 와 처지 처지 하노? 늬 인자부터 정신 바짝 차려얀데이. 잘사는 길이모 나맹크로 도둑질도 하고 사기도 치고 밀수도 해얀데이. 늬처럼 젊잖게 살다카는 만날 고생만하다 죽는 기라.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아나? 늬처럼 착한 놈 몬 살고 나처럼 악한 놈 잘사는 게 이 세상인 기라. 알갔제?”
“헌무 네가 악한 사람이냐?”
“늬보다야 악하잖나.”
“내가 너보다 더 악할지 몰라. 너는 악한 척하는 거야, 위악적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한마디로 멋을 부리는 삶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멋을 부릴 여유가 없고 늘 각박한 거지. 쫓기듯 살아야 하고, 그렇게 몸부림쳐도 해결책이 안 생기면 스스로 한을 축적하고, 또 한풀이할 대상을 설정하여 복수심을 기르고……. 나야 말로 진짜 악한 놈이지.”
“모르갔다. 늬놈의 자슥 유식한 말이 매력은 있지만서도 이해 못하는 기 내 무식 아이가. 암튼 기죽지 말고 살아얀데이. 용해 늬 알갔제? 그라고 너무 걱정 말거래이. 내가 제대할 동안만 우째 견뎌보거라. 그전 같으마 늬 하나쯤 호강 문제없을 낀데. 암튼 맘 단단히 묵고 참으레이.”
“내 걱정 말고 근무나 잘해. 낼부터 일거리를 찾아볼 테니 너무 신경쓰지 마.”
“그라고 자리를 잡을 때까정 여게서 자고, 옷도 없을 거이 내 양복을 입거라.”
“면목이 없다.”
나는 어떻게 네 애인과 함께 자겠냐며 잠자리를 사양하고 싶었지만 겨울철에 노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내 속내를 눈치 챈 듯 헌무는 짓궂은 말로 기분을 풀어주었다.
“내 마누라 몸에 손만 안 대모 되는 기라. 또 손 대모 어떻노. 함끼 델고 살지 머. 친구가 그래서 존 거 아이가.”
헌무는 이를 까내며 히히 웃었다. 그는 밤에 정식으로 외출하겠다며 밖으로 나가 군화를 신었다.
“광이 잘나제? 훈령병 때 늬하고 구두 억수로 닦았제?”
“오죽 주물렀어야 네 연애편지에도 구두약이 묻었을까.”
나는 웃으며 헌무와 미스 진을 번갈아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도 고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구두끈을 맨 헌무는 쪽대문 밖으로 나가다 말고 내게 ‘해바라기’ 담배 한 갑을 꺼내주었다. 나는 우정에 감사하며 골목길을 달려내려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튿날부터 나는 헌무의 옷을 빌려 입고 일거리를 찾아나섰다. 우선 외판업소를 찾아갔다. 주름살을 잡는 화장품 취급업소였다. 교복 따위를 다림질할 때 뿌리면 줄이 빳빳해져 멋지다는 것이다. 사무실은 고관입구 골목에 있었다. 그곳에서 입사 수속을 마치고 곧바로 외판에 나섰다.
우선 가까운 경남여고를 찾아갔다. 고관입구에서 수정시장을 지나 샛길로 접어들자 흙길이 햇빛에 녹아 질퍽거렸다.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난 모양인지 배가 고팠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학생들의 눈에 잘 띄는 교문 앞에 좌판을 벌였다. 하지만 거들떠보는 학생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쏟아져나올 때도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았다. 지나가는 학생마다에게 교복을 멋지게 다려 입으라고 선전했지만 겨우 고개만 돌려볼 뿐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야 늦게 귀가하던 학생 서너 명이 다가와 에멜무지로 물었다.
“그 병에 든 게 뭔교?”
“네네, 교복 다리는 화공품인데요. 한번 다리면 스커트 줄이 항상 빳빳합니다. 이거 한 병이면 일 년 내내 쓸 수 있죠.”
“정말 줄이 지워지지 않능교?”
“그럼요, 저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누가 아저씨한테 거짓말한다캤능교.”
“처음 장사라 아직 말이 서툴러서…….”
“변명은 그만하고예, 혹시 옷이 삭지 않능교?”
“안 삭습니다. 걱정 마세요.”
“처음 장사라카면서 우째 삭는지 안 삭는지 아능교. 그라고, 교복에 너무 멋부리모 후라빠라 욕먹습니데이. 다음번에는 필요한 물건을 팔러 오소.”
“고맙습니다.”
“안 팔아주는데 머가 고맙능교. 이 아재 참 어리숙하네.”
학생들은 그냥 돌아가는 게 미안한지 고개를 까딱거렸다. 온 종일 그냥 서 있는 게 지겹던 나는 그나마의 반응을 보여준 깐깐한 학생들이 되레 고마웠다. 그녀들의 말마따나 안 팔릴 물건 같았다.
다른 일자리를 물색했다. 잠자리도 옮기기로 했다. 단칸방에서 헌무 애인과 자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새로 구해둔 잠자리는 산동네 입구 다리목에 있는 순댓국집이었다. 순댓국을 사먹으러 들른 적이 있어 주인아줌마와는 구면이었다. 그녀는 내게 잠잘 곳이 마땅찮으면 자기네 가게에서 자라고 했다. 고마운 말이었다. 삼십대 후반인 그녀는 과부인 데다 몸이 덜퍽졌다.
순댓국집 목로에서 잠을 자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한밤중에 아줌마가 방에 들어와 자라고 깨웠다. 나는 추위에 몸이 떨리던 참이라 사양할 겨를이 없었다. 방은 따스했다. 내 잠자리는 어느새 윗목에 깔려 있었다. 아줌마의 자리는 아랫목이었다.
따스한 방에 눕자 이내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 새벽녘쯤 되었을까, 잠자리가 뒤숭숭해 깨어보니 여자가 알몸인 채 이불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그냥 누워 있었다. 아줌마가 무엇을 요구할지 뻔히 알면서도 당장 쫓겨날 것이 두려워 묵묵히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아줌마의 손이 내 샅 속으로 들어와 물건을 주물럭거렸다. 나는 일부러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줌마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내 사타구니도 주책없이 핏대를 세웠다. 나는 연방 코를 골며 바로 누워 있기만 했다. 드디어 여자의 몸이 내 몸 위로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그녀는 두 팔을 내 어깨 양 옆으로 세워 상체를 지탱하면서 두 다리를 벌려 내 물건을 감쌌다. 여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래도 나는 죽은 척 누워 코만 골았다. 잠을 깬 척하면 서로 낭패였다.
여자가 십여 분쯤 용을 썼을까, 끙끙 신음소리를 내던 여자는 내 허벅지를 두 다리로 감으며 모로 쓰러졌다. 나는 더욱 힘차게 코를 골았다. 후유, 여자의 긴 숨소리를 듣고 나서야 코고는 소리를 그쳤다.
이튿날 아침 아줌마는 생글거리며 내 밥상에 계란프라이를 올려놔 주었다. 나는 모처럼만에 덜퍽진 아침상을 받았다.
“총각 몸이 하도 말라깽이라서 계란 두 개를 구웠지러. 우짜든가 몸 성한 게 최곤기라요. 안 그렁교?”
아줌마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사투리로 대꾸했다.
“맞심더, 하지만서도 지는 몸이 아주 당찹니더. 몸이 좋으니까네 잠도 푹 자고 코를 마이 골지예. 지는 한번 골아떨어지모 누가 떼메가도 모르니더. 그리고예 잠이 깊으모 코를 곤히 곤다 캅니더. 그리 굶어싸도 아즉 힘이 존가보래요.”
“우짠지 어젯밤 코를 되게 골데예. 시끄러버서 내사 잠을 안 설쳤능교. 코고는 사람이사 몸이 건강타지만서도 코를 너무 곱디더.”
“그라모 오늘부텀 밖이서 자겠심더. 지가 코골모 아줌마가 시끄러불 텐데 방에서는 몬 자겠심더.”
“아이요, 걱정 마소. 아모 걱정 말고 방에서 푹 자소. 추분데 목노서 우째 잘기라고. 밖은 추버서 즐대 몬자니더.”
“고맙심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밥 한 수저를 덜퍽지게 퍼넣었다. 쌀밥이 입에 가득 차는 그 풍요가 즐거웠다.
“이거 한잔 드소. 해장엔 막걸 리가 최곤기라예.”
“우째 이래 맘을 쓰시능교. 차암 은혜 태산 같심더.”
“은혜가 무신 은혠교. 우짜든가 힘이나 썽하소.”
“내사 안 굶으모 본디 황소힘이라요. 이걸 보소.”
나는 팔뚝에 힘을 주고 훌렁 까보였다.
“에그그, 그기 사내 팔잉교. 칠십노인 팔이나 영락없구마. 어무이 체구가 안 씰한가보지예?”
“아임더, 우리 어무이 몸은 쐬덩이맨크로 단단합니더. 몸은 주먹만하지만서도 무척 씰하시지예.”
“하기사 몸 큰 여자라꼬 씰한 얼라 낳는 기 아니지러, 나맨크로.”
“아줌씨 얼라가 우쨌는데예?”
“비실대다가니 안 죽었능교. 아홉 살 적에.”
아줌마는 눈을 끔벅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어 수굴수굴하게 웃었다. 나는 슬픔을 감추려는 그녀의 수고가 돋보였다.
“당분간은 잠자리 걱정 마소.”
하지만 나는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돈을 벌어 셋방을 구하리라 마음먹었다. 날마다 신문 사원 모집 광고란을 들쳐보았다. 마침 라디오를 팔러다닐 외판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났다. 서둘러 남포동 업소로 찾아갔다. 길거리에 있는 큰 대리점이었다. 라디오는 전기용과 T-604 등이었다. 전축은 아직 생산되지 않고 있었다.
장사는 이튿날부터 시작되었다. 라디오를 일수로 팔고 한 대당 수당으로 받는 몇 푼이 보수였다. 나는 한 대라도 더 팔 욕심에서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차츰 적립 수당도 늘어갔다. 영주동에 셋방도 얻었다. 그런데 그 무렵 외판 업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바람에 대리점이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나도 공치는 날이 많았다. 다시 비참한 생활로 들어갔다. 자살을 결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영도 태종대에서였다.
고통은 몇 초 동안이다. 몇 초만 지나면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어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던질까말까 하는 그 망설임마저도 어서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었다. 바위 끝으로 성큼 다가섰다. 몸을 던졌다. 하지만 바위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피식 웃었다. 죽을 자유마저도 없는 내 처지가 숫제 웃음을 자아나게 했던 것이다.
바위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바위너설에 오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 때문에 내려올 때는 발이 헛디뎌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 변덕스러운 마음의 장난이 또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흐드러지게 웃었다. 애착심이란 바로 공포심이다. 삶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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