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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이생一身二生
조선과 일본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는
한 인간의 슬프고도 애틋한 이야기.
도대체 너는 누구와 싸우려 하느냐
외교란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를 향한 신의와 자신에 대한
긍지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다른 나라 언어를 모국어와 같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이중첩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전설의 천마를 찾아,
바다 건너 대륙을 달렸던 청년이 있었다.
임진·정유 7년 전쟁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 평화의 교류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일 우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조선통신사가 일본 열도에 발을 디디게 되고…….
그 가운데 벌어지는 치열한 동아시아 각국의 외교 전쟁.
그리고 쓰시마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설의 한혈마汗血馬를 구하러 떠난 한 청년의 모험 이야기.
조선과 일본 어느 쪽에도 설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신이생一身二生의 사연이 펼쳐진다.
책 속으로
‘카슨도, 무사처럼 행동하지 마라.’
어느 날 나무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던 오빠를 보고 호슈 선생님은 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네.’
오빠는 휘두르던 목검을 멈추고 머리를 숙였어요.
‘도대체 너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이냐?’
오빠는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빠는,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만약 선생님께서 위험에 빠지면 누가 지켜드리겠어?’
‘오빠, 그런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아?’
‘조선에 대한 선생님의 외교방식이 흐리멍텅하다고 비판하는 무리들이 있어. <아메노모리를 죽여 버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들었어.’
나는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지만 오빠가 말하기를, 쓰시마번의 존망이 걸려있는 문제가 벌어졌는데 그것을 둘러싸고 번 내에서 두 가지 의견으로 갈리어 큰 소동이 일어났대요.<프롤로그에서>
아메노모리 호슈는 무거운 마음으로 어젯밤 늦게 부산 왜관에 도착했다. 그가 갑자기 부산에 온 것은 왜관을 관리하는 관수館守 히라타 소자에몬平田所左衛門과 동향사東向寺의 겐보玄舫 스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에 조선통신사 빙례를 둘러싸고 막부의 소바요닌側用人 아라이 하쿠세키와 치열하게 담판을 하며, 쓰시마번의 행로에 대한 의견대립 끝에 나온 특사명령이다.
소바요닌은 쓰시마번에 어려운 외교문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조선에서 도쿠가와 쇼군에게 보내는 국서칭호 <일본국대군전하日本國大君殿下>이던 것을 <일본국왕日本國王>으로 변경하라는 것이다. 통신사 빙례 중 에도성 혼마루本丸에서 거행되는 국서를 교환하는 의례는 가장 중요한 행사다. 이미 정착돼 있던 칭호를 급히 바꾸라고 한다.
<1장 ‘사건’에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축제 분위기를 내면서 화려하게 행진했을 때에는 강 양쪽에서 사람들이 눈으로 배웅했지만, 육로에서는 가까이 와서 말을 만지거나, 함께 걸으면서 손짓 발짓으로, 또 종이와 붓으로 대화를 나누는 무리들도 있다. 행렬 좌우는 구경꾼이 어느새 2배, 3배로 불어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큰 상점의 2층 창에는 이 날을 위해서 매달아 놓은 축하 장식물이 터져 잘게 썬 종이가 반짝이면서 흩날리고 있다.
저녁 시각에 일행은 미도스지御堂筋로 나가서 니시혼간지 쓰무라西本願寺律村 별원, 통칭 기타미도北御堂로 들어갔다.
해자와 석담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경내에 크고 작은 건물이 즐비하다. 불당 지붕의 용마루와 대들보는 모두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조선통신사 일행과 쓰시마, 후쿠오카, 쵸슈, 히로시마, 후쿠야마, 히메지姬路에서 온 수행원을 합쳐 1300명이 이곳에서 다함께 여장을 풀었다. 한성을 출발하여 이미 3개월 반이 경과하고 있었다.<2장 ‘에도를 향하여’에서>
류성일은 짜증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겨우 아비루의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들어온 것은 알아볼 수 없는 암호문이었기 때문이다.
가늘고 긴 종이에 빽빽하게 적힌 것은 글자 같기도 하고 암호 같기도 하다. 도대체 뭐라고 적혀있는 것인지,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류성일은 촛불 아래에서 벌써 3시간 가까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늘고 길게 생긴 작은 종이조각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이 암호문은 은 산출량과 생사, 견직물 수입량을 표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드디어 검을 휘둘렀다. 칼끝과 칼끝이 서로 부딪쳐 <칭>하는 풍경風鈴같은 청량한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내딛은 힘에 마루바닥은 삐져나올 것 같이 휘었다.
혼신의 힘을 모아 검을 내려쳤다. 두 사람의 뾰족한 칼끝은 바닥을 향해 있다. 꼼짝하지 않고 서로 노려보고만 있다.
카슨도와 류성일의 솜씨는 문자 그대로 막상막하다. 왜 카슨도의 완승으로 끝난 것일까? <3장 ‘행방을 감추다’에서>
……결국 카슨도는 귀국의 꿈을 버렸다. 다시는 쓰시마의 아비루 카슨도로 살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설령 귀국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아비루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면, 귀국이 허락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카슨도는 김차동金次東이라는 조선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귀국을 단념한 시점에서 이미 김차동으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차次>는 별자리를 뜻한다. 동東은 <봄>.
……1725년, 소 요시노부宗義誠는 조선으로 말 담당자를 파견하여 왜관에 수십 마리를 모아 놓고 그 중에 4마리를 골라 5월에 진상했다.
동년 8월, 로쥬老中 즈노 타다유키水野忠之로부터 분부말씀이 있었다.
‘타타르의 튼튼한 말. 한두 마리라도 좋으니 조달해올 수 있겠는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조달해오도록 하라!’
쓰시마번은 왜관을 움직여 분주히 애를 썼다. 이듬해 9월, 조선을 통하여 구해보려고 했지만 실현하기 어렵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소 요시노부는 구상서를 써서 로쥬인 마쓰다이라 노리사토松平乘邑에게 제출했다.
마쓰다는 지체 없이 답장을 보내왔다.
‘쇼군께서는 꼭 타타르말을 소망하신다.’<4장 ‘회령’에서>
마상재 기수조차 가뿐히 올라가기에는 버거운 높이였다.
카슨도와 이순지도 말에 올라탔다.
세 명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말의 높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은 처음부터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고삐를 조이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고 배를 양 무릎으로 조이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문했다. 하지만 말은 입을 꾹 다문 채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도대체 움직이지 않았다.
……출발 전날 밤, 마지막 저녁식사는 호두나무 아래에서 먹기로 했다. 쿠도카와 하라후라가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카슨도, 이순지, 강진명 세 사람은 저녁식사 전까지 다시 한 번 목장과 이별을 알리기 위해 각자의 말을 타고 제 각각 언덕에 올라가 숲 가장자리를 따라 말과 함께 걸었다. <5장 ‘만하기’에서>
청화호의 쓰루가 입항은 1727년 3월 초순이다.
해가 바뀌어 1728년 4월, 쇼군 요시무네는 여러 다이묘와 무사 13만 3000명을 수행하고 닛코日光로 향했다. 요시무네가 <닛코참배>를 결단한 이유는 세 마리의 천마가 왔기 때문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김차동 도노, 쓰시마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조선인 김차동으로, 이 쓰시마에 머물며 쓰시마를 위해서 일해 줄 수 있습니까.
소 요시노부가 호소했다.
‘설령 20만 냥의 배차금을 면제받더라도 이 쓰시마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여기에 있는 시이나와 손을 잡고 쓰시마의 부흥에 협력해 줄 수 없겠습니까.’
‘큰 영광입니다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카슨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번주에게 통역을 마친 아메노모리가 뒤돌아보다가,
‘조선에서 죽을 작정이냐.’
카슨도는 선생님의 얼굴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그리움에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슨도, 도대체 너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 것이냐? 옛날 나무때리기에 빠져 있던 그에게 던진 그 목소리가 다시 되살아났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지 못한다. 물론 울릉도에 계신 선생님 같은 인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새와 짐승과 바람도 친구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카슨도는 어디까지나 이름 없는 촌락공동체의 성원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 자신이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막부 체제하에 있는 쓰시마도 일본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가 있는 곳, 조선의 마을이다.<6장 ‘고향’에서>
추천의 글
소설가 쓰지하라 노보루는 39세 때인 1985년 데뷔 첫 소설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芥川賞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가와바타 야스나리상川端康成賞, 시바 료타로상司馬遼太郎賞 등 10여 개의 문학상과 작가상을 휩쓰는 등 현대 일본 최고봉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타타르말韃靼の馬》은 에도시대의 한일 간 선린우호외교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를 테마로 일본과 조선 그리고 몽고를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하소설이다. 2009년 11월부터 약 2년에 걸쳐 일본 신문소설의 권위를 인정받는 <니혼게이자이日本経済>신문에 연재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2012년 제15회 시바 료타로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현장감각을 살리고자 조선과 일본무역의 거점이었던 왜관을 답사하였고, 대륙을 달려온 한혈마의 배멀미를 씻어주기 위해 들렸던 울릉도까지 방문하는 작가적 노력을 기울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스승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조선과 막부 사이에서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쓰시마를 구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출병을 반대하면서 근린우호외교로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교린외교정책을 도쿠가와 막부정권에 강권한 실존인물이다.
정구종/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ㆍ동서대 석좌교수
주요 등장인물
아비루 카슨도阿比留克人: 주인공. 김차동. 쓰시마 가신. 조선통신사의 경호대장보좌.
아비루 도네阿比留利根: 카슨도의 여동생. 시이나 히사오의 연인.
이순지: 오위부의 암행어사. 왜관요의 도공. 김차동(카슨도)의 장인.
혜 숙: 이순지의 외동딸. 김차동(카슨도)의 아내.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유학자. 쓰시마 외교담당 보좌관. 기노시타 준안의 제자. 카슨도의 후견인.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막부의 소바요닌側用人. 쇼군 이에노부의 정치고문. 기노시타준안의 제자.
홍순명: 조선통신사 종사관.
류성일: 비변사국의 감찰어사. 조선통신사 군관총사령.
용 한: 양주가면극 광대. 카슨도의 은인.
고태운: 양주가면극 광대. 용한이의 상대역.
조태억: 조선통신사 정사.
임수간: 조선통신사 부사.
이 현: 조선통신사 제술관.
박수실: 압물관(통신사수송담당).
카라가네야 젠베에唐金屋善兵衛: 쓰시마 출신 어용상인. 오사카에 거주.
차하르 칸: 만하기의 타타르인 마을의 두목.
차례
프롤로그
사건
에도를 향하여
행방을 감추다
간주
회령
만하기
고향
에필로그
지은이: 쓰지하라 노보루辻原 登
소설가.
가나가와 근대문학관관장 겸 이사장.
1945년 와카야마현 출생.
1985년 중편소설 《犬かけて》로 작가 데뷔.
1990년 《마을의 이름村の名前》(제103회 아쿠타가와상).
1999년 《날아라 기린飛べ麒麟》(제50회 요미우리 문학상).
2000년 《遊動亭円木》(제36회 다니자와 준이치로상).
2005년 《마른 나뭇잎 속의 파란 불꽃枯葉の中の青い炎》(제31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2006년 《꽃은 벚나무花はさくら木》(제33회 오사라 기지로상).
2010년 《용서받지 못한 자許されざる者》(제51회 마이니치 예술상).
2011년 《어둠 속闇の奥》(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상).
2012년 《타타르말韃靼の馬》(제15회 시바 료타로상).
2013년 《겨울여행冬の旅》(제24회 이토 세이 문학상).
2013년 《뜨거운 독서 차가운 독서熱い読書 冷たい読書》(제67회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 서평상).
2015년 《와이의 나무Yの木》
2016년 《새장 속의 앵무새籠の鸚鵡》
2016년 일본예술원상·은사상恩賜賞 수상.
옮긴이 : 이용화
서울 출생.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였고 일본 문화복장학원대학에서 복식(服飾)을 전공하였으며, 서울전문학교와 이노패션연구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일본언어문화학과를 졸업하였고, 일본문화와 한일역사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서로는 우에노 도시히코의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 신기수의 《조선통신사의 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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