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광주매일 2004년 6월8일자)
민의의 화두는 ‘겸손’
-이재창(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장)
6.5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오만과 겸손치 못한 행태의 결과다. 국민이 비록 예전처럼 어느 한 당에 일방적인 표를 몰아 주었더라도 또다시 그러한 일방적인 표를 몰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선거였다. 그것은 국민의 선거의식과 정치의식이 한 단계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한 순간의 자만으로 참패한 모습을 여당이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이번 전국 114개 지역에서 실시된 재보궐선거 결과 민주당은 텃밭에서 전남지사를 비롯한 군수, 광역의원을 휩쓸었고,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3곳, 기초단체장 12곳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며 완승을 거뒀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충남 당진군수 한 곳만 당선시키는 데 그쳐 완패했다. 총 38명을 뽑은 광역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 줬듯이 국민의 민심은 냉정하다는 것이다. 탄핵정국으로 인한 4.15총선의 엄청난 지지를 그들이 좋아서 또는 납득할만한 정책대결이 승리해서 지지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더라도 여당의 4.15 총선후의 행태는 어떠했는가를 보면 그들의 참패는 당연했다.
6.5재보선 결과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보더라도 여당은 "총선후 여당이 너무 거만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여당의 거만함과 권력 다툼을 비판하는 견해가 쏟아지는 등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들은 지금 국민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민생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17대국회 개원도 하기 전에 민생은 뒷전에 두고 장관자리를 놓고 싸움질이나 하지 않나, 자만에 빠져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으니 참패는 당연하다. 지금 집권여당이 내부 싸움질 할 때인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새로운 정책기반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투표율 30%대에 그친 관심없는 재보선이었지만 각 포털사이트의 뉴스게시판, 각 당 홈페이지 등에는 수백건 이상의 네티즌 글이 게재된 것을 소홀히 간과 해서는 안된다. 인터넷의 이러한 글들이 악의적 비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가 정치권에 던져준 화두의 민의는 겸손하라는 것이다. 여당은 전국정당의 기대를 이번 재보선에서 다시 내밀었지만 지역민심을 얻지는 못했다. 경남지사를 3번 연임한 김혁규 의원을 총리로 밀었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당·청간 갈등으로 비화됐고, 결국 그 카드는 백지화 됐다. '영남특위'논란도 호남소외론을 자극하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총선후 정동영·김근태의 입각과정에서 드러난 자리다툼과 정파갈등 등 불협화음, 파병문제, 분양가 공개문제를 둘러싼 정책혼선 등 여당다운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집권여당의 오만으로 비춰지기까지 했다.
어쨌든 이번 선거 후 집권 여당 내부의 현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전망이 크고, 한나라당은 정국운영에 여당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당내 구심력을 강화하며 동시에 강력한 대여 견제력을 지니게 됐다. 그동안 당 존폐 위기에 내몰렸던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한숨 돌리게 됐다. 예상을 뒤엎는 승리로 재기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타협도 양보도 없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힘겨루기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 이번 재보선 결과가 보여주었듯이 민심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야가 굳게 깨달아야 한다.
민주당도 이번 재보선의 전남지역 압승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책적 대안으로 승부를 거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신임 박준영 지사가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누가 뭐래도 경제살리기와 도민 화합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승리의 도취감은 이젠 떨쳐버리고 도정에 전념하길 바란다. 진정 도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 민의를 제대로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