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살림 길 위에서 과학을 연구하고 싶어요!
-살림꾼 용헌 님 이야기-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서울 인수마을에서 지내며 정답고 어진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용헌입니다. 대학원에서 아주 작은 물질들을 탐구하는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빛알찬중학교 영어 수업과 인수 어린이두레에서 마을삼촌으로 온 우주 품고 있는 존재들 만나며 지내고 있습니다.
용헌 님이 만나고 있는 과학에 대해 알려주세요.
제가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입자물리학은 우리 눈과 귀, 손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아주 작은 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알고 느끼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눈, 귀, 코, 입 등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태가 다르듯이 하나의 대상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느끼느냐에 따라 그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데요. 그런 점에서 과학이 인류가 지닌 또 다른 감각이라는 생각을 해요. 입자물리학을 통해 아주 작은 존재로부터도 자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얻은 감각은 광대한 우주를 더듬는 데 쓰입니다.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알기도 힘든 우주가 아주 작은 씨앗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때, 그 작은 씨앗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앞서 이야기한 아주 작은 존재를 알고 느끼는 일로부터 가능합니다. 우주의 작은 먼지라 할지라도 그것을 느끼는 감각 자체로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과학을 만나고 있습니다.
살림꾼으로 함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학교에서도 과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특별히 살림학연구소에서 과학연구 해나가는 일에 어떤 특이점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고교 시절부터 줄곧, 과학이 정말 인류에 필요한지 고민했습니다. 대학에 와서 그런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인류 역사에 많이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했지요. 어떤 이들은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접근해서 풀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철학적으로 파고들기도 했어요. 신학이나 철학으로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작 과학을 배제해버리는 일도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과학을 공부했던 대학 현장에서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과학이 온 생명에게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소통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과학이 일상과 떨어진 채 그저 과학의 발전을 쫓기만 할 뿐이라는 점이 과학을 연구하며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이었지요.
오히려 과학 연구 현장이 아닌 곳에서 제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을 어린이들은 제가 하는 과학공부에 궁금함이 많아요.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주며 교감하는 건 참 즐거운 일입니다. 동시에 제가 하는 과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대 과학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그저 책에서 배운 대로만 설명한다면, 자연을 알아가고 만나갈 때 어떤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현대 과학만이 자연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한 어린이에게 제가 연구하는 입자물리에 대해 한창 설명하고 있었는데, 귀 기울여 듣던 어린이가 “왜 그런 걸 해요?”라고 되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 보통 입자물리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세상 만물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특정 방식의 사고를 주입하는 것처럼 느껴져 잠시 말문이 막힌 기억이 있어요. 그제야 제가 아직 과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과학이라는 도구를 전달할 때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결국 과학자라는 직업의 틀을 벗어나 과학이 어떻게 생명 현상을 풍부하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 깨달음이 우리 일상을 어떻게 살림으로 이끄는지를 연구해야 하고, 그것이 살림학연구소에서 과학연구를 해가는 특징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생명살림 길 위에 있지 않다면, 우리 시대 과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도구로 쓰이기 십상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론적인 작업만이 아니라 생명살림 길 위에서 연구와 실천을 순환하며 생명을 살리는 과학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기대하며 꿈꾸는 바를 나누어주세요.
살림꾼들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과학 연구의 길이 무엇일지 고민해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이 문명에 끼쳐온 영향을 이해하고, 우리 일상과 사고에 어떤 구체적 현실을 만들고 있는지 성찰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땅에서 살아온 선조들은 과학문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 그에 앞서 과학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자연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살펴보는 연구도 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작업을 거쳐 지금의 과학이 거듭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학적 사고가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을 주목하는 연구도 하고 싶습니다. 과학으로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자연원리를 깨달아 알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탐구하는 과정을 연구주제로 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살림꾼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과학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과학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과학 교육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인데, 그에 앞서 과학을 대하는 삶의 태도를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하겠지요. 함께하는 연구를 통해 과학을 삶의 예술로서 누리고, 또 누린 것을 맘껏 나누는 연구하면 좋겠습니다.
용헌_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작은 티끌 속에 우주가 있다는 이야기 품고 대학원에서 입자물리학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