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년 3월 31일 프랑스 중서부지방 투렌의 라에이(La Haye)라는 마을에서 브르타뉴 지방 고등법원 법관인 조아셍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1년 남짓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유모의 손에서 자랐고, 10세가 되던 1606년에 제수이트 교단이 설립한 라 플레슈 학원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하게 된다.
라 플레슈 학원에서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몸이 허약했던 데카르트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 허용되었고
데카르트는 침대에 누워 사색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라 플레슈를 졸업한 후 그는 푸아티에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1616년 동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22세 되던 1618년부터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에 대해 탐구여행을 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의 모리스 드 나소가 지휘하는 군대에 입대한다.
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던 당시로서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그는 의학자이자 수학자인 이삭 베크만(I. Beeckman)을 만나
교류하면서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같은 해 데카르트는 『음악개론』(Compendium musicae)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베크만에게 헌정하였다.
1618년에 30년 전쟁이 발발하자, 이듬해에 데카르트는 독일구교의
군대인 바이에른부대로 들어갔고, 같은 해 1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거행된
페르디난드 2세의 대관식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도중 독일 남부 울름 근교에서 머물며
따뜻한 난로 가에서 사색에 잠기다가 보편
학문의 정립을 위한 방법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된다. 이때 고안된 방법은 1628년에 저술하다 중단된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과 『방법서설』 제2부의 내용을 이룬다.
데카르트는 울름에서 진리의 인식을 위해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한 규칙과
완전한도덕학을 수립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지도할
잠정적인 도덕규칙을 마련한 후, 다시 9년 동안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그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로 여행하다가 1628년에 여러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한적한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이후 20년 동안 거주하게 된다.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자마자 그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집필한다.
이 저작은 미완성의 유고로 있다가 1701년에서야 비로소 출간되었다.
『방법서설』 4부에서의 고백에 의하면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에 이주한 직후에,
8년 후에 『방법서설』을 통하여 비로소 개략적으로 소개되고,
1640년에 상세히 서술되는, 이른바 “오랫동안 연기되어 왔던”
작업인, 모든 의심스러운 것을 허물고 단단한
형이상학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착수한다.
1630년부터는 메르센 신부와의 서신교류가 시작되는데, 이 편지에
그의 새로운 형이상학의 구축작업에 관한 얘기가 소개되고 있다.
1631년에서 1632년 사이에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 굴절광학, 해부학 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1633년에는 그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연구한
『세계 및 빛에 관한 연구』를 집필하였는데,
같은 주제에 관한 저서로 갈릴레이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출간을 보류하였다.
1636년에는 그의 진리탐구를 위한 방법과 형이상학, 그리고 자연학적 연구를
개괄적으로 소개한 『방법서설』을 집필하였고,
이 책은 다음 해에 저술된 『굴절광학』, 『기하학』, 『기상학』함께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1640년에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을 탈고하고 이 원고를
루뱅대학교의 신학자 카테루스(J. Caterus)에게 보내 검토를 받았으며,
이후 메르센,
홉스, 아르노, 가상디 등으로부터
반론을 받고 이에 대한 답변을 추가하여 1641년에 출간하였다.
다음 해인 1642년에 부르댕 신부(P. Bourdin)가 성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자
이에 대한 답변을 추가하여, 총 일곱 번의 반론과 이에 대한 답변을 포함한
『성찰』의 정본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하였다.
같은 해 위트레히트 대학의 학장인 보에티우스(G. Voetius)가
데카르트를 무신론자라고 공박하며, 데카르트에 반박하는 팸플릿을 돌리자,
데카르트는 『보에티우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1644년에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총 집대성한
『철학의 원리』가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되었다.
1643년부터 보헤미아의 왕녀인 엘리자베스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데카르트는 윤리학과 심리학적인 문제에 몰두하게 되고 엘리자베스 왕녀의 요청으로
『정념론』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649년에 출간한다.
같은 해에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초대하자,
데카르트는 여러 차례의 사양 끝에 스톡홀름으로 가서 여왕의 철학교사가 된다.
그러나 원래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폐렴에 걸려,
스웨덴에 간 다음 해인 1650년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그가 모든 학문의 궁극적 목적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윤리학적 저술은 실현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생애 연보
1596년 뚜렌의 라에이에서 출생
1606년 라 플레슈의 제수이트 고등학교에서 수학
1616년 법학사 학위 받음
1618년 홀란드에서 군대생활 시작
1619년 울름의 난로 있는 병영의 사색
1620년 1628까지 의심스러운 견해를 떨쳐버리기 위해 세상견문여행에 떠남
1628년 한적한 장소를 찾아 네덜란드로 이주 (1649년까지 20년 간 거주),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집필
1629년 네덜란드 이주 직후 기존 견해를 허물고 재구축하는 작업 수행 (“방법서설” 4부 및 “성찰”에 해당하는 사색 수행)
1633년 “빛과 세계에 대한 논고” 저술
1636년 “방법서설”저술. 방법 (1, 2부), 성찰내용 (4부), 자연학 탐구 (5부) 포함.
1640년 “성찰” 집필
1644년 “철학의 원리” 집필
1649년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로 개인교사가 됨
1650년 스웨덴에서 폐렴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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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르네 데카르트 [Rene Descartes]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첫댓글 데카르트가 최초로 인체 내 송과체를 발견한 수학자이면서 의사이기도 했어요^^*~
수세기를 지나서야 알려진 지금 ,,,
그 존재는 인류의 빛을 발하고 있어 참 훌륭한 현자입니다^^*~
데카르트여 영원하라^^*~ ㅋ 감사
호호빵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