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_강진,김영랑생가
*️⃣ 2023_05.20. / 한국가람문학회
*️⃣ 촬영 작성 ; 이재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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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
이곳은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이자 항일 민족지사였던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생가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1903년 1월 16일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에서 수학한 선생은 용아 박용철 선생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 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 지 제3호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발표하였으며, 1935년 [영랑시집] 을 1949년 [영랑시선] 을 출간하였다.
선생은 조국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한 채 흠결없는 대조선인으로 외롭게 살았다.
광복후 신생 조국 정부에 참여하였던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포탄 유탄) 당하여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선생은 생애 87편의 시를 남겼다.
영랑 생가는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12월 강진군이 매입하였고, 1986년 2월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정부는 2008년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사개틀린 고풍의 툇마루에> / 김영랑
사개 틀린 고풍의 툇마루에 없는 듯이 앉아
아직 떠오를 기척도 없는 달을 기다린다
아무런 생각없이
아무런 뜻없이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사뿐 한 치씩 옮아오고
이 마루 위에 빛깔의 방석이
보시시 깔리우면
나는 내 하나인 외론 벗
가냘픈 내 그림자와
말없이 몸짓없이 서로 맞대고 있으려니
이 밤 옮기는 발짓이나 들려 오리라
* 사개 틀린 ; 목재 모서를 끼워 맞춘 요철 부위가 틀어진
김영랑 시인 곁에서 이재익 시인
시문학파 문학관
김현구 시인은 강진 출신이다.
<떠나가는 배> /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들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시문학』 창간호, 1930.3)
<논개>
변 영 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신생활』 3호, 1923. 4)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 석 정
깊은 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湖水에 힌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때에는 부디 잊지마서요
나와 가치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山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힌염소 한가히 풀뜯고
길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때 우리는 어린 洋을 몰고 돌아옵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五月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어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 한들 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나라에서
<물레방아>
이 하 윤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바퀴에
한 잎씩 한 잎씩 이 내 추억을 걸면
물 속에 잠겼다 나왔다 돌 때
한없는 뭇 기억이 잎잎이 나붙네
바퀴는 돌고 돌며 소리치는데
마음 속은 지나간 옛날을 찾아가
눈물과 한숨만을 자아내 주노니
...........
나이 많은 방아지기 하얀 머리에
힘없는 시선은 무엇을 찾는지-
확 속이다! 공잇소리, 찧을 적마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 내리네.
<자모사(慈母詞)>
정 인 보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어라.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여짜오니
고국산천(故國山川)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40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 풀 욱은 오늘 이 ‘살’ 부터 있단 말까
빈말로 설은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서.
[신생] , 1925
< 향수 >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허보 시인은 사진 한 장 남김이 없었나 보다.
<검은 밤> / 허보, (시문학 1931. 10.)
검은 밤이 돌아와
염려 없이 넘던 산을 거닐던 뜰을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더듬어 걸어갑니다
한생각에 눌리었던 마음에
진정할 수 없는 무엇이 떠올라
적확한 표현의 길을 찾으러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더듬어 걸어갑니다
물론 기회를 잃어 약자 된 모든 이에게
밤이여! 아편과 같은 잠을 주어서는 아니됩니다
산모의 괴로움을 맛보지 않고는
새로운 생각이 탄생할 새벽은
영구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낮에 찾은 진리를 검은 밤이여
지워버리소서 우리를 반성케 하소서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은 회의(懷疑)가 아니라
돌과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소서
한국 현대시의 탯줄 [시문학 ]
시문학은 1930년대 카프(KAPF)의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1930년 3월 5일 창간하였다.
핵심 시인은 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 정지용이며,
여기에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의 참여로 창간호가 발행되었고
뒤이어 수주 변영로 ㆍ 김현구가 제2호(1930, 5. 20)에, 신석정, 허보가
제3호(1931, 11. 11)에 동참하였다.
시문학은 우리나라 순수문학 운동의 기반을 다졌으며 이후 [시원], (1935)과
[시인부락] (1936)으로 이어지면서
1930년대 한국 현대시의 맥을 형성하였다.
시문학파 탄생의 배경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제의 강점이
한층 더 폭압적으로 강화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 하에서 국내의 문단 상황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저항이라는 목적의식은 같았지만,
사회주의 문학운동과 순수민족문학운동간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해외문학파에서 발아된 순수문학 운동은
시문학파에 이르러 구체화되었고
이후 구인회와 모더니즘 운동, 그리고 '시원'과 '시인부락' 동인지로 이어지면서
1930년대 한국 현대시의 맥을 형성하였다.
강진 김영랑 생가의 [시문학파문학관] 전시물을 통해서 학습하는
1930년대 문예사조 -> 시문학파 , 모더니즘 / 생명파 / 청록파
한국가람문학회 회장 육은실 시인
문예시대 회장 배상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