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明인가, 無明인가?>
문명은 윤회 가운데 있는 범부가 생존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그것은 무명에서 연기한 현상이다. 불교가 가르치는 건 범부의 관점과 사고방식을 뒤집는 일(顚覆, 전복)이다. 현대인 범부의 관념을 뒤집으면 청정하고 자연적인 상태, 진정한 본성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것은 인류 문명을 퇴보시키자는 건가? 문명을 퇴보시키자는 건 아니다. 다만 문명이 이처럼 고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인간은 기대한 만큼 행복하지 못하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인간의 관습적, 무의식적 신념이 문명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본주의적 관점(anthropocentricism, 앤쓰로포센트리씨즘)이다.
인본주의적 관점,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전복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 창조설이다.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유일신 창조설은 현대 과학과 부합되지 않아 폐기된 신념이다. 그런데도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 각기 다른 이름의 창조주를 내세우며 이익 집단적으로 결속을 강화하니 종교 간의 갈등과 전쟁은 지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둘째, 외계 대상 실재주의다. 法執법집을 말한다. 소박한 사실주의(naive realism)이다. 내가 보든 안 보든 저 바깥에 대상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유물론과 유심론도 이런 부류에 들어간다. 생명과 우주의 근원적이고 최종적 원인은 물질이라거나 마음이라면서 근원적 실체로써 현실의 실재를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뇌과학과 양자역학의 지식은 외계대상 실재주의를 거의 포기 하게 만들었다.
셋째, 자아 실재주의이다. 我執아집을 말한다. 인간의 내면에 고정 불변하는 정신적, 심리적 실체가 있다는 믿음이다. 영혼이나 아트만, 신성, 호문쿨루스(homunclus)와 같은 것이 인간의 내면에 실재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신념이다. 뇌과학의 최신 정보에 의하면 영원불변하는 자아란 좌뇌가 일으킨 환상이라고 밝혀졌다.
넷째, 인과율이다. 양자역학은 인과율을 결정론적으로 말할 수 없으며 단지 확률론적이라고 말해준다. 인과론은 유용하지만 결정적인 건 아니다. 이런 진리를 세속적 진리(세제)라 부른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 신념이 20세기까지 지탱해온 인본주의적, 인간중심적, 지구중심적 세계관이었다. 이것은 무명에 기인한 것이었기에 문명의 부산물로서 핵전쟁의 위험, 기후위기, 환경재앙, 자원고갈, 생태계 교란, 국지 전쟁, 배금주의, 상업주의, 쾌락주의, 허무주의가 난무한다.
문명은 무명인가, 아닌가? 다행히 무명無明을 극복하고 명明으로 가는 길을 붓다가 보여주었다. 그것은 팔정도, 여덟 가지 바른 삶의 길이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언어생활과 언론, 善業선업과 공덕 쌓기, 바른 직업, 바른 정진, 바른 각성, 바른 집중이다. 21세기 문명은 무명에서 明-覺-空을 드러내는 보살의 삶(보살도)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