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씀)
나의 닉 네임 산드라
본토 발음으로는 샌드라라고 한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서양식 영어 이름
이름을 서양식으로 지었다면서
한마디 들으면 속으로 좀 억울하기도 하다
틀린 말은 아니건만
절친이 두 아들의 미국 유학길을
같이 따라가서 뒷바라지 하고 있는 중이라
서로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당시 국제 전화비는 너무 비쌌기에
친구가 소통 수단으로 메일을 알려 주어서
컴맹이 더듬더듬 메일을 개통하는 중에
때마침 모니터에 광고가
57년생 닭 그림과 함께 뜨는데 반갑고 신기했다
컴퓨터는 주로 젊은이들과 가까운 기기
그들의 전유물이란 생각이었던 차에
57년생을 컴에서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느낌 방 카페 광고였다
뉴스에서 인터넷 카페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본 듯해 찜찜했지만
호기심이 발동 뭔지 알고나 보자며
나는 가입하고 있었다
회원 가입하려면 닉 네임을 작명해야 하는데
마침 켜 놓은 TV 에서
십대 청순미의 산다라 박이
필리핀 노래 경연대회 2등 수상하고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활약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래! <산다라>로 하자
신라 시대 쓰던 우리말이라고 한다
건강하고 지혜롭고 등등 뜻도 아주 좋았다
흘깃 TV 봐 가며 분명 <산다라> 라 한 것 같은데
오타였나 보다
웬 <산드라>
산드라 블록 팬도 아니었고
에로 배우 산드라 비디오도 본 적 없는데
어찌하여 산드라로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닉 네임을 우습게 알고 성의 없이 했나 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로 이렇게
오래 쓸 줄 알았더라면
심사숙고 했을 텐데
어쩐지 내 뜻대로 지은 이름이 아닌 거라 아쉬웠다
산드라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오타로 인해 지어진 이름
내 생각이 담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어느덧 정든 이름이 되었다
잉글리쉬 네임이 산드라
이번에는 오타 아닌 내 뜻으로 정했다
에피소드 하나
ㅡㅡㅡㅡㅡㅡㅡㅡ
멀리 제주도 사는 카페 친구와 친해져서
핸드폰으로 수다 떠는 시간이 거듭되었다
만나지도 못했지만 플래닛 사진으로
보는 걸 대신하며 우리는 정을 쌓아갔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제주 특산물을 우리 집에
택배로 보낸다고 하는 게 아닌가?
선물보다 친구의 정다운 마음이 좋았지
바로 우체국 가서 부쳤다면서
그런데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와
내 실명은 모르고 있다는 걸 그제야 실감하고
그냥 <산드라>라고 했단다
드디어 우리 집에 택배 도착하는 날
''딩동~딩동~!
초인종이 울리는데
하필 난 샤워 중
곧바로 나갈 형편이 아니라서 지체했더니
택배 아저씨 성질 나오며 현관문을 꽝! 꽝!
목청껏 큰 소리로
''산드라씨 !산드라씨! 계세요오!?''
''아고고고 ~~!
옆집에서 들으면 어쩐다냐
내 이름 산드라 아닌 거 다 아는데''
아무거나 걸치고 젖은 머리엔 타올 터번을 감고
황급히 겸연쩍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자
아저씨 의아한 표정은 이런 마음인 것 같았다
(어라??
외래종인 줄 알았는데 국내산 토종이네)
서양 이름 덕에 겪은 소동이었다
닉 네임이야 어떻든
결 고운 친구에게
서울 특산물 보내고 싶은데 뭐가 적당할까?
~오고 가는 택배 속에 싹 트는 우정~
카페 게시글
2005년
닉네임 (2005년)
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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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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