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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수상록 제1권
1.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똑같은 결과에 도달한다.
학문으로 남의 의견을 안 다음에는 다시 내 의견을 찾아서 나의 주장으로 사리를 판단하라.
신앙이란 신비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하고 따져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이성으로 신이 있다는 확신으로 신을 믿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결함으로 충만하고 무력한 인간성과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완벽하고 전능한 존재와의 연결행위다.
감정을 녹이는 방법은 굴복 아니면 담력으로 굳은 지로를 보이는 것이다.
2. 슬픔에 대하여
슬픔이라는 감정은 예지, 도덕, 양심에 옷을 입힌다. 어리석고 망측스런 장식이다.
심정은 언제나 해롭고 철부지 같은 것이다.
“이집트 왕 프삼메니투스가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에게 패하여 잡혔을 때 , 사로잡힌 자기 딸이 노예 복을 입고 물을 길러 가느라 앞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는, 친구들을 주위에서 모두 울부짖는데도 그는 땅만 내려다보며 말없이 꼼짝 않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 자기 아들이 죽음의 길로 끌려가는 꼴을 보고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하 하나가 끌려가는 포로들 속에 있는 것을 보고는 머리를 치며 대성통곡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캄비세스가 프삼메니투스를 보고 이유를 물으니 ”이 마지막 불행은 눈물로 마음속이 표현되지만 , 처음의 두 사건은 마음속을 표현할 한계를 넘은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고통은 간신히 울음에 길을 터준다. 가벼운 근심은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게하고 깊은 근심은 멍하니 정신을 잃게 한다. 날마다 생각으로 거적을 씌워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3. 우리들의 감정은 세상너머에까지 있다
미친 사람처럼 망령됨은 그 소원하는 것을 주어도 만족하지 않으나 예지는 현재 있는 것에 만족하여 결코 자기에게 불만을 주지 않는다. -키케로-
"폭군 네로가 두 병사에게 왜 자기를 원망하느냐고 묻자 한 병사는 “나는 그대가 착했을 때에도 그대를 사랑했소, 그러나 그대가 어버이 살해범이고 , 방화범이며, 사기꾼이고 마부 같은 자가 된 뒤로는 그 값어치대로 미워하오” 라고 대답했다. 또 한 병사에게 왜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가 묻자 “ 그대의 계속되는, 어긋나고 흉악한 행위를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오” 라고 했다."
누구도 뿌리를 완전히 뽑아서 인생 밖에 내버리기는 곤란하다. 사람은 은근히 자신의 어느 부분이 이승에 머물 것으로 상상한다. 인간은 죽음으로 쓰러진 신체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해방되지 못한다.
그리스 법에 의하면 장례를 지내주려고 적에게 시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자는 승리를 포기하는 것이며 죽은 자를 위해서는 전승비를 세울 수 없었다. 이러한 요구를 받은 자는 승리의 자격을 얻은 것이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왕과의 사이에 일어난 오랜 전쟁에서, 자기가 직접 출전했을 때마다 늘 승리를 거두었다. 때문에 자기가 직접 지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는 , 죽은 뒤에도 자기의 시체를 삶아서 살과 뼈를 갈라 살은 묻고 , 뼈는 잘 보관하여 두었다가 스코틀랜드 군과의 대전 때에 이 유골을 가지고 출정하라고 아들에게 엄숙히 맹세시켰다, 마치 승리가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메여있다는 식이었다."
"장 비스카(지즈카) 는 버클레프의 과오를 옹호하기위하여 보헤미아지방 을 동란에 몰아넣은 무장인데 자기가 죽거든 껍질을 벗겨 그 가죽으로 장구를 만들어 전장으로 가져가기를 바랐다. 그는 이것으로 자기가 적을 공격할 때에 가졌던 우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행동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필립왕의 증조부인 막시밀리안황제는 유언으로 옷을 갈아입히는 자의 눈을 가리라고 유언장에 적었다.
늙어서 담석증으로 고생하며 죽어갈 때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인 장례식을 화려하게하려고 생전에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이는 자기 장례를 극도로 절약하여 하인 하나에 남폿불하나만 따라오라고 유언할 정도로 구두쇠였다.
자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용과 쾌락마저 피하는 것이 절도이며 절약이라고 볼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임종 때 “어떻게 묻어줄까?” 라고 크리톤이 묻자 “자네 마음대로 하게”라고 대답했다.
4. 진실한 목표가 없는 심령이 그릇된 목표에 정열을 쏟는 모습
불행이 닥쳐올 때 우리는 무슨 원인이건, 어떤 것이나 되는대로 원망하며, 대들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 운수불길한 탄알이 지극히 사랑했던 그대 동생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그대가 발기발기 쥐어뜯는 금발의 머릿다발도 아니며, 화가 나서 잔인하게 마구 두드리는 하얀 가슴팍도 아니다.
원망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려다
철학자 비욘이 왕이 상을 당해 자기 머리칼을 잡아 뜯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머리칼을 뽑으면 한이 풀리는가?” 고 말했다. 이것은 모두가 버릇이다.
"크세르크세스는 보스포루스 해협 바다에 채찍질을 하고 칼로 치며 바다에 대해 수없는 욕설을 퍼붓고, 그리고 아토스 산에 도전장을 써 보냈다. 그리고 키로슨느 긴도스강을 건널 때 무서워 겁이 났던 앙 가품으로 , 일개 부대 전체에게 강물에 원수를 갚으라고 며칠을 두고 재미나는 장난거리를 주었다."
"아우구스토스 가이사르는 바다위에서 폭풍우에 혼이 나자 , 바다의 신 넵투누스에게 도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콜로세움에서의 경기 개회식에 그에게 복수하고자 다른 신들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넵투누스의 초상을 치워버렸다."
일어난 일들에 화를 내어서는 아니 되는 것, 신들은 우리들의 분노 따위에는 개의치 않는다. -작자미상-
5. 포위당한 요새의 장수가 적과의 강화를 위해 성을 나간다면
간계건 용력이건 원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나? -베르길리우스-
“로마의 사신 루키우스 마르지우스는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와의 전쟁에서 ‘자기 군대를 정비할 틈을 얻기위해 화해를 제의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여기에 넘어간 적의 왕은 며칠간 정전하는 것에 동의하여 적에게 무장을 완비할 기회와 시간의 여유를 주었다. 그리하여 이 왕은 최후의 패배를 당하였다”.
“진실한 승리는 오르지 신의와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고 취득하는 것임을 유덕한 이는 알아야 한다 ” -플로루스-
사자 가죽이 부족할 때는 여우가죽 조각으로 때워야 한다고 말한다.
6. 협상하기 위험한 때
조약 서에 마지막으로 조인하기 전에는 서로 신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승리해서 방자한 군대에 순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항복한 도시가 그들이 약속한 바를 지켜 주리라고 믿고 승리감에 들뜬 군사들을 마음대로 입성하게 하는 것이 언제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로마군의 사령관 아에밀리우스 레길루스는 포카시아시를 무력으로 공략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완강하게 방어했기 때문에 시간만 낭비하다가 결국 협약을 맺어 그들을 로마시민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들은 동맹도시에 들어가는 것처럼 입성하겠다고 약속하여 그들의 적대행위를 막으려고 했다. 그는 당당 위풍을 보이려고 군대를 거느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며 막아보아도 자기 부하들을 억제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눈으로 이 도시의 대부분이 약탈당하는 꼴을 보았다. 금욕과 복수가 권위와 군율의 권한을 유린하고 말았던 것이다”
“클레오메스는 전쟁 때에는 적에게 아무리 나쁜 일을 해도 정의개념 밖의 일이며 신들에 대해서나 인간들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르고스 인들이 이레 낮 동안 휴전하기로 언약하고, 사흘째 되던 날 적이 잠든 틈에 기습하여 대패시키고는 휴전조약에 밤에 관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나 신들은 이 교활한 배신에 대해 복수하여 주었다”
비루한 적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사리에 어긋나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지며 [타인의 무지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키케로]는 격언은 통하지 않는다.
운으로 되었건 꾀로 되었건 승리는 언제나 칭찬받는다 ―아리오스토-
알렉산드르 대왕은 풀러페르곤이 야음을 타서 다리우스 왕을 치자는 제안에 대답하여 안 된다, 승리의 도둑질은 내가 할 바가 아니다고 대답했다.
7.생각이 우리들의 행동을 판단한다.
죽음은 우리들의 모든 의무를 면제시킨다.
"자기들이 품은 증오심의 의지를 한평생 감춰두고 있다가 마지막 유언으로 가까운 친지에게 알려주며, 자신의 명예에 관한 생각은 보여주지 않고 피해자가 그들을 추억할 때마다 분개하며, 자기 양심은 생각지 않고 죽음자체의 존엄을 위해서도 그 못난 구실을 소멸시키지 못하고 죽은 뒤에까지 연장시키는 자들은 더 악질이다. 죽고 나면 아무런 사정도 알아볼 수 없을 터인데 s마에게 자기를 판단할 거리를 남겨주다니, 옳게 생각하지 못한 자들이다. 나는 가능하면 살아 있을 때 말하지 않은 것을 내 죽음이 말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8. 나태에 대하여
빈 땅이 비옥하다면 잡초만 무성해진다. 정신도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이런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흐리멍덩히 헤매게 된다.
마음은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처럼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9. 거짓말쟁이들에 대하여
분수없는 사람들 중에도 줄기차게 말하다가 그만 끊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이야기를 끝낼 계기를 찾고 있는 동안, 그들은 마치 허약한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꼴 마냥 횡설수설하며 이야기에 질질 끌려간다. 특히 늙은이들에겐 지난날의 기억이 남아있고 그 말을 되풀이 한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런 위험이 더 많다. 나는 한 귀족이 원래는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내가 듣기에 진력이 나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다리우스가 아테네인들로부터 받은 모욕을 잊지 않으려고 식탁에 앉을 때마다 사동을 시켜서 귀에 대고 세 번씩 “왕, 아테네 놈들을 잊지 마시오” 라고 알려주게 한 것처럼,
피타고라스학파들은 선은 확실하고 한정되어 있으며 악은 무한하고 불확실한 것이라고 한다. 수천의 길이 한 목표에서 어긋나서 지나간다. 한 길만이 그쪽으로 통한다.
10. 빠른 말법과 느린 말법
말이 느린 사람은 설교가로 적당하고 말이 빠른 사람은 변호사에 어울린다.
11. 예언에 대하여
“올림푸스의 주主여, 어째서 그대는 인생의 불행에 잔인한 징조로 미래의 불행을 알려서 새로운 번민을 보태어 주는가, 그대의 계획이 어떠한 것이건 불시에 우리에게 닥쳐오게 하라, 운명을 예지함에는 인간의 정신이 맹목이게 하라. 공포에 싸여 지내면서도 그들에게 희망이 남아있게 하라 -루카누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그것은 소득 없이 자기를 괴롭히는 불행이다 -키케로-
현재에 만족하는 정신은 미래의 일로 번민하기를 꺼리리라 -호라티우스-
하루 종일 활을 쏘다보면 언젠가는 과녁에 적중하는 수도 있다 -키케로-
12. 불굴에 대하여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그 심령을 굽히지 않는다 ―베르길리우스-
13. 제왕들의 회견의식
나바르 여왕 마르그리트는 “아무리 높은 사람이 오더라도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러 자기 집에서 나간다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다. 도중에 그를 만나지 못할 염려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라도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더 법도에 맞는 일이며 , 손님이 떠날 때에 따라가 주면 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헛된 의식을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어찌하란 말인가 , 나를 이런 일로 분개시키는 것보다는 그를 한번 분개시키는 편이 낫다.
모든 회합에서는 자위가 낮은 자가 먼저 지정한 곳에 와서 훌륭한 분을 기다리는 것이 공통된 예절이다. 그러나 어떤 재상들의 회견에는 윗사람이 먼저 기다리는 것이 법도라고 한다. 이러한 논리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가서 뵙는 것이라는데 있다.
14. 선악의 취미는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사물 자체보다는 그들이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에 속을 태운다고 한다.
불행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의해서 들어오는 것이라면, 그것을 경멸하거나 또는 좋은 일로 돌려놓기는 우리의 힘(선택)에 달려있다.
불행의 본질이 그 자체의 권한으로 우리 속에 들어앉을 힘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꼴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가지각색이라는 것은 불행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어떤 이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어떤 길로는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 거리에는 한 장사꾼이 있어 오랫동안 갚지 못한 빚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잡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떤 사형인은 자신이 간지럼을 타기 때문에 모가지는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죽기 전에 어떤 여인을 데려다주고 결혼을 한다면 집행을 면해주겠다고 했다. 사형인은 그 여인을 가만히 들여다 본 후에 “목을 메어주! 목을 메어주! 저거 절름발이야!”
고통이 두려워 죽음을 선택한다.
철학자 피론은 어느 날 배를 타고 가다가 위험에 빠졌을 때 공포에 떠는 사람들에게 아무 걱정 없는 돼지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이성, 그 이성의 장점이 겨우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포시토니우스는 “고통이여! 네가 아무리 해보아도 너를 불행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우리는 피부에게 가죽 띠로 얻어맞는 것을 간지럽다고 믿게 할 것인가?
우리들 혓바닥에 쓰디쓴 알로에 맛을 그라브산 포도주 맛으로 느끼게 할 것인가?
피론의 돼지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려주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한다. 고통을 받으면 떨리는 것은, 하늘밑에 사는 모든 생명들의 일반적인 천성으로 타고난 본능이다. 죽음에서 주로 두려워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죽음에 앞서오는 고통이다.
고통이 우리를 죽음으로 위협하기 때문에 우린ㄴ 아무리 중해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상 누가 그것을 대단한 병으로 치겠는가?
인간은 죽음에서 고통을 생각한다.
고통은 심하면 짧고 길면 가볍다. -키케로-
죽음은 극심한 고통을 종결시키고, 잦은 고통에는 중단이 많으며, 중간의 고통은 우리가 억제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가벼운 것은 참고, 견딜 수 있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연극에서와 같이 인생에서 퇴출함으로 면할 수 있다.
고통이 그렇게도 참을 수 없게 느껴지는 것은 , 우리가 만족을 정신에서 얻는 습관을 갖지 않고 , 우리들의 조건과 행위의 유일한 상전인 우리 심령의 힘에 기대하지 않은 탓이다. 육체는 다소간의 차이를 제하고는 한 자세밖에 갖지 않는다. 마음은 모든 종류의 형태로 변할 수 있고, 육체의 느낌이나 다른 모든 사건을 무엇이든 그 자체에, 그리고 그 자체의 상태에 맞추어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연구하고 탐색하여, 그 속에 있는 전능한 원동력을 일깨워야 한다.
치열한 전투에서 열 번 칼을 맞는 것보다 외과 의사에 의해 면도날로 한번 찟기우는 것이 더 아프다.
라케데모니아의 한 이름 없는 사내아이는 여우 한 마리를 훔쳐 외투 속에 감춰두고 , 여우가 자기 배를 물어뜯어도 그 여우를 내어 놓기보다 끝까지 참아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아픈 것보다 도둑질을 서투르게 한 수치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또 한 아이는 제물을 바칠 때에 향불을 피우다가 ,불똥이 소매 속에 떨어져서 뼈까지 타들어가도 끝까지 참으며 이 신비의 의식을 혼란시키지 않았다.
무키우스 스카에볼라는 적진에 숨어들어가서 적 왕을 죽이려다 실패하자, 기묘한 계략을 썼다. 그는 적 왕인 포르센나에게 자기 계획을 자백하며, 그의 진영속의 다수의 로마인들이 자기와 함께 일을 꾸민 공범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자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팔을 걷어 불에 태우며 참아내었다. 끝내는 적까지도 참혹하게 생각하여 물을 치우라고 명령했다.
자기 몸을 도려내는 동안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책을 읽던 자. 고문을 가하면 가할수록 조롱하며 비웃던 자. 상처를 쑤시고 도려내어도 계속 웃고만 있던자.
여인들은 피부의 신선한 살갗을 얻기 위하여 껍질을 벗긴다. 목소리를 부드럽고 곱게 하기위하여, 또는 치열을 바로잡기 위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생니를 빼는 사람들이 있다. 미인이 될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엇이 무섭다고 하겠는가!
비통은 천성의 작용이 아니고 생각에서의 생긴 일로 이해된다 ―키케로-
흥정하기보다 더 싫은 일은 없다. 그것은 순전한 속임수이고 체면을 모르는 수작이다. 한 시간 동안 말다툼을 하고 겨우 대푼의 소득을 보는 것이다.
재물에 대해서는 “더벅머리건 대머리건 머리칼을 뽑으면 화를 내기는 마찬가지” 와 같다.
타인의 착함을 보는 마음은 자신이 착하다는 증거다.
넉넉함과 가난은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는 것이다. 영광이나 건강도 마찬가지다. 각자는 자기 생각대로 잘 살기도 하고 못살기도 한다. 어느 누가 그렇다고 보여주는 사람이 만족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만족한다.
운은 우리들을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 운은 우리들에게 그 재료와 씨를 제공할 뿐이다. 외부의 첨가물들은 내부의 구조에서 그 맛과 빛깔을 얻는다. 그것은 입는 옷에 열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체온으로 우리 몸을 덥히는 식이다. 의복은 이 열을 품어서 간직해주기에 적합한 것이다. 사물은 그 자체로서는 해로운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약하고 비굴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꼿꼿한 삿대는 물속에서 굽어보인다. 사물을 본다는 것보다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다.
15. 당치않게 한 요구를 지키다가는 벌을 받는다.
용감성은 도덕과 같이 한도가 있다. 한도를 넘으면 악덕의 길로 들어간다. 진실은 그 경계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16. 비겁함의 처벌에 대하여
우리는 약해서 저지른 잘못과 악의에서 오는 잘못을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비겁함은 모욕으로 처벌하는 것이 평범한 방법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도망한 자들을 사형에 처했는데, 이 카론다스는 그들에게 여자 옷을 입히고 사흘 동안 장터에 앉혀놓아 웃음거리가 되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수치를 주면 그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냉담해지게 할 뿐 아니라 적개심을 품게 할 염려도 있다.
17. 어떤 대사들의 특징
뱃사람은 풍향을 말할 것이고 농부는 소, 전사는 자기의 상처를 목동은 양 떼에 대해서 말한다 ―프로페르티우스-
상대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방면으로 화제를 돌려본다. 실제로는 그 반대로 남의 직업을 말하기 좋아하기도 한다.
둔한 소는 안장을 욕심내고, 망아지는 밭 갈기를 갈망한다. -호라티우스-
18. 공포심에 대하여
드 부르봉 대군이 로마를 공략했을 때, 성 피에트로 요새를 수비하고 있던 기수는 첫 경보에 너무나 기겁을 해서 깃대를 손에 쥔 체 성벽의 무너진 구멍으로 도성 밖의 적군 쪽을 향해 돌진하면서도,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는 대전하려고 정렬하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발길을 돌려 나온 구멍으로 뛰어 들어갔다.
공포의 충격을 참아내지 못해서 목매달아 죽고, 빠져죽고, 뛰어내려 죽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공포는 죽음보다도 더 참을 수 없는 괴로운 일이다.
그리스 인들은 인간의 판단이 잘못되어 그런 것이 아니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하는 한 종류의 공포를 알고 있다. 흔히 여러 국민 전체, 그리고 여러 부대 전체가 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도이다. 소위 말하는 공황이다.
19. 사람의 운은 죽은 뒤가 아니면 판단하지 못한다.
사람은 안제나 마지막 날을 기다려 보아야 아느니. 죽어서 장례식을 지낸 뒤가 아니면 어떤 이라도 행복한 이라고 큰 소리 치지 못한다 ―오비디우스-
우리 인생의 행복은 천성을 잘 타고난 정신의 안정과 만족, 그리고 조절된 심령의 결단성과 확신에 달려있는 만큼, 최종 막의 가장 어려운 대목이 상연되는 것을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그때 겨우 결실한 언어는 정확히 가슴속에서 나오며 가면이 벗겨지고 참 모습이 보인다 ―루크레티우스-
20.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키케로-
우리는 모두 같은 종점으로 밀려간다. 모든 것은 운명의 항아리 속에 뒤섞여 늦건 빠르건 제비로 뽑혀 나와서 영원한 멸망 속에 저승의 배에 실릴 것이다 -호라티우스-
그는 공중을 나는 독수리 발에서 떨어진 거북에 맞아 죽었다. 또 하나는 포도 씨 한 알로 죽었다. 황제 한분은 머리를 빗다가 빗에 찔려서 죽었다. 아에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자기 집 문지방에 발이 부딪쳐 죽었고, 아누피티우스는 회의실에 들어가다가 문에 부딪쳐서 죽었다.
어찌하여 이렇게도 짧은 생애에 우리는 그렇게 많은 기도를 하는가 ―호라티우스-
가이사르의 호위대 병사 하나가 기진맥진한 채 쇠약한 몸으로 거리에서 그만 죽으러 가겠다고 퇴직을 요구했다. 그러자 가이사르는 그 쇠잔한 모습을 보고 너는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라며 놀림조로 말했다 -베르길리우스-
21. 상상력에 대하여
강력한 상상은 사실로 화한다.
우리는 상상력의 충격을 받아서 진땀을 흘리고 벌벌 떨며 새파래지기 도하고 새빨개지기 도하며, 어떤 때는 숨이 넘어가기까지 한다.
투우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나서, 하룻밤 내내 머리에 뿔이 돋친 꿈을 꾸었더니, 이 상상력으로 정말 이마에 뿔이 돋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기를 어떤 이는 슬퍼 한탄하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실실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그를 살려내려고 야단법석을 치고 고함지르고 꼬집고 불로 지지고 해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깨어나서 말하기를 소리는 들었으나 멀리서 오는 것 같았다고 하며, 그때 비로소 덴 자리와 멍든 자국을 알아보더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는 맥 이 뛰지 않고 숨이 끊어졌었다.
안질을 쳐다보면 눈이 똑같이 나빠지며 여러 질병은 몸에서 몸으로 전염된다 ―오비디우스-
거북과 타조는 쳐다보기만 하는 것으로 알을 깐다.
22. 한 사람에게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롭다.
23. 슬픔에 대하여, 그리고 이어받은 법을 쉽사리 변경하지 않음에 대하여.
어떤 시골여인이 송아지 한 마리를 어릴 때부터 풍에 안고 길러주었더니 습관이 되어 큰 황소가 된 뒤에도 거뜬히 안을 수 있었다.
습관은 모든 사물들 가운데 최강의 상전이다 -플리니우스-
습관은 우리들의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대장간, 방앗간, 병기공장의 공인들이 우리처럼 소리에 놀란다면 그들의 귀에 들리는 음향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내 옷깃에 뿌린 향수는 코에 상쾌하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해서 입고 다니면 그것은 옆 사람의 코에만 소용이 있을 뿐이다.
플라톤은 한 아이가 도토리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그러지 말라고 책망하였다. 그 아니가 ‘대단찮은 일로 책망하시네요’ 라고 대꾸하자 ‘습관은 대단찮은 일이 아니다’ 라고 대꾸하였다.
우리의 가장 큰 악덕은 연약한 소년 시절에 주름 잡히는 것이며, 우리의 가장 중요한 훈육은 유모의 손에 달려있다고 본다. 어린애가 암탉의 목을 비틀고 개나 고양이에게 상처를 주며 날뛰는 꼴을 보는 것이 어머니들의 소일거리가 되고, 어떤 아버지는 자기 몸을 방어할 줄 모르는 하인을 구박하는 아들을 보고 기사정신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배신과 속임수로 자기 동무를 농락하는 것을 보면 재롱을 부린다고 강조한다면, 결국 이것은 배반의 씨앗이며 싹이 트고 자라서 떳떳한 습관이 되어 득세한다.
어린애들에게는 조심해서 꾸밈자체를 미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키가 작은 한 사람은 발을 어찌나 잘 놀리는지 손으로 할 것을 모두 발로하며 발은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기 발을 손이라고 부르며, 칼도 깎고, 권총에 탄알을 재어서 쏘며, 바늘에 실을 꿰고 바느질을 하며, 주사위를 던지고 글씨를 쓰고 모자를 벗고 머리를 빗는다고 하였다. 그에게 돈을 주었더니 발로 받았다.
버릇이 되면 우리의 판단력은 마비된다.
제 아비를 때리고 있던 자가 대답하기를 , 그것은 자기 집 습관이라고 하였다. 그 아비는 조부를 그렇게 때렸고, 그 조부는 그 증조부를 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가리키며, 이애도 내 나이가 되면 나를 때릴 것이라고 하였다. 이아들이 거리에서 아비를 잡아당기며 끌고 다니다가, 어느 문 앞에 와서는 멈추라고 명령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아비를 거기까지만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양심의 법칙은 천성으로 타고 난다고 우리는 말하지만, 그것은 습관에서 나온다. 각자는 주위 사람들이 승인하고 받아들인 생각과 풍습을 내심으로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회 없이는 그것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찬양하며 응한다.
옛날 크레테인들은 누구를 저주할 때 그가 나쁜 버릇을 갖게 해달라고 신에게 축원했다.
사람들은 습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성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믿게 된다.
다리우스는 어느 그리스인에게 얼마의 돈을 주면 인도인처럼 그들의 죽은 부모의 시체를 먹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세상을 다 주어도 그 짓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인도인에게 그들 방식을 버리고 부모의 시체를 불에 태우는 그리스 방식을 따르라고 했더니, 그들은 더 한층 해괴망측한 일이라고 하였다.
첫 번째 접근에 아무리 위대하고 경탄스럽게 보이는 것도 두고 보아서 차츰 놀랍지 않게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루크레티우스-
24. 같은 결심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다른 결과
고귀한 일들 가운데 위험 없이 되는 일은 없다.
25. 학식이 있음을 자랑함에 대하여
식물은 습기가 너무 많으면 질식하고 등에 기름을 가득 부으면 불이 꺼진다.
정신작용도 공부와 지식의 재료가 너무 많으면 학자는 허리가 굽어진 곱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심령은 속이 찰수록 더 커진다.
우리는 기억력을 채울 생각만하고, 이해력과 양심은 빈 채로 둔다. 마치 새들이 모이를 찾으러 나가서 그 모이를 새끼에게 먹이려고 맛보지 않고 입에 물어오는 것과 같이, 우리 학자님들은 여러 책에서 모이를 쪼아다가 입술 끝에만 얹혀주고, 뱉어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짓 밖에는 하지 않는다.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이오? 라고 물어보면, 책을 달라 고해서 찾아보고 가르쳐주며, 궁둥이에 옹이 나도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옹이 무엇인지, 궁둥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를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 담는다, 그것뿐이다.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불이 필요해서 이웃집에 불을 얻으러가서는, 거기서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불을 보고 멈춰서 쬐다가 얻어온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
우리는 너무 심하게 남의 팔에 매달려 다니다가 결국 우리 자신의 힘마저 없애고 만다. 내가 죽음의 공포에 대비할 생각을 가지면? 나는 겨우 세네카의 사상에서 찾을 뿐이다. 내가 자신이나 또는 남을 위해서 위로의 말을 찾아보고 싶다면? 나는 그 말을 키케로에게서 빌려온다.
학문이 자기를 이롭게 하지 못하면 현자의 지식도 허망하다 -키케로-
마음이 들어있지 않은 지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스토바에우스-
학문이란 좋은 약이다, 그러나 약을 담을 병이 나쁘면 소용이 없다.
26. 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
우리의 정신은 자신의 말을 믿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남의 헛생각에 대한 욕심에 매이고 구속되면 그 가르침의 권위 밑에 잡힌 노예가 된다.
그들이 교훈은 배울 것이 아니고 사고방식을 체득해야 한다. 하고 싶으면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얻었는가는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스스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꿀벌들은 여기저기 꽃에서 꿀을 가져오지만 , 그것을 자기들것인 꿀로 만든다. 이렇게 다른데서 따온 것으로 그 배운 것들을 변형시켜서 자기 것인 작품을, 바로 자기의 판단을 만들 일이다. 교육, 노력과 공부의 목표는 이렇게 자기 것을 만드는데 있다.
외워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이 주는 것을 기억 속에 보관해 두는 수작이다.
몸이 홀쭉한 자들은 옷들을 채워서 뚱뚱하게 보이려 고한다. 재료가 빈약한자는 그것을 말로 채운다.
머리위에 우박을 맞고 있는 자는 지구 반쪽이 전부 폭풍우에 휩쓸리는 줄 안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무엇이며, 공부의 목적은 무엇이며, 용기, 절도, 정의는 무엇이며, 다망과 탐욕, 노예와 신화, 방자함과 자유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진실하고 견고한 만족은 무슨 표지로 알 수 있는가, 죽음과 고통과 수치는 어느 정도까지 두려워해야 하는가. 등을 말해주어야 한다. 또, 어떠한 힘이 우리를 움직이며, 우리에게 있는 잡다한 충동 등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말해주어야 한다.
철학자들도 칼리스테네스가 술 마시기에 맞서지 못하여 알렉산드로 대왕의 은총을 잃은 것은 칭찬할 일이 못된다고 보았다. 나는 젊은이가 방탕 하는데도, 정력과 견고성이 동무들보다 뛰어나서 나쁜 짓을 하기에도, 주먹께나 쓰기에도, 학문을 하기에도 못할 것 없지만, 다만 그렇게 할 의사가 없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악을 행하기를 원치 않음과 할 줄 모르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네카-
누더기를 입든 비단옷을 입든 태연히 그때그때의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여, 이 두 역할을 소홀함 없이 연기해 낼 자를 찬양하리 ―호라티우스-
사물을 알아보면, 언어는 부르지 않아도 따라온다 ―호라티우스-
오로지 감명을 주는 표현만이 명문장이다 -루카누스의 묘비명-
진리를 말하는 문장은 기교 없이 단순해야 한다 ―세네카-
27. 우리들의 능력으로 진위를 가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수작이다
중량이 놓이면 저울이 필연적으로 기우는 것같이, 마음은 확증 앞에 굴한다 ―키케로-
속이 비어 대항할 추가 없으면 그만큼 마음은 사소한 설복의 무게에도 눌린다, 그 때문에 어린애들, 속인들, 여자들, 그리고 병자들은 귀로 듣는 것에 끌리기 쉽다.
분명 큰 강이 아닐지라도 그보다 더 큰 것을 못 본 자에게는 그러하니, 모든 종류에게 각자가 본 가장 큰 것은 거대하게 보인다 ―루크레티우스-
28. 우정에 대하여
29. 에티엔느 드라 보에티의 짧은 시 스물아홉 편
30. 절도節度에 대하여
철학은 절도 있게 대하면 유쾌하고 유익하지만, 마침내는 사람을 황당하고 악덕스럽게 만들고, 일반의 종교와 법률을 경멸하고, 사람들과의 교섭을 회피하며, 인간적인 해학을 적대시하고, 모든 정치적 사건의 처리나, 남을 도와주는 일이나, 자기를 지키는 일도 불가능하게 되며, 뺨을 얻어맞아도 대항 못하는 인간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 철학이 과도하고 지나치게 풍부하면 우리의 타고난 자유를 속박하며, 배운 꾀가 탈이 되어서 오히려 자연이 우리에게 그어준 좋고 탄탄한 길에도 벗어나게 된다,
31. 식인종에 대하여
32. 거룩한 절차의 비판에는 참견을 조심할 것
33. 생명이 아깝거든 감각적 타락을 피할 것
34.운은 가끔 이성의 움직임과 같다.
어떤 때는 운명이 꼭 알맞은 때에 우리에게 농간을 부린다.
페레스의 자손은 가슴에 농양을 앓다가 의사들도 손을 들었다, 그는 죽어서라도 고통을 없앨 생각으로 적국의 밀집 부대 속으로 정신없이 돌격해서 몸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는데, 결국 몸속의 종기가 터져서 병이 나았다.
어떤 사람은 돌을 집어 개를 후려갈긴 것이 그를 괴롭혔던 계모에게 맞아 죽게 만들었다.
우연은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일을 결정한다 ―메난데르-
35. 정치의 결함에 대하여
36. 옷 입는 습관에 대하여
나는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습관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만큼 조심스레 습관은 나의 모든 행동을 제한하고 있다.
어떤 자가 겨울에 셔츠바람으로 다니는 거지를 보고, 어떻게 참아내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리도 얼굴은 벗었지요, 나는 전체가 얼굴이요’
37. 작은 카토에 대하여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모방할 수 있는 것밖에 칭찬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키케로-
38. 우리는 작은 일로 울기도 웃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행동은 가끔 진실해질 수도 있지만…….대부분 가면과 허식이다.
상속자가 흘리는 눈물의 가면 믿은 웃음이다 -루카누스-
39. 고독함에 대하여
인도 총독 알뷔케르크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위험한 지경에 처하자, 어린 사내아이를 어깨에 얹고는 그 아이와 자기 운명을 한데 묶음으로써, 아이의 순진함이 하늘의 은총을 받아, 아이가 구제되는 선택에 자기 생명도 보장되기를 바랐다.
사람만큼 서로 나빠지고 좋아지기 쉬운 것은 없다.
가정 하나를 보살피는 것과 국가를 다스리는 것 사이에는 고초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다.
야심, 탐욕, 불안 ,공포 음욕 등은 우리가 딴 나라에 가있다고 해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음산한 비통은 기사의 말 뒤 엉덩이에 따라 오른다 ―호라티우스-
이러한 사물들은 흔히 수도원 속에도, 철학하는 학교에도 우리를 따라온다. 사막에서도, 절벽 밑 암굴에서도 고행도, 단식도 우리를 풀어주지 않는다.
치명적인 화살은 허리에 박혀있다 -베르길리우스
누가 소크라테스에게 아무개가 여행을 다녀왔지만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더라고 말하자 ‘그는 자기를 짊어지고 갔다 온 게지’ 라고 말했다.
먼저 자기 마음을 억누르는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몸을 움직일수록 마음은 더욱 억눌린다. 배에 실은 짐들이 동요되지 않을 때에 짐도 방해되지 않는 법이다. 병자의 자리를 옮겨주면, 그에게 좋기보다는 더 언짢게 된다. 말뚝을 움직이고 흔들면 더 굳게 박히듯, 몸을 움직이면 그대 병은 더 깊어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다. 자리를 옮겨도 족하지 않다. 자기에게서 사람들의 조건을 물리쳐야 한다. 자기 자신을 격리시켜서 다시 찾아야 한다.
나는 사슬을 끊었다고 하시겠지요. 그렇소, 마치 개가 오랜 싸움 끝에 사슬을 끊듯이 그러나 달아나보면, 그의 긴 쇠사슬 한 끝은 목에 달고 있지요 -프로 페리 티우스-
우리는 쇠사슬을 함께 짊어지고 다닌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버리고 온 고장으로 고개를 돌리며, 마음은 늘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병은 결코 자신에게서 이탈하지 못하는 마음에 있다 -호라티우스-
그러므로 마음을 끌어내어 제 자신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외롭고 쓸쓸함이다. 이것은 도시의 한복판이나, 왕들의 궁전에서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홀로 살며 사람들과 교섭 없이 지내려고 하는 만큼, 우리에게 만족이 매여 있게 하자, 우리를 타인에게 얽매이게 하는 모든 연결을 물리치고, 정말 홀로 살며 편안하게 살아갈 능력을 얻기로 하자.
자신을 잃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 우리 자신은 아무도 도둑질해 갈 수 없는 보배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내, 아이, 재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을 가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행복이 거기에 매여 있게까지 집착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남이 침범하지 않는 아주 자기 고유의 것인 뒷방을 가지고, 그 속에 진실한 자유와 은둔처를 마련해 둘 일이다. 이러한 고독 속에서 할 일없이 괴롭다고 오그라들까 두려워 말자.
고독한 속에 그대 자신이 한 군중이 되라 -티불루스-
남을 위해서 실컷 살아보았으니, 적으나마 인생의 말기에는 자기를 위해 살아보자. 우리의 사상과 의향을 자신의 안락을 위해 돌아보자. 확실하게 은퇴할 자리를 잡는 것은 가벼운 시도가 아니다. 은퇴해보면 다른 일에 참견 안 해도 할 일이 상당히 많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사해 갈(죽을)채비를 할 여유를 주시는 이상, 그 채비를 하자. 짐짝을 꾸리자, 일찍 사람들과 작별하자, 우리를 다른데 매이게 하고 자신에게서 물러나게 하는 가혹한 속박에서 벗어나자. 이러한 강력한 속박에서 풀려나와 이제부터는 이것저것 즐겨보며, 무엇보다도 자신 외에는 위하지 말일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물들이 우리 것이 되게 하자. 그러나 그것이 너무 우리의 피부에 달라붙어 살점이 떨어지거나 자신의 한쪽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는 떼어버리지 못하게 되지는 말게 하자.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줄 아는 일이다.
사물을 자기에게 종속시키고 자기를 사물에 종속시키지 말기를 -호라티우스-
나는 그대가 처해있는 그 충만하고 풍부한 은퇴 속에서, 그 천하고 더러운 살림살이는 그대 집 사람들에게 내 맡기고, 문장 연구에 몰두하며, 거기에서 완전히 그대의 것인 무엇을 길어내라고 충고한다 ―플리니우스-
그대와 동무 하나만 있으면 그대들 둘이 충분히 인생의 무대가 된다. 또 그대와 그대 자신만으로 족한 다. 세상 사람들이 그대에게는 하나이며, 그대 하나가 그대에게 민중 전체가 되게 하라. 한가하게 집에 있거나 은둔에서 영광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비굴한 야심이다. 자기 굴에 들어가는 문턱에서 발자국을 지우는 산짐승의 본을 떠야한다.
40. 키케로에 대한 교훈
41. 자신의 영광을 양보하지 말 것
42. 우리들 사이에 있는 불평등에 대하여
사람들의 정신과 전신 사이에는 땅에서 하늘까지 만큼 헤아릴 수 없는 층계가 있다.
사물들은 소유자의 심성에 따라 가치가 생긴다. 사용할 줄 아는 자에게는 그것이 좋다 잘 사용할 줄 모르는 자에게는 나쁘다 -테렌티우스-
그러므로 나라를 통치하는 책임을 지기보다는 조용히 복종하는 편이 훨씬 나은 일이다 -루크레티우스-
각자는 누가 엿보고 감독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작은 결함도 커지며, 이마의 점 하나나 자국 하나도 다른 사람의 칼 맞은 자국만큼이나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각자의 성격이 각자의 운을 만든다 ―코르텔리우스 네포스-
43. 사치 단속법에 대하여
44. 잠에 대하여
오토황제는 자실하려고 결심하고, 바로 그날 밤에 집안일을 정리해 놓고, 금전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결심한 것을 결행하기 위한 칼날도 잘 갈아놓고, 다만 그 친구들이 안전하게 물러가는 것을 기다리다가, 그만 깊이 잠이 들어 코고는 소리가 신하들에게 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45. 드뢰외 전투에 대하여
46. 이름에 대하여
47. 판단력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좋게나 나쁘게나, 말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호메로스-
사람이 무기를 들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때까지 공격하는 일은 위험하다.
필사적인 궁지에 몰리면 약자도 강자가 될 수 있다. -포르키우스라트로-
죽음에 도전하는 적을 치기에는 승리의 대가가 크고도 무겁다 -루카누스-
군사들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면, 명예욕과 영광 욕에 자극을 주어 자기 무기를 재산이나 상속 품처럼 아끼기 때문에, 전투에서 더 악착스레 싸운다.
48. 군마에 대하여
49. 옛 습관에 대하여
50.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하여
51. 언어의 허황됨에 대하여
52. 옛사람들의 인색함에 대하여
아프리카에 원정한 로마군 대장인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는 카르타고 군에 대한 승리와 영광에 싸여 있을 때, 자기 집 전 재산인 농토 7 아르팡을 관리하라고 남겨둔 하인이 농기구를 가지고 도망쳤으니, 자기 처자를 보살피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본국에 휴가를 청했다. 원로원은 그의 재산관리인을 따로 제공하고, 도둑맞은 것을 찿아주고, 그의 처자는 국비로 양육하기로 명령했다.
53. 카이사르의 말 한마디
우리 마음이 아무것에도 안정되지 못하고, 욕망과 공상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택할 힘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하게 못 생겼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가 욕구하는 사물이 자기 것이 되기 전에는 그것은 다른 일보다 중대하게 보이며 그것을 향유하게 되면, 다른 갈망이 솟아나서 우리는 똑같은 갈증에 사로잡힌다 ―루크레티우스-
우리의 인식과 향락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건 만족을 주지 못함을 우리는 느낀다.
그리고 현재가 우리를 포만 시키지 않는 만큼, 우리는 장차 오게 될 알지 못하는 사물들을 우두커니 바라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사물들이 우리를 만족시킬 거리가 못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병적이고 혼란된 상태로 사물들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55. 냄새에 대하여
56. 기도에 대하여
플라톤은 [법률편]에서 신들에 대한 세 가지의 모독적 신앙을 들고 있다. 그것은 신들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 그들이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 그리고 우리가 간청, 헌금, 희생을 바치면 그들은 아무것도 지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보배를 쓸모없이 헛되게 보호해 달라고 신에게 간청하고, 야심 자는 자기 정열의 지도와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도둑놈은 그의 나쁜 계획을 집행하는 데에 부딪치는 모험과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신의 도움을 빌려하고, 또는 한 통행인은 목을 자르는데 일을 쉽게 해주었다고 신에게 감사하고, 가옥을 기어 올라가거나 폭파시키려고 그 아래에 와서 잔인성과 탐욕에 충만한 채 그들은 기도를 올린다.
우리는 입속으로 범죄가 되는 기도를 속삭인다 ―루카누스-
사람들이 신에게 비밀히 요청하는 바를 감히 밝혀볼 사람은 드물다.
그는 큰소리로 ‘아폴로여!’ 하고 말한다. 그리고는 사람에게 들릴까봐 입술을 떨며 말한다. ‘예쁜 라베르나(로마의 도둑의 신)여 내게 속이는 힘을 내려다오 내가 정직하고 선량한 인간으로 보이게 하라 내 범죄와 시기를 어두운 밤의 구름으로 은폐하라 -호라티우스-
57.나이에 대하여
가시는 돋칠 때 찌르지 않으면 다시는 찌르는 일이 없다.
세월의 강력한 공격이 신체를 깨뜨려 부수고 우리의 체력이 둔화되어 사지가 약화될 때에는 판단력도 발을 절고 혀와 전신은 고장이 난다 -루크에 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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