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김제 벽골제는 한국 최고(最古)·최대의 저수지 둑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쌓았고, 790년(원성왕 6)에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고려·조선 시대에 수리하였다.
제방은 포교리(浦橋里)를 기점으로 월승리(月昇里)까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어 약 3km의 거리에 남아 있는데, 수문지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주(石柱)가 3군데에 1쌍씩 있다. 그리고 1925년 간선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공사에서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으며, 제방은 절단되어 양분(兩分)된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하였다.
1975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제방 높이는 북단(北端)이 4.3m, 남단(南端)이 3.3m이고, 수문 구조는 높이 5.5m의 2개 석주를 4.2m 간격으로 세웠으며, 서로 마주보는 안쪽 면에 너비 20cm, 깊이 12cm 요구(凹溝)를 만들고 목제(木製) 둑판을 삽입하여 수량을 조절하였다. 석축(石築)은 약 6m이며 가장 낮은 곳이 1.1m이다.
벽골제쌍룡(碧骨堤雙龍)놀이
정의.유래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용골마을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 자신을 희생하여 벽골제(碧骨堤)를 지키고자 했던 단야(丹若)낭자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놀이로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행해지고 있다. 현재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래] 한국 최대(最大)이고 최고(最古)의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있는 김제는 우리나라 도작문화(稻作文化)의 발생지로 농경문화를 꽃 피워온 곳이다.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용골마을에서 소박하게 전승되고 있던 벽골제쌍룡놀이는 김제문화원과 김제군이 1960년 음력 9월 9일 ‘김제군민의 날’에 개최한 향토축제에서 현지 마을의 전설과 놀이를 바탕으로 지금과 같이 재현되었다. 이후 김제의 대표적인 놀이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현재는 ‘김제지평선축제’의 주요 행사로 전승되고 있다. 벽골제에 관한 전설을 놀이로 형상화한 쌍룡(雙龍)놀이가 김제지방의 특색 있는 민속놀이로 부각되어, 1975년 9월 제1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민속놀이 부분 문공부장관상(지금의 문화관광부장관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12월에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첫댓글 碧骨堤雙龍、、良い作品よく鑑賞したし今日も良い時間あってくださ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귀한 작품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碧骨堤雙龍....역사적인 자료,훌륭한 作品,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벽골제쌍룡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작품 잘 보고갑니다.수고많이하셨습니다.
벽골제 쌍룡놀이 말은 들었는데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함니다
올해는 룡의해입니다 김제 지평선축제의 흙룡과 백룡의 싸움놀이는 정말 장관입니다 지평선축제에 한번 가보시는것도 좋을것입니다
벽골재 쌍룡놀이 감상 넘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