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과 임진란(壬辰亂)의 1
세종(世宗) 때에 삼포(三浦)를 열어 일본(日本)과 통상(通商)을 허락(許諾)하였더니 중종(中宗) 때에 거류민(居留民)의 반란(叛亂)으로 붙어 통상이 막히었고 그 후(後)로 종종(種種)의 반란(叛亂)이 있었으나 그리 큰 일이 없더니 중종(中宗)과 명종(明宗)을 지내고 선조(宣祖) 초(初)에 와서 일본 괴걸(怪傑) 풍신수길(豐臣秀吉)이 국내(國內)를 평정(平定)하고 스스로 막부장군(幕府將軍)이 되어 명국(明國)을 엿보더니 선조(宣祖) 28년 임진(壬辰) 4월 13일에 장수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가등청정(加藤淸正)과 흑전장정(黑田長政) 등을 보내어 군사 20여만으로써 부산(釜山)에서 침입(侵入)하여 동중서(東中西) 삼로(三路)로 진군(進軍)하거늘 선조(宣祖)가 이일(李鎰)과 신립(申砬) 두 장수를 보내어 막을 새 이일(李鎰)은 상주(尙州)에서 패주(敗走)하고 신립은 충주(忠州)에서 패사(敗死)함으로 조야(朝野)가 크게 놀래어 선조(宣祖)가 의주(義州)에 파천(播遷)하시고 5월 3일에 경성(京城)이 함락(陷落)되고 평양(平壤) 이남(以南)은 행장(行長)에게 함경(咸鏡)은 청정(淸正)에게 밟힘이 되었느니라.
- 한글
세종 때 삼포를 열어 일본과 통상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중종 때 거류민들의 반란으로 통상이 막혔고, 이후 종종 반란이 있었지만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선조 초기에 일본 괴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내를 평정하고 막부 장군이 되어 명나라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선조 28년(1592년) 4월 13일, 히데요시는 소서행장,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등을 보내 군대 20만 명으로 부산을 침략했습니다.
이에 선조는 이일과 신립 장수를 보냈지만, 이일은 상주에서 패퇴하고 신립은 충주에서 전사했습니다. 조정이 크게 놀라 선조는 의주로 피신했고, 5월 3일 경성이 함락되었으며, 평양 이남은 소서행장에게, 함경도는 가토 기요마사에게 점령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