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0-10
뜸 들 이 기
박 병 민 목사(새터공동체)
으악새가 슬피 운다고 불러 댔던 가을이다. 여름 동안 푸른색을 띠던 벼(禾)가 불볕(火)에 누런빛으로 익어 가는 가을이다. 벼가 자라온 것을 생각해 볼 때, 볍씨를 뿌려 못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빽빽 히 자란 어린 모가 여름내 크게 벌어 가며 자라갈 곳에 사이를 지며 다시 심겨지는 모심기를 한다. 다시 심겨진 어린 모는 계속해서 흙 위에 서서 물과 바람과 볕을 받으며 자라간다. 낱알로 심겨 저서 여러 달을 이것저것 받아가며 자란 벼는 알알이 알곡으로 맺어, 심은 이들의 손에 들려준다. 하루 이틀 곧바로 자란 것이 아니다. 한동안 자란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지만,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출애굽기 3:14) 스스로 그렇게, 즉 자연(自然)스럽게 자라게 해서 결정체(結晶體)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하루 저녁 동안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지만, 자연은 시일이 걸려서 되어 간다.
한 아이가 자기 키 만한 작은 나무를 고운 흙으로 심고, 지나칠 정도의 물을 주어가며 보살폈다. 아이가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나무에게 자주 물을 먹여가며, 어루만지며, 마음속에서 커져 가는 나무만큼이나 자라주기를 바랬다.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런데 나무는 아이의 그림에 미치지를 못한다. 옆에 있는 큰 나무는 더욱더 자란 듯 싶다. 그렇지만 눈앞의 나의 나무는 더 작아져만 가는 듯 하다. 아이는 샘이 났다. 큰마음을 먹은 뒤, 나무에게 발 거름을 옮겨 나무 양옆을 두발로 지긋이 밟고, 나무가 빨리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두 손에 모아 나무를 위로 조금 당겨 올리었다. 햇볕에 물이 마를 때마다 물주는 것 못지 않게 두 손으로 나무를 당겨 올리며 키워갔다. 그런데 해가 몇 차례 더 떠오르는 사이에 그 나무는 하얗게 늙더니 곧 죽고 말았다. 스스로 그렇게 자라기를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쌀로 밥을 짓는다. 밥은 푹 뜸이 들어야 맛이 있다. 서둘러 밥을 지으면 뜸이 들지 않은 설익은 밥이 될 수밖에 없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시간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기다림이 필요한데, 그 새를 못 참을 때가 많다. 누구 말대로 빨리빨리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뜸들인 음식보다는 즉석식품인 인스탄트 식품을 좋아라 한다. 자라 가는 아이들은 더욱 더 그렇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죽을 경우 땅 속에 묻혀도 잘 썩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유는 방부제가 들은 라면을 많이 들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자연물이 아니고, 재료를 가지고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제품(製品)이다.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집밖을 나갈 때도 안에서 급히 준비하는 아내에게, 밖에 미리 나가 있으면서 서두르라고 재촉 해댄다. 버스를 타고 가게 되니 늦을세라, 아이들을 데리고 걷는 아내를 훨씬 앞질러 간다. 여럿이 산에 등산(登山)을 할 때에도 잘 오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을 만큼 앞서 오른다. 하산(下山)을 할 때에는 뒷사람을 잊은 듯 내려 달린다. 미리 가서 기다리고 서 있다. 뒤쳐진 사람은 앞선 사람에게 맞추어 가기 위하여 비지땀을 흘리며 좇아간다.
매사에 “장애인 먼저”라는 말이 항간에 퍼뜨려져 가고 있다. 더 널리널리 불 번지 듯이 번져 갔으면 한다. 뜸들이는 사람을 기다려주며, 더 앞에 나서게 하는 세상. 함께 만들 세상이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공동체 이야기
가 을 걷 이
덮고 잤던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접어 농짝 안에 집어넣듯이, 집밖의 문전옥토(門前沃土)에 알차게 익어, 흐드러지게 널려져 있는 곡식들을 베고, 털어 집 안 곳간에 들인다. 겨울 내내 꺼내어 먹기 위한 준비. 여기서부터 겨우살이의 준비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10월 23일이면 상강(霜降)이다. 서리 내리기 전에 거두어들일 것들을 찾아 따내고, 베고, 벤 것을 가지고 털고, 털려 떨어진 알알들을, 이번에는 키로 까부르고, 체로 쳐낸다. 그렇게 한 것들을 아침과 저녁에 내고, 들여가며 볕에 말린다. 말려진 것을 비로소 들여 넣는 것이다. 들에서는 사람들을 부르지만 채 일손이 모자라기까지 한다. 이것저것 추수 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적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때이다. 귀 넘어 들리는 마을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다 익은 벼 베고, 털고 하는 일이 일 중에 큰 일인 듯 싶다. 이 일 만큼만이라도 마치게 되면 일들을 거반 한 것으로 느껴지시는가 보다. 남의 기계 힘 빌려서 하는데도 그러니, 그전에 손수 탈곡하는 때에는 얼마나 힘겨웠겠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것을 심는 중에, 마을에 계신 집사님 덕택으로 꽤 많은 고추를 심었는데, 주신 분의 성의에 답하기라도 하듯 잘 되었다. 자라면서 짓무르고, 떨어지는 것도 적었다. 고추는 따서 잘 말리는 일이 큰 일이다. 우리는 넓은 들마루의 지붕을 제쳐놓고, 그 들마루를 온통 비닐로 덮어씌웠다. 그리고 밑의 마루에는 볕을 잘 흡수하려고 검은 막을 깔았다. 지붕에 물이 고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떠받들고, 바람에 날릴 것 같아 옆을 여미고 동여맸다. 지금 들여다보니, 고추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밭에서 거둔 것을 들여놓고 비를 피하여 말릴 수 있으니 온화하게 보인다. 이런 것을 짓고 세우는 일에는 박 집사님이 잘 꾸며댄다. 꾸며진 곳에 이렇게 저렇게 거두어들이며 속을 채우는 데는 처가 한 몫 한다. 그 곳 한쪽 옆에는 토끼가 먹을 콩잎, 잎이 달린 칡넝쿨, 고구마넝쿨도 다발로 갖다 넣고, 조금씩 꺼내다 먹이로 준다. 짐승 먹이가 가득히 쌓여진 것만 보아도 부유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집안의 여기저기에서 가을뿐만 아니라, 내내 부유함을 느끼고 싶다.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이 곳이 공기 좋고 물이 맑아서 좋은 곳이라는 예사 말들을 하곤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가운데 집에 들어 사는 우리들도 늘 사람 좋고, 인심 좋은 이들 이라면 자연과의 그지없는 어울림 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런 부유함 속에서 사는 것이 큰 바램이다.
들녘에도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지니는데, 집 안 뜰을 밟는 우리들도 다음과 같은 알찬 사람이었으면 한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라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후서 7:8-10)
공 동 체 소 식
☻ 새터 공동체 가족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99. 7.16)
어귀녀 (00. 1.15)
박종만 (00. 5.28)
정무래 (00. 7. 1)
박영훈 (00. 7.30)
문창수 (00. 8. 9)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하신 분들
낭월교회4여전도회.왕지교회.대전서노회전도부(허성행.정진모.노영민).제원교회(조종국).대전서노회사회부(김은구.김종생).김영모.튼튼영어.일양교회.판암제일교회.이원교회.이정애.권부남.진수정권용춘.박종만.금산군새마을부녀회.낭월교회4여전도회.대전서노회.예수마을.튼튼영어.새빛교회.한삼천교회.영운교회.대덕교회.김광수.이종국.유인숙.채윤기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