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물 여행
정 규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이면 산과 들에 나물이 제 자랑하듯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내는 사람들과 어울려 나물을 뜯으러 나선다. 아주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야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가는 아내가 걱정이 돼서,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말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나물 뜯는 일이 너무 좋은지 괜찮다고 하면서 번번이 길을 나서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시간이 되는 대로 주말을 이용하여 따라가 보았다. 아내에게 취나물, 곰취, 참나물 등의 생김새를 물어보면서 나물을 뜯어 보니 재미가 솔찮다. 어느새 봄이 기다려지고 따스한 바람이 얼굴에 기분 좋게 부딪히면 산에 가고파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나물은 집단으로 자생하는 특성이 있어 고사리밭, 취나물밭, 곰취밭, 두릅밭, 얼레지밭, 도라지밭, 더덕밭 등이 산야에 존재한다. 그러기에 매년 뜯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 가면 어떤 나물을 뜯을 수 있는지를 훤히 알고 있다.
겨우내 땅속에서 따스한 바람 불기를 숨죽이며 기다리던 얼레지가 자주색의 꽃과 함께 산허리에 군락을 이루며 제일 먼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난 여인’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얼레지는 두 손 벌려 꽃을 받들어 있는 잎과 다소곳이 고개 숙인 듯 활짝 웃는 꽃이, 지나는 남정네를 유혹하듯 한다. 봄꽃 중에서는 어느 꽃 못지않은 화려함을 자랑하기에, 한 번 먹으려고 뜯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는 꽃나물이다. 옛날에 강원도 지역에서는, 미역이 귀할 때 산모들이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먹기도 하였다고 하니, 이래저래 고맙기가 그지없는 나물이다.
나의 나물 뜯는 여행은 얼레지로부터 시작되어 봄나물의 대표 격인 취나물로 이어진다. 취나물은 세 번 정도 채취가 가능한데, 그래도 처음 채취할 때가 부드럽고 맛도 좋으며 향이 진한 것 같다. 취나물은 어디를 가나 약방에 감초 격으로 눈에 띄고 큼직해서, 금방 푸짐한 보따리를 안겨 준다.
나물 중에서 취나물만큼 나의 관심과 기쁨을 안겨 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곰취는 취나물과 비슷한 시기에 뜯을 수 있는데, 자라는 환경 조건 때문인지 취나물 보다는 보기가 쉽지 않지만, 군락을 알고 있는 우리는 때가 되면 달려가 한 보따리씩 안고 온다. 곰취잎은 테두리가 톱니바퀴처럼 되어 있어서 다른 나물과 쉽게 구분되어 뜯기가 쉽다. 나물을 뜯으면서 만나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열심히 나물을 뜯다 보면 코끝을 간질이는 더덕 냄새가 풍겨 오기도 하는데 냄새를 따라가 굵직한 야생 더덕을 캤을 때의 짜릿함이다.
나에게 고사리는 정말 알 수 없는 야릇한 존재다. 나지막한 야산, 자칭 고사리 밭이라는 데에 갔는데도 눈에 쉽게 띄질 않는다. 온 산을 휘젓고 다니며 욕심을 내보지만, 여유롭게 봄기운 즐기며 사부작사부작 뜯는 아내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내 눈에는 고사리가 안 보이지?” 아내 왈 “사람이 겸손해야지, 그렇게 뻣뻣하게 서서 다니면 보일까?” 평소에 맺힌 것이 있는지, 말꼬리에 가시가 살짝 얹혀 있다. 괜히 심술이 난다. ‘이거 뭐야. 나는 그래도 당신이 걱정되어 따라왔고, 이렇게 영양가 있는 꺼리도 보태는데․․․․. 하여튼 매년 나물을 뜯기 위해 산에 오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고사리는 나에게는 인기가 없다.
옛날부터 고사리는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물 중의 하나로, 관혼상제에는 빠짐없이 들어갔으며, 즐겨 먹는 비빔밥에도 빼 놓지 않고 들어간다. 어린 고사리 잎의 말려 있는 모양은 어린 아기의 앙증맞은 손과 닮아서 ‘고사리손’이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나물을 뜯으면서 늘 느끼는 것은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순식간에 숨 가쁘게 오르내리면서 뜯어 보지만, 나의 행동에 비해 느릿느릿 뜯는 아내보다 적은 양을 뜯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내는 다 뜯고 들 수가 없어 나에게 구원 요청을 하는데, 결국 나는 ‘짐꾼’이란 말인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아쉬운 봄날이다. 나물을 뜯고, 캐는 남정네와 아낙네의 손끝에서 향긋한 봄 냄새가 전해 오는 듯하다. 쌉싸래한 맛으로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는 봄나물은 보기만 해도 온몸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봄 나물은 종류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비타민, 칼슘, 철분,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춘곤증과 피로로 시달리는 몸에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보약 중의 보약이다. 우리 조상들이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을 때 가까운 야산에 올라 허리를 굽히는 수고로움만으로도 풍부한 영양소를 공급해 주어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던, 자연이 주는 값진 선물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기지개 켜며 맞이하는 봄, 온 산야에 지천으로 솟아나는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있기에 더없는 기다림이고 희망으로 다가온다.
121110
첫댓글 아빠엄마 티격태격 나물뜯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봄나물 여행"




훈훈한 바람이 부는 날
봄나물 캐고 뜯으러 간 산기슭
나물 내음이 코끝을 스칩니다
희망으로 맞이한 봄
수필에서 봄기운이 맴돕니다
수필가님의 소재가 탁월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