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가 피렌체에서 델 조콘다를 6년에 걸쳐 그렸지만 미완성으로 남겼다는 것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이다. 그런데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는 완성된 작품이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 이 의문은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다빈치는 초상화를 그릴 때 항상 두 장 이상을 그렸는데 한 장은 미완성, 또 한 장은 완성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이 구성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다빈치가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의뢰에 따라 그의 부인인 리사 게라르디니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을 때 그는 프랑스의 프랑스와 1세의 초청을 받는다. 이때 줄리아노 데 메디치로부터 자기의 정부인 콘스탄차 아발로스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우연하게도 콘스탄차는 그가 그동안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던 〈모나리자〉를 약간 닮았고 또한 ‘라 조콘다’ 즉 ‘미소 짓는 여인’이라는 뜻의 별명을 갖고 있었다.
다빈치는 평소에 두 개의 그림을 그렸으므로 자신이 여벌로 그려두었던 또 한 점의 〈모나리자〉 델 조콘다의 초상화를 손질하여 그림의 얼굴을 콘스탄차의 얼굴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초상화가 완성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메디치가는 정략결혼을 위해 정부 콘스탄차를 버렸기 때문에 그림을 사지 않았다. 다빈치는 당시에 자신이 갖고 있던 다른 그림들과 함께 제2의 〈모나리자〉를 파리로 가지고 갔는데 그것이 바로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초상화이다.
이를 증언해주는 중요한 열쇠로 아라곤 추기경의 시종인 안토니오 베아티스라는 사람이 남긴 문서가 있다. 1517년 다빈치가 프랑스와 1세의 궁정에 갔을 때 아라곤 추기경이 그를 방문했다. 그때의 대화를 시종인 안토니오가 기록했는데 그에 따르면 추기경은 다빈치의 그림 몇 점을 보고 갔다.
성 요한의 그림, 성모 마리아와 성 앤의 그림, 그리고 플로렌티네의 어느 부인의 초상화, 이 그림은 메디치가의 줄리아노 대공의 요구대로 실제 모델을 보고 그렸다.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줄리아노 대공의 요구에 응하여 그린 모델은 바로 콘스탄차 아발로스이다. 이를 다시 부연하여 설명한다면 다빈치는 두 개의 〈모나리자〉를 그렸는데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것의 주인공은 콘스탄차이고 델 조콘다를 그린 〈모나리자〉는 남편 조콘도에게 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콘스탄차를 그린 〈모나리자〉는 완성품이고 델 조콘다를 그려 남편인 조콘도에게 준 그림은 미완성이라는 점이다.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리는 루브르박물관
다소 헷갈리지만 〈모나리자〉가 두 개 있다는 것은 이탈리아의 미술사가인 지오바니 파올로 로마초가 1584년에 적은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조콘다와 모나리자」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말의 뜻은 두 점의 그림이 따로따로 있음을 의미한다.
〈모나리자〉의 그림이 두 개라는 설명은 두 그림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과 완성된 작품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둘째 질문에 대한 답은 두말할 것 없이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특별히 방탄유리로 보호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줄기차게 거론되던 미완성으로 끝난 〈모나리자〉는 어디에 있는가? 델 조콘다를 그린 그림 말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이므로 다소 믿기지는 않지만 근래 〈모나리자〉에 대한 탐구는 그야말로 놀랍다. 미완성 〈모나리자〉에 대한 근래의 연구를 추적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빈치가 델 조콘다를 모델로 그린 〈모나리자〉는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계속 피렌체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이 미완성 작품이 18세기 중엽 이탈리아로부터 흘러나와 영국의 서머싯 주에 있는 한 귀족의 저택에 보관되었다. 이것을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배스의 휴 블레이커라는 미술상이 발견했다. 그는 이 그림을 저렴한 가격으로 입수하여 아일워스에 있는 그의 화랑에 간직했다. 이때부터 이 그림은 〈아일워스의 모나리자〉로 알려지게 된다.
<모나리자>보다 10년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미완성 작품인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아일워스의 모나리자〉는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보다 크며, 더욱 중요한 것은 진짜 미완성이라는 점이다. 배경의 그림도 가벼운 터치에 불과하다. 즉 이 그림이 루브르박물관의 그림보다 바사리가 기술했던 것과 훨씬 더 비슷하다. 바사리는 미완성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눈은 현실의 삶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그 반짝임과 윤기를 지니고 있으며 눈 주위는 비할 데 없는 정교함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붉은 붓놀림에서 오는 느낌과 속눈썹의 산들거림 ······ 콧마루와 아름다운 콧속은 장밋빛으로 요염하다. 살아 있는 듯하다. 입 주위는 위아래의 붉음으로 인해 얼굴빛에 녹아들고 색으로 칠했다기보다는 살아 있는 육체의 존재 그 자체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케네스 클라크 경은 이 문장을 보고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와는 완연히 다른 그림을 보고 설명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아일워스의 모나리자〉가 다빈치의 미완성 〈모나리자〉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도 제시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중의 한 명인 라파엘로가 1504년 다빈치의 화실에서 〈모나리자〉 그림을 본 후 스케치한 〈외뿔 송아지를 안은 여인〉에는 양쪽에 두 개의 그리스식 원형 기둥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식 원형 기둥은 아일워스의 〈모나리자〉에는 있지만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에서는 볼 수 없다. 블레이커는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쪽이 훨씬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미술가도 이에 동의했다. 특히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는 분명 삼십 대이다. 그런데 아일워스의 여성은 이십 대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외뿔 송아지를 안은 여인>
배경에는 <아일워스의 모나리자>에서 볼 수 있는 원형 기둥이 보인다.
〈아일워스의 모나리자〉는 1962년 수집가인 헨리 F. 퓰리처 박사가 주재하는 스위스의 신디케이트가 사들였다. 박사는 『모나리자는 어디 있는가』라는 책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그림이 진정한 〈모나리자〉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조콘다의 그림은 확실히 두 점 있다. 단 남편 이름의 여성형 어미 변화를 이름으로 가진 〈모나리자〉가 조콘다의 전통적인 권리를 가진다.
조콘다(Gioconda)는 남편의 성인 조콘도(Giocondo)의 여성형이므로 〈모나리자〉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루브르박물관에는 없고 런던에 있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루브르박물관의 그림은 단순한 오해로 ‘모나리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워낙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소재이므로 앞으로 정보가 많아지면 더 명확한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루브르의 모나리자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아일워스의 모나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