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년 영국 런던 근교의 아크사이드 거리에 책 시장이 서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 빗속을 뚫고 달려온 호화스러운 마차에서 머리가 하얗게 세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내렸다. 노인은 천천히 시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모퉁이에 이르러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 둘 모여든 구경꾼들은 미치광이 노인이라며 수군거렸다.
노인의 얼굴에 눈물이 비를 타고 흘러내렸다. 날이 저물어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시장도 문을 닫았으나 노인은 움직일 줄 몰랐다.
이 노인이 바로 영국의 대 문호 사무엘 존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존슨은 비를 맞으며 5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존슨이 열네살 되던 해였다.
그의 아버지는 떠돌이 노점 책장사였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기침을 쿨럭거리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오늘은 아크사이드에서 책 시장이 열린단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으니 장에 나갈 수가 없구나
네가 대신 나가 줄 수 있겠니?”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던 사무엘이 볼멘 소리로 싫다고 말했다.
사무엘은 왁자지껄한 시장터에서 책을 사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일이 부끄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사무엘, 침대에 누워계셔야 할 아버지를 속상하게 해서야 되겠니?
만일 네가 오늘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너는 두고두고 이 일을 후회 할 거야.”
그러나 사무엘은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기침 때문에 어깨를 들썩거리는 아버지가 커다란 책 보따리를 지고 빗속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크사이드 시장에서 비를 맞고 서 있던 반백의 사무엘 존슨은 울부짖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아, 나는 불쌍한 아버지에게 정말 잔인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한 일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