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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하나님 형상 | 재료 | 생기부여 | 창조물 |
인간 (남, 여) | 형상대로 창조 | 흙과 뼈 (여) | 코에 부음 | Living being |
동물 | 없음 | 흙 | no | Living creature |
5. 타락 과정과 죄와 사망의 법의 실행
1) 뱀의 유혹과 인간의 불순종: 죽음, 사망, 죄가 들어옴: 창세기 3장
(1) 뱀의 질문-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나? 모든
열매를 지칭해서 주의를 분산시킴 3:1
(2) 여자의 대답- 동산 나무의 열매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의 열매는 먹지도 만지지도 말
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surely die 뺌 “일점일획 빼거나 더하지 말라”3:2-3
(3) 뱀의 유혹-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will not surely die “완전 반대”3:4-5
(4) 여자의 타락과 남편의 타락-먹음직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라
따먹고 남편에게도 줌: 욕심의 잉태, 죄, 사망, 죽음이 임함 3:6
ㄱ)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 없음, ㄴ) 남편에 대한 믿음 없음, 남편 교육 무시
동물 이름도 가르쳤을 것임, ㄷ) 죽음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 ㄹ) 욕심이 생김,
ㅁ) 하나님과 남편 무시, ㅂ) 속이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음.
현재에도 죄를 짓게 하는 요인들임/ 아담도 ㄱ) 아내의 말에 동조 하나님 말씀 무시 ㄴ) 아내와 같은 상태가 되어 먹음
(5) 벗은 줄 알게 됨,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두려워 숨고 죄를 전가함: 죽은 인간의 반응 3:7
2) 마귀(속이는 자, 거짓의 아비, 빼앗는 자, 사망, 멸망에 이르게 하는 자,) 의 전략 창 3장 1-5
(1) 죄를 짓게 한다. 하나님 명령을 어기게 유혹함
(2) 거짓의 아비, 속이는 존재
(3) 하나님 권위에 도전하게 한다. You will be like God
(4)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한다.
(5) 죽음에 이르게 한다.
(6) 의로운 자를 불의한 자로 만든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욕심이 생기게 하는 행위는 옳지 못함
3) 죄에 대하여 (원죄와 자범죄)
(1) 죄의 의미: 과녁을 빗나가다. 불순종 (하나님의 명령, 계명, 율법, 말씀, 언약)
(2) 죄의 발생: 창 2:16-17 “commanded”명령 must not eat, will surely die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거짓의 아비 마귀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에 하나님
의 명령을 어기고 창 3:1-5 여자가 따 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 죄의 속성: 파괴성: 질서, 관계, 사랑, 믿음, 의. 분열성: 하나, 한마음, 한 믿음, 일치
유전성: 가계 저주, 사대의 저주의 법
(4) 죄의 결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 이르렀느니라. 고전 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롬 5:14 사망이 왕 노릇, 5: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26:18 사탄의 권세에서. 마귀의 지배, 소속, 신분이 바뀜- 불의한 상태로 됨 롬 3:10
4) 죽음의 의미( 징계 포함)
(1)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교제의 단절: 호적에서 판다. 생명책에서 지움. 부자의 연을 끊는다. 부자 관계의 단절, 부부의 이혼, 남이 된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2)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의 단절: 저주가 들어옴, 에덴에서 쫓겨남, 남자의 수고 땅의 저주로 엉겅퀴와 가시를 냄, 여자의 수고 해산의 고통,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음. 밭의 채소 먹음, 경작. 에덴 동쪽 그룹과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 지키게 함. 창 3:16,17,24
(3) 실제적인 육체의 죽음이 임함: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가 죽게 됨, 사망으로 향하는 메커니즘 3:19
(4) 영이 죽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됨(요 17:3, 웹 2:12) 예수님 모름, 하나님 약속도 모름, 육신의 일을 쫓게 됨- 사망의 길로 감(롬 5:11) 하나님과 원수, 하나님 법에 굴복 못하고 할 수도 없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함, 하나님 영이 거하지 아니 함,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공중 권세자를 따라감 (엡2:2), 세상의 풍속을 쫓음, 이 세대를 쫓음, 세상에 속함, 세상을 사랑하게 됨, 세상에서 소망이 없음, 하나님도 없음, 유행을 좇음. (엡 2:12, 갈 5:19-21, 요일 2:14-17 )
(5) 하나님의 배려: 가죽옷 입힘, 짐승을 잡아 피 흘림과 수치를 가려주심 3:21
(6) 소속과 신분의 변화
죄짓는 자는 마귀에 속함: 요 1. 3:8-10, 불의자, 형제 사랑하지 않는 자 역시 마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대적해야 하는 자. 구원받아야 할 세상에 사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 no
마귀의 나라 vs: 하나님 나라
(7) 마귀에 대해
마귀 명칭: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큰 뱀, 옛 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 공중 권세를 잡은 자, 처음부터 살인자, 거짓의 아비,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 속이고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
마귀 역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뺏음, 가라지를 뿌림, 마음에 나쁜 생각을 넣음, 모든 거짓, 악행, 죄를 짓게 함. 불의하게 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함, 이스라엘을 대적함, 하나님께서 손에 맡김, 시험하게 함, 광명의 천사로 가장함, 의의 일꾼으로 가장함, 성도의 활동을 막음, 눌리게 함, 올무에 빠지게 함, 옥에 던져 시험함,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 찾음. 벧전 5:8
마귀 대적: 틈 주지 말라 간계에 대적, 올무에 빠질까 염려, 마귀에 대적,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 사탄아 물러가라. 서로 분방치 말라, 시험하지 못하게 하라. 전신 갑주를 입으라.
마귀의 최후: 창 3:15 머리를 상하게 됨,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짐, 멸망당함, 히 2:14. 책망 당함
내쫓김, 천년 동안 결박당함,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감.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 당함, 시 27:1 죽음 당함, 계 20:2 잡힘.
(8) 불의하게 됨: 의인의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롬 3:10
<죄로 인해 쫓겨나는 아담과 그의 아내>
5) 죽은 자의 상태
(1) 죄 중에 있다: 원죄, 자범죄. 죄를 자각 못함, 자각해도 계속 범함/하나님 진노 중 롬 1:18
(2)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롬 1:21과 같이 한다 23, 24 ,25, 1:28 하나님 싫어함
(3) 불의한 상태에 놓임, 롬 1:18,1:29 모든 불의,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4) 인류의 역사의 연구 –죽은 자의 역사
(5) 지옥을 향해가고 있다. 마태 25:46 영벌에 놓임
(6) 죽음을 인정하고 자기의 소견대로 산다. 국가, 사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종교, 의술, 운동) 죽음을 극복하려 애쓴다. 놀자 놀자 젊어서 놀자.
(7) 계 21:8둘째 사망이 기다린다.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짐
(8)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산다. 스스로 의롭다 생각한다, 스스로 도덕적이라 생각한다.
(9) 자신이 죄로 인해 죽은 상태인데도 이에 대한 인식이 없다
(10) 실로 짐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창조주에 대해 감사와 찬양이 없다. 전 3:18
(11) 마귀의 지배를 받고 마귀의 뜻대로 살며 5)의 길로 간다.
6. 구원의 실행
1) 구원의 의미: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살림, 죄로부터 해방, 영벌에서 영생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불의한 자가 의롭게 됨. 삶 속의 낭패에서 건짐, 마귀로부터 해방. 새롭게 됨,
마귀의 권세 영향력에서 하나님 백성 보호 인도. 하나님 진노에서 건짐
2) 하나님의 계획: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
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3)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구약과 신약에서의 구원: 언약의 설명, 언약의 성취
노아 홍수와 심판- 아브라함의 선택, 믿는 이의 조상-이삭 –야곱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작-
요셉 이집트로 들어감 민족의 번성과 종살이- 부르짖음과 모세를 통한 구원의 시작- 10대 재앙 유월절 어린 양의 피- 홍해 건넘- 이스라엘의 민족의 구원 율법, 성막, 제사, 제사장, 제물과 말씀으로 사는 법, 광야 훈련 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감- 사사- 왕 성전- 분열과 포로- 귀환 –침묵기 후 구약에서 약속한 이스라엘과 전 인류의 구원자 구세주 이신 예수님께서 오심. 구약의 제사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는 (히 9:22) 원리이다
4) 구원의 다양한 의미
A. 살림, 건짐, 도움 save, deliverance, rescure.
(1) 죄에서 구원: 마 1:21, 눅16:16, 요 3:17, 행 16:31
(2) 생명의 구원: 창 45:5 대적으로 부터 구원, 환란에서 구원
(3) 진노에서 구원: 롬 5:9 하나님 진노에서 구원해서 저주가 해결됨/ 죄로부터 보호/ 롬 2장
(4) 죽음에서 살림: 엡 2:1-9, 요 6:40, 롬 8:11, 골 2:13, 요 1:4:9
(5) 구원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 빌 2:12
(6) 영혼 구원: 딤전 1:15, 히 10:39
(7) 병자 구원 약 5:15
(8) 구원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 딛 3:5
(9) 건짐: 롬 7:24 사망의 몸에서 건짐, 고후 1:10 사망의 몸에서 건짐, 갈 1:4 악한 세대에서 건짐, 골 1:13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 살전 1:10 장래의 노하심에서 건짐. 살후 3:2 부당하고 악한 사람에게서 건짐, 마귀의 권세에서 건짐. 신앙인의 현실의 어려움에서 건지심: 딤후 3:11 모든 고난에서 건짐, 4:17 사자의 입에서 건짐, 4:18 모든 악에서 건짐
B. 해방 set one free, liberated. 용서
(1) 죄에서 해방: 롬 6:18, 6:22
(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롬 8:22
(3) 피조물의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 롬 8:21
(4) 계 1:15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 (5) 구약에서의 구원: 종살이에서 해방
(6) 공중권세자로 부터 해방: 롬 8:31-39: 하나님 인도 보호가 시작됨
C. 영생 eternal life: 영벌에서 구원을 통한 영생
(1) 믿는 자 요 3:15-16
(2) 아들의 이름을 믿음 요 1 5:13
D. 도움, 치유, 높임, 승리. 용서 (forgiveness)
E. 소속 신분의 변화: 마귀 소속, 마귀의 종. 죄의 종,
공중권세자의 것, 하나님과 원수, 불의 한 자→ 하나님 자녀, 천국 시민, 백성, 제사장, 왕, 나라, 의의 종, 의롭게 됨 = 구원자 칭의
F. 칭의와 회복(복낙원)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값없이 의롭다 하심 롬 3:22
5) 출애굽을 통해서 본 신약의 구원 이해:((피, 홍해 구원 탈출/예수님 사역, 믿음, 세례, 죄 사함)
요셉을 통해서 애굽으로 들어간 야곱의 자녀와 가족은 400년이 지나자 번성하게 되고 강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부강에 두려움을 느낀 이집트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게 하였으나 산파가 하나님을 경외했다. 이런 가운데 모세가 출생하였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짐에 따라 노역도 점점 심해져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고자 40년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마침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특히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는데 흠 없는 수컷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은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되었는데 이 일의 기념이 유월절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앞두고 또 애굽의 추격을 받는데 이도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통과시킴으로 비로소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의 노래를 부른다. (출 15:1-18) 그리고 10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이를 광야 40년 삶을 통해서 익히게 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삶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된다. 신약 시대를 사는 사람은 모두가 자유롭게 보이나 실상의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고 있다. 이의 구원을 위해 흠 없는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이를 믿고 회개하여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인정되며 성령을 선물 받고 구원에 이른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여전히 살아야 하는데 옛사람과 같아 자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런 삶이 끝나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입성과 같이 천국에 입성할 것이다. 이 땅에서 구원받은 천국 백성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 의무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듯이 우리에게도 있다. 주님이 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홀로 살 수는 없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지도를 받으며 교우와 함께 교제하며 교회 일에 충성하면서 말씀을 배우며 선한 삶 증인의 삶을 늘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6) 약속, 언약의 개념으로 본 구원: 구약의 성취
의미, 성질, 당사자, 의무, 언약의 종류(구약, 신약) 순종, 불순종의 결과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을 때 노아는 의롭다 함을 인정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살아남았으며 무지개 언약을 맺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어 횃불 언약과 할례 언약을 맺고 이삭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 민족 전체는 출애굽과 홍해를 건너 호렙산 언약으로 선민이 되어 구원을 받았다, 이후 다윗과의 언약 등을 통해서 만민 구원의 기틀이 만들어 졌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과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는데 믿는 이와, 그의 가족의 구원의 약속이 그것이다.
모든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은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가 그 내용으로 들어 있다. 신약에서의 불순종 역시 벌이 반드시 있고, 큰 낭패로 연결될 수 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은 믿음으로의 삶과, 의롭게 사는 것을 동시에 요구하신다. 특히 지금은 의로운 노아 외에 모두 심판 당한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구원( The victory of God, s Grace)
7. 구원자 예수님(사복음서)
1) 예수님의 모습: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마 16:16
(1) 구약에 약속된 오실 메시아: 다윗의 자손:사 11:10, 마태 1:1. 동정녀 탄생과 임마누엘:
사 7:14. 다윗의 씨 베들레헴 출생: 요 7:42, 미 5:2. 신약에서 죄인을 위해 받는 고난의 기록: 사 53:1-12. 예수님 자신의 말씀 눅 24:27 모든 자세히
(2) 신약에 오신 메시아: 4복음서의 증언- 왕, 인자, 종, 하나님의 아들
(3) 다시 오실 재림주, 심판주: 마 24:44, 계 22:20, 20:12
(4) 성령을 약속하신 분: 눅 24:49 약속하신 것 보냄, 이 성에 머물라.
(5) 말씀 이신 예수님: 요 1:1- 요 1 1:1 듣고 보고 자세히 보고 만짐
(6) 하나님의 본체,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 요 1:1
(7) 삼위일체 한 위가 되시는 예수님: 우리가 요 11:17, 17:21 창 1:27
(8) 그리스도: 왕,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
(9) 의의 왕, 평강의 왕 창 7:2
2) 예수님의 사역: 마귀의 일을 멸하심 (창 3:15 요 1 3:8 요 10:10)
(1) 가르치시며, 전도하심: 마 11:1, 막 1:38 전하기 위해서 오심
(2) 치유하심: 공생애의 2/3의 치유사역에 쓰심
(3) 제자를 부르시고 교육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파송하심: 12, 70제자
(4) 우리 죄를 속하시기 위해 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심. 히 9:12
(5) 부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심. 마 28:6, 행 1:6
(6)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심 행 1:9 골 2:10, 3:1
(7)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주관하심 골 1:18
(8)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도우심 마 28:20
(9) 재림을 준비 중이심. 모든 인류의 심판하실 것임. 계 20:12
(10) 새 하늘 새 땅에서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심. 21:1
3)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구약의 제사: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 없다
레위기에 구약의 제사법이 명기되어 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그것이다. 소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사장이 흠 없는 짐승(수양, 염소, 소등)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하고 제물로 드리는 제사들이다. 창세기 9장 4-6절에서 하나님께서 생명과 피를 동일시하시고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려야 됨을 선포하시고, 레위기 16:9절과 16:27절에서 피가 속죄함을 밝히고 있다. 17:11절에서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합니다. 했고 17:14절에서는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다 라고 말씀하셨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함을 말하며 죽어야 할 죄인의 대속으로 흠 없는 짐승의 피 흘림의 제사를 만드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사 창에 찔림으로 피와 물을 다 쏟고 죽으셨는데 이는 마태복음 26:28절과 롬 3:25, 5:9, 엡1:7, 골 1:20절의 말씀과 같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피 흘리심이다. 히브리서 9:12절에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하셨다 했고 9:22 절에서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고 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임을 인정받은 신자의 범죄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히 10:29절에 있고 12:4절에는 피 흘리기까지 성도가 영적인 싸움을 할 것을 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피 흘리고 죽어야 하는 것을 대신 감당하신 것이다. 당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고 소망이 없었고 죽어야 하는 존재였다. 원수를 사랑함이 마땅하다.
4) 예수님과 십자가: 죄인, 죽음, 대속: 한국 수천 년 가난의 저주 지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 하 기 위해 고난과 수치와 조롱의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셨는데 하나님께 내 아버지의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 고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며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 의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이 땅에서 천국 시민으로서 여 러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갈라디아서 3:13 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아담의 범죄와 우리의 죄로 인한 저주에서 해방되게 되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과도 하나 되고, 이 세상 모든 족속과 주안에서 하나 되게 되었다. 이런 영적인 이해를 깊이 한 바울은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고,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라고 했는데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 너의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였다. 불신자의 죄악 된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자.
8. 예수를 통한, 예수 안의 생명(Life through Christ Jesus, Life In Christ Jesus)
1) 예수를 통한 생명과 예수 안의 생명
예수를 통한 생명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죄인이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을 통해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죄 용서를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분의 신성과 인성을 믿고 나의 죄를 대속할 유일하신 분, 즉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워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과 교우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함이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는 길이다.///예수 안의 의미에 대해서 나중에 따로 설명할 것임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한복음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여 예수님의 생명 되심을 말씀하셨다.
9. 생명을 지닌 새 피조물의 모습//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재 창조활동(삼위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통한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 즉 걸작이다.
1) 보라 옛 것은 지나고 새것이 되었도다. 고 후 5:17// 새 창조물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
1 여러분도 전에는 죄와 잘못을 저질러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여러분이 죄에 얽매 있을 때에는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고 허공을 다스리는 세력의 두목이 지시하는 대로 살았으며 오늘날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조종하는 악령의 지시대로 살았습니다. 3 실상 우리도 다 그들과 같아서 전에는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서 육정에 끌려 살았던 사람들로서 본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 그러나 한없이 자비스러우신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5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자리에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이렇게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8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9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공동 번역 에베소서 2장 1-10)
엡 2:10 For we are God'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NIV
엡 2: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unto good works, which God hath before ordaine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KJV
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자녀라 Because those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아들”이라는 의미는 아버지의 보호와 상속을 받는 권리가 있다. 우리의 아버지는 천지를 만드신 전능자이시고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다. 이를 굳게 믿고 이 땅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헌신 충성 봉사해야 한다.
4) 칭의로 의롭게 됨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5)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담 범죄 이전으로 완전히 회복되다.
믿는 이는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언제나 기도하고 찬양하고 증거 하는 삶을 산다. 더 이상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피하거나 두려워 숨지 않고 늘 기쁘게 예배드리고 의지하고 믿고 산다. 롬 8:15
6) 죄로 인한 저주가 물러가다. 갈 3:13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로 인해 들어왔던 우리의 저주가 물러가게 되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대한 증거는 부국 20 개국의 면면을 보면 거의 모두 기독교 국가임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역시, 북한 저주
7) 우리는 모든 인류가 꿈꾸던 그리고 꿈꾸는 영생의 존재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함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며, 또한 영원히 산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을 보지만 믿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따라 육체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이다. 요 3:16 신자와 불신자는 현실 속에서 같이 살고, 같이 죽지만 실상 완전히 다름. 한쪽은 살아난 영생을 꿈꾸는 존재이고 한쪽은 여전히 죽은 자. 신자는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와 위로, 보호가 늘 존재하고 한쪽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삶
8) 하나님과 교제의 온전함: 롬 5:1
에덴동산에서 죄짓기 전의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벗고 살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냈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우리의 죄가 도말 되어 의롭게 되었기에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다. 그분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고, 증거하면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언제나 기도할 수 있고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일마다 때마다 채우시며, 우리를 험한 세상에서 지키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종국에는 그분이 계신 천국으로 인도 하사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다.
9)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마 28:20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은 말없이 지켜만 보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어려움에 함께 하시며 힘주시고 도와주시겠다는 말이다.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려고 늘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복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이 외에도 예수 믿는 자의 축복은 너무나 많다. So many, 어떤 환경 속에서도 늘 평안하다. 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와 인도를 받는다. 모든
일들을 통해 성경을 배우며, 늘 좋은 것으로 주신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침
10. 성령의 법
1) 성령의 일반론
(1) 약속: 요엘 2:28-29, 눅 11:9-13, 행 1:3-4
요엘 2:28-29,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눅 11:9-13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행전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받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2) 파송: 하나님과 예수님: 행 5:32, 요:3:34, 14:26, 15:26 (하나님), 눅3:16, 행 2:33 (예수님)
(하나님)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요 3:34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오.
(예수님)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 천주교와 정교회의 논쟁
(3) 오심: 행전 2장과 이후 각 사람에게 임함/ 고넬료, 바울 등등
성령 받지 못한 성도들-행 8:14-17, 18:25, 19:1-6: 요한의 세례와 예수 이름 세례-사마리아 교인, 아볼로, 에베소 교인(기도, 안수, 예배) 베드로 등 12제자와 120문도 예수님과 동행 3년 후, 마음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성령세례, me 5년
성령 받은 믿음의 선진에 대한 성령 받은 일에 대해서 우리가 만약에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성경을 바탕으로 가정해서 제가 답을 적을 봅니다.) 아래와 같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먼저 베드로 사도에게 성령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실 줄로 믿습니다. 형제들과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중에 사람의 모습을 하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고기를 밤새 잡지 못했는데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줄 테니 예수님을 따르라고 해서 배와 그물과 잡은 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3년을 다니면서 세례도 받고(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음)그분이 하시는 일을 직접 곁에서 보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에 대해서 물으면서 배웠는데 아무리 보아도 모습은 사람이신데 하시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복음을 전하다 보니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낳는 기적을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님께서 이런 나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냐 나는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내 입술의 고백은 마태 복음 16장 16절에 있는데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면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서 고백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 이신 것을 알고 믿게 되자 나는 그분 곁에 있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내가 떠날 수가 없는 입장(물속의 배안)이라서 주님을 떠라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우리와 백성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보면서 그분 앞에 서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매일 그분을 직접 만나야 하니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늘 겸손하셔서 우리와 같은 죄인과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병자를 고치시고 모든 가르침을 손수 시범을 보이시며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무서워서 다 도망을 갔고 나는 세 번이나 부인을 하였는데 세상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의심하는 우리에게 창에 찔린 옆구리와 못에 찔린 손을 보이셨으며 이전과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쁘고 감격하고 확신에 넘쳐서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과 진리와 천국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만방에 전하고 싶은 마음의 불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아직 말라 하시고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시면서 가시는 모습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을 하시고 오신 전능하신 구약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신 구세주 이심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명령대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모두 120명의 성도가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성령께서 불로 임하셔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능력을 받아서 다른 나라 말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자유롭게 구사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 유대인의 명절(오순절)을 맞아서 당시 로마의 각지로부터 모여든 우리 동족 유대인들이 놀라면서 우리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했나 하기도 하면서 강한 관심을 보이며 모여들기에 사도행전 2장에 다 이런 기록을 해 놓았지만 담대히 예수님과 부활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하니 그들이 마음이 찔려서 우리가 어찌하면 되겠냐 하길래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로 내가 틀림없이 그렇게 설교를 했는데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한 답입니다. 즉 성령을 받는 절차에 대한 설명입니다. 라고 대답하실 것이고 덧붙여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 이름의 세례만 받고 성령을 받은 일이 없어서 요한과 같이 가서 안수를 하자 성령이 임했는데 그 내용은 행전 8 장 14-17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행전 2장 38절의 내용은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성경의 내용 중에서 너무나 중요한 구절입니다.
행전 8 장 14-17절의 말씀도 같이 보겠습니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개역개정)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9.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공동 번역)
37. When the people heard this,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said to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Brothers, what shall we do?"
38.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39. The promise is for you and your children and for all who are far off -- for all whom the Lord our God will call."(NIV)
행전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두 번째로 바울 사도에게 똑같은 질문으로 사도님께서는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면
제가 생각하는 바울 사도의 답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 기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달인인 내가 믿고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고 유대교의 율법과는 다른 가르침을 펴고 있기에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셨다 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베드로와 무리들이 열심히 예수의 도를 전하길래 유대교에 큰 대적이라 판단하고 그들을 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겠다고 대제상에 보고하고 다메섹으로 그들을 체포하려고 가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아주 밝은 빛이 보이면서 제 눈이 멀고 말았고 땅에 엎드려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이 들려서 누구시냐고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고 무서워서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들어가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줄자가 있으니 만나라 하시기에 그대로 했는데 아나니아가 예수님으로부터 미리 제가 올 것과 어떻게 제게 해야 할 것을 지시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예수님께서 제가 아는 예수님이 아니라 즉 사람이 아닌 신이심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경험하고도 과거에 행하던 대로 행할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하던 모든 행위가 잘못된 것을 알았으니 순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니니야를 만났는데 그분이 저를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고 제가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고 곧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대로 능력을 받아서 이제는 예수님을 세상에서 제일 잘 전하는 자가 되었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구약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배웠고 율법을 지키며 흠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몸부림쳤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구약성경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해 보니 진실로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아가 예수님을 이심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제가 잘못 믿고 잘못 사랑하고 잘못 율법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살았는데 주님을 만나니 모든 구약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그리고 성령을 아나니아의 안수로 받으므로 이 모든 내용이 더욱 생생하게 이해가 되었으니 진실로 성령을 받고 충만히 받는 일이 중요한 일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하신 구세주로 믿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로마인의 특권을 다 버리고 고난을 겪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 일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직분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가 성령을 받은 대로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전하고 회개를 시키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주고 죄 사함을 받게 하면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였는데 과거에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하셨고 그리고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 물세례만 받은 사람에게도 성령세례를 이야기하고 안수하면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반드시 성령을 받으세요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제 성경 말씀으로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행 9: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행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고린도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치고 1년 6개월 이상 같이 천막일도 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틀림없이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다고 믿습니다. 바울에게 배운 이들이 아굴라라는 성경 박사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서 어떤 설명을 했을지는 25절에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는 표현에서 추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바울이 행전 19장 1-7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안수하자 성령이 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 분을 초대해서 묻는다면 고넬료 입니다. 고넬료에게 성령을 어떻게 받으셨나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로마의 군대의 백부장인데 평소에 구제를 좋아하고 기도를 늘 하나님께 드리고 있어서 당시에 살던 유대인에게도 평판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하루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두려워하는 중에 베드로를 불러 청하라는 말씀을 듣고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하인을 보내서 모셔오게 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친구와 친척을 다 불러서 사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베드로 사도께서 오시길래 하나님을 맞이하듯 그 발아래 엎드리니 사도께서 친절하게 나도 사람이니 이러지 말라고 하시며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법으로 금하는 일이나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깨끗하지 않다 말라고 하시고 당신에게 가 보라 해서 순종해서 여기에 왔는데 무슨 연유로 나를 불렀느냐 하고 묻기에 내가 본 환상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을 통해서 들으려고 가족과 친구를 모아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니 베드로 사도께서 예수님의 만유의 주가 되심과 요한의 세례와, 성령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기름부으듯이 부으신 것과 복음을 유대와 갈리리에 두루 다니시며 많은 능력을 행하시며 전한 것과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심과 부활에 대해서 자신들이 생생한 증인임을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와 산자의 재판장이 되심과 많은 선지자가 증언하신 분이 예수님 이시며 예수님을 믿으므로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음에 대해서 잘 전할 때 성령께서 저와 가족 친구 등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시어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높이자 베드로 사도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주셨습니다. 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행전 10장 23-48절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다]
행전 10: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다]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고넬료와 가족과 친구들은 이방인 중에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신 분들인데 이분들은 성령을 받은 순서가 먼저 성령을 받으시고 그리고 다음에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십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이방인이 면서도 의롭게 살고 기도하시고 구제를 많이 하셔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신 분이라 봅니다.
위의 세 가지 예는 성경 말씀에 근거를 한 제 생각입니다. 베드로와 바울 사도와 백부장 고넬료는 천국에 계시는데 제가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성경으로 그분들의 행적을 알고 있어 위와 같이 구성을 해 본 것입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성경을 읽고서 이분들의 성령세례를 받은 과정을 위의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을 해 보았습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4) 하시는 일: 개인, 교회-예루살렘 교회/ 베드로, 요한, 야고보, 빌립, 스데반, 안디옥 교회/ 바울과 바나바, 디모데 등, 로마, 아시아, 그리스, 유럽, 미국, 한국, 중국-세계교회사. 현 모든 교회에 역사.
(5) 은사와 열매: 각각 9 가지
(6) 성령 충만 거듭남/// 장경동 목사님의 1.2. 3번 성도
(7) 근심과 소멸, 해서는 안 되는 일: 하나님의 마지막
(8) 성령 받아야 하는 이유: 이스라엘 40년 훈련의 필요와 젖과 꿀이 흐르는 한국에서의 러시아 교포의 생활을 통해서
2) 성령님의 구원사역 1: 성령세례
(1) 성령세례: 행 2: 38) 의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행 2:38~39)
성령세례는 예수님의 최대의 약속이며 (행 1:5, 2:33, 11:16 요 16:7) 모든 신자가 받는다. (행 2:38~39) 성령이 거하시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롬 8:9)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고전 12:3)
(2)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
첫째, 최초의 성령세례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이다 (행 2:1~4): 말씀과 기도- 예배
둘째,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로 사마리아인 들이 성령을 받았다 (행 8:14~17)
셋째,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셨다 (행 10:44~48, 행 11:16)
넷째, 바울의 안수로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 (행 19:1~7)
(3) 성령을 받는 방법
첫째, 믿음으로써 (갈 3:2)
둘째, 기도로써 (눅 11:13 행 1:14, 2:1~4, 8:15)
셋째, 회개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 사함을 얻을 때 (행 2:38) 모든 신자가 반드시
이 과정을 온전히 거쳐야 하며 특별히 회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을 넘어서 버림과 떠남 그리고 따름이 꼭 필요하다. 버림은 과거의 삶의 잘못된 것들이고 떠남은 그런 곳에서 멀어짐이요, 따름은 주님을 따름인데 그 계명을 지킴이요 주님과 이웃과 교우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회개이다. 반드시 회개해야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이 있다.
넷째, 안수를 통하여 (행 8:17, 9:17, 19:6)
다섯째, 말씀을 들을 때 (행 10:44)
(4) 증거: 증인의 삶, 성령의 은사와 열매, 하나님을 높임, 예수를 주라 부름. 선한 삶을 삼
2) 성령님의 구원사역 2: 성령 충만
(1) 성령 충만(엡 5:18); filled with the Spirit. 성령 충만해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을 보다 잘 섬길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강을 누리며,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계속 성령을 쫓아서 삶,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것이 영으로 충만케 됨. 계속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쫓아서 죄와 투쟁하며 그리스도 형상을 닮으며 사는 것
(2) 성령 충만을 받는 법
말씀으로 충만, 죄를 회개, 교만을 버림,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와 사랑, 기도
3) 성령님의 구원 사역 3: 거듭남- born again
(1) 원죄로 죽었던 영이 예수님을 믿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 새사람이 되는 것
(2) 말씀으로 거듭나고 (벧전 1:2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요 3:5)
4) 성령님의 구원사역 4: 인 치심: 고후 1:13 ㅡ seal
너는 내 것이다, 하나님의 보증과 구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피조물임을 인정. 새 사람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에 하나님께서 낙관을 찍는 행위.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창조했던 인간이 죄로 죽었던 것을 함께 역사하셔서 살리시고 기뻐하시며, 권능을 주시며, 증인의 삶과 선한 삶과, 구원의 높고 깊은 덕을 칭송하며 주님과 늘 함께 하시길 바라며 세상에 내보기 전 마지막으로 모든 점검을 하시고 ok 하시며 성도에게 성령으로 표를 내는 행위… 성령세례, 선물. 충만, 거듭남, 인 치심은 서로 관계 유
11.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1) 구약에서의 성령의 인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대로 400년이 지나 많은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고 10대 재앙 후 마침내 출애굽 하게 되었다. 특히 바로의 완악하던 마음도 마지막 재앙인 초태생의 죽음 앞에 무너지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민족은 죽음의 사자를 피하게 되고 마침내 약속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400년의 종살이 동안 자유를 박탁 당했던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큰 기쁨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약속된 땅과 자유에의 큰 소망도 추격하는 이집트 군과 앞을 가로막는 홍해 앞에 또다시 무너져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베푸시고 이스라엘은 갈라진 바다 가운데를 걸어서 비로소 이집트로부터 해방 즉 구원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10계명과 함께 선민이 지켜야 할 율법을 받고 그들이 한시바삐 가고팠던 가나안 땅에 즉시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께 범죄 한 연고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 교육이 끝났을 때 비로소 가나안 땅에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으며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초 태생이 죽는 것을 양의 피를 받아 문설주에 바름으로 그 죽음을 면하고 또 홍해를 건너 비로소 애급으로부터 해방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도 말씀을 배우는 광야의 삶에서 범죄 함으로 멸망당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점은 구원받은 신약의 백성의 천국 입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나 간절히 누리기 바랐던 자의로 행하고 싶었던 자유는 광야 40년 삶을 통해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보장되지 아니하였다.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선민에게 400년의 종살이의 기쁨을 이런 방식으로 연결하셨을까 답은 참 자유는 자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 있을 때에만 참으로 자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구약의 시대나 현대나 너무나 유혹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기에 육신과 안목의 정욕이 또한 대단하다. 사는데 모든 것이 구비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자의로 행하게 된다면 곧 우리는 마귀의 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이 부유하게 살면서도 부족한 것이 없으면서도 너무나 많은 욕심에 사로잡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많은 권력을 가진 이가 그 권력을 자신과 자신의 추종세력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자신의 능력으로 제어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부를 누리기 전에 먼저 부유함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말씀으로 사는 법을 먼저 말씀을 주시고 40년의 고난의 삶을 통해 그들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동행하시며 가르치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성경 말씀을 너무나 분명하게 체험할 수가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 국적의 처와 같이 12년을 이곳 한국에서 살면서 구 러시아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생활하던 처가의 가족, 친지, 친구 약 20여 명을 이곳에서 돌보게 되었다. 소련이 어렵게 되면서 많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은 우리의 70년 대 수준으로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에 와서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너무나 꿈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필자도 직접 결혼 때문에 가 보았는데 12년 전 당시 그곳 노동자 임금이 50달러쯤 되었는데 공산주의이다 보니 의사나 청소부나 다른 직장인의 월급이 대부분 같았고 그 수준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당시 노동자 평균 임금이 월 200만 원이 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국은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의 땅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에 오려고 애를 썼는데 약 20여 명이 그곳에 계시는 처가와 관계된 분들이 우리를 통해서든 스스로 노력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처도 이곳이 홀로 외롭겠지만 나로서도 가족이 모두 남부 지방에 있는 관계로 자주 만나지 못해 처가의 식구가 오는 것은 너무나 반갑고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 일도하고 같이 살면서 형제의 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였다. 그런데 처음에 그들이 우리 집에 신세 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입국 수속과 일을 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밟고는 일을 찾아서 떠나는 것을 보고 아무리 잡으려 해도 가는 것을 보고 정말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그의 그곳에서 오신 그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겪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너무나도 간절하고 시급히 원하는 것은 매달 월 200만 원의 월급과 100년의 공산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간절한 두 소망 자유와 젖과 꿀과 너무나 유사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월 200만 원의 수입은 그들이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 벌 수 있는 월급의 40배에 해당하는 너무나 큰 금액이다. 너무나 큰 물질과 그리고 간절히 누리고 싶은 자유의 유혹 앞에 형제의 정을 나눔과 함께 사는 것은 너무나 처참하게 철저히 무너져 내림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며 무려 40년 동안이나 철저히 이스라엘 민족을 훈련시켜야만 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약 20명의 그곳에서 오신 친인척은 이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를 누리며 큰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은 또한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사는 우리 모두는 한국에 살기가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말도 못하는 외국인이 이곳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그들의 생각대로 돈을 번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모를 뿐만 아니라 큰돈과 인생사는 동안 맛보지 못한 자유의 유혹 앞에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크게 그들이 자신의 고집대로 하지 않도록 싸워가며 그들을 이곳에서 먼저 나와 함께 형제의 정을 나누며 한국을 배워주며 안전한 직장에 취직시켜 모두 성공시키려 간절히 원했던 나의 기대도 너무나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나의 궁핍하게 사는 것을 보고 무시하고 자신들이 한국의 삶에 있어서 나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먼저 모텔에서 일하는 것을 정하고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가 선교사님의 호통에 분한 눈물을 흘리며 고집을 꺾고 우리 부부가 소개해 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 취직해 지금까지 일하는 의사이신 게라 집사님만 성공해 자신이 살던 카자흐스탄에 집도 두 채를 사고 자녀도 모두 출가시키고 자신의 노후도 온전히 준비하였다. 대부분의 분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처음 노동부에 정식으로 등록하고 일을 합법적으로 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곧바로 자신들이 이곳에 와 있는 분들과 연락을 해서 마음대로 직장을 구해서 떠났는데 나중에 보니 너무나 나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결국에는 거소 이전을 등한시 하고 불법체류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을 고용해서 임금을 착취하고 주지 않는 사업주를 만나 일만 하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다시는 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한국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내가 한국에 50년이 넘게 살아서 나름대로 한국이 어떤 곳인지 잘 알기에 1-2년 붙들고 가르치고 이곳에서 자립할 수 있게 해 주려고 간절히 원했건만 나의 간절함을 이해하고 내 곁에 머물러 주는 이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실패한 그들에게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면 그들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해 보았다며 도리어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 것이다. 진실로 한국에서 돈을 벌며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해 이해가 전혀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자유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 법에 익숙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우리가 받고 누릴 너무나 큰 축복과 행복과 자유는 우리가 꿈에도 꿈꾸지 못한 너무나도 놀랍고 너무나도 크고 그리고 영원한 것이기에 그것을 잘 모르는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고픈 욕망이 크다. 너무나 무지하기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이나 철저하게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합격한 자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러나 바울 같은 이는 회개 후 세례와 성령을 받고 즉시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삶을 실천하였다. (즉시 순종하는 사람과 늦게 반응하는 사람: 물론 홀로 기도 묵상 인도받는 시간도 있었음)
2) 신약에서의 성령의 인도
신약의 사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12제자와 바울의 삶을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등이 생활하는 현장으로 직접 나가셨다. 그들의 일에 직접 참여하시기도 한 다음에 이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와 가까운 나사렛에서 생활을 하신 것과 제자들이 주변에 살고 있었던 것은 깊은 연관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부름받은 제자들은 즉시 배와 그물, 잡은 고기,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이스라엘을 두루 다니며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복음을 듣고 배우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그들도 예수님의 파송을 받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었다. 그들이 3년 동안 전도를 위해 주님께 직접 배우고 질문하며 함께 생활을 했는데 이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 이심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되었다. 특히 천지 만물의 창조자 이신 말씀의 육신 되심을 알게 되었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신들에게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부터 보고 듣고 만지며 배우게 되었으니 인간의 역사상 이들보다 더 하나님에 대해 깊이 이해할 기회를 가진 이는 드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복음의 스승으로부터 실습과 함께 말씀을 직접 보고 배웠으니 지금 우리가 그들의 기록을 통해서 믿는 것과는 참으로 다른 강하고 큰 믿음을 가졌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을 눈으로 직접 뵈니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 늘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나아갔으리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피 흘리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 다시 부활하셔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를 열열이 원하는 이들을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마침내 그들이 함께 모여 일심으로 기도할 때 구약의 약속대로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께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불의 혀같이 임하심으로 행전 1장과 같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에 복음의 증인이 되었고 이들로부터 세례 받고 성령 받은 주님을 만나 회개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성령이 임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즉시 복음의 일군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를 사도행전은 잘 기록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마태복음 13장 52절의 말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마태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공동 번역),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NIV), Then said he unto them, Therefore every scribe which is instructed unto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unto a man that is an householder, which bringeth forth out of his treasure things new and old.(KJV),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는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조문의 준수에만 열중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있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세력에 대항하는 사람으로 여기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싫어하고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놓여있어 하늘나라에 대해 가장 잘 아시고 잘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배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율법학자가 천국의 교육을 잘 받으면 다시 말해 예수님에 대해 잘 배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면 마치 새 보물과 옛 보물을 창고에서 꺼내어 주는 주인과 같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구약의 달인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해 가장 잘 아시고 가르치시는 이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울 수 없으면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는 4 복음서와 사도의 가르침을 배우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옛 보물과 새 보물은 신약과 구약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가 있을 것이고 구약과 신약을 자유롭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주인은 신. 구약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일 것이다. 바울은 구약의 달인이었고 예수님과 동시대 동일 지역에 살아 비록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다른 사도와 같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들은 바가 지금의 우리와 달랐을 것이고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고 그를 통해 회개하고 세례 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감화와 감동과 인도를 받게 되었으며, 사도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주님께 복음에 대해 배웠다 했으니 이 말씀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 되어 신약의 많은 글들을 쓰게 됨은 물론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명을 잘 감당했다고 본다.
3) 신구약을 통해서 본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노아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과 그리고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 믿는 자에게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함께 함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고픈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도 주안에 사는 삶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도 결국 하나님과 함께 함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의롭고 거룩해야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택해서 거룩하게 하신 것이고 신약시대를 믿는 우리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되었다. 함께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말씀으로 사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40년 광야생활의 의미를 설명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치시며 이를 위한 훈련의 기간이 40년이 걸렸음을 가나안을 앞두고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려주셨다. 물론 여호수아 갈렙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광야에서 죽은 구세대와 달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말씀과 함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밤낮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셨다. 신약을 사는 성도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는데 신, 구약 성경 말씀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이것이 주와 함께 하는 삶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세례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런 후 성령의 인도에 따라 증인의 삶과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구약의 구름기둥 불기둥이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성령의 인도함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성도는 자의 자행하면서 세상을 살아서는 아니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이 성령의 인도받는 삶을 통해서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고 우리는 바울의 고백대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승리함을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을 것이다.
12. 결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
예수님을 통한(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다(롬 8장 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개역개정).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공동 번역).
1.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2.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NIV),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2.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 hath made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KJV).
우리는 앞에서 성령의 모습과 창조사역 구원사역 그리고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았다. 죄인이었던 우리는 죽은 존재였고 생명이 없었으며 지옥을 향해가고 있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되고 또 성령을 선물 받음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는 반드시 구약시대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배우며 말씀으로 살아야 하며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살았던 것과 같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신약의 성도는 역시 이와 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반드시 받으며 살아야 함을 보았다. 참다운 자유는 자의 자행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쫓는 자의 자행은 결국 마귀의 종노릇하는 지름길이 되고 종국에는 부자유하게 되며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지 못하게 된다. 반드시 신약의 신자는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배우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만 비로소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죄로부터 자유,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결국 예수님을 통한 생명을 얻음과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음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삶이 주안에 있는 삶이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요, 주와 동행하는 삶이요, 주를 사랑하는 삶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삶을 늘 기도하며 추구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야 하겠다.
※ 부록: 기다림과 성령세례(사도행전 1장 1-5절)와 잘못 가르치는 자의 범죄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4. On one occasion, while he was eating with them, he gave them this command: "Do not leave Jerusalem, but wait for the gift my Father promised, which you have heard me speak about.(NIV) 4. And, being assembled together with them, commanded them that they should not depart from Jerusalem, but wait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 which, saith he, ye have heard of me.(KJV)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성경과 복음과 천국 그리고 인생의 세상에서의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몸소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바로 복음을 전하라 하시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하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약의 요엘서의 약속대로 성령께서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사도와 무리에게 임하셔서 세례를 베푸셨다. 이들과 이들로부터 성령의 세례를 받은 바울의 행적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있다. 이들 모두는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 이었다. 이로부터 세월이 2000년이 흘렀다. 이 성령을 받기 위해 기다리라는 명령은 당시의 제자들에게 만 내려진 명령이 아니다. 오늘날 사는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된 성도가 되었으면 또 반드시 약속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만 하는데 이는 기다림으로부터 비롯된다. 12사도와 120문도의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기다림과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사도들로부터 받은 요한의 세례만 아는 분들과 예수의 세례를 알고 있었던 분들이 기다림 후 베드로 요한 바울의 설교와 안수로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과 같이 지금의 성도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반드시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같이 다양한 방법에 의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기다림이 필수적이다.
반드시 받는 성령세례이므로 언제가 될지 우리는 시와 때를 알 수는 없지만 약속이 있기에 이를 믿고 반드시 기다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함이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이다. 성도가 기다려도 되고 아니 되고를 자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엄중한 명령이다. 반드시 기다려야 하는 명령이다. 따라서 성도는 반드시 성령을 기다려야 한다. 행전 1장 4절에서 분명하게 이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데 이는 당시 성도에게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의 교인들에게 동일하게 내리는 명령이다. 이 명령을 무시할 근거는 성경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하여 누구도 이에 대해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성령 받고 사도행전의 성도와 같은 증인의 삶을 살기를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주님은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데 이를 당시의 성도에게만 해당된다고 한정하여 성령세례를 위해 기다리라 가르치지 않는 목사나 신학 교수는 사도행전의 성령 받은 능력 있는 크리스천과는 너무나 다른, 능력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른 크리스천을 새로 양성하려는 성경과는 너무나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 있는 성령세례의 체험을 하지 않은 목사나 신학 교수가 자신이 체험이 없으면 체험을 하도록 준비를 해서 성령을 받으면 되는데 이는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같은 성령 없는 크리스천을 세상에 내놓아 하나님의 뜻을 자신도 저버리고 자신들을 따르는 성도도 저버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약속을 믿고 몇 년이고 기다리는 자세와 이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받지 않고 받았다 잘못 믿고 기다리지 아니하는 자세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반드시 믿고 기다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간절하신 뜻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에 대해 성경은 어디에서도 다른 설명을 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성령세례에 대한 명령은 이 세상 누구도 그가 만일 신자라면 다르게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요엘서의 예언과 베드로의 사도행전의 2장에서의 설명을 잘 읽어보면 이 사건이 당시의 사건만으로 해석해서는 절대로 아니 됨을 너무나 분명히 설명하고 있기에 인간의 짧은 성경 이해와 그것도 잘못된 이해로 절대로 이에 대해 잘못 가르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성령세례의 체험이 있고 이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이라면 간절한 자세로 모든 성도가 성령 받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어있으며 이에 대해선 주님도 베드로도 바울도 일치되어 있다고 믿는다. 성령세례에 대한 부분은 목사의 목회에 있어 성도에 대한 가장 간절하고 절실하고 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격려해야 되는 분야가 되어야 함을 굳게 믿는다. 성령세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이다. 진실로 받지 않은 목사나 신학 교수나 성도가 있다면 반드시 성령세례가 있으니 절차를 지켜(사도행전 2장 38절)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 너무나 큰 죄를 짓고 살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성령을 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중요하고 성도의 삶에 큰 유익이 있는지 바울 사도께서 수많은 편지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면서 사도의 직분을 잘 감당했지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는 자에 대해서 별로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는 성령께서 모든 것을 때에 따라 가르침이라고 했다. 필자도 성령을 받고 살아 보니 이 말이 참으로 실감이 되는 것은 대부분의 것들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의 한 회사에 취직을 해서 교육을 받으면서 삼성의 교육과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비교를 해 보았는데 감히 인간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가르침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확실히 보았다. 이에 대한 성경말씀은 요한 일서 2장 26-27절에 있다.
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혹시 어떤 분이 제가 이런 자료를 만들면서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까 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저는 성경 정리를 통한 성경공부(Bible Summary for Bible Study)와 전도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물론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많이 배운 것이 있지만 거듭 드리는 말씀이지만 신학자와 성경을 많이 연구하시는 분의 글을 보면 어떨 때는 그분들의 글이 너무나 어른스럽고 저는 어린아이 수준 같아서 심히 부끄러운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제가 성경을 정리하는 일은 재미있고 쉬운 일이었음을 밝힙니다. 저는 목회는 하지 않아도 쉬지 않고 일반 직장인과 똑같이 일을 하고 또 전도도 열심히 하고 가정도 아내와 아들과 같이 잘 꾸리려고 하는 정말 보통의 보편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따로 깊이 연구를 성경에 대해서 정말 하고 싶지만(미국에 공부를 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최고 소망임) 시간이 절대로 그렇게 없습니다. 외국에서 온 젊은 아내의 남편 역할과 아버지 역할을 확실히 하라는 독촉은 어제도 오늘도 쉬는 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자료를 정리한 것은 저의 능력이 아님을 밝히고 싶습니다. 쉽게 재미있게 머리의 연구가 없이 거의 저절로 된 일임을 밝히고 은혜가 되시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부족한 부분은 조금씩 시간이 나는 대로 조금씩 보완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성경 이해도 부분적임이 있음을 밝힙니다. 베드로의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을 전도를 하면서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 구절 한 구절의 이해를 통해서 비로소 이해를 한 것을 이미 간증에서 밝혔는데(전도자에게 가르쳐 주신 이신칭의) 저는 이 방법외에는 성령을 받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해서 이 방법이 유일하게 성령을 받는 방법이라고 설명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고넬료가 먼저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는 것을 보고서 제 이해가 짧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외에 또 말씀으로 거듭남이 있고 성령세례, 선물, 충만, 그리고 거듭남과 성령의 인치심의 분명한 분별에 대해서도 아직은 이해가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위의 글과 또 다른 방법의 성령세례가 있을 수 있음에 가능성은 열어두나 아직까지 제 이해는 앞에서 설명한 것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도 알지 못함을 말씀 드립니다. 늘 배우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제 글들은 성경정리법(B.S for B.S)에 자세하게 또 있습니다. 교회사의 기초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교회사의 기초: 성령의 오심(성령의 선물)에 대해
할렐루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구약 요엘서에서 약속하시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고 수난 후 그리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기다리라고 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이 세상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며 남겨진 제자와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다른 보혜사를 약속하셨으니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성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심으로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고 그리고 복음이 온 세상의 박해와 핍박과 마귀의 간계를 깨뜨리고 세상 끝까지 전파가 되고 우리나라에도 천주교는 400년 개신교는 130년 전에 들어와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계심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님을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선물로 받아서 권능을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선하게 의롭게 사는 것을 방해한다 할지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세게 승리하며 세상을 정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건설하고 확장하게 하여 주옵소서
샬롬!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의 고백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세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서 약속대로 임하신 성령을 받고서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을 증거함으로써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더하심을 통해서 늘어가고 교회가 말씀으로 든든하게 서 가며 또 하나님의 자라게 하심으로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성령을 받은 전도자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서 담대하게 지혜롭게 그리고 거룩하게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일은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성장이 되면 교사도 필요하게 되고 그리고 다양한 직분을 가지고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예수님의 지체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교회의 설립과 성장과 그리고 부흥에 절대적이라고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교회사의 기초로서 이렇게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는 그리고 복음을 확장하는 원동력이 되는 성령의 오심을 올바로 아는 것은 세상에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확장되고 성장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성령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이 경험이 성경에 기록됨을 보면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성령의 선물에 대해서)을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부족한 성령에 대한 이해이지만 꼭 필요한 과정에 대한 내용이니 끝까지 정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전철에서 내려서 버스를 환승을 하려고 역을 나오는데 밖에서 전도지를 돌리는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제게 전도지를 건네주시며 집회에 오시라고 해서 저도 전도를 많이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전도를 많이 할 수가 있을까요 묻기에 성령을 받으면 된다고 하니 자신도 성령을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은 반드시 성령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으시고 그리고 성령을 받고 아니 받고에 대해서 정직하시고 또 사모하시니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환승장으로 가면서 그분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을 받고 아니 받고가 분명하게 알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신학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있고 이를 성도들이 목사님을 통해서 배우다 보니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잘못 믿고 있는 경우도 많이 보고 있고 성령을 성경의 가르침과 같이 받지도 않고서 학자도 되고 목사도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전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과 같이 권능을 받게 되고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을 알지도 받지도 않고 아볼로와 같이 힘 있게 성경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예수님을 전하려고 하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나중에 아볼로는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서 성령에 대해서 온전히 배우고 더욱 힘 있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간증에서 밝혔듯이 30여 년 전에는 산속에서 중이 되려고 수도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성수 장로님께서 성경 책을 한 권 주시는데 저 책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나 하고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김성수 장로님께서 제 고향분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만 두어야지 하고 받아서 책상에 두었다가 어느 날 산에서 명상을 하고 내려와 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오고 어찌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성경 책이 보여서 다른 선책의 여지가 없이 보아야지 하고 얼른 성경 책을 집어서 펴는데 고린도 전서 13장이 펴지고 그 말씀이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서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경의 말씀에 비추인 제 마음은 제가 인식하고 있던 착한 마음이 아니라 너무나 더럽고 추하고 그리고 아주 못된 마음이었습니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나고 무릎이 꿇리며 기도가 나오는데 하나님 저를 도구로 써주세요 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도구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데 그런 기도가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성경 책을 보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법정의 팬이었고 성철과 같은 고승을 사모해서 그들과 같이 되고자 도를 닦고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며 따라가고자 했던 제가 순식간에 과거의 모습으로 살기엔 제 마음이 너무나 잘못되어 있는 것을 성경의 비추임을 통해서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하고, 성경의 다른 내용도 잘 모르고 그리고 교회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잘 모르면서, 오직 너무나 분명하고 정확하고 올바른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을 보고선 그 말씀 대로만 살고자 모든 노력을 그때 이후부터 다 기울였습니다. 과거의 저의 성급하고 이기적이고 화를 잘 내고 제가 알지도 못했던 교만과 자랑과 그리고 무례와 냉랭함을 모두 버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오직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모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 몸부림을 치고 나서 교회에서 절차에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김해 장유의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에 대학에서 준비를 하던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해서 2차 준비를 위해서 신림동에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선민 교회에 출석을 했습니다. 열심히 2차 준비를 하던 어느 주일날 당시 담임이셨던 박기수 대신 총회장을 역임하신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갑자기 우셨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신 크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흑백의 얼굴에 수염이 있으셨는데 우리가 그림으로 사진으로 보던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에서 불이 나왔습니다. 그 불은 빨간색으로 칼라로 보였습니다. 그 불이 제 가슴에 왔는데 빨간색 작은 불길이 제 가슴속에서 몇 개가 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땀이 나면서 믿음이 왔는데 누군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프다면 제가 손을 얹으면 나으리란 믿음이 함께 왔습니다. 그리고 이 일과 동시에 제가 3일은 천국에 있는 것과 같았고 그리고 고시공부도 세상일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기적들이 일어났고 제 모습을 보신 당시의 관리 집사님(현재에는 장로님)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웃으시면서 하나님을 만났구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시 1차를 붙어서 행시 2차에 여념이 없는 제게 목사가 되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은행에 다니다 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종교적으론 불교에 심취를 해서 산중 생활을 꿈을 꾸면서도 또 행정고시에 합격을 해서 남북통일에 기여하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대가족인 가정에서 자랐으나 아무도 저 외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기에 목사가 되려는 생각은 평소에 한 번도 해본 적도 그리고 꿈도 꾸어보지 못한 일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목사가 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약 19년 만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행정고시 2차에도 응시를 했지만 1점 차로 낙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성경에 대해서 많이 모르면서 전도하고픈 생각이 늘 있어서 성경의 내용들을 온전히 잘 알지 못하면서도 교회생활은 비교적 잘 하면서 전도는 쉬지 않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불을 받은 일이 너무나 엄청난 일임을 스스로는 알았지만 쉽게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혹 이야기를 하면 무어라 말씀을 해 주시는 분도 없었습니다. 목사가 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신학을 하면서 졸업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경도 공부하고 전도도 하면서 성경의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성경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고 온전한 신앙생활도 한 적이 없고 가족 중에 믿는 이가 없기에 성경을 가르쳐 주신 분도 없기에 목사가 되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날마다 읽는 습관도 없었고 배운 바도 없었기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배워야 했는데 신학을 하고자 성경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신학 대학원을 7년 동안 다니면서 신학도 하고 성경도 읽고 그리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중에 전도는 쉬지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주로 보냈는데 나중에 제가 편지를 보낸 대상과 자료를 보니 너무나 많아서 제가 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전도를 하는 중에 사람이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는가를 알게 되었는데, 분명하게 전도하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지만 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일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 카페 전도 코너에 자세한 내용이 있음)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을 어느 날 읽게 되었는데 그 말씀과 정확하게 제게 일어난 일이 일치를 했습니다.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성령을 받은 것을 생각하며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를 설명한 말씀입니다.(개역개정, NIV, 공동번역의 순서)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38.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39. The promise is for you and your children and for all who are far off -- for all whom the Lord our God will call."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9.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저는 처음에 개역개정만 보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또 죄 사함을 따로 받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또 무엇을 하여야 하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문으로 보니 죄 사함을 위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로 이해를 다시 하게 되어서 아!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구나라고 올바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비추어 제 경험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정말로 고린도 전도 13장의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착하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참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리고 참으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으며 이에 대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께서 주신 성경책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에 비추어진 제 모습은 말씀과 조금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 너무나 못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제모습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완전히 잘못되고 못된 사람이고 성경의 말씀은 너무나 올바르다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분명하게 보았는데 어느 정도 분명하게 보았느냐 하면 절대로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야만 된다라고 행동을 해야만 할 정도로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대로 살려고 정말로 온 힘과 마음을 다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을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서 27년을 살다가 완전히 다른 마음의 자세로 살려고 하니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제 모습이 너무나 잘못되었고 절대로 그렇게 살아서는 아니 됨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았기에 과거의 마음으로 절대로 살 수가 없었기에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100% 그렇게 살 수가 없고 특히 어떤 부분에 있어선 정말로 말씀대로 잘 실천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5년이 지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서 나중에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제 과거의 모든 죄를 다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 중에 성경을 볼 때마다 과거에 죄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던 삶이 죄로 얼룩이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또 성경을 읽으면서 죄가 새롭게 보이면 늘 하나님께 즉시 용서를 빌고 그렇게 다시는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물로 세례를 받고 나서 약 1년이 조금 덜 되었을 때 이렇게 예배 중에 예수님을 뵙게 되고 불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 기적(방언, 통변, 병자 치유 등등)을 체험을 하게 되고 전도에 불이 붙어 늘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틀림없이 성령을 받은 일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성령을 받고서 그 사건을 이야기를 해도 누가 무엇이다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도 없고, 제가 누구에게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그냥 속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를 통한 말씀으로 저도 틀림없이 베드로가 말한 그런 절차를 걸쳐서 성령을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 글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성령을 분명하게 받아야 한다고 하는 내용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오천만의 로마서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가보시면 자세하게 소개가 되었음). 저는 모든 사람이 절차를 걸쳐서 틀림없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열려 있고 또 성령을 받고 살아보니 성령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 능력, 힘으로 사는 것이기에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만 된다고 굳게 믿기에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간증에서 밝혀지만 여기서 또다시 반복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배우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그리고 신학자가 될 수도 있지만 모든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관심을 가지고 그대로 실천을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말씀이 저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반드시 회개를 해야 됩니다. 회개는 반드시 사랑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쪽으로 옮겨짐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성경을 공부하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으면 이 사람이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고 장로가 되어도 회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회개를 처음으로 외쳤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전도로 시작하시면서 회개를 외쳤던 것입니다. 부자는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성격이 난폭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반드시 과거와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세상에서 재벌이 되는 것보다 소중하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스타가 되는 것보다도 너무나 소중해서 비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귀한 선물을 받아야 하는데 회개하지 못해서 받지 못하면, 무언가 덜 귀한 것을 소유하고서 받지 못하면 너무나 어리석고 가치 없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잘못된 가르침도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성령을 받고서 능력을 받은 전도자에 의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도가 다 성령을 받았고 그리고 120문도가 성령을 받았고 사도들이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회개하시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시오, 그리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성도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고 사도 베드로는 분명하게 행전 2장 3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도 그때 보다 더 훨씬 많은 구원을 얻을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있는데 성령을 받지 않고 권능을 받지 못하면 세상에 나가서 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며 이는 목사라고 신학자라고 가능한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제 경험을 들어서 수십 차례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 성도가 전도도 어렵지만(자신의 열심으로 하는 전도도 있음) 이 세상에서 돈으로, 지식으로, 자신의 어떤 능력으로도 올바르게 살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와 그리고 성령의 감동과 감화와 인도하심이 2000년의 교회사에 다 녹아 있고 이를 잘 정리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성령론에 대해서 깊이 알지를 못하고 배우는 과정에 있지만 이 부문은 정확합니다. 성령의 세례와 혹은 선물은 너무나 중요한데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고,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 즉 너는 내 것이라는 성령의 도장이 꼭 우리에게 찍혀야 하니 성령의 세례나 선물은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얼마나 성령을 받는 일이 우리의 신앙에서 중요한 일인지 깊이 인식을 하셔야 합니다.
정말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일보다 장로가 되는 일보다 잘 먹고 잘 사 잘 사는 일보다 그리고 좋은 직장이나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성령을 받는 일이 백번 천 번 더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함을 저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서 외칩니다. 성령을 받는 첫걸음은 회개입니다. 반드시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잘 준비를 하셔서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복음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가르치시고 훈련을 시키신 후 인류 구원의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우리 대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그리고 장사되시고 그다음에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시면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하시며 성령을 받고서 온 세상에 나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내용이라면,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령을 기다리고 그리고 성령을 받고 그리고 권능을 받고서 복음을 이스라엘과 땅끝에 전한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내용의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사도행전의 내용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내용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보좌에 계시면서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가 반드시 사도행전과 같이 성령을 받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라시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서신서와 계시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세례는 분명하게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다른 세례이고 그 내용을 사도행전의 1-2장에서 기록한 것이며 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행적을 그다음에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하나님께서 너무나 간절하게 바라십니다. 분명하게 물세례는 우리가 교회에서 받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이고 그 다름에 성령의 선물, 세례가 사도행전의 기록과 같이 틀림없이 존재하고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사는 모든 크리스천이 반드시 그렇게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깊이 유념을 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모든 이런 성령을 받은 사람의 기록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세례만 받은 사람(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 물세례만 주었던 사람들)과 세례자 요한의 세례만 받은 사람(유명한 아볼로와 에베소에서 바울이 만난 12명)들이 바울을 통해서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은 사람이 반드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주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경우는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5년의 몸부림이 있었다고 했지만 지나놓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자가 이렇게 모든 믿는이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회개를 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틀림없이 그 회개를 도와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의 자녀가 학비를 내지 못하는 것을 들으신 어떤 권사님께서 평소에 남을 돕기를 좋아해서 더 이상 여력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결혼 때 패물을 파셔서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남의 집 아이를 돌보면서 돈을 버셔서 어려운 교회와 목사님들을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은퇴하신 목사님께서는 인도에 가시면서 모든 것을 자비로 준비하시고 그리고 많은 선물도 사가지고 가셔서 나누어주시고 오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 분들의 자녀의 태가 열리고 세상에서 형통의 길이 열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 많은 부자 장로와 목사의 자녀가 결혼을 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을 봅니다. 제 생각에 적당하게 가지고 다 나누어 주시면 자녀도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행복하게 살 것인데 노년에 자녀를 홀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아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나누지 않으니 재물은 남아 있으나 자신과 자녀의 행복은 멀어져만 가는 것입니다. 한국의 너무나 많은 현실들입니다. 가난한 개척교회, 자살을 하는 주변의 이웃의 일을 절대로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돈의 노예는 마귀의 노예입니다. 예수님은 멀리 있습니다. 돈에 정신이 나간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자 크리스천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 예를 들면 저는 복음의 부자입니다. 하나님께 복음에 대해서 받은 바가 넘치고 큽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일년동안 아무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나누지 않고 이 블로그에 올린 모든 내용을 제 마음에만 간직하고 어떤 사람에게 성경을 읽으세요, 예수님을 믿으세요만 외치면 이 모든 것을 나누라고 주신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보시고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수십,수백억을 가지시고 어려운 이웃을 보고도 나누지 않는 부자 목사, 장로, 성도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못사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잘 믿으세요 라고만 합니다. 주변을 보세요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 후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것 하나가 있으니 이 시대에도 그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반드시 초대교회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과 똑같이 성령을 받고서 권능을 받고서 복음을 전함을 통해서 구원이 비로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전도자의 역할이 그때 나 지금이나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이들이 교회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함에도 지금 시대에 전도자는 그냥 교회에 소속이 되어서 성령의 세례가 없을 수도 있는 목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잘못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이 세상에서 욕을 먹고 전도와 선교는 멀리하고 다른 일에 분주하니 성령을 받은 전도자의 눈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이 자신을 점검하시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이상한 신학적인 가르침에 현혹이 되지 마시고 오직 물과 성령으로 반드시 거듭나야만 됨을 꼭 기억하시고 반드시 우리도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같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온전히 회개를 하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으면 반드시 틀림없이 성령의 선물이 있음을 굳게 믿고 성령을 사모하시고 받으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부자입니까 반드시 어려운 사람에게 많이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죄 중에 있습니까 반드시 그 죄에서 회개를 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해도 아깝지가 절대로 않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님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하신 분들의 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사를 배울 때 성령을 받은 전도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들의 활약이 사도행전이며 사도행전을 통해서 이후의 모든 교회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가 있기에 이렇게 제 경험을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드리며 성령을 사모해서 성령을 받기를 권하며 글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회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늘 승리의 노래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아는 토레이 신부님의 글을 올립니다. 끝까지 읽어보시고 2천년을 통해서 한결같이 우리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됨을 간절하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시고 반드시 절차를 지키셔서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토레이 신부님은 예일대에서 공부도 하시고 저보다 모든 면에서 연구가 많으시고 업적도 미천한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제글보다 모든 면에서 잘 정리를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런 내용을 겨우 배우는 단계에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는 법 – R.A. 토레이
5/4/2015 ~ 5/16/2015성령세례 받는법
저자가 대천덕 신부의 할아버지. 영적대각성 부흥의 주역이 한국 부흥의 고리와 연결되어서 그 증손자까지 한국의 영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 책을 통하여 성령충만을 간절히 원하게 되고, 늘 성령충만한 은혜가 있기를 간구하게 되다.
도서명 Title: 성령세례 받는 법
.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출판사 Publisher: 규장 | 2006.05.17
Length: 238 페이지
저자 Authors: R.A. 토레이 (R.A. Torrey)
역자: 이용복
ISBN : 8970463836, 9788970463834
소재; 뉴욕예일장로교회 도서관
책소개
‘R. A. 토레이 파이어’ 시리즈, 제1권 『성령세례 받는 법』. 구원받은 은혜에 만족하여 안일하게 지낼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아 능력 있게 복음을 증거하며 믿음의 사역에 힘써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성령론’을 소개한다. 성령세례의 본질을 일깨워줄 뿐 아니라, 그것을 받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세상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성령의 능력을 통해 전파된 복음을 듣도록 만드는 것이 성령운동의 목적임을 일깨운다. 나아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전하고 있다.
저자 R.A. 토레이
20세기 초에 활동한 유명한 전도자요 성경신학자로, 그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은 20세기 초 전 세계에 걸친 부흥운동에 불을 지피는 ‘하늘 불씨’가 되었다. 탁월한 복음 전도사인 그는 쉽고 단순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성경의 진리를 전하기로 알려져 있다.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해 예일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했고,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878년 회중교회 목사 안수를 받고, 오랫동안 무디와 동역하였으며 무디성서대학 학장과 무디기념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그는 구원받은 은혜에 만족하여 안일하게 지낼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아 능력 있게 복음을 증거하며 믿음의 사역에 힘써야 할 것을 역설했다. 믿는 자라면 성령세례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의무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자유주의 신앙의 차가운 이성주의(理性主義)와 죽은 정통의 무기력하고 나른한 신앙에 빠진 20세기 초의 신자들에게 거룩한 불덩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성령세례에 대한 그의 강력한 권고는 웨일스와 인도, 뉴질랜드, 호주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발화점이 되었다.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부흥의 불을 지폈다. 특히 그의 후손들은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었다. 장로교 목사였던 그의 아들 토레이 2세는 중국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한국동란 후에는 대전 지역에서 장애인과 고아를 위해 사역했다. 특히 토레이의 성령론은 한국의 초기 선교사 하디와 무디성경학교 출신의 한국 선교사들에게 전수되어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과 1907년의 평양부흥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영혼구원의 현장에 복음의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리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 미국, 영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의 10만 영혼들이 회심(回心)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 그의 직접적인 전도 방식은 이후 수많은 사역자들에게 복음전도의 모범이 되었다.그의 후손들은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었다. 장로교 목사였던 그의 아들 토레이 2세(1887~1980)는 중국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한국전쟁 후에는 한국의 대전에서 장애인과 고아를 위해 사역헀다. 토레이 3세는 한국에서 예수원 원장으로 오랫동안 사역한 대천덕 (1918-2002) 신부 (성공회신부)이다. 또한 토레이의 증손자이자 대천덕 신부의 아들인 벤 토레이 (Ben Torrey) 신부가 현재 예수원에서 사역 중이다.
역자 이용복
목차
프롤로그
추천사
1부 성령세례의 엄청난 은혜를 아는가?
01 성령세례란 무엇인가? … 14
02 성령세례를 받는 법 … 30
03 성령세례를 받으면 어떤 증거들이 나타나는가? … 78
04 왜 꼭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 96
05 성령의 능력이 소멸될 수도 있는가? … 118
2부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는가?
06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 132
07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신다 … 146
3부 성령의 특별한 사역
08 예수님에게 나타난 성령의 사역 … 158
09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사역 … 165
4부 나를 위한 성령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
10 자유롭게 하시는 성령 … 180
11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 … 189
12 바른 길로 이끄시는 성령 … 194
13 가르쳐주시는 성령 … 201
14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시는 성령 … 216
15 사명의 자리로 부르시는 성령 … 223
내용 인용 (요약)
7 – 토레이는 “성령세례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온전한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주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토레이에 따르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성령운동의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제대로 증거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전파된 복음을 듣도록 만드는 것이 성령운동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26 –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세례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나오는 성령세례에 대한 언급들 중 가장 완벽하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세례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장(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장은 봉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은사들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한다. 성령세례의 일차적 목적은 신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유용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단지 신자들이 황홀경을 느끼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효율적으로 봉사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63 –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모든 죄를 다 버리고, 죄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께 성령세례를 구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성령세례를 받아들인다면 누구라도 당장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
98 –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가 거의 완벽했던 제자들조차 성령세례가 필요했는데, 하물며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무모하고 주제넘은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온 세상은 죽어가고 있었고 오직 제자들만이 구원의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세상으로 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그들에게 “기다리라” (행 1:4)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신 것이다. 이는 성령세례의 절대적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들 중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세례이다.
102 –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위해 다양한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잘못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주일학교 교사, 사역자, 심지어 복음 전하는 자로 임명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회심하고 대학과 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정통교리를 배운 경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다. 예수님은 이런 착각에 제동을 거셨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가 되는 조건으로 개인적 경건과 객관적 교육 이외에 진짜 필수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문자적으로는, ‘앉아 있어라’)” (눅 24:49)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114 – 성령 충만을 단 한 번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역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새롭게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으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과거에는 알았으나, 현재는 성령의 기름부음과 능력을 모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령이 그들에게서 완전히 떠나셨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성령이 그들에게서 떠나셨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성령의 임재와 능력의 나타남이 그들에게서 사라졌다는 말이다.
115 – 당신은 오늘날 우리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슬픈 현상들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과거의 한때에는 성령의 능력의 능력 가운데 주님을 위해 수고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실상 주님께 아무 쓸모없이 된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1년 전, 5년 전 또는 20년 전에 받은 능력으로 현재의 사역을 감당하려고 발버둥 친다. 새로운 봉사의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새롭게 돌보아야 할 영혼이 나타날 때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새로운 일을 추진해야 할 때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날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새롭게 노력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은사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며 (딤전 4:14)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게” (딤후 1:6)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영적 능력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계속 받아야 한다.
129 –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일곱 가지는 우리의 ‘구별됨’ 포기, 죄, 방종, 돈에 대한 탐욕, 교만, 나태한 기도 생활 그리고 나태한 말씀 묵상이다. 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이 일곱 가지를 경계하기를 바란다.
134 – 말씀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이 자신의 검(劍)을 사용하실 때 그 검의 날카롭고 강력한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에 의해 말씀을 통해 성취된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열매 맺는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신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지만 말씀을 소홀히 한다. 이런 사람들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열심과 열광주의에 빠질 뿐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을 강조하지만 성령의 능력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들 또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 생명과 능력이 없는 진리와 죽은 정통교리만이 그들에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사역하실 때 그 수단이 되는 말씀의 능력, 그리고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살아 있는 능력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146 –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닮은 삶으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 성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을 잡아 그런 삶 속으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만드시도록 온전히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은 단지 ‘하나님의 소생’ (offspring) 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생’이다. 행 17:28)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152 – 성령은 우리가 기도하도록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감사하도록 가르치신다. 성령 충만한 생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중 하나는 바로 감사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엡 5:20)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다.
또 다른 분이 토레이 신부님의 성령론을 요약한 것입니다. 반복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 A. 토레이 著「성령론」 5/8
성령론 2부 요약(5-8장, 저자: 아처 토레이)
5. 성령 세례의 의의(意義)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니”,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시니”, “성령의 선물”,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움” 등의 말씀들은 모두가 같은 체험에서 나온 말들이고, 현재에도 하나님은 자녀들을 위하여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즉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하고 계시다.
그리고 성서 저자(著者)들이 가졌던 경험을 내 자신은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는 이 경험을 얻으려고 힘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므로 나는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었고, 변화된 그리스도인, 교역자(敎役者)가 된 것이다.
1) 성령 세례란 무엇인가?
①성령 세례는 사람이 이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한 가지 역력(歷歷)한 경험이다.
성령의 세례는 자기가 그 세례를 받은 여부(與否)를 알 수 있는 확실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 기다리며 또 전도 사업을 시작할 날이 언제임을 사도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행 1:4-5) 바울은 에베소 성(城)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 주심을 듣지도 못하였노라”고 대답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인 중에는 한 인격적인 성령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제자들은 성령이 계심을 알았고, 성령 세례에 대한 분명한 약속도 알았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고, 분명히 성령 세례를 받도록 하기에 힘썼다. 근래에 와서는 성령 세례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많고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하여 기도도 많이 하는데 모두가 막연하고 불확실하다. 성령과 세례는 이미 받았으면서도 성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성령과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②성령 세례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에 덧붙여서 하여 주시는 역사이다.
거듭난다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였지만, 그들은 이미 거듭난 사람들이었다.(행 1:5) 주님께서 그들을 거듭난 사람들이라고 단언(斷言)하셨기 때문이다.(요 15:3) 우리는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는 말씀에 대한 답변을 벧전 1:23에서 볼 수 있다. 이 성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여 제자들은 이미 거듭나기는 하였으나 아직 성령 세례는 받지 못한 것이었다.
빌립의 복음 전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무리 중에는 거듭난 사람이 적어도 얼마는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 받기를 기도한 대목을 보아서, 이 거듭난 사람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의 세례는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그들은 거듭난 사람들이었지만 성령의 세례는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행 8:12-16)
사람이 거듭나면 그는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받는 것만으로는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그는 아직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완전히 다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다 성령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성서에 말씀한 대로 “성령의 은사”, “성령의 세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거듭날 그 당시에 바로 성령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고넬료의 집안에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교회가 흠이 없는 정상적인 교회라면 그 신자들이 거듭나면서 곧 성령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이렇게 정상적이지 못하다. 오늘날의 교회는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 받기를 기도했던 사마리아 신자들의 입장과,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하기 전 제자들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구세주로 말미암아 모든 신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생득권(生得權)이다. 그런데 구원받은 많은 신자들이 이 생득권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령의 세례를 실제로 체험하는 소유물로 삼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잠재적으로는 성령 세례를 받고 있으나 경험적으로는 그러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거듭날 수는 있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는 수도 있다. 성령 세례가 사도행전이나 서신에 기록된 바와 같이 분명히 있는 것이라면, 오늘날 교회에도 거듭나서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성령의 세례는 받지 못한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성령의 세례는 주로 주님을 증거 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 세례는 우리들을 개인적으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뿐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의 주요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할 준비를 하게하고 그 일에 적합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우리를 개인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성령 세례의 주요한 목적은 아니다.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서 그 마음속에 새롭고도 놀라운 기쁨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성령 세례의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일에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심령부흥회, 사경회, 강습회 등에서 놀라운 경험과 큰 기쁨을 얻었으며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주의하여 보면 전이나 별로 다름없이 목사나 교회에 별로 협력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전보다 더 무용(無用)하게 되며 말썽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즉 영혼을 사랑하는 생각과 구원하는 일에 더 힘쓰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서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성령 세례는 받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확언하건대 성령 세례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과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하는 데 필요한 자격이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이 자격을 얻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다.
2) 성령 세례의 결과
성령세례의 결과는 곧 권능(權能)이다.(행 1:8) 그것은 하나님에게 부르심 받은 일을 감당하기 위한 권능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에 합당하며 성령 세례를 받기만 한다면 그의 생활과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함에 있어서 새로운 권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권능이 누구에게나 다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전 12:4-13) 여기서 여러 번 되풀이하여 사용된 “여러 가지”와 “어떤 이에게”는 성령 세례는 하나이지만 결과는 여러 모양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은사는 각기 그 부르심을 받은 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 방언을 말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사상과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는 사상은 전혀 비성서적이요 반성서적이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웨슬레, 찰스 피니, 디엘 무디 등과 같이 전도자의 은사를 받는 것이라는 사상도 비(非)성서적이다. 특히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전도자의 권능을 가지게 된다는 그릇된 사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큰 죄악으로 이끌어가기 쉽다.
①실망이다. - 이는 절망의 지경에 이르게 하는 수도 있다. 어떤 스코틀란드의 고임금(高賃金) 조선(造船)기술자가 성령의 세례에 대한 설교를 듣고 권능 있는 전도자가 되기를 구했다. 그래서 그는 성령 세례를 받고 가산(家産)을 정리하여 미네소타주로 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그를 전도자로 부르시지 않으셨으므로 그는 전도의 길을 열지 못하고 거의 절망 상태에 이르렀다.
어느 주일 아침 그는 미네아폴리스 교회에서 성령 세례에 대한 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사역할 일의 선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그 일을 감당하기에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는 위스콘신주의 미개척지에서 주일학교 선교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열어 주신 사업을 하기 위하여 나아갔을 때에 그가 원하던 바로 그 은사를 받게 되었다.
②외람(猥濫)된 생각이다. - 이는 전도자가 되려면 성령 세례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전도자로서 첫째로 요구되는 것은 전도자로서 사역하라는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할 수 있을만한 성서 지식을 가지는 일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전도자로서의 권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③무관심한 태도이다. - 이는 셋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성령 세례는 목사나 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이니 그들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겠지만, 나는 집에서 자녀나 키우는 것이 할 일이니 성령 세례가 필요 없다는 등의 생각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나 성서는 신자로서 전도사업 하는 데만 적합한 것이 아니다.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양육하고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하여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나 우리가 받을 특별한 은사나 나타내주심을 결정하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즉 우리가 받기 원하는 은사와 사역을 우리 자신이 선택하고 그 선택된 은사와 사역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성령께서 택하신 은사대로 우리를 합당하게 만드시도록 간구하며, 성령께서 택하신 그 일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게 만드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 가장 통탄할 일은 자녀들이 부모의 뒤를 따라서 자라나지 못하고 전혀 불신앙적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 된 자로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권능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권능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곧 성령 세례를 확실히 받는 일이다.
6. 성령 세례의 필요성
1) 어떤 사람에게 성령 세례가 필요한가 - 눅 24:45-49
주님께서는 사역을 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기 전에는 그 일을 착수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 준비는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며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는 것”인데, 이는 곧 성령 세례를 가리키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에 있었던 가장 훌륭한 신학교에서 3년 이상을 공부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친히 본 것,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말씀하신 것들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전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것이 마련되기까지는 한 걸음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절대적인 한 가지는 바로 성령 세례를 받는 그 일이다. 여기에 “유(留)하다”라는 말은 직역(直譯)하면 “앉는다.”는 뜻이다. 즉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앉아 있으라.”는 말씀이다. 이 얼마나 중대한 말씀인가.
성령 세례를 받아 이를 체험하지도 않고 복음전도사업을 착수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오늘날 교회는 일정기간의 연수 후에 그에게 안수하고 성직자로 일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준비되었는가? 우리에게는 목사후보생들을 성직자로 임명하기 전에 “그대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웠음을 확신 하는가” 즉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확신 하는가”를 물어보는 일이 중요하다. 만일 그들이 이를 확신하지 못하다면 “그대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앉아 있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주님께서도 분명히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공적(公的) 사업을 시작함을 용납하지 않으셨다.(행 10:38, 눅 3:21-22, 4:1) 이러할진대 우리가 능력을 입고 그것을 체험기도 전에 주님의 사역에 봉사함을 착수한다는 것이 될 말인가? 사도들에게 요구하셨던 바와 같이, 주님 자신이 취하셨던 태도와 같이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고 그것을 체험하기까지는 주님을 위한 봉사를 감히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들이 신설된 교회에 갈 때에 그들이 언제나 첫째로 살펴본 일은 신자들이 다 성령 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만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신자들이 확실히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였음을 발견하였음에서이다.(행 8:12-17, 19:1-6) 그러므로 봉사를 하려면 중생케 하시는 권능과 심령 속에 내재하시는 존재자로서의 성령을 받을 뿐 아니라 능력을 입히움, 곧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비상한 사태를 극복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충만함을 받았지만 또 다시 충만함을 받았다.(행 2:4, 4:8) 원어로서 “충만하다”의 시상(時狀)을 보면 바로 현재에 충만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아무리 분명하고 놀라운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되풀이 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범하기 쉬운 과오는 과거에 받은 성령 세례의 능력만 가지고 그대로 사역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그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무디 전도자는 늘 말하기를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권능을 잃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과연 사역에서 새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시시(時時)로 얻으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분명히 우리는 기름부음 받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눅 11-13장)
그런데 성령을 새로 충만하게 하는 것과 성령 세례를 새롭게 받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세례라는 말에는 처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성서에는 성령을 새로 충만하게 받는 것을 세례라는 말로 표현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언제나 개인이 처음 맛보는 체험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새로운 성령 세례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용어의 정확한 뜻에 구속(拘束)을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용어의 뜻을 다시 달리 해석하더라도 사역의 새로운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새로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
2)누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행 2:39)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 여기서 약속이라는 말은 구원의 약속을 뜻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그들의 자녀를 구원할 것을 언약하신 특권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해석은 성령의 선물(성령 세례)을 주실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일까? 이에 대해서 성서해석자들은 두 가지의 일반적인 해석법을 사용한다.
①사용된 용어에 의한 방법
성서에 쓰인 단어의 정확한 뜻은 어원학적(語源學的)으로 결정되는 일은 별로 없고 대개는 그 용법에 의하여 결정된다. 행 2:39에 쓰인 약속이라는 말은 행 1:4-5에 의해 성령이 세례를 주실 것을 말한다. 2:33에서도 이는 “약속하신 성령”임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2:39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의 세례를 나타내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②문맥에 의한 방법
여러 가지 해석의 방법이 나올 경우, 그 구절의 전후에 나오는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해석함을 말한다. 성서 말씀은 한 구절도 따로 된 말씀은 없고 다 서로 연결되어 꼭 놓여져야 할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한 가지 뜻만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38절에서 베드로는 전에 자기가 말한 약속이 무엇임을 정확히 말하고 있다. 이 약속은 틀림없이 성령의 선물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용법으로나 문맥상으로나 39절의 약속이라는 말은 성령 세례를 가리킴이 의심할 여지도 없다. 또한 여기서 “너희”, “너희 자녀”라는 말은 유대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와는 아주 상관도 없다. 그런데 그 다음에 “모든 먼 데 사람”,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의 표현을 통해서 성령의 세례는 온 교회사를 통해서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베푸시는 것임이 분명한 말로 표현되어 있다.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유업(遺業)이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그의 유업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이는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가 이 교리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 세례를 받기에 합당하게만 되면 의심 없이 받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가장 중대한 책임이 지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고 따라서 마땅히 주님께로 인도할 영혼들을 인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직자 중에는 잘못된 것을 한 마디도 남에게 전하지 않거니와 구원의 진리도 또한 전혀 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흔히 본다. 오늘날은 이단설을 한 마디도 말하는 일이 없거니와 구원의 진리도 전혀 전하지 않는 교역자들이 어찌 많은지 알 수 없다. 얼마 전에 일간신문에 저명하다는 세 목사의 설교 제목이 예고되었는데, “애란인의 지혜”, “축구 시합”, “나의 장모”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역사할 수 있는 신성한 강단에 서서 그 목사들에 대하여 어찌 근심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진실로 걱정되는 것은 복음을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하고 있는 교역자들이다.(고전 2:4) 가장 건전하고 가장 훌륭하게 정통 설교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 청중으로 하여금 지옥으로 인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직 성령의 권능 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되풀이 하여 성령의 영광스러운 권능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7.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
1)구원을 받아야 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우리가 성령 세례를 은사로 받기 원한다면 일곱 가지의 마땅히 밟아야 할 단계가 있다. 이 일곱 가지 단계는 누구나 다 밟을 수 있는 단순하고 분명한 것이며, 또 이 일곱 가지만 행한다면 누구든지 바로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일곱 가지의 단계는 행 2:38에서 다 찾아낼 수 있다.
1단계 - “회개하여”
회개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변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의 변화 및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이다. 이 구절에서는 마음의 변화가 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던 마음의 태도로부터 예수를 구주와 주로 모셔 들이는 마음으로 변화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를 구주(救主)로 모셔 들여야 한다.
그러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교회출석, 성경통독, 세례, 성찬, 십일조, 구제, 종교생활의 노력 등이 근거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아직도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였고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롬 3:20) 그러나 “나는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있다든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바에 근거를 두고 구원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당신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지신 그 공로에 전혀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구원받은 것이고 성령 세례를 받을 첫 단계를 밟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는 첫 단계는 갈보리 산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업과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죽음을 하셨음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예수를 모셔 들이는 유일한 근거로 삼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성서에 여러 번 반복하여 나타난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곧 의식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소유물인 성령을 그들에게 주심으로써 그들의 신앙에 인(印)을 치셨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거짓교사들의 교훈을 들은 갈라디아 신자들은 모두 의혹에 빠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매우 분개하였다. 그러나 나는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로 갔던 것을 오히려 기뻐한다. 그것은 이 거짓 교사들이 잠시 동안은 갈라디아 신자들을 혼란시켰지만 결국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가장 위대한 교리를 밝혀준(이 점에 있어서는 로마서보다 더 훌륭함) 동기(動機)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제일 먼저 아브라함 자신도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여 갈라디아 신자들의 주의(主意)를 환기시켰다.(갈 3:6, 롬 4:11) 둘째로는 갈라디아 신자들의 경험을 들어서 호소한다.(갈 3:2) 그들은 물론 듣고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았노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2단계 -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
성령 세례를 받는 둘째 단계는 모든 죄와 인연을 끊는 것이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한 영과 거룩하지 못한 죄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떠한 죄를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만일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는데 아직도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까닭은 필연코 죄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작은 죄란 없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 대한 죄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에 대한 죄라 할지라도 모두 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므로 어찌 크고 작은 것이 있으랴. 죄라고 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 대하여 싫다고 말하는 것이므로 모든 죄는 다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한 여자가 성령 세례를 구하며 늦도록 기도만 하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그녀의 정신이상을 염려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도무지 기도의 응답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기도 중에 그녀의 마음에는 머리에 꽂혀 있는 조그마한 장식핀이 떠올랐다. 그녀는 머리핀을 빼서 내던지며 “에이 저리 가거라.”하였다. 그러자 그녀에게 곧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이다. 그녀가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하도록 했던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 곧 죄였던 것이다. 이처럼 성령 세례를 위해 먼저 해야 될 일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에 떠오르는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3단계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우리가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였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간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령 세례는 은밀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앞에 공공연하게 나타나서 자기의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인 것을 간증하는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2. 죄를 고백해야 한다.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지정(指定)하신 방법은 세례이며, 많은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은 물로 세례를 받은 때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 들이는 공적(公的) 고백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도(印度)에 있을 때에 처음으로 세례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곳에는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세례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세례를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손해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캘커타의 한 대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보고 곧 말 한마디 없이 아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인도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세례를 받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정하신 방법대로 공적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비록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또 다시 자기가 죄를 버리고 예수를 구주로 모셔 들인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4단계 - 순종이다(행 5:32)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 그런데 순종이란 하나님께서 명(命)하시는 한 가지,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뿐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의 중심은 의지에 있다. 순종의 본뜻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조건으로 우리의 의지를 맡기는 일이야말로 성령 세례를 받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의 하나이다.
세상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의 가정이나 친구나 모든 즐거움을 다 희생하고 멀리 외국 선교사로 가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자기의 뜻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 세례의 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의지를 완전히 바치지 않는다면, 비록 세상의 끝 날을 알리는 우레 소리가 날 때까지,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하여 기도한다 하더라도 응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만일 하나님께 자기들의 의지를 온전히 맡기면, 어려운 일 또는 전혀 당치않은 일까지도 요구하실까봐 두려워한다. 여자로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자기들의 남편을 데려가시거나 다른 어떠한 무서운 일을 행하실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남자들은 또 남자에게 대한 어떤 어려운 일을 시키실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전히 그에게 순종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그 하나님은 분명히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버지로서 내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들을 종이에 적어서 일과표로 만들어 그에게 주리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광명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무한한 지혜와 은혜와 권능을 모두 베푸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 중에는 우리 자신들이 하기 원하지 않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가장 행복스런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는 당신의 소유물이로소이다. 당신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저를 사셨으매 저는 온전히 당신의 소유물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저를 보내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당신과 함께 하게 하여 주시며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저를 써주소서”라고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순간에도 전에 성령 세례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성령 세례를 받게 하신다. 그리고 전에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면 성령으로 새로 충만하게 하시려고, 우리가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 세례를 받기를 원하면, 약속대로 충만하게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여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성령 세례를 받거나 새로 충만함을 받기 바란다.
8. 성령 세례를 당장에 받는 방법
1) 다섯 째 단계 - 요 7:37-3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이라는 말씀을 주 예수께서 하실 때는 사 44:3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계셨을 것이다. 여기서 “갈한 자에게”라는 말씀이 곧 목말라하는 다섯 째 단계이다. 사람이 참으로 목이 갈할 때는 마치 몸에 있는 모든 숨구멍이 오직 물, 물, 물 하며 부르짖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영적으로 목마를 때에는 그는 오직 성령, 성령, 성령, 오 하나님이시여 성령을 주소서 하고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한 성령 세례를 받지 않아도 그대로 살아 갈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할 때는 그것을 받으려고 갈망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보람 있는 봉사를 하려면 성령 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어떠한 희생을 해서라도 이것을 얻어야 되겠다고 갈망하는 지경에 이를 때에, 이 성령 세례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편하고 안락한 곳을 떠나 희생적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곳으로 가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희생을 당하더라도 성령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가? 만일 이러한 각오가 없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아무리 기도를 드린다 하더라도 보람도 없이 응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수하게 성령 세례를 갈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 8:20-22에서 마술가인 시몬은 자진해서 많은 돈을 바쳤지만, 그것은 불순한 욕망이었으므로 그는 축복 대신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극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고요히 하나님과 대면하여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기 위한 순결한 욕망인지, 그렇지 않으면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한 보다 더 큰 쾌락이나 권능을 얻기 위한 이기적이며 거룩하지 못한 욕망인지 알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물어 볼 것이다.
2)여섯 째 단계 - 천부께 간구함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여섯 째 단계는 천부께 구하는 것이다. 분명한 성령 세례를 받게 하여 달라고 분명히 구하는 것이다. 이 분명한 은사를 받기 위하여 분명히 기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은 사도 시대의 오순절에 강림하셔서 교회에 언제나 임재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미 받고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것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은사는 오순절에 온 교회에 주셨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회에 주셨으므로 교회의 각 개인은 각기 자신을 위하여 이 은사를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자기 것이 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은 “기도”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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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신자마다 이미 성령을 모시고 있는데(롬 8:9) 무엇 때문에 또 성령을 위해 기도하는가? 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시되 그 임재하심을 분명히 의식하지 못할 만큼 우리의 마음의 한 구석에 숨어서 임재하시는 것과(모든 신자의 마음에 거하시듯)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충만을 받음) 우리의 심령을 온전히 성령이 점령하시고 계시는 것과는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우리의 온 심령을 점령하심이 훨씬 더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 4:31, 8:15-16 등의 기사는 분명 오순절 이후의 일이다. 성서를 바로 상고하게 되면 오순절 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신자들이 기도함으로써 성령 세례를 받거나 또는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한 말씀으로 또한 실증(實證)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성서 말씀을 우리의 경험의 수준으로 낮추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의 수준을 성서의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내게 있어서 성령 세례는 분명하고 확실한 경험이다. 성령 세례를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새로 충만케 하여 주신다는 것을, 마치 물을 마시면 해갈이 되고 음식을 먹으면 배부르게 된다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알고 있다. 내가 홀로 기도할 때 또는 다른 신자들과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마치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같이 또는 온 몸에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끼는 것같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위에 내리심을 받은 일이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한 가지 예로, 무디 전도자의 시카고 집회 중에 어느 목사의 제의(提議)로 시카고의 목사들의 철야 기도회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의 집회에는 마귀가 역사하여 그 집회를 망치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이러한 방해 때문에 돌아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특별한 은사를 받기 위하여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특별한 은사를 받기 전에는 헤어지지 않기도 결심하였다. 한 밤중 쯤 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여 주셨다. 우리들은 참으로 갈급한 심정으로 합심하여 새벽 두 시까지 기도하였다.
우리가 모두 무릎을 꿇고 있는 데 홀연히 성령이 강림하셨다. 우리는 모두 말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도한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들리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충만함으로써 흐느껴 우는 소리뿐이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나는 만일 위를 우러러 본다면 그곳에 성령이 임재하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그때에 당한 일이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각기 특별한 권능을 가지고 그날 이른 아침에 각기 다른 곳으로 헤어져 갔다.
내가 1902년부터 여러 해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순회하는 중에도 그날 새벽에 특별한 성령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각처로 나가서 주의 사업에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이 일은 그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권능을 받아 가지고 세상 땅 끝까지 나가서 전도함으로써 주님의 사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 때는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새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3)일곱 째 단계 – 믿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우리가 구하는 성령 세례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주시리라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아무리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도저히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써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하여 열렬히 구하면서도 그 간구함을 성취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으니 곧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 이상의 믿음을 가르쳐 주셨다. 즉 손을 내밀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바로 그것을 잡을 수 있게 말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여러 가지 성서를 상고(詳考)하며 연구하였지만 그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요한 1서를 연구하다가 이 말씀의 뜻을 요한 1서 5장 14절과 15절에서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려 할 때에, 하나님께 구하는 바가 확실히 성서 말씀에 약속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심 없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간구는 하나님께서 정녕코 들어주실 줄 믿고 또한 알 수 있다. 곧 우리가 구한 것을 얻은 줄을 아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감각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처럼 분명히 성서에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을 성령 세례에 관한 문제에 관련시킬 수 있다. 우리가 간구한 바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은 행 2:39과 눅 11“13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요일 5:14-15의 말씀대로 우리는 간구한 바를 얻은 줄로 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우리가 받은 성령 세례는 우리의 생생한 체험이 되는 것이다.
4) 세 가지 문제
①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착수하기 전에 성령 세례를 받은 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신 분명한 말씀에 의하여 아는 것이요, 둘째는 경험에 의하여 아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아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우리가 이것을 경험하거나 못하거나 틀림없이 영감(靈感)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단순한 믿음으로 인하여 성령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②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기 전 열흘을 기다린 것처럼 우리도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제자들이 왜 열흘을 기다려야 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행 2:1-2은 오순절이 이르기까지는 성령께서 그들 위에 임하실 수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님께서는 이 오순절에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교회를 설립하시기 위하여 예정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순절 이후이다. 무슨 기다림이 필요하겠는가?
고넬료의 가정에서도 기다림은 필요 없었다. 즉석에서 그들은 믿었으며(행 10:43) 그 자리에 성령께서 그들의 머리 위에 내리셨다. 사울에게도 기다림은 없었다.(행 9:17) 그런데 에베소의 신자들은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이 이미 임하신 것을 모른 것뿐이었다. 바울이 그것을 알려주고 그래서 그들은 모임이 끝나기 전에 즉석에서 모두 성령 세례를 받았다. 성령 세례를 혹 기다려야 할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 까닭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③성령의 은사에는 표시(標示)가 있는가? 아무런 표시도 없다면 성령 세례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물론 표시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의해야 할 두 가지 일이 있다.
첫째로 표시의 특성이다. 나는 사도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경험을 하고서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잘한 것이다. 사도들이 그 사실을 성서에 기록했다면 우리들은 모두 그러한 경험을 하기를 바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의 표시가 성서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그것은 곧 주님의 사업을 봉사함에 있어서 새로운 권능이 생기는 것이다.
오순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방언은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자랑삼아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방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 믿게 되었다. 사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성령의 은사를 받은 표시는 억제할 수 없는 권능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선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성령의 은사를 받은 근본적 표시가 될 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업을 함에 있어서 새로운 권능을 얻는 것이다.
둘째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표시가 나타나는 시기(時期)이다.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순서대로 말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언약이요 둘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는 성서 말씀에 대한 믿음이요 셋째는 경험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 순서를 말씀, 경험, 믿음으로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참 신앙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었다. 아브라함은 그때에 별 기쁨도 없었다. 그러나 아기가 출생하였을 때에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솔직하게 믿었기 때문에 자기 눈으로 이삭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이유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어떠한 감각이나 경험을 얻기를 바란다면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하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목사가 된 후에도 확실히 성령 세례를 받기까지는 몇 해 동안 설교를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서재에서 성령 세례를 받게 하여 달라고 며칠 동안 계속 기도하였다. 그러자 마귀가 나에게 주일은 닥쳐오는데 네가 그때까지도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려느냐고 시험하였다. 나는 “설교할 수 없으니 목사 일을 그만 두겠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도 절대로 설교단에 서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주일이 닥쳐오기 전에 나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령 세례를 받게 되면 어떠한 특별한 일이 일어나리라고 하였으나 그러한 마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에 나는 일찍이 가져보지 못했던 가장 고요한 시간을 가졌었다. 내가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그처럼 고요히 앉을 수 있게 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까닭이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 이제는 가서 설교를 하라” 내가 만일 그때에 성서를 잘 알고 있었더라면 요한일서 5장 14절과 15절 말씀으로 나에게 일러 주셨으련만, 나의 무식함을 긍휼히 여기셔서 나의 영혼에 직접 말씀하여 주셨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였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하나의 새로운 목사로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받음을 체험한 지 얼마 후에 하루는 내가 성령의 은사를 받은 바로 그 방 의자에서 갑자기 마루 위로 떨어졌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라고 하였던 것이다. 나의 입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치 무슨 능력에 의하여 입이 놀려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솔직히 믿음으로써 성령을 모셔 들였을 때에 이미 성령 세례는 받았던 것이다. 여러분도 이 자리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1894년 7월 8일, 메사츄세츠주 노드필드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설교하는 시간에 무디 전도자와 함께 산에서 성령 세례를 구하는 모임을 전했다. 그리고 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각자 자기 있는 곳에서 성령의 은사를 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했다. 그날 오후 세시에 우리 일동은 456명은 무디 전도자 모친의 집 앞에 모였었다.
산 중턱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무디 전도자는 각자가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75명가량의 사람들이 연달아 일어나서 말하였는데, 그들은 대체로 말하기를 자기들은 세시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줄로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간증이 끝나고 무디 전도자는 “우리에게라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시지 않을 리가 만무합니다.”하고 합심하여 기도하기를 청했다.
산중턱으로 올라갈 때는 구름이 산 위에 덮이었는데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구름이 흩어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구름이 노드필드 상공에 열흘 동안 덮여있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의 성령이 구름을 뚫고 우리에게 임하였던 것이다.
여러분이여! 내가 생각하기는 지금 우리가 모여 있는 이 건물 위에도 여러 날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의 구름이 덮여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자리에 왜 성령의 비가 쏟아져 내리지 않겠는가?
이상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거듭남 부분과 성령님을 기다림과 즉시 기도해서 받음은 저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기다림을 제가 강조한 것은 모든 성령을 받지 못한 분들의 기다림을 생각한 것이고 또 이는 예수님의 명령이었으며, 즉시를 강조하시는 토레이 신부님의 주장도 속히 성령을 받아야 하는 모든 분들이 있기에 또 수긍을 합니다. 거듭남에 대해선 제가 아직도 부족한 이해가 있고 저는 성령세례를 통해서 거듭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기에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 저도 더 배워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 있고 베드로사도의 말씀으로 거듭남이 있음을 아나 아직 깊이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 제가 이곳에 오시는 분들의 온전함을 위해서 늘 간절하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고 같이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복음을 전함에 있어 담대하도록 기도를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과 하시는 일위에 충만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