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이 그려진 1476년 당시 이태리 여자의 모습이다.
매우 차분해 보이는 마리아이지만 오른손을 들어 약간 거부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놀라고 무서워하는데 오른손이 그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왼손으로는 옷깃을 여미고 있다. 마리아는 처음에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라고 생각할 뿐 말은 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 마리아의 왼손은 옷깃을 여미고 천사의 말을 듣는 태도를 보여준다.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제어하기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마리아의 표정은 단연 압권이다. 무표정이 아니다. 차분하게 다문 입술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는 말을 막 마친 듯하다. 무서움과 두려움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결단이 아니다. 마리아 앞에 펼쳐진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자기 앞에 나타난 천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의지와 믿음의 표현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신뢰감과 경건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리아의 눈은 정면이 아니라 옆을 바라보고 있다. 위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천사가 나타난 쪽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격하는 태도도 아니고 냉정한 태도도 아니다. 옷깃을 여미며 놀라움과 무서움을 극복한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묻는다. 차분한 응대가 아닐 수 없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끄집어낸 상식을 가지고 천사 가브리엘을 대하고 있다. 거기 인간의 한계 안에서 끝나지 않고 마리아는 영원으로 나아간다. 마리아를 바라보는 이 그림 앞에 있는 사람을 영원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믿음이 투영되어 있다. 그의 믿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차분한 믿음과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마리아 앞에 독서대와 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저 영원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 보인다. 말씀을 보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 마리아와 같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 그 책에서 인간적인 한계를 벗어나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우리의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림의 마리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말을 걸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이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림속의 마리아와 보는 이와의 대화를 통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소박하지만 가장 경건함에 근접하는 듯한 차분함이 생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