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유스티노프(1921-2004)는 “쿼바디스”에서 네로 역을 연기하여 유명해졌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출연한 영화 중에서 내가 처음 본 작품은 “털보대소동”이었다. B급 코미디로서, 삼백년 전 해적 선장이 나타나는데, 유령은 아니며 주인공인 체육교사에게만 보인다. 체육대회에 등장하여 그 팀을 도와주니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린다. 유쾌하게 본 필름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가공의 탐정 엘큐얼 포아포 역할도 여러 영화에서 맡았다. 작가가 구상하던 벨기에의 민완탐정을 외양으로 가장 닮은 데이빗 서첻, 그리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출연한 앨버트 피니도 있지만, 극중에서 그럴 듯하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역할에는 피터 유스티노프가 제일 잘 어울린다. “나일 살인사건”, “백주의 악마”, “13인의 만찬” 등이 있고, 1988년 작품으로 “사해살인사건”에도 나오는데, 쿰란 동굴 옆 발굴현장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 이 영화에는 캐리 피셔도 나오는데, “스타워즈”가 나온지 10년 지난 때이니 꽤 나이가 든 역할로 출연한다. 2003년작 “루터”에는 유스티노프가 현공 프리드리히 역할로 몇 장면 출연하였다.
연기자 말고도 연출자, 극작가로도 능력을 보여주었고, 말년에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갈채를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최고의 작곡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모차르트라고 답하니, 선생님은 틀렸다면서 다음 문장을 100번 써 오라는 벌칙을 숙제로 내주었다고 한다: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는 베토벤이다.” 영국 국적을 가진 세계의 문화인이 살아있다면, 오늘이 99번째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