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 중앙일보 2024년 9월2일 기사 '서울대·의대 합격이 목표? “그러다 무너져” 1%의 경고 [최상위 1%의 비밀 ⑤'를 3회에 나누어 올립니다.
왜 공부해야 할까요?
최상위 1%의 학생들에게 학습 비결을 물었더니, 이런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왜 공부하는지 알아야 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의 순간 무너진다”고 경고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최상위 1%는 왜 공부를 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공부하기로 결심했을까요?
인정받는 게 좋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 세 가지를 묻는 질문에 서울대와 의학 계열 대학 재학생 102명 중 가장 많은 학생(66.7%)이 꼽은 건 바로 이것이었다. 주목받고 칭찬받은 경험이 학습 동기가 됐다는 얘기다. 심층 인터뷰에서 만난 20명은 여기에 조건을 하나 덧붙였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정과 칭찬은 오히려 슬럼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위 ‘칭찬의 역효과’다. 대체 이들이 말하는 칭찬의 역효과는 뭘까? 슬럼프를 딛고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솔직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다.
👊 멋으로 공부하지 마라
안현민(건국대 의예 23학번)씨는 수능을 네 번 봤다. 지금 대학에 입학하기 전 두 군데 대학에 입학했고, 자퇴한 경험도 있다. 수능을 네 번 치르는 내내 재수 생활을 하며 수능 공부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의대에 갈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학창 시절, 안씨는 소위 ‘인싸’(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로, 인사이더의 준말)로 통했다. 성격 좋고 리더십도 있어 늘 친구가 많았다. 공부도 곧잘 했다. 반에서 늘 4~5등 정도는 했다. 1등은 못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똑똑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멋’으로 했어요. 잘하고 싶었다기보다 똑똑해 보이고 싶었죠.
그가 똑똑해 보이고 싶었던 건 친구들의 인정 때문이었다. 두꺼운 책을 읽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서 친구들의 주목을 받는 게 좋았다. 똑똑해 보이려는 노력 정도로도 반에서 4~5등은 했다. 공부를 더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학원을 다닐 이유도, 심화나 선행 학습을 할 이유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것만 적당히 해도 “대단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오히려 영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더 좋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그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가 도화선이 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선생님도, 친구도 더는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주목받지 못하니 공부할 이유도 없었다. 책을 펼치지 않으니, 성적은 1등급(내신)에서 3등급으로 곤두박질쳤다. 자존심이 상했다. 다시 주목받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대만 고집했다. 열심히만 하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오만이었다. 동력을 잃은 그는 방향을 잃었고, 점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점수에 맞춰 한 지역 대학의 과학교육과에 입학했다.
돌이켜보면 안씨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에 진학해 보니 아니었다.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첫 학기 모든 과목에서 F 학점을 받았다. 별 수 없이 다시 수능을 쳤다. 이번엔 초등교육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역시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질문하지 않은 채 교사만큼 안정적인 직업이 없다는 말만 듣고 인생을 걸었구나.’ 앞길이 막막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세 번째 수능 원서를 냈다. 그리고는 아무 준비 없이 시험장에 들어갔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동안 점수들 중 가장 점수가 높았다.
지난 3년을 돌아봤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던 고3 때 시험이 오히려 성적이 낮았다. 그는 “그때야 비로소 내가 그간 헛공부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진짜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4수의 길에 도전했다. 대학 간판이 아니라 몰랐던 걸 제대로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왜 맞고, 왜 틀렸는지 캐물었다. 학원에 가지 않고 자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험 생활 내내 모의고사 점수가 제자리였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그동안 몰랐던 걸 하나둘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쌓이면 점수는 오를 거란 믿음이 생겼다. 그 결과 8개월 만에 수능 성적이 2등급 이상 올랐다. 그리고 그는 꿈도 꿔본 적 없는 의대에 진학했다.
이제 안씨는 남들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다. 뭔가를 하기 전에 늘 이렇게 먼저 묻는다. “나는 왜 이걸 하려 하지?”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남을 설득하기 전에 나를 먼저 설득하는 공부를 하세요. 그래야 진짜 실력이 쌓입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