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2019.10.31.
1951년 겨울 강원도 어느 지역에서 연합군과 북한군은 고지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아군은 화력과 수적인 열세로 후퇴를 결정한다.
새벽 아직 미명 후퇴 명령이 떨어지고 철수를 시작한다.
얼마를 지나왔을까.
한 미군 병사는 어디선가 갓난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아니 이 엄동설한에 그것도 첩첩산중에서 웬 갓난이 울음소리”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너무나 선명한 울음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서 병사는 소리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랬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가있단 말인가.
알몸의 여인은 피난 중에 이 산중에서 혼자서 해산을 하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핏덩어리 아기를 온몸으로 감싼 채
자신은 얼어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까.
얼어붙은 땅을 파고 시신을 묻어두고 간단하게 표식을 한 후
갓난이를 안고 부대로 복귀했다.
이후
전쟁은 무기한 휴전 상태로 돌입하고
갓난이를 양자로 삼은 후 미국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장성하여 대학생이 되었다.
자라면서 피부색이 부모님과 다르고 친구들과도 다름이 좀 이상하긴 했는데,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늘 마음 한편에 의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아버지는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 시간 부자는 말이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의 겨울은 추위가 대단했다.
자기와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것에 진심 놀라웠다.
말없이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로 향했다.
부자가 도착한 곳은
어느 초라한 무덤 앞.
“아버지 여기가 어디예요.
누구의 무덤인데요”
오래전 그 날이 생각이 났는지
아버지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핏덩이가 장성하면 언젠가 한 번은 제 어머니의 무덤에 데려오고 그 날의 사연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서 아이를 이해시킬지 난감했다.
무덤 앞에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는 천천히 그날의 상황을 시간순으로 나열하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젊은 이들이 피를 흘린 것과
그 날의 치열했던 전투. 열세에 몰린 연합군이
퇴각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 날도
지금보다도 훨씬 추운 겨울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데 어디선가 갓난이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돌아설 수 없어서 울음소리를 좇아 가보니
해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산모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갓난이의 체온이 떨어질까 봐 자신의 옷으로 핏덩이를 감싸고 가슴으로 안은 채 얼어 죽어있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이곳에 시신을 묻고 갓난이는 안고 철수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 갓난이가 바로 너라고 말했다.
진실을 말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사연을 다 들은 아이는
갑자기 옷을 외투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벗기 시작하더니
그 옷을 눈 덮인 어머니의 무덤 위에 덥기 시작한다.
“어머니,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하고 눈물만 흘리고 말을 잊지 못한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어머니
그 어머니의 사랑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 오래전 읽었던 글을 떠올리며 -
나의 어머니는
살아생전 일곱 남매를 장성하도록 성장시켰지만, 다섯 아이는 잃어버렸다.
그중엔 이름이 있는 이도 있고, 너무 어려 미쳐 이름이 없는 이도 있다.
다 생존했으면 십이 남매가 될 뻔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여러 자녀 중 언제나 막둥이나 연약한 자녀에게 머무르기 마련이다.
그중 나는 제일 늦게 태어났다.
밑에 여동생도 없이 맨 막내로 성장했다.
바로 위 누님과 나이 차이도 있지만, 그 사이에 어머니가 세 명의 자녀를 잃었다고 한다.
아마 노산으로 인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버지는 매우 건강하셨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너무도 안 좋으셨다.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많이 하여 부모와 가족들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었다고 하셨다.
나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곁을 떠나 생활한 것이 못 내 아쉽고
지금도 이 부분이 제일 후회가 된다.
아이가 한창 성장할 무렵엔 어머니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에게 어머니를 잃어버리면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담요가 젖도록 울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자녀들이 비록 갓난이 때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엔 늘 생각이 나지 않으셨을까.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그렇게 슬픈 기색을 하고 있었나 보다.
새벽길을 나서며
20.05.11.
새벽 아직 잠이 들깬 아내의 전송을 받으며, 전날 챙겨놓은 옷가지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아파트 문을 나선다. 막 신발을 신으려는데 아내가“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하며 안아준다. 집 떠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남편을 그것도 새벽 아직 해가 올라오기 전 어둠 속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는 것이 몹시 안타까운 모양이다. 다독여주고는 차를 몰아 근무지 당진으로 향했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의외로 차들이 많았다. 어둠은 점차 물러가고 날이 천천히 밝아온다. 이 광경은 거의 월요일마다 목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볼 때마다 한결같지는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볼 때마다 새롭다. 어느 땐 굉장히 화려할 때도 있고, 또 어느 땐 소리 없이 해가 솟아 있기도 하다. 자연의 오묘는 놀랍다. 아마 매일 날이 밝아오는 광경과 강물이 연하여 흘러가는 광경 청초한 풀잎에 이슬이 영롱하게 맺혀있는 광경 그 오염되지 않은 광경을 날마다 보고 만지고 느낀다 하더라도 언제나 새로울 것만 같다. 어느새 논들은 모내기 준비를 마치고 물 대기가 한창이다. 밭들은 농기구로 고랑을 일정한 간격으로 파고는 언제 무엇을 심었는지는 몰라도 드문드문 새싹이 돋아나던 것이 지난주 봄비가 내린 후에는 밭 전체가 파랗게 새싹을 틔웠다. 놀라웠다. 봄비는 오래도록 내리거나 요란하게 내려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불편함을 주는 것도 아니다. 거저 소리 없이 은은하게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여린 잎과 아직 얕은 뿌리에 상처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식물은 봄비를 한번 맞이할 때마다 신기할 정도로 쑥쑥 자란다.
옛날 어머니는 이맘때 고추를 모종한 밭에는 가느다랗고 긴 꼬챙이를 여럿 준비하여 고추가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도록 지지대로 사용하곤 하셨다. 요즘엔 철물점에서 쇠 파이프에 녹슬지 않게 도금으로 덧입힌 고추대를 간편하게 구매이용 하지만, 옛날에는 모든 것이 참 귀했다.
또 언제부턴가 밭에는 까만 비닐을 덮어 잡초들이 작물들과 함께 번식할 수 없게 하여 뙤약볕 아래서 밭매는 수고로움도 들어준다. 초등 1학년 정도였을까? 학교 다녀와서는 골목 입구에서부터 마치 큰일을 하고 온 것처럼 당당하고 힘차게 엄마~하고 고함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불러본다. 대답이 없으면, 한 번 더 불러보고, 그래도 대답이 없으면, 다소 울음 섞인 소리로 엄마하고 자그맣게 나온다. 중매 밭으로 달려가 보면, 어김없이 밭고랑 사이에서 머리에 수근을 두른 채 쪼그리고 앉아 힘겹게 밭을 매는 어머니를 발견하곤 했다.
기계음이 있는 삶의 현장 형님을 따라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어느덧 삼십 년도 더 지났다. 올해로 정확히 삼십 년하고 삼 년이 지나간다. 청춘을 다 바쳤다. 어느새 머리는 서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새치라고 치부하기에 너무 많다. 형님과 함께할 때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기계가 한 대 두 대 늘어 날 때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쇠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쇠는 차갑고 단단하고 냉정하다. 부드러움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런 쇠를 아끼고 사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피와 눈물’ 언젠가 나의 글쓰기가 조금 더 발전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기록하고 싶다.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흙과 더불어 여생을 보내셨다.
농촌에선 허리를 구부려야 만이 식물을 구할 수 있었다.
흙에서 나고, 흙에서 열매 맺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한 번도 아버님으로부터 흙에 대한 핀잔이나 불만은 듣지 못했다. 들에 나가시면, 양손 바닥에 침을 뱉으시고, 문지른 후 허리띠를 불끈 졸라맨 다음 넓은 들을 무섭게 노려보셨다. 산더미 같은 일들을 앞에 두고 반드시 헤쳐나가겠다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요즘이야 농기계를 이용하면 논을 갈아엎는 일부터 써레질 이양기로 모심기 등 처음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기계에 의존한다. 아버님은 생전 그런 농기구의 도움을 받아보지 못하셨다.
남자는 일을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였을까 DNA는 참 무섭다.
전날 바람에 의한 심한 몸부림 때문일까? 키 큰 은행나무도 아직 옅은 녹색의 연한 칡넝쿨도 하얀 향기의 아카시아도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움직임이라고는 없다. 오늘따라 새들도 미안한 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다만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 외에는...
첫댓글 아~~!
어머니의 사랑.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네요.
<나의 어머니>, 그리고 <새벽 길을 나서며> 배웅하는 아내.
모두 어머니라는 공통분모가 있네요.
노작가님~~ 언제나 감동을 주시네요.^^
思母曲
통한의 눈물
오월이여 !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납니다..^^
작가의 마음은 용광로인가봅니다
아무리 아픈사연도 눈물로 뜨겁게 달궈내고
소스라치게 차갑고 시린 마음도 따뜻한 가슴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존경합니다
너무 가슴이 아려오네요. 어머니의 사랑이 어린나이에 얼마나 사무쳤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