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180]용재성현(成俔)7절-임수행화(臨水杏花)
臨水杏花(임수행화) 물가에 핀 살구꽃 虛白堂,용재(慵齋) 성현(成俔)
瓠犀齒白捲脣紅 草麝淸香散曉風 호서치백권순홍 초사청향산효풍 似怕嬌顔容易老 淡施脂粉照靑銅 사파교안용이로 담시지분조청동
미인의 흰 이에 걷어 올린 붉은 입술 난초 사향 향기가 사방에 흩어지는데 행여나 예쁜 얼굴이 쉽게 늙을까 두려워서 연지분 엷게 바르고 거울에 비쳐보네
행여나 예쁜 얼굴이 쉽게 늙을까 두려워서인지 (臨水杏花)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이다.
시인은 물가에 있는 살구꽃이 그렇게 귀엽고 예뻤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인의 고운 자태로 치환시켰다. 미인의 이처럼 흰 치아에, 미장원에 가서 위로 걷어 올린 붉은 입술 같다고 하면서 난초와 사향의 맑은 향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고 했다. 외롭게 피어있는 살구꽃의 고운 자태를 아름다움의 극치로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꾸며내고 있다.
【한자와 어구】
慵=게으를 용, 俔= 엿볼 현 . 비유할 견,염탐할 현. 동자(同字)悓. 瓠犀:호서= 박의 속과 씨, 미인의 얼굴로 봄. 瓠=표주박 호. 우수수 떨어질 확. 표주박, 병, 단지, 흘러 떨어지는 모양, 또는 얕고 평평하여 물건을 담지 못하는 모양 犀=무소 서,무소뿔, 굳다. 齒白:치백= 흰 치아. 捲:권= 걷어 올리다. 脣紅:순홍= 붉은 입술. 입술 순. 草麝:초사= 난초와 사향. 사향노루 사. 淸香:청향= 맑은 향기. 散:산= 흩어지다. 曉風:효풍= 새벽바람에. 似怕:사파= 두려워하듯이. 怕= 嬌顔容:교안용= 예쁜 얼굴. 嬌=아리따울 교. 易老이로=: 쉽게 늙을까. 淡施:담시= 엷게 바르다. 脂粉:지분= 연지분. 기름 지, 손가락 지. 照:조= 비추다. 靑銅:청동= 청동이나 여기선 거울로 봄.
원문-속동문선 제9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임수 행화(臨水杏花) 성현(成俔)
瓠犀齒白捲唇紅。蘭麝淸香散曉風。 似怕嬌顔容易老。淡施脂粉照靑銅。 박씨 같이 이는 흰데 걷어올린 입술은 붉었고나 / 瓠犀齒白捲唇紅 난사의 맑은 향기는 새벽 바람에 픙긴다 / 蘭麝淸香散曉風 아리따운 얼굴이 쉽게 늙을까 두려워 하는 것처럼 / 似怕嬌顔容易老 연지와 분을 옅게 바르고 거울에 비쳐 본다 / 淡施脂粉照靑銅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9 서거정으로 대표되는 조선 초기의 관각문학을 계승하면서 민간의 풍속을 읊거나 농민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노래하는 등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다. 명문의 후예로 비교적 평탄한 벼슬생활을 했으나 정치의 실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62세 때 홍문관과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에 올라 이 시기의 문풍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글씨를 잘 썼고 음률에도 밝아 유자광 등과 함께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다양한데, 사회현실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바탕으로 관리나 승려 등의 부패와 횡포를 꼬집는가 하면 그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의 실상을 묘사했다. 반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의 즐거움과 한적한 심경을 그린 도가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조선초기의 정치·사회·문화·제도·풍속을 다룬 〈용재총화〉를 남겼다. 성현의 글씨 성현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성현 〈용재총화〉, 성현 지음, 규장각 소장
서거정으로 대표되는 조선 초기의 관각문학을 계승하면서 민간의 풍속을 읊거나 농민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노래하는 등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다. 본관은 창녕. 자는 경숙, 호는 허백당·용재·부휴자·국오.
여말선초의 정치사·문화사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의 후예로 비교적 평탄한 벼슬생활을 했으나 공신의 책봉에서는 빠지는 등 정치의 실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62세 때는 홍문관과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에 올라 이 시기의 문풍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의 시론의 특징은 이규보와 서거정의 기론을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다양한 미의식의 구현을 주장한 점이다. 또한 사회적 효용을 중시하는 각도에서 정치적 득실에 대한 풍간의 작용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그의 애민시 계열 작품의 이론적 토대를 이루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다양하다. 형식적 측면에 있어서 고시·율시·악부·사부 등의 양식을 고루 창작했다. 주제면에서도 사회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관리나 승려 등의 부패와 횡포를 비난하고,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의 실상을 묘사했다. 우리나라의 풍속을 소재로 한 국속시 계열의 작품을 썼으며, 명나라 여행중에 쓴 시를 모아 엮은 〈관광록 觀光錄〉은 그의 이름을 중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도가적 초월을 지향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자연에서의 즐거움과 한적한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형인 성임과 성간 역시 시를 잘 썼는데, 그 두 사람은 성현의 문학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장, 시, 그림, 인물, 역사적 사건 등을 다룬 잡록 형식의 글 모음집인 〈용재총화 慵齋叢話〉를 저술했으며, 장악원의 의궤와 악보를 정리한 〈악학궤범 樂學軌範〉을 유자광 등과 함께 편찬했다. 문집으로 〈허백당집 虛白堂集〉이 전한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당했으나, 뒤에 신원되었고 청백리로 뽑혔다. 시호는 문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