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문화 Vs. 미국 기업 문화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인들에는 NIH(Not Invented Here)증후군이 팽배해 있었다.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제품들은 다 쓰레기라는 심리적 자만심이 팽배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일본은 미국 땅을 샅샅이 뒤지며 배울 점 등을 배워다가 일본인 특유의 집합적 창의력으로 개선(KAIZEN)하여 완전한 일본제로 승화시켰다. 미국을 카피(복사)한 후 미국을 능가하는 제품을 창조한 것이다. 미국이 종이에 담아놓은 기술(Paper technology)을 생산기술(Production technology)로 잽싸게 전환하여 돈을 벌었다. 일본이 무서운 것이 무엇이고, 일본을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학습력과 창의력이다. 이를 부정한 경영계의 전문가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무역역조는 양국 경영문화의 산물이었다. 잠시 미국과 일본의 경영문화를 살필 필요가 있다.
미국인 경영자들의 봉급은 단기 이윤의 크기에 비례한다. 이럴 때 경영인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단기 이윤 부풀리기에 올인하게 돼 있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뒤로 미루었다. 종업원을 교육시키고 학습시키는 시간을 아꼈다. 근로환경을 개선하는데 지출하기를 꺼렸다. 근로자들은 또 어떠했는가? 직장의 삶의 공간이 아니라 봉급을 벌기 위한 지옥이었다. 직장에서는 보수를 받고 여가는 밖에서 즐긴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타임 카드를 가지고 회사들과 게임을 했다. 같은 분량의 일을 해도 시간을 늘려서 했다. 그래야 시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일본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맥아더 사령부 때부터 신입사원 연봉의 8배 이상 높일 수 없게 했다. 그 대신 최고 경영자는 출장 때 1등 칸을 타고, 초일류 호텔에 묵는다. 기업이 아무리 많은 수익을 내도 간부들에 보너스를 주지 않는다. 주식의 배당금에도 많은 세금을 물렸다. 일본의 직장은 행복을 누리고,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이었다. 높은 봉급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자기 능력의 계발이었다. 근로자들이 직장에서 행복하면 할수록 그 행복은 기업에 도움이 되었다. 방법을 개선하고,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는 것, 이것이 일본 직장인들의 행복이었다. 직장에서 타임 카드로 게임을 하고, 그 급료를 가지고 행복을 밖에서 찾는 미국 직장인들과는 게임 자체가 될 수 없었다. 미국 경영자들은 보스(Boss)였지만, 일본 경영자들은 코치요. 토의 상대였다. 미국에 진출한 혼다(Honda)자동차 공장에 취직한 미국인들은 포드나 크라이슬러에 고용된 미국인들에 비해 굉장한 우월감을 느낀다. 일본의 자발성과, 미국의 타임 카드, 전자는 인격이고 후자는 노예다.
미국은 간부의 단기 이윤이 저조할 때 책임을 묻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회장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한 중역이 의사결정을 잘못해 기업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 그런데도 고노스케는 그 중역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더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했다. 반면 결재서류를 이면지에 써서 올리라는 명령을 위반하고, 결재서류를 새 종이에 써서 올린 간부에 대해서는 강등을 시켰다. 사원들이 의아해하면서 질문을 했다.
"회장님, 지난번 모 중역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는데도 용서하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번의 모 간부님은 하찮은 이면지 사용 명령을 위반했습니다. 회장님께 이면지를 내민다는 것이 황송해서 그랬는데 그런 것을 이렇게 엄하게 처벌하시는 것이 도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개 중역은 모든 회사원이 다 인정하는 열성을 가진 간부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간부가 어쩌다 한번 저지른 실수를 탓해서 해고하면 이후 그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하지만 이면지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태만이다. 태만은 개인에게나 조직에게나 다 같이 암적 존재다. 태만은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 그 대신 고노스케는 그 중역이 무엇 때문에 손실을 입혔는지 그 원인을 규명하는데 두뇌를 투입했다. 실수로부터 개선책과 교훈을 찾아내려는 노력이었다.
미국인들이 경험 요소를 중시하여 전통과 관습에 젖어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신인들을 선발해 목표와 비전을 제시해 주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했다. 미국은 종업원 1인에게 한 가지 일만 맡기고, 그 일이 소멸되면 종업원을 해고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 종업원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다.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던 사람이 공장에서 일하게 했다. 가장 유능한 세일즈맨은 기술 현장을 아는 사람이다. 소품종 대량 생산 환경에서는 숙달이 중요시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환경에서는 만능 인간, 만능 기계가 필요했다. 결원이 생겨도 다른 부서 사람이 보충할 수 있었다. 올 코트 프레싱도 가능했다. 노예 마인드를 가진 종업원과 주인의식을 가진 종업원, 일본의 기업 문화로부터 세계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느냐 Vs. 누구를 처벌해야 하나
기업에서나 공공의 공간에서는 늘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문제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교훈을 이끌어내서, 다시는 같은 종류의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창조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기업에서나 공공 공간에서나 이러한 노력이 전혀 없다. ‘누구를 처벌하고 잊을 것이냐?!’ 이것부터 따진다. 잘못의 원인을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 사고에 관련돼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감옥에 넣겠다며 분석 능력 없는 경찰이나 검사들부터 달려드니 그들이 사고의 원인을 밝혀 주겠는가? 모두가 은닉하고 변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같은 사고가 연년세세 이어지고 반복되는 것이다. 역사를 위조하고, 사실을 위조하는 이런 국민은 역사로부터 절대로 배우지 못하는 '후진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1942년의 IBM 왓슨(watson)회장, 중역 중 한 사람이 회사에 당시 화폐로 1천만 달러의 손해를 끼쳤다. 그는 얼굴을 들 수 없어 사표을 우송하고 칩거했다. 왓슨 회장이 그를 불렀다. “자네, 내가 바보인 줄 아는가? 나는 자네에게 1천만 달러나 투자했네, 자네가 나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그 역시 자네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을 걸세,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면 그것이 바로 돈일세, 분석가들과 함께 잘못의 원인을 규명하고 교훈과 대책을 이끌어내게. 그리고 당신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한번 실수했다고 자르면, 그 누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도전적으로 일을 하겠는가? 모두 다 안전 빵으로 몸을 사릴 것이 아닌가? 그러면 회사는 끝장나는 거라네.”
1993~98년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시절, 성수대교 붕괴, 위도 페리호 침몰 사고,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불에 타서 집단 사망한 사고, 대구지하철 사고 등 끔찍한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그때마다 경찰과 검찰은 억울하고 힘없는 말단들만 잡아넣고, 손을 털었다. 김영삼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 고급의자에 앉아서 '뼈'만 깎는다고 발표했다. IMF 사고를 스스로 일으켜놓고도 그 때는 뼈를 다 깎아내고 없어서인지 뼈를 깎겠다는 말도 못 하고 내려왔다.
'위도'라는 섬을 향해 휴가인들을 과밀하게 태우고 가던 페리호가 침몰한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 얼마 전, 영국에서도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에는 지브러히라는 섬이 있다. 그 섬을 왕복하는 페리호 선박이 관광객은 잔뜩 싣고 가면서 커브를 틀자 사람들이 우루루 쏠려 집단으로 물에 떨어져 사망했다. 똑같은 종류의 사고가 났는데, 영국과 대한민국이 취한 조치가 하나는 선진국, 하나는 미개국이었다. 대한민국은 검찰이 몇 명만 잡아 감옥에 보냈고, 그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찾아낸 것이다.
문을 단속하는 선원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선박이 출발하기 전에 문을 잠그지 않았는가?" 선원이 답했다. "이날은 휴일이고 원체 승객이 많아 선장이 이를 고려해 출발 시간을 약간 늦출 줄로만 알았습니다. 승객이 너무 많아 승객을 안으로 밀어 넣고 있을 때 선장이 갑자기 출발하면서 커브를 틀었습니다." 그럴듯한 이유였다. 이번에는 선장에 물었다. "당신을 왜 승객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정시에 출발했는가?" "저는 원래 시간을 준수합니다. 선원들이 그 시각에 맞춰 출발 준비를 완료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정시를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영국 조사관들은 무슨 결론을 내렸을까? 대한민국처럼 희생양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사고의 원인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부재’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 관리 선원들과 선장 사이에 소통하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 이 시스템 하나만 있었어도 사고는 예방될 수 있었다.
시스템! 영국은 비단 선박뿐만 아니라 인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공공시설, 공공 공간에 대하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할 것을 강제화했다. 사고 예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을 표준화시킨 것이다. 영국 표준 BS-5750, British Standard 5750이었다. 국제사회가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영국 표준 5750을 국제표준 2000(ISO2000: International standard organization)으로 채택하여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세계기업은 최소한 ISO로부터 ISO-2000 표준에 합격했다는 인증서를 받아야만 국제시장에 제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냉장고를 출품하는 기업은 최소한의 품질을 제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것을 인증서로 증명해야만 출품할 수 있었다. 바이어(Buyer)들이 제품 하나하나를 일일이 평가할 수는 없다.
생산 시스템이 훌륭해야 제품도 훌륭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기업의 기본 시스템을 ISO-2000 표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 엄청난 발전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영국 지브러히 페리호 사고의 산물이었다. 사고 현장만 쓸어 묻어버리고 손을 털어버리는 대한민국의 오늘과 30여 년 전의 영국 사이에 얼마나 깊은 강이 가로놓여 있는가?
이런 후진국적 문화에서 어떻게 삼성, 현대, LG 등이 탄생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지 그것이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오늘의 국민들, 현재 살아남고 있는 것은 생명이 국가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토정비결이 좋아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공공안전 시스템이 황무지에 가까운 나라, 그것이 잘난 체하는 한국인들의 나라인 것이다.
2010년에 해군 미니 구축함 천안함이 침몰됐다. 몇 줄의 뉴스만 봐도 북괴 소행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에 대한 진단들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군사 전문가들 입에서 나오지 않고 물 밖 멀리에 떨어져 사는 붉은 주사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붉은 좌익들은 "미군 잠수함이 침몰시킨 것"이라 했고,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내가 배를 지어봐서 아는데 배가 낡아서 피로파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예단했다.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던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이명박의 한심한 소리를 듣고 이명박에 전화를 걸었다.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에서 잠수함 전문가를 모집해 보낼 테니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어떠세요?" 15명의 국제 전문가가 한국에 왔고, 여기에 한국 과학계 전문가를 합쳐 조사한 결과 북한 소행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주사파들은 물러서지 않고 지금까지도 미국 잠수함 소행이라는 괴담을 뿌리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대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 시대의 2014년, 세월호가 침몰돼 수백 명의 어린 생명들이 학살됐다. 학살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사고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공작에 의해서만 발생할 수 있었던 사고였고, 침몰 후에도 선장과 선원들이 대량 인명피해가 날 수밖에 없도록 이상한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 역시 그 4년 전에 발생했던 천안함의 경우처럼 행정부가 나서서 전문 기술자와 과학자들을 모집하여 조사팀(TF)을 꾸려 과학적 조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박근혜는 4년 전의 천안함 사고로부터 아무런 지혜도 얻지 못해 행정부 소관 업무를 방기했다. 그래서 사고의 원인은 주사파들로 구성된 민주당 의원들과 반국가 분자들에 의해 괴담으로 발전했고, 그 괴담이 박근혜 탄핵에 물꼬를 텄다. 학습도 없고, 사색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울이 있기에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이 되고, 그 자유 속에서 피어난 창의력이 '열대의 대지에 드문드문 솟아난 선인장'처럼 꽃이 되어 경제적 부를 누리고있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는 권력자는 없다. 학습 능력, 학습 습관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주위를 자기중심적으로 통제하려는 독재를 한다. 팔로우들의 창의력을 이끌어내려는 마인드 자체가 없다. 학교는 누구나 다 다녔다. 학교란 무엇인가? 물고기를 잡아 주는 곳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기초만 알려주는 것이다. 물고기는 각자의 창의력으로 잡아야 한다. 독서가 없고,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매너가 없고, 사색력을 습관화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재주 하나 길러가지고 출세들을 하는 세상이 대한민국 세상이다.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가장 많은 나라이지만 학습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은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