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가기로 한 가을학기 야외수업, 그러니까 어제 14일었다. 꼬박 하루 일정의 먼 길을 나서야 했던 터라 회원들 모두가 참석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막상 출발 시간이 임박하여 담당 교수님마저 갑작스런 일로 못 가게 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우리는 출발부터 김이 빠졌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기대를 잔뜩 품고 아침부터 출발 장소인 세류역 앞에 나와 기다려온 참석자들은 그 누구도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며 강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목적지는 안면도였는데 이곳 출신 이경화 시인이 자신의 대형택시를 운전하며 안내와 해설까지 맡기로 되어 있었고, 식당 예약도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끼리라고 하는 말이 더 비장하고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서해대교를 지나 얼마나 되었을까. 왼쪽으로 섬들을 보라며 이경화 시인이 여기가 그 유명한 철새도래지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철이 일러 그런지 가창오리 떼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신나게 달리는 차는 곧 천수만 방조제에 도착하였고, 중간의 쉼터에 내려 우리는 그곳 안내판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84년 고 정주영회장이 세찬 물박이 공사를 하며 유조선 공법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는 것과 이것이 단일 경영농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우리나라 벼 재배 전체 면적의 1%에 해당되며, 오십만 명이 일 년 간 먹을 수 있는 쌀을 생산한다고 했다.
총 간척 면적은 4천660만 평이며 그중에 농지 면적은 3천60만 평, 공사는 십오 년 삼 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대역사인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고 정주영 회장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금치 못한다는 이경화시인은 그의 어록을 잊지 못한다며 일갈했다. "해보기는 해봤어!"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건설인의 탱크정신인가. 나는 우리 수원에 정조대왕이 있다면 서산에는 정회장이 있다고 한마디 했다.
그러나 정조대왕이 어디 수원뿐이고, 정회장이 어디 서산뿐만 이겠는가. 우리 모두의 조선이고,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이 아니겠는가싶었다. 우리는 정주영 회장을 가슴 속에 담아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방조제 넓고 탄탄한 도로를 마저 달려 건넜다.
'詩빨' 받았던 안면도 야외수업 _1
끝없이 펼쳐지는 황금 들판 앞에 신음인지 탄성인지 모르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억새꽃도 간간이 바람에 춤을 추며 그렇게 얼마를 달려 안면도 다리를 건너가니 마침, 대하랑 꽃게랑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행사장에는 얼마나 붐비는지, 예약했던 점심식사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우리는 안면암을 먼저 찾아 들어간 것이다.
그길, 소나무 군락지가 많았는데 안면도에서 최고의 자랑거리라면 소나무일 것이라는 이 시인의 말에 공감이 갔다. 쭉쭉 뻗어 오른 붉은 소나무들이 마치 삼밭처럼 눈에 들어왔고, 그때 나는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지 오래 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는 어는 싯귀가 떠오르기도 했다.
경복궁을 재건할 때 흥선 대원군이 여기서 소나무를 뗏목에 실어 서울로 운송하여 썼다는 이 시인의 설명에 싯빨(詩發)까지 더해지며 모두는 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스치고 지나가는 소나무 산들이 그리 아름다워 보일 수 없고, 가슴을 저려오는 것은 뭐란 말인가. 산속 좁은 길을 달려 비포장 길에 들어서니 세월을 거슬러 온 듯 오묘함 마저 들었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속살을 드러낸 채 안면암의 칠 층 탑과 관음상, 그리고 입구의 십이지 석상들이 도열한 가운데 우리를 환영하며 맞아주었다.
'詩빨' 받았던 안면도 야외수업 _2
마치 그것은 피안의 세계에 든 것만 같았고, 마음이 그리 즐겁고 편할 수가 없었다. 절 아래 해변에는 바다 가운데로 작고 둥근 소나무 섬 두 개 보였고, 그곳으로 걸어서 들어가는 부교가 놓여 있어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詩빨' 받았던 안면도 야외수업 _3
미로 속 같았던 그곳 안면암을 빠져 나오니 나는 마치 무릉도원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그래서 동의를 기대하며 물었더니 모두가 공감하며 즐거워했다. 그렇다 무릉도원을 보았으니 문학수업으로는 땡을 잡은 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들 싯빨이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차를 세운 곳은 명사십리라는 안면해수욕장이라고 했다. 입구부터가 고운 모래 결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 시인은 안천 유리공장의 원료가 되어 전에는 무단으로 반출해 갔는데 지금은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했다. 백사장 해변에는 바람이 바닷물을 몰고 들어오느라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다.
멀리 섬을 가리키며 이 시인은 한때 그곳에서 아홉 가구가 사는 섬마을 총각선생님이었다며, 생의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다고도 했다. 자연과 아이들과 함께... 그때 누군가 섬마을 선생님의 노래를 불렀고,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는 함께 따라서 부르며 이 시인의 젊은 시절 추억을 가슴속에 그려보았다. 명사십리, 그리고 섬마을 선생님! 그곳 섬을 향해 외쳐 불러보고 싶은 곳이었다.
'詩빨' 받았던 안면도 야외수업 _4
우리는 그곳을 뒤로 하고 식당에 갔을 때도 싯빨을 위해 건배했고, 발기한 싯빨들로 가슴이 붉고 뜨거운 하루였다. 아, 취하면 이런 것인가. 싯빨의 노을이 꼬리를 내리고 침잠한지도 오래, 우리는 다시 수원의 세류역 앞에 내렸다. 미모의 최 시인이 포옹으로 아쉬움을 전했다.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