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23권 중】 4
<6>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고 구호하다
1)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마음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見諸衆生이 造作惡業하야 受諸衆苦일새 以是障故로 不見佛하며 不聞法하며 不識僧하고 便作是念호대 我當於彼諸惡道中에 代諸衆生하야 受種種苦하야 令其解脫호리라하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이 나쁜 업을 지어 온갖 여러 가지 고통을 받으며, 이런 장애로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법을 듣지도 못하고, 스님네를 알지 못함을 보고는,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저 모든 악도에서 모든 중생들을 대신하여 갖가지 괴로움을 받고 그들을 해탈케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강설 ; 세상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고통이 있다. 그 모든 고통들은 대개 악업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악업을 지어서 고통을 받게 되면 그것이 또 장애가 되어 삼보(三寶)를 가까이 할 기회가 없다. 삼보를 가까이 하지 못하면 진리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게 된다. 보살은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마땅히 저 악도에 있는 중생들을 대신해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고 그들을 고통에서 해탈하게 하리라.’라고 염원한다.
菩薩이 如是受苦毒時에 轉更精勤하야 不捨不避하며 不驚不怖하며 不退不怯하며 無有疲厭하나니 何以故오 如其所願하야 決欲荷負一切衆生하야 令解脫故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더욱 정진하여 버리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공포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고달파하지도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가 서원한 대로 일체중생을 책임지고 해탈케 하려는 연고이니라.”
▶강설 ; 보살이 일체 중생들의 일체 고통을 다 대신 받더라도 결코 그 고통을 버리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공포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고달파하지도 않는 것은 보살이 본래 서원한 대로 일체중생을 책임지고 해탈케 하려 하기 때문이다.
菩薩이 爾時에 作是念言호대 一切衆生이 在生老病死諸苦難處하야 隨業流轉하고 邪見無智하야 喪諸善法하나니 我應救之하야 令得出離라하며
“보살이 그때에 생각하되 ‘일체중생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여러 가지 고통 중에서 업을 따라 헤매고 삿된 소견에 지혜가 없어 모든 선한 법을 잃어버렸으니, 내가 마땅히 그들을 구호하여 벗어나게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강설 ; 중생들은 온갖 고통을 왜 받는가. 삿된 소견에 지혜가 없어서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모든 선한 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又諸衆生이 愛網所纏과 癡蓋所覆로 染着諸有하야 隨逐不捨하며 入苦籠檻하야 作魔業行하며 福智都盡하야 常懷疑惑하며 不見安隱處하고 不知出離道하며 在於生死하야 輪轉不息하며 諸苦淤泥에 恒所沒溺이어든
“또 모든 중생들이 애욕의 그물에 얽매이고 어리석은 덮개에 덮이며, 모든 유(有)에 물들어 따라다니고 버리지 못하며, 고통의 우리에 들어가고, 마군의 업을 지어 복과 지혜는 모두 없어지고, 항상 의혹을 품어 편안한 것을 보지 못하고, 벗어날 길을 알지 못하며, 나고 죽는 속에서 바퀴 돌듯 쉬지 못하고, 온갖 고통의 수렁에 항상 빠져 있느니라.”
▶강설 ; 중생들의 얽히고설킨 삶의 모습들을 낱낱이 밝혔다. 애착의 그물과 어리석음의 덮개와 모든 있음에 집착하는 등으로 온갖 고통의 수렁에 항상 빠져 있다.
菩薩이 見已에 起大悲心과 大饒益心하야 欲令衆生으로 悉得解脫하야 以一切善根廻向하며 以廣大心廻向하며 如三世菩薩所修廻向하며 如大廻向經所說廻向하야 願諸衆生이 普得淸淨하고 究竟成就一切種智니라
“보살이 그것을 보고는 크게 자비한 마음과 크게 이익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해탈을 얻게 하여 일체 선근으로 회향하고 광대한 마음으로 회향하되 삼세(三世) 보살들이 닦는 회향과 같이 하며, 저 대회향경(大廻向經)에서 말한 회향과 같이 하여, ‘모든 중생들이 널리 청정함을 얻으며 구경에는 일체를 아는 지혜를 성취하여 지이다.’라고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중생들의 얽히고설킨 삶의 모습을 보고는 큰 자비심을 일으켜서 크게 이익하게 하려고 일체 선근을 회향하는 내용이다. 대회향경(大廻向經)이란 청량스님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대회향경이란 현수(賢首)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원교(圓敎)에서 설한 보현보살의 회향과 같은 연고다.’라고 하였으나 그러나 대장경 안에 대회향경이 있으나 이 가르침은 아예 그것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만약 경전(화엄경)을 결집하면서 그 책을 따랐다면 이치에 옳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2) 회향하는 마음
復作是念호대 我所修行이 欲令衆生으로 皆悉得成無上智王이라 不爲自身하야 而求解脫이요 但爲救濟一切衆生하야 令其咸得一切智心하야 度生死流하야 解脫衆苦라하며
“또 생각하되 ‘내가 닦은 행은 중생들로 하여금 가장 높은 지혜의 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요, 내 자신을 위하여 해탈을 구함이 아니며, 다만 일체중생을 구제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마음을 얻어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모든 괴로움을 해탈케 하려는 것이로다.’라고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회향하는 마음을 밝혔다. “내가 닦은 행은 중생들로 하여금 가장 높은 지혜의 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요, 내 자신을 위하여 해탈을 구함이 아니다.” 이것이 보살의 회향하는 마음이다. 보살에게는 이미 자기 자신은 없는지 오래다. 오로지 중생을 위해서 선근을 닦는다. 보살의 화두는 오로지 중생이기 때문이다.
復作是念호대 我當普爲一切衆生하야 備受衆苦하야 令其得出無量生死衆苦大壑하고 我當普爲一切衆生 於一切世界와 一切惡趣中에 盡未來劫토록 受一切苦호대 然常爲衆生하야 勤修善根이니
“또 생각하되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위하여 온갖 고통을 갖춰 받으면서, 그들로 하여금 한량없이 나고 죽는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뛰어나오게 할 것이며, 내가 널리 일체중생을 위하여 일체 세계의 온갖 나쁜 갈래에서 미래의 겁이 다하도록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도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선근을 부지런히 닦을 것이로다.’라고 하느니라.”
▶강설 ; 또 보살은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위하여 온갖 고통을 갖춰 받으면서, 그들로 하여금 한량없이 나고 죽는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뛰어나오게 하는 것” 뿐이다.
何以故오 我寧獨受如是衆苦언정 不令衆生으로 墮於地獄하고 我當於彼地獄畜生閻羅王等險難之處에 以身爲質하야 救贖一切惡道衆生하야 令得解脫이라하며
“‘왜냐하면 내가 차라리 혼자서 이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마땅히 지옥, 축생, 염라왕 등의 험난한 곳에서 이 몸을 볼모로 잡히고 모든 악도의 중생들을 속죄(贖罪)하여 해탈을 얻게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중생을 향한 비원의 절정은 “내가 차라리 혼자서 이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마땅히 지옥, 축생, 염라왕 등의 험난한 곳에서 이 몸을 볼모로 잡히고 모든 악도의 중생들을 속죄(贖罪)하여 해탈을 얻게 하리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이와 같은 위대한 가르침이 귓전으로 한 번만 스치고 지나간다면 그 사람은 세세생생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회향의 참다운 의미가 너무나 잘 나타나 있는 경문이다.
3) 굳은 뜻으로 보호하는 마음
復作是念호대 我願保護一切衆生하야 終不棄捨라하고 所言誠實하야 無有虛妄이니 何以故오 我爲救度一切衆生하야 發菩提心이요 不爲自身하야 求無上道며 亦不爲求五欲境界와 及三有中種種樂故로 修菩提行이니
“또 생각하되 ‘나는 원하노니 일체중생을 보호하여 마침내 버리지 아니하려 하나니, 내 말이 성실하여 허망하지 말아 지이다. 왜냐하면 나는 일체중생을 구호하여 제도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이요, 내 몸을 위하여 가장 높은 도를 구함이 아니며, 또한 다섯 가지 탐욕의 경계나, 삼계[三有]의 갖가지 즐거움을 구하기 위하여 보리행을 닦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느니라.”
▶강설 ; “일체중생을 구호하여 제도하려고 보리심을 낸 것이요, 내 몸을 위하여 가장 높은 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신이 회향의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