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곡 2리 ‘몽고지’의 유래
박 상 우 박사
동로면의 동네 이름을 보면 그 동네가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또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짐작케 해 주는 것들이 많다. 인곡리의 원터에는 옛날에 원(院)이 있어서 여행객의 숙소 역할을 했고, 수평리의 창마에는 창(倉庫)이 있어서 곡식을 저장하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동로면은 농촌으로 남아 있어 정겨운 우리 말이 그대로 지명(地名)에 남아 있다. 동네의 이름은 그 동네가 형성될 때의 가장 특징적인 내력에 연유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도시화된 다른 지역에서는 옛 지명이 대부분 사라지고 요즈음의 지명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동로홈페이지 자연마을 소개에 보면 내가 태어난 몽고지가 조선시대에 꿈을 꾼 고개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바로 잡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몽고지라는 동네 이름의 유래는 원래 ‘모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변음된 것이라고 한다. 몽고지는 벌재와 화장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도로는 경천땜이 건설되면서 새로 만든 길이지만 그 전의 신작로는 일제시대에 자동차 통행을 위하여 만든 길이다. 조선조 이전까지는 주 통행로가 몽고지의 재를 넘어 탑들과 화장으로 연결되어 몽고지를 지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벌재에서 몽고지 까지는 동네가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그러나 몽고지에서 화장으로 가는 길은 산길이고 인적도 드문 곳이라서 통행을 꺼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드물게는 산적도 출몰하고 행인들을 괴롭히는 일도 발생하는 험한 산골길이었다. 지금도 옛길의 길목이었던 몽고지에서 마광 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옛날 그대로 남아 있는데, 산을 넘는 재에는 서낭의 흔적도 남아 있다.
험한 길에서 위험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재를 넘었다고 한다. 길가는 사람들을 모은 골짜기가 바로 몽고지였다. 몽고지는 ‘모은 골’ 또는 ‘모은 곳’이 변음되어 ‘몽고지’가 되었다. 실제로 한자 표기가 일상화 되었던 조선조까지도 몽고지는 ‘제곡(諸谷)’ 즉 모을제, 골곡자를 써서 모으는 골의 한자 의미로 표시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꿈을 꾼 고개’라는 해석은 왜 나온 것일까? 나도 어릴 때 비슷한 얘기를 어른들에게서 들은 일이 있다. 필경 무슨 의미가 있을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납득이 되질 않아서 오랫 동안 의문을 가지고 자랐다.
몽현동(夢峴洞)이라는 한자어가 출현한 것은 일제 때라고 생각된다. 이때 자연스럽게 불리던 지명들을 지도에 일제히 표기하면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생각된다. 몽고지라는 발음으로 불리던 동네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하여 ‘몽’은 꿈의 뜻을 가진 몽(夢)으로, ‘고지’는 곳, 또는 고을의 뜻을 가진 현‘峴’으로 고쳐 써 버린 것이다.
몽고지가 ‘몽현동’(夢峴洞)동)으로 바뀌면서 “꿈을 꾸는 고을”이라는 유래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원래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넘어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떠나기 위해서 일행을 “모으는 골”이라 하여 ‘모은곳’ 또는 ‘모은골’로 불리다가 몽고지로 변음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몽고지가 한자로 夢峴洞이라 쓰는 것 정도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꿈을 꾸는 고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 박상우 박사 프로필 -
1948년 동로면 인곡리 출생
수평초등학교 10회 졸업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문리대 졸업
서울대환경대학원 졸업(도시계획학 석사)
도미유학 박사학위 취득(도시계획학 전공)
국토연구원 지역,도시연구실 선임연구위원(현)
첫댓글 예 감사 합니다. 큰마 김호근 입니다.
먼저 감사함니다 동로의 유래는 잘모르고 지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어 고맙습니다 저는 동로초등햑교 32회이고요 동내터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경기도에서 생할을 하고 있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