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태권도는 道가 아닌가?
1990년 1월 2일 새벽! 친구와 함께 넋고개에서 하소동 뒷산을 향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봉황산 위로 한 마리 거대한 용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장엄한 광경에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용이 입에서 붉은 여의주를 뿜어낸다. 여의주는 순식간에 나의 정수리로 날아들어 온 몸에 스며들었다. 깜짝 놀라 잠에 깨어났다. 그 꿈이후 지금까지 전국대회에서 간간히 입상권에만 머물던 제자들이 1990년 6월 9일 김병희선수의 우승을 시작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였고, 나는 선배의 소개로 만난 아내와 1991년 6월 9일내 삶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스승이신 최병찬 선생님의 주례 속에 영화배우인 이동준 군의 사회로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제자들과 약속했던 전국대회 우승 이후 장가를 가겠노라 했던 말이 씨가 되어 노총각으로 늙어 가던 나를 구제해준 것은 김병희 선수였다.
병희가 우승하던 날이 90년 6월 9일 11시 30분경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은 선배 한 분이 맺어준 인연 속에 부모님께서 잡아 오신 결혼식 날이 공교롭게도 91년 6월 9일 11시 30분이었다. 그렇게 우연치고는 너무나 운명적인 결혼식 중에 주례사를 하시는 최병찬 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고 오직 귓가에는 ‘ 태권도는 도가 아닌가?’ 하는 선생님의 말씀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 1988년 5월!
홀로 사무실에 앉아 여러 가지 상념 속에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세명고등학교 최병찬 교장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상의 할 것이 있으니 학교로 와 달라는…….
세명고 교장실로 가니 선생님께서 녹차를 한잔 주시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신다.
" 오늘 오전에 내가 경찰서에 가서 서장을 만나보고 왔네. "
" ....... "
" 경찰서장이 우리 학교 학생과 제원고 학생간에 패싸움을 벌인다는 정보가 있어 양측의 교장 선생님을 모셨노라고 하더군. "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 우리 학교에서 주축은 노준호이고, 제원고는 김정현이라고 하더군. "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찻잔 떨어 트렷다.
준호와 정현이는 그들의 부모님들께서 특별히 부탁하여 중학교 때부터 내가 지도하고 있었는데 패싸움이라니.......
교장선생님은 이어 " 아들 벌 밖에 안 되는 서장 앞에서 내가 고개를 못 들었네. 준호는 이미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다루기가 힘드네. 그래서 내가 살펴보니 준호는 박사범이 지도하고 있더군. "
대답 없이 듣기만 하는 나를 보고 교장선생님께서는 한 말씀을 던지신다.
" 태권도는 道가 아닌가? "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교장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때에도 교장선생님이셨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열흘정도 앞두고 익경이와 같이 학교를 가다 학교를 자퇴한 아이들 몇 명이 시비를 걸면서 패거리로 덤비는 바람에 심한 싸움 끝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그들을 보고 익경이와 나는 겁이나 무작정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무단가출을 했었다.
그러나 청량리에서 익경(익경이는 나중에 주먹깨나 썼다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TNT라는 조직을 만들어 중앙선을 주름잡으며 못된 짓을 일삼다 결국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였다.) 이가 구두닦이를 잘못 건드려 그들 패거리를 피해 다시 기차를 탄 것이 그는 제천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서 바로 돌아 왔지만 나는 춘천행 기차를 탔다.
춘천행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가평에 계시는 당숙의 집이 생각나 들렸더니 교직에 계시는 당숙이 눈치를 채고 몰래 연락을 하시는 바람에 가평으로 찾아오신 할머니에 의해 꼼짝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온 나에게 교장선생님께서는 싸움을 하지 않고 태권도에만 전념하라는 조건으로 반성문 하나 안 쓰게 하는 특혜(?)를 받고 그 다음부터 나는 그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도 참고 맞아 주면서 싸움을 피하고 공부와 태권도에만 전념하였다. 나중에는 화장실 입구에서 같은 반의 뇌성마비로 몸이 자연스럽지 못한 친구가 나의 가슴을 한대 때리며 " 야! 너 나한테 지지? "하고 말하기에 그냥 씩 웃는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 " 이제 승동이가 사람이 되었구나! 태권도하는 사람은 그래야지. " 하시며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주셔서 콧등까지 찡하게 한 선생님께서 이제 나에게 ‘태권도는 도가 아닌가?’ 하고 선문답을 던지신다.
선생님의 한 말씀은 뇌성벽력이 되어 나의 정수리에 꽂힌다.
떨어진 찻잔을 바라보며 나는 선생님께 여쭈었다.
" 선생님! 道란 무엇입니까? "
의외의 질문인 듯 선생님께서는 한참을 말씀이 없으셨다.
" 박사범! 道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품이 있으므로 자기 존재의 발견과 단련을 통해서 겸허한 성찰과 반성과 진취적인 낮음을 이해 하여야 道라는 큰 바다에 이룰 수가 있을 것이네. 跆拳道(태권도)도 道인것을.... "
교직으로 평생을 사신 선생님의 섬뜩한 일격이셨다.
" 선생님! 제가 여길 올라오면서 잠시 길가에 앉아 쉬며 머리 들어보니 푸르른 저 하늘이 높은 줄 알았는데 문득 머리 숙여 보니 제 발등 위도 하늘이더이다. 제가 이러한데 어떻게 그들을 이끌어야 합니까? 일러 주십시오."
" 보다 큰 뜻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게. "
나는 떨어진 찻잔을 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선생님께 큰 절을 하고 물러나왔다.
보다 큰 것!
그것이 무엇인가?
보다 큰 것!
生의 한 出發點(출발점)은 언제나 變化(변화)속에 動機(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보다 큰 것의 동기는?
.......문득 나는 에릭 프롬의 序文(서문)이 생각났다.
-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 -
다음날 나는 준호와 정현 이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 다 도장에 집합시키라고 .....
도장으로 모인 그들에게 나는 말했다.
" 지금부터 나와의 인연을 끊을 사람은 내가 도복을 입고 나올 때까지 모두 도장을 떠나라."
탈의실로 들어가 도복을 입으면서 검은 띠를 보는 순간 나는 염치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검은 띠 대신 흰 띠를 매고 나왔다. 도복을 입고 도장으로 들어서니 다들 그대로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신중하게 말했다.
" 나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너희들이 정말 고맙다. 하지만 모두들 팬티만 남기고 벗어라. 너희들은 도복 입을 자격이 없다."
"지금부터 나와 같이 108 번의 절을 한다. 누구에게 한다고 생각지 마라. 나는 너희들이 자기 자신에게 절을 하기를 원한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면 대신 내가 나머지를 절을 하겠다."
수 십년 동안 피와 땀이 배인 도장의 송판으로 된 마루 위에서 시작된 108 배의 절은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방석 없이 하는 절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자 준호의 무릎에서 피가 맺히고 정현이의 이마에도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팔굽과 무릎에서도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끙끙대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누구하나 포기하지 않고 약 일곱 시간 만에 108배의 절을 마쳤을 때 우리는 모두 한 마음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타는 갈증에 냉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 싸움이란 자기 스스로 결정해라. 하지만 나와 함께 가는 동안 어느 누구도 절대로 싸워선 안 된다. 사소한 일로 자기의 인생을 걸지 마라. 보다 큰 것에 자기 자신을 맡겨라. " 하며 강하게 말하자 그들은 스스로 준호의 구령에 맞춰 세 번을 절 한 뒤 물러갔다.
이후 이들의 싸움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는데.....
옆에 있는 신부가 나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조그마한 소리로 말한다
" 뭐하세요? ."
신부를 한번 바라보고 주례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 신랑은 신부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
" 네~! "
기합소리에 가까운 나의 대답에 장내는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장내를 가득 메운 웃음소리는 이내 메아리가 되어 ' 태권도는 도가 아닌가? '하는 물음으로 나의 가슴을 파고든다.
" 道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품이 있으므로 자기 존재의 발견과 단련을 통해서 겸허한 성찰과 반성과 진취적인 낮음을 이해하여야 道라는 큰 바다에 이룰 수가 있을 것이네. 跆拳道(태권도)도 道인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