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함께한 『다락방』
나는 1960년 봄에 기전여자중‧고등학교에 교사로 취직해서 처음으로 『다락방』이라는 말씀 묵상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첫 시간이 시작되기 전, 직원회의 때 이 책을 읽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기독교인 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때여서 미션학교에 제대로 세례를 받지 못한 교사도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기 기도 차례가 닥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럴 땐 옆의 동료에게 기도문을 하나 써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있었다. 한 교사는 기도문을 받아서 읽었는데 기도가 끝났는데 아무도 “아멘”하고 응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기도 끝.”이라고 말해서 모두 낄낄거리고 웃은 일도 있다. 기도문을 작성해 준 사람이 맨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써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써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락방』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예수를 영접한 각 신도에게 대중기도의 훈련을 시켰고 다락방에 나오는 묵상들은 예수를 처음으로 알게 된 초 신자들에게 말씀을 새롭게 보는 영의 눈을 뜨게 하는 멘토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 책자는 각 군부대, 병원, 교도소, 연구소, 교육기관 등에 보내지는 선교지로 40여 개 국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묵상집이다. 따라서 각 나라 사람들의 여러 형태의 사소한 간증 같은 것도 실려 있어 평신도도 이처럼 이웃에게 주님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전도의 담대한 확신도 갖게 했다. 나는 꾸준히 이 책자로 은혜를 받는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나는 6차례 정도 이 『다락방』의 필자가 된 일도 있다. 내가 옳게 말씀 묵상을 하고 있는지 검증해 받고 싶어서 보낸 원고였다. 그 뒤로 『다락방』은 내 사랑하는 애인처럼 더 친근해졌다. 그러나 내가 『다락방』을 사랑하게 된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다. 우리 부부는 애들이 다 집을 떠난 뒤 둘이서 이 책자를 통해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유익한 점을 한둘 찾아낸 게 아니다. 우리는 매일 홀숫날은 내가, 그리고 짝숫날은 아내가 『다락방』을 통해 기도하는데 아내의 기도를 들으면서 내가 아내를 더 많이 알게 된 것이다. 부부는 비밀이 없다지만 서로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음성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평소 깨닫지 못한 아내의 놀라운 신앙의 깊이와 자녀들이나 이웃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아내와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또 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상처를 주어서 사이가 서먹해져 사과하고 용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막상 마주 대하면 사과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가정예배 시간에 하나님께 내 잘못을 회개하고 내 마음을 열어 고백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기쁨이 있다. 그땐 내 마음이 홀가분 해지는데 아내도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것 같아 두 사람이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 나는 나이가 들자 기도하다가 애들의 이름, 이웃 병자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머뭇거릴 때가 있다. 그러면 기도를 듣고만 있던 아내가 서슴없이 소리를 내어 그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합심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를 가르쳐주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기쁘다. 또 두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 이 땅에서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천국을 체험하는 기쁨이 솟는 것을 느낀다.
지난 2018년 9월 7일에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의 종교(宗橋)교회에서 『다락방』 한국어판이 발행되어 배포된 지 80년을 맞아 ‘한국 『다락방』 8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다락방』을 위한 기념 감사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고 저녁 4시 반의 예배에 참석하러 대전에서 발품을 팔았다. 그곳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다락방』 사역자들과 미국 『다락방』 본부 관계자들이 자기 나라 복장을 하고 참석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다락방』을 사랑하는 신도들과 장기 구독자들이 한국에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을 발행하고 있는 대한기독교서회와 한국기독교신도연맹에서 많은 임원이 와 있었고, 병으로 출석하지 못한 정기구독자가 대신 사람을 보내고, 『다락방』을 계속 필사하고 있었던 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년 이상 정기구독한 분들도 많이 참석한 것을 알고 흐뭇했다. 특히 미국 『다락방』 본부의 상무로 있는 피터(Mr. Peter Velander)는 내가 수년 전 『다락방』 묵상을 보냈을 때 『다락방』 편집자(Managing editor)로 있던 메리(Mary Lou Redding) 여사를 잘 알고 있는 분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그녀는 벌써 은퇴했다니 세월은 무상했다.
2020년에는 ‘진정한 후원’이라는 제목으로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 14:20)’라는 제목으로 내 말씀 묵상이 실렸었다. 거기서 나는 20년 넘게 소액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가 캄보디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제자가 5000명이 넘는 군중을 보고 그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났겠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돌려보내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했던 내용을 읽으며 내가 통장에 있던 비상용 돈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미국 자매가 $500.00의 수표를 보내온 일이 있었다. 나나 선교사는 그때 감동하였다. 이런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천국 백성들의 모임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며.
성경은 수없이 많은 번역본을 가지고 있는데 지구상에 흩어진 많은 사람이 이처럼 『다락방』을 통한 말씀 묵상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다락방』이야 말로 육으로는 살아 있으나 영으로는 죽어 있는 인간을 살리는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다락방과 동행한 삶을 감사한다.
다락방 본부 상무(Mr. Peter Velander)와 함께
첫댓글 존경하옵는 장로님의 글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 크게 감동이 되는 귀중한 말씀을 오랜만에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교수님댁의 가정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저도 가정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