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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성령의 중생 사역은 단순히 외부에서 진리를 가르치는 조명(Illumination)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령은 인간의 부패한 본성 가장 깊은 곳, 즉 영혼의 지성소로 직접 뚫고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적대하고 복음을 튕겨내던 돌처럼 '굳은 마음(Heart of stone)'을 완전히 수술하여 도려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드럽게 반응하며 거룩함을 갈망하는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리, 즉 '부드러운 마음(Heart of flesh)'을 창조하여 이식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부터 태어나는(Born again) 신비입니다. 본성 자체가 변화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영적인 진리를 사랑하거나 참된 믿음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3. 단독 사역(Monergism): 믿음보다 선행하는 거듭남
여기서 우리는 개혁주의 성령론의 가장 위대하고도 논쟁적인 핵심 진리에 도달합니다. R.C. 스프로울은 펠라기우스주의나 알미니안주의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가 구원의 순서(Ordo Salutis)를 뒤집은 데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믿음을 결단하면, 그 결과로 성령이 거듭나게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스스로 믿음을 결단할 수 없습니다. 스프로울은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중생은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원인이다(Regeneration precedes faith)."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3)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권적인 단독 사역(Monergism)으로 먼저 우리를 살려주셨기(거듭남) 때문에, 죽었던 영적 눈이 떠져서 비로소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중생의 순간에 인간은 철저히 수동적(Passive)입니다. 아기가 자신의 출생에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듯, 영적 출생 역시 100%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입니다.
4. 중생의 즉각성(Immediacy)과 단회성
중생은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진화의 과정이 아닙니다. 존 오웬은 창세기 1장의 빛의 창조를 중생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즉각적으로 존재했듯, 성령께서 죄인의 영혼을 향해 생명의 칙령을 발하시는 순간 영적 생명은 '즉각적(Immediate)'으로 탄생합니다.
인간의 상태에는 영적으로 죽어있거나, 영적으로 살아있거나 두 가지뿐입니다. 죽음과 생명 사이의 중간 지대(반쯤 살아있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생은 어느 한순간 단번에(단회성) 일어나는 영구적인 초자연적 사건입니다. 비록 신자가 자신이 언제 거듭났는지 그 정확한 시간적 찰나를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성령의 재창조 사역 자체는 단숨에 영혼의 본질을 뒤바꾸는 창조적 기적입니다.
5. 제13강 결론: 무한한 위로와 은혜의 영광
중생이 철저히 성령의 단독적인 주권에 속해 있다는 이 신학적 진리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부모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혼(가족, 이웃)의 완악함 앞에서 절망할 때, 우리는 인간의 설득이나 감정적 호소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어 큰 군대를 만드셨던 그 전능하신 성령께서,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사용하시어 그 죽은 영혼 속에 침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주시는 것뿐입니다.
중생은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기적 중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재창조의 교리가 온전히 선포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엎드려 전적인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제14강 예고: '회심의 역학 - 참된 회개와 구원 얻는 믿음을 촉발하시는 성령'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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