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호남남종화 맥 이어온 이창주 화백
남종문인화가로서 농촌문화와 정서를 반영한 전통적 취향에 충실한 남종문인화풍의 작품을 제작했다.1990년대에는 전통회화를 밑바탕으로 현대적 조형미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다.
단순하면서도 거침없는 필치와 화사한 색채의 산수화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낸 회화 세계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창주 화백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및 학장, 광주광역시 문화재위원이었고, 조선대학교 미술관장, 광주미술협회 고문, 무등문화상 심사위원, 전라남도 문화예술자문위원, 의재 허백련 예술상 운영위원, 제2회 광주비엔날레 자문위원, 현대 한국화협회 회장 등을 역임, 광주·전남지역의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의 실경을 남종문인화의 형식으로 풀어낸 전통회화의 계승과 발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시고 계신다.
의재 허백련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1955년 조선대학교에 입학한 작가는 당시 조선대학교에 서양화 교수였던 오지호 화백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국화를 배우기 위해 의재 선생을 찾아갔었다. 1959년 조선대학교 최초의 한국화 졸업생이었고 대학을 입학한 해부터 의재 선생이 세상을 떠났던 1977년까지 의재 선생을 찾아뵈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작품에 드러난 남종문인화적인 이상적 산수화 분위기는 의재 선생의 영향으로 남종문인화를 그린다는 것은 기법을 따르는 것이고, 옛 문인화가의 정신세계를 존중하고 계승한다.
1932년 전남 장흥 출신으로, 종증조부 '설초 이자원(1855~1923)'과 조부 '송파 이청흠(1992~1937)' 등 당대 미술계에서 활약하던 선조들의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결심를 했다고 한다. 장남 이동환 작가도 현재 한국화 작가로 뛰어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매정 이창주 화백 약력
1932년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59년 조선대학교 문리대학 미술과를 나온 문인화 전공 1호 졸업생이다. 그는 1955년부터 허백련의 문하에 들어가 전통 남종화를 배웠으며, 1959년부터 1976년까지 국전 동양화부에서 14회 입선했다. 1967년부터 그동안 국내외에서 8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초대되어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