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벚꽃이 떨어질 때 (수필)
예진당 / 황해숙
하마터면 흰 눈이 내린다고 탄성을 지를 뻔했다. 봄비가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몰래 다녀간 후 벚나무 가지마다 전율하면서 꽃잎을 사정없이 떨구고 있었다. 꽃샘바람이 벚꽃의 개화를 시기와 질투로 방해하던 날 아랑곳하지 않고 일제히 팝콘을 터뜨리듯 가지마다 연분홍 꽃을 달고 있었다.
겨우내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던 나목을 잊지 못한다. 오랫동안 기다리다 봄의 문턱을 넘는 마지막 고개 꽃샘추위를 견디면서 가지마다 생명을 흡수하여 전달하고 있었을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맞는 꽃샘바람은 겨울 한파보다 더 차갑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하여 외출할 때마다 두꺼운 외투를 입었다. 그때 벚나무 가지 끝마다 사춘기 소년의 여드름 같은 꽃망울이 맺히고 있었다. 가히 생명의 탄생은 신비 그 자체였다.
봄바람은 따뜻한 햇볕을 등에 업고 훈풍으로 다가왔다. 그 입김이 닿은 가지마다 연분홍 꽃봉오리를 열어서 속살을 드러냈다. 이때다 싶었을까. 꿀벌들이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기 시작했고 나비들의 우아한 춤사위는 쉬지 않았다. 나는 칙칙하고 두꺼운 외투를 벗고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그 아름다운 꽃잎을 매달고 며칠이나 있었을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짧은 시절을 피었다 지고 만 것이다. 매년 봄마다 맞이하는 시절인연이었건만 유독 올해는 벚꽃의 낙화가 애달프기만 했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눈 깜짝할 새에 봄날이 가버린 것만 같아 울고 싶었다.
나무 아래에서 하롱하롱 떨어지는 꽃잎을 손으로 받아보았다. 나무에 매달렸을 때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꽃이었건만 분분하게 떨어지는 꽃잎은 쓸쓸하게 보였다. 우리네 인생도 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도 아름다운 한 시절이 있었으니까. 어른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꽃다운 시절이라고 할 때가 있었다. 이순을 넘기고 꽃잎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순간을 감상한다.
나의 스무 살 시절에도 벚꽃은 피었으리라. 그리고 눈처럼 펄펄 날렸으리라. 그때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친구들하고 까르르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빴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에 꿈 한 조각 걸어두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여행자처럼 들떠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나 불편하지 않았고 심심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웃는 얼굴이 벚꽃보다 예뻤고 그 웃음소리에 진한 향기가 묻어 있었다. 누군가 지금 내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여장을 챙길 것이다.
일장춘몽이었다. 벚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는 것, 내가 삶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꽃다운 시절을 지나온 것도 한바탕 봄날의 꿈이었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지금의 시절을 또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세월이 저만치 나앉았을 때 이순의 시절도 꽃다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쓸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꽃이 진 자리마다 초록색 구슬 같은 열매를 매달고 뜨거운 태양을 반길 것이다. 태양이 두툼해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붉은 구슬은 검붉게 익어갈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서럽지 않은 이유다. 꽃답던 시절 지나고 보니 가지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내 삶의 광주리에 열매를 담으니 가득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자위한다. 벚꽃이 지는 날에. -끝-
2. 계절과 계절 사이 내리는 비
예진당 / 황해숙
나는 요즘 날씨가 가물어서 많이 걱정했다. 벚꽃이 질 무렵 세우가 내렸을 뿐 대지는 갈증으로 몸부림치듯 황토색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어쩌다 자동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할 때 저수지를 지나칠 때 수위가 밑바닥까지 내려간 모습을 보았다. 저수지 둑에 층층이 지층을 이루듯 물이 찼던 흔적을 보면서 비가 내리기를 바랐다.
어제 일기예보는 많은 비가 내릴 예정이니 비피해가 없도록 대비하라고 했다. 가뭄 끝에 비소식이 반가웠지만 피해를 대비할 만큼 강우량이 많을 것이라는 말에 반감이 생겼다. 일순간이었다. 어저께만 하더라도 먼지가 폴폴 날리는 논두렁을 생각하면서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은 오간데 없어졌으니 여반장이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조소한다.
나는 밤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서 빗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빗소리는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하늘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봄이 떠나가는 시기에 내리는 비는 더운 기운을 데리고 왔다. 비가 그친 후에 가로수 나뭇잎의 색은 더 짙은 초록색으로 변할 것이다. 봄에 꽃을 피웠던 가녀린 줄기는 도톰하고 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대지는 여름 꽃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여전히 나비와 꿀벌에게 손짓을 할 것이다.
나는 늦가을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가을비가 내린 후엔 기온이 뚝 떨어지고 성큼 겨울이 찾아오지 않았던가. 계절과 계절 사이에 내리는 비는 계절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계절과 계절 사이 의식처럼 내리는 비. 내 삶의 노선에서도 내렸다. 더러는 세찬 바람이 불고 차가운 눈이 내리던 날도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은 우여곡절들은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을까.
나는 따뜻한 찻잔을 들고 시계의 바늘을 역으로 작동시킨다. 잔잔한 일상에 비가 내리던 날, 우산을 받쳐주듯 가족이 위로가 되었고 가정은 보호벽이 되어 주었다. 나는 일의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는 성현들의 말씀을 마음에 깊게 새기고 외투의 단추를 채우듯이 반듯하게 차곡차곡 실마리를 찾아 결말을 지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러 오해가 있었을 때도 눈을 감고 침묵을 실천했다. 더러 억울하다는 피해의식이 산처럼 높았던 순간에도 수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화를 다스리면서 일상에서 평정을 잃지 않았다. 내 삶의 여정에 폭설이 내리던 날도 인내했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온갖 진실을 덮었던 눈이 녹아내리면 만천하에 드러나는 실체들처럼 진실은 영롱한 별처럼 빛났다.
내가 위기의 순간에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십수 년 동안 우직하게 걸었던 종교의 힘도 한몫했을 것이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제아무리 날쌔게 날아다녀도 결국 부처님의 손바닥 안이었다. 나는 진작부터 내 삶을 부처님께 의지하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려고 애섰다. 내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었던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인생의 반평생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별 것 아닌 것에 감사를 드린다. 지금도 어쩌다 지인들을 만나면 누구는 재산이 많아서 걱정이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자식이 좋은 직장에서 다닌다고 하고, 혹자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오가는 말을 들으면서 부럽지 않았다고 역설한다면 부처님의 가운데 토막쯤 되었으리라. 애석하게도 나는 그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낸 빈손을 들여다보면서 한탄하고 말았다. 성불의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잔잔한 일상이 감사의 조건이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성실하게 삶의 보금자리에서 가족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지내왔듯이 앞으로도 그런 날들이 연속되기를 바란다. 나는 남편을 내 머리 위에 올리고 객지에 나간 자녀들이 집에 오는 날에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하고 향기 은은하게 풍기는 이부자리를 주는 어미로서 자족하고 있다. 그 자녀들이 어미의 정을 듬뿍 담은 음식을 먹고 다시 그들의 위치로 돌아가서 당차게 지낼 수 있는 힘과 사랑을 충전해 주는 어미로서 충분히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렇게 지내고 싶다. 지금까지 살면서 계절과 계절 사이에 터닝 포인트가 올 때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는 시그널이라는 것을 알았듯. 내 삶의 노선에서 찾아온 터닝 포인트를 통과하는 노하우를 잊지 않으련다. 그 터닝 포인트는 축복의 관문일지도 모른다고 독백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내리는 빗소리가 내 찻잔을 싸늘하게 식히고 있었다. -끝-
첫댓글 언어의 조탁이 수필보다 서사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군요
수필 한 편 더 탑재할 예정입니다.
원고 도착하는 대로 편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