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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다음에 과제 지침 보면서 생각나는대로 막 개인적인 신세한탄 같은 것도 생각나면 그냥 쓰고 그랬는데
쓰기 시작할때는 내용이 없더라도 재밌을 줄 알았는데 다 쓰고보니 뭘 쓴건지도 잘 모르겠고 길기만 하고 노잼이네요.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보고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봤다. 이제 과제를 해야 하는데... A4 네장이라니? 뭘 써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과제 지침 중 “수다 떨듯이, 수필 쓰듯이 자유롭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작성할 것”에 충실하게 과제를 해보기로 했다. 이 과제는 대뇌가 아니라 척수로 쓴다!
일단 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봤냐면 예전에 천문학 시간에 일부분을 봤었는데, 언제 한번 다시 쭉 봐야지 해놓고 아직 안 봐서 이 김에 겸사겸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집 컴퓨터에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다운로드해서 받아놨었지만, 과제를 하려니까 뭔가 나는 힙하게 카페에 나가서 맥북으로 과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맥북을 들고 까페로 갔다.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두는 쓴걸로 주문.
그렇게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자리를 잡고 홍열일닷컴에 들어가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보고 있었다. 오잉 그런데 이게 웬일. 11분쯤부터 플레이가 안 되는 것이었다. 왜 이러는 것인지 와이파이도 다시 잡아보고 브라우저도 바꿔보고 새로고침도 해보고 했지만 안됨 ㅇㅇ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유투브로 들어갔는데 한글 자막이 없다. 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21세기 인간이니 자동번역자막을 킨다! 하고 켜봤는데... 음... 아직은 자막은 3.5차 산업혁명정도였던 것 같다. 그냥 예전에 받았던 위디스크에서 새로 받아야 겠다 하고 들어갔는데 맥이라 다운이 안 됨... 부트캠프를 쓰면 맥북의 간지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것 같아 윈도우 없음... 그래서 자막을 따로 받은 다음, 유투브 영상을 받아서, 같이 붙여서 보려는데 싱크가 안 맞네 ㅎㅎ 자막 싱크를 맞추려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생고생 끝에 결국 내린 결론은 그냥 유투브에서 영어자막으로 보는 것이었다. 만약 홍영일의 교육공학 수업을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예측 못한 상황에 심한 좌절을 겪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아 ^^ 이러한 시행착오는 모두 즐거운 영화시청을 위한 과정이겠지. 지금 생각해보니 한글자막보다는 영어자막이 더 힙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까페에서 진한 원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맥북으로 영화를 영어자막을 틀고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이 과제를 하고자 영화를 보기 위해 했던 고생을 열심히 쓴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그렇게 고생고생 했는데 억울하니까 과제에라도 써보고 싶어서 썼다 ㅎㅎ 아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과제에서 명대사를 쓸 때 한글이 아니라 영어로 쓸지도.
그 다음에는 음... 과제지침을 보면... 한계를 초월하는 주인공의 활약? 이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내용을 조금 소개해봐야겠다. 영화제목이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이다 보니 주인공 역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이다. 아인슈타인이야 뭐 아인슈타인 우유도 있고 위인전도 있고 유명하니까 다들 알겠지만 에딩턴은 이름이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딩턴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기 앞서 과학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이고, 물리학은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한자 뜻만 풀어쓰면 물질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에 어떠한 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기술하는 학문이다. 물리학자를 거칠게 둘로 나눈다면 실험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자로 나눌 수 있다. 물리학은 자연현상을 기술할 때 대부분 수학을 언어로 사용하게 되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실험물리학자는 탐구의 주된 수단이 실험이고, 이론물리학자는 수식과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자세한 얘기는 내가 학부생 나부랭이라서 잘 모름. 아무튼 아인슈타인은 둘 중에서 이론물리학자에 속한다. 물리학은 자연과학이므로 현실세계에 관심이 있고, 아무리 수식적으로 아름답더라도 현실에서 관찰한 내용과 부합하지 않으면 이론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음 너무 어렵게 썼나 ㅎㅎ 쉽게 얘기하면, 아마 ‘가설설정하고 검증하고 하는 식으로 과학연구를 한다’ 뭐 이런 식의 설명을 다들 중학교 과학시간 때나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가설을 설정하고 에딩턴이 검증을 해줬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마 에딩턴이 없었다면 상대성 이론은 상대성 가설이 됐을지도...는 좀 오바고 아마 인정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좀 더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아인슈타인이 가설을 만들고 에딩턴이 검증을 해주는 내용인데 이 단순한 내용이 드라마가 되는 이유는 그 가설이란게 그 이름도 유명해라 상대성이론이고, 아인슈타인은 독일에 살고 에딩턴은 영국에 살았는데 이 당시 두 나라는 전쟁중이었고 서로 적국이었다는 것이다. 사이가 안 좋았던 두 나라에서 진리를 향한 사랑으로 국적을 초월하여 혁명적인 이론을 증명해낸다, 감도옹! 뭐 이런 이야기이다.
한계를 초월하는 주인공의 활약이라면... 음... 시공간이 절대적이라는 기존의 뉴턴의 관점을 뒤엎는 시공간이 상대적이라는 혁명적인 관점을 아인슈타인이 제시했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상대성 이론의 검증과 관련된 편지를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이 국경을 넘어 주고받았다, 에딩턴이 독일에 적대적인 올리버 로지경한테 일반 상대론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관측원정대에 대한 자금을 승인받았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어 불륜을 통해 사촌 엘자와의 사랑을 이룩해냈다... 정도려나?
다음으로는 등장인물들의 명대사... 음... 사실 이 수업에서 언급했던 얘기랑 들어맞는 대사들은 좀 있었다. 30분쯤에 상대론에 대한 영국 학자들이 평가할 때 “참고문헌은?”하고 물어보는 것이 있는데, 잘은 모르지만 1905년 발표된 특수상대성 이론 논문에 참고문헌이 없었나보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혁명적인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참고문헌 같은 것을 제시하기가 힘들다와 비슷한 맥락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교수님이 이 부분을 인상 깊게 보셨을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던 에딩턴이 본인이 사랑하던 이가 전쟁에서 죽자 “죽음에는 이유가 없다”와 같은 말을 했던 것도 수업과 연관이 좀 있는 대사였던 것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던 대사는 에딩턴이 올리버 로지경한테 자금 승인을 받으려고 설득할 때 “This is the moment”라는 대사를 한다. 그러면서 지금 이 관측을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내가 학문을 해왔다, 뭐 이런 식의 말을 하는데 이 말이 나한테 감동이 되었다. 왜 여기서 감동이 있었는지 내 개인적인 얘기를 써보면
현재 나는 대학원 입시 재수를 하고 있다. 1학기 때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시험을 쳤는데, 떨어졌다. 나는 10학번이고, 군대를 아직 다녀오지 않았고, 학부생이다. 나는 나름 대학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왔다. 밴드활동, 춤 동아리 활동, 교육봉사동아리 활동, 복수전공, 교직이수, 휴학, 등.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자기를 상품화해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들도 기업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흔히 이러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지금까지 뭐했지?” “내가 잘하는 것은 뭘까?” “이렇다하게 딱 이걸 잘한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 좀 저렴한 표현을 쓰면 나를 상품화할 때 셀링 포인트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성 이론과 관련된 주제를 접하면 나는 더더욱 이러한 느낌을 받는다. “난 대체 뭐했지?” “난 대체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하는 느낌. 내 학부 주전공은 물리학이다. 하지만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물리를 모른다. 나는 입학할 때 시간에 관심이 있었고, 면접에서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고 싶다, 시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고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음미할 수 있을 때 듣고 싶다”는 이유로 상대성이론 수강을 미루다가, 막상 졸업이 닥치자 입시준비로 바빠서 상대론 수업조차 듣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됐다. 이 생각할 할 때마다 “난 대체 뭐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듦.
나는 원래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과 흥미가 있었다. 현실의 문제들, 가령 고등학교 때는 내신을 따는 것, 이런 것들은 진부하고 시시했고 재미가 없었다.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가서 하라그러면 할 자신없다...ㅇㅇ 하지만 뻔하고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이 당시는 ‘시간이 무엇인가’ ‘태초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던 무언가 였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와서 처음으로 가장 치열하게 씨름했던 주제는 교육문제였다. 내가 대학에 와서 ‘이것 하나 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멘토링 사이트에서 칼럼이라는 형태로 글을 썼던 것이다. 온라인 멘토링을 하면서 관찰할 수 있었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입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썼다. 사실 이건 내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재능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철학, 수학이었고 ‘잠시 미뤄두고 이것부터’라는 느낌으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썼던 글이었다.
나 자신에게 철없이 보일까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나라 교육의 혁명을 꿈꿨던 것 같다. 글을 쓰는 목적은 출판이었다.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던 적도 있었지만, 아직 계획했던 글을 절반정도 썼을 때였고, 제의를 해왔던 출판사가 별로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책들을 내는 곳인 것 같아 거절했다. 하지만 막상 글을 계획했던 대로 완성했을 때는 나는 정신적으로 탈진되어 병들어 있었고, 글 내용에 대한 확신도 떨어져 출판도 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맨처음 제의 들어왔을 때 거절한게 후회되기도 함 ㅇㅇ 괜히 비싼척하다가
그리고 그 사이에 시간은 흘러 학년은 올라갔고, 나는 그간 전공공부를 미뤄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사실 이번에 수학대학원을 떨어진 것도 기본부터 부실한 상황에서 벼락치기를 하다가 였다. 전공공부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조급하고, 쫓기는 기분이다. 졸업을 앞둔 지금 나는 관심이 있었던 물리, 철학, 수학 중에 물리는 모르고 철학은 책하나 제대로 읽은 것이 없고, 수학은 그나마 대학원입시 때문에 조금 공부하는 중이다. ‘내가 정말 관심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나는 정말 무지하구나. 내가 정말 궁금한것들에 대해 게으르게 살았구나.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보면 교육문제와 씨름했기 때문인데, 정작 교육문제와 씨름하며 했던 노력들은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딱히 뭐 가시적인 전문성을 갖춘 것 도 아니고, 그냥 이런 주제로 얘기가 나왔을 때 입을 좀 잘 털 수 있다 정도.
원래는 수학 공부를 하면 재미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감정과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더니 지금은 무감각하다. 죽어있는 기분이다. 아마 무의식중에는 위에 써놓은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겠지만, 평소에는 이렇게 언어화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냥 구체화되지 않은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전에는 수학을 공부하며 자존심을 걸게 되고 승부욕이 생기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냥 뭐 아무렴 어때.. 이런 느낌이다.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삶의 경로도 달라지고, 점점 멀어지며 그 감정이 옅어지는 듯한 느낌을, ‘시간이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를 만났을 때 받게 된다. 내가 정말 인생을 걸고 풀고 싶었던 질문이었는데... 다만 다른게 있다면 이러한 질문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불러내서 관계의 끝맺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 주제로 졸업논문을 작성해보려고 생각 중.
이런 상황이다 보니 “This is the moment”라는 말에서 감동이 있었다. 사실 어찌보면 뻔한 대사이다. 하지만 우리가 감동을 받는 말이 진부한 말인 경우가 많다. 다만 그것에 감동을 느끼게끔 내 마음의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는 것이지. 자신의 지적인 호기심과 질문을 해소하고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올리버 로지경에게 호소하고, ‘이것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에딩턴의 모습이 죽어있는 내 감각을 자극했다. 뭐 그렇다고 영화를 보고나서 ‘마음속에 꺼져있는 불타는 열정이 폭발한다, 화르르활활!’ 이런 건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이 대목에서 가장 감정적 자극이 있었다.
그리고 요새 혼자 코인노래방을 가끔 가는데 가면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이따금씩 부르는데 지금 이 순간이 영어로 this is the moment여서 더 익숙하고 뭔가 대사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음 쓰다보니 무슨 이런 신세한탄 같은걸 주절주절 써놯지 ㅎㅎㅎ 몰라 암튼 난 이거 보면서 이런류의 생각들을 했나봄 ㅎㅎ 그다음 음.. 합리적 캐릭터 vs 직관적 캐릭터. 사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는 느낌도 든다. 과연 다른 조연들을 합리적 캐릭터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주연들은 마냥 직관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과 관련해서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켰지만, 그 자신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대전제가 있다. 그것은 기계론적인 사고관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동일 조건에서는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완벽한 측정을 하고 이론을 정교화하면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최소한 물리현상에 있어서는.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말년까지 양자역학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유명한 말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물리학을 현대 물리학과 고전 물리학으로 나눈다면, 상대성 이론은 고전 물리학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조연으로 나왔던 사람들도, 본인들이 학문을 추구하면서 각자 사고체계의 ‘공리’를 무너뜨리는 일은 있지 않았을까. 그냥 이들이 ‘시공간의 절대성’이라는 마음속 ‘공리’에 대해서는 무너뜨리는데 있어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좀 더 설득력있는 근거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사람이 자기 사고체계의 ‘공리’ 끊임없는 의심을 하면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런 비슷한 의심을 열심히 하다가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한 수학자들도 역사적으로 꽤 있음...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면 사고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선택적으로 의심을 한다. 영화에 나온 조연들이 합리모델에 갇힌 사람이라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의심을 조금 늦게 했을 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합리적이다, 직관적이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힘들 것 같다. 아인슈타인이 분명 대단한 사람임은 맞지만, 동시대 다른 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불세출의 천재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상대성이론이 등장할만한 학문적인 흐름이 분명 존재했고, 상대성 이론의 등장은 필연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인슈타인이 없었더라도 다른 누군가 만들어냈을 것이다, 조금 더 늦어졌을 수는 있겠지만. 물론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해냈을 일이라도, 그것을 실제로 해냈다는 점에서 아인슈타인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대체불가 넘사벽 짱짱맨 까지는 모르겠다. 학문발전의 흐름에서 패러다임이 변할 타이밍이 있는데, 그 타이밍에 마지막 돌 하나를 쌓은 사람이 역사적 천재로 기록되는 것이지, 그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몇 십 명의 몫을 하는 불세출의 천재이다 라는 발상은 영웅과 위인을 만들기 좋아하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환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 속에서 보인 모습만으로 주인공의 직관적인 활약과 조연의 합리모델에 갇힌 모습을 써보면 다음과 같다. 뉴턴 물리학은 지금까지도 물리학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지만, 이 당시에는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앞서 물리학이 현상을 수식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했는데, 대개 현상이란 시간을 따라 변화를 가지며 일어난다. 가령 사과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현상이 있다면, 시간에 따라 사과의 위치가 변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고전) 역학은, 물체가 시간에 따라 어떤 위치에 있는지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른 위치를 얘기하려면 그 전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뉴턴은 역학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뉴턴 3법칙은 모두 역학에 관련된 법칙이다), 뉴턴은 시공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봤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절대적인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절대적 시공간은 우리의 일상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직관에는 꽤나 와닿는 개념이다. 가령 내가 공항에서 내 손목시계를 공항에 있는 시계랑 똑같이 맞추고, 비행기를 타고 지구한바퀴를 돌고 오더라도 나랑 공항에 있는 시계는 여전히 똑같이 맞춰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지구 한바퀴는 도는데 18시간이 걸렸다면, 내 손목시계도 18시간동안 시간이 가고, 공항의 시계도 18시간동안 시간이 갔을테니까.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상대성 이론에서는 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지구를 한바퀴 돌고 온 내 손목시계가 18시간이 흘렀다면, 공항의 시계는 18시간보다 더 흐른 것으로 나타난다. 아인슈타인은 각자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냐, 가속되고 있냐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측정된다고 했다. 예컨대 공항보다 비행기가 더 많은 가속운동을 했고, 그래서 비행기에 타고 여행을 한 내 손목시계는 공항의 시계보다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일견 해괴망측한 소리 같은데 이러한 시공간 개념을 도입해야 더 잘 설명되는 것이 있었기에 이러한 주장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해괴망측하게 들리는 것은 그 당시 과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받은 노벨상도 상대성이론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 에딩턴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논문을 읽어보니 말이 되는 것 같고, 관심을 가지다가 수성의 세차운동에 대해 질문하는 편지를 보내게 된다. 뉴턴역학으로 행성의 운동의 많은 부분이 설명되었다. 하지만 수성만 뉴턴 역학을 토대로 한 계산이 실제 관측 값과 무시하기 힘든 오차를 보였다. 그런데 이것이 일반상대론을 토대로 한 계산과는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건 지금도 일반상대론을 지지하는 근거로서 언급된다.
요약하자면 이 시대에 잘 설명되지 않는 물리학 난제나 현상들이 있었는데, 다른 많은 과학자들은 뉴턴의 절대시공간을 버리지 않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걸 땜질하느라 뻘뻘댈 때, 아인슈타인은 뉴턴물리학의 중요한 기본 전제였던 절대시공간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서 설명을 해냈다. 다른 애들은 뉴턴물리학을 대전제로 딱 픽스해서 박아놓고 오차와 오류가 생기자 피드백하면서 이런저런 이상한 잡다한걸 추가하며 어떻게든 전제를 보호하려고 똥고생을 했고, 아인슈타인은 과감히 대전제를 갈아치웠다. 교육의 상황으로 비유를 하면 뉴턴물리학을 고수하는건 맨 처음에 “모든 학생들에게 중등수학을 완벽하게 가르친다” 같은 목적을 픽스하고, 수업을 이탈하거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생하거나, 수학에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이 안 좋아지는 학생들이 생겨도 그것을 오류로 인식해 수업방법을 바꿔보고 회유하고 체벌하고, 동기부여랍시고 꿈 주입하고 이런저런 고생을 하는 합리주의자의 모습과 비슷하다면, 아인슈타인은 “그래 애초에 학생들에게 중등수학을 완벽하게 가르친다는 발상이 잘못된거야”라고 생각하자 지난 오류라고 생각해왔던 학생들의 모습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듯이 시공간이 절대적이라는 대전제를 갈아치우니까 괴현상이라고 생각됐던것들이 말이 되고 자연스러운 뭐 그런거다. 에딩턴은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설명에 설득되어 상대성 이론의 근거가 될 만한 증거들을 수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에딩턴도 짱짱맨
뭐 대략 감상문을 써보면 이 정도인 듯하다. 맨 처음에는 그냥 머리를 비우고 막 쓰고 그러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다 쓰고 보니 좀 노잼 글이 완성된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뭘 더 쓰긴 싫으니까 그냥 내야지.
2010-11081 물리천문학부 서재욱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을 보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