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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6일 주일 메시지 (설교안)
시리즈 주제: 에베소서 강해8
여덟 번째 설교
제목: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에베소서 2:1~10
설교를 위한 묵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바울은 산 자와 죽은 자, 그 때와 지금의 이분법적 대조를 시도한다. 이것은 기존 신자들을 격려하고 더욱 돈독한 신앙으로 굳게 세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을 위해서 어떻게 설교의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인가? 교회 내부의 신실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초심자들을 먼저 생각할 것인가? 어쩌면 그 둘 사이에는 전혀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새롭게 게임의 법칙을 제공하면 된다. 즉, 쉽게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한번 시도해 보자! 바울이 이천 년 전에 시도한 것을 나는 지금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같다.
편지를 읽어보면 바울이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너희’라는 주어가 있는 문장은 수신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나서 자라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이들은 유대인이다. 그러므로 그 두 진영 사이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차별의식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 차별의식을 제거하고 서로 화합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 바울에게는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설교를 듣는 대상을 21세기 현대인으로 설정하고, 구약성경의 전통에 대해 무지하지만 바르고 풍성하고 알차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나의 청중을 생각하겠다. 그들은 의미 있는 삶, 다른 사람들과 더 연결되어 서로의 삶을 나누고 그 속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참 인간의 삶이란 서로 소통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삶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런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
설교 개요
1.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2.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
3.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4. 새롭게 지음 받은 걸작품
1.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어떤 것을 보고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하거나 또는 ‘죽었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색깔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살아 있고 생기 넘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의 감정은 살아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꿈과 의욕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살아 있네!’라고 말하면서 놀라워합니다. 어떤 운동선수가 은퇴한 후에도 실력을 발휘하면 우리는 또한 ‘살아있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어떤 생물이나 사람이 그 본연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을 치렀다고 합시다. 총을 쏘는 싸움이 아니라 몸을 부딪히면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소대장이 한참 만에 적을 물리치고 나서 둘러보니 수많은 군인이 들판에 누워있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산 자는 일어나 나를 따르라!” 그 때 누워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소대장의 목소리에 반응을 하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군인입니다. 이처럼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부름에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죽은 군인은 불러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이 되면 가로수가 앙상해집니다. 차갑고 매서운 추위가 겨울의 가로수들을 할퀴고 얼립니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다시 가로수의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납니다. 기온이 오르고 일조량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온에도 반응하지 않고 봄비가 내려도 싹이 나지 않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는 죽었습니다. 겨울에는 똑같아 보여도 봄이 되면 반응하는 나무와 반응하지 않는 나무는 이처럼 구분됩니다.
사람의 경우에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살아 있는지 여부가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대~한민국!’이라고 외칠 때 박수를 다섯 번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국인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전국민이 응원을 펼쳤는데 그 때 함께 외치고 박수 치던 공통의 경험이 그런 반응을 일으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게마다 점포 앞 도로의 눈을 쓸어내고 서로 힘을 모아 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합시다. 그런 광경을 보도하는 기자는 아마 ‘시민의식이 살아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을 보고 그에 대한 책임 있는 말과 행동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시민의식이나 공동체의식 또는 정신이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눈이 내려 도로에 잔뜩 쌓였으며 쓰레기가 많아 주변이 더러운데도 그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지 않고 방치할 때, 그 공동체는 주인의식이 실종되었거나 공동체정신이 죽은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바울 사도는 ‘죽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그리스도인들의 과거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어떤 것에 대하여 반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엇에 대하여 반응을 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반응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허물과 죄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허물은 과녁을 빗나간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삶을 말하며, 죄는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서 대개 약속을 어길 때 발생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어기며 살아갈 때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뜻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를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언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거나 하나님께 계명을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 곧 유대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버리고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마치 포도나무에서 잘린 가지가 땅에 떨어져 시들어가더니 나중에는 부패하듯이, 그 백성의 생활이 무질서해지고 다툼과 폭력이 증가하고 우상숭배와 같이 헛된 것에 마음을 쏟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크게 상처를 입고 신음하다가 죽어갑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부패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그림자 또는 죽음의 징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망의 열매라고 합니다(롬 6:21).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유대인들만 그렇게 부패해지는 것이 아님을 바울은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도 동일한 불의와 부패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창조주를 잊고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바울은 진단을 합니다. 그것은 창조주를 저버리는 행동이며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 창조주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 의하면, 오늘날 온 세계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까닭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에 대하여 바르게 반응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살다 보니 이렇게 지구는 진노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행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언젠가 이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성의 땅속을 헤집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진노의 날이 어떤 식으로 올 것인가를 예상하면서 할리우드에서는 미래에 다가올 재난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죽음의 상태에 있다는 말이며 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반응할 수 없고 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은 ‘비인간적인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신음하는 곳, 진노의 자리가 되어갑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세상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구원은 다시 하나님의 뜻에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그렇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기에 더 좋은 곳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마침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가 사람을 죽게 했다면, 구원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살아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는 구원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살아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세상을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니다.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장 약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돌보십니다. 꼴찌를 가장 크게 칭찬하십니다. 죄인이나 배척 받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용서하고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 사람들에게 아부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지으신 자비롭고 정의로운 참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웃음과 희망이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을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험하다고 여기면서 죽일 기회를 찾았습니다. 마귀가 자신들의 욕심과 자존심을 부추기는 줄 모르고 유대 지도자들은 몇 번의 회의와 재판 끝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친한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들이 죽였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의 옳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죽어서 망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리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참 아들이심을 만인에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승천을 500여 형제들이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한 자리에 모여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너희에게 약속대로 성령을 보낼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일 만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다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뜨거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면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셨구나! 이제 우리 주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통치하시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계시겠구나!’
그래서 제자들은 이제 성경에 이른 것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로 인정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자기들 가운데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일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그 말은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의 영이 이끄심을 따라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드디어 사람이 하나님께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1:4,5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으로 사셨고 죽임을 당하셨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그런 모든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연합하여 죄와 허물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뜻을 돌이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반응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다시 새롭게 될 것입니다.
4. 새롭게 지음 받은 걸작품
그렇게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십니다. 마침내 사람이 하나님께 다시 반응을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속한 그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결혼을 하여 남편과 함께 살아가다가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그 여인은 영부인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에 올려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도 그런 영광이 주어집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자리에 앉게 하여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6, 공동번역성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으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의 통치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영부인이 대통령을 따라 해외순방에 동행하면서 그 통치에 참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집니다.
전에는 세상에 있는 가치관과 풍습에 반응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전에는 더 많은 재산, 더 큰 지위나 명성을 얻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나도 하고 싶어집니다. 아니, 예수님이 남겨 두신 일을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고, 예수님처럼 도우며 살고 싶고, 예수님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신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고 싶어집니다. 전에는 세상에 대하여 살았으므로 세상 욕심에 더 크게 반응했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반응할 줄 몰랐는데, 이제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반응이 줄어들고 하나님께 더 크고 신속하게 반응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바울은 이렇게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공동번역성경
전에 살아가던 바울의 삶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새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아니, 다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과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새 사람임을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강력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새롭게 된 사람임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늘 새롭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새롭게 하셨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생기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자유인이 아니라 종노릇 하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도 다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에베소서 2:10, 공동번역성경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작품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는 세금공무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망가진 기계와 같았습니다. 욕심에 반응하고 동정심에 무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동네 사람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노력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에 악덕 세금공무원이었던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사실 그렇게 다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를 새롭게 새 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전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면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고, 반대로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세상에 대하여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전에는 세상에 대해서 살고 하나님께는 죽었던 사람도 이제 길을 돌이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지으심을 입은 새 사람입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지으시고 새 영을 우리 마음 속에 주셔서 늘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은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이 성탄절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들도 다시 태어난 새 사람이며,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으며,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은 온 인류에게 기쁨의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으로 살아갈 세상도 우리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새 사람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들을 통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끝>.
예비 묵상: http://cafe.daum.net/Wellspring/VfiY/13
다른 설교들:
에베소서 강해3. 하나님 우리 아버지:
동영상: https://youtu.be/RE2FGSS7b_c
설교안: http://cafe.daum.net/Wellspring/VfiY/4
에베소서 강해4. 주 예수 그리스도:
동영상: https://youtu.be/lXU3mJuhxkQ
설교안: http://cafe.daum.net/Wellspring/VfiY/6
에베소서 강해5. 하나님의 계획을 새롭게 소개하는 바울1
동영상: https://youtu.be/HJkDNVhXBqQ
설교안: http://cafe.daum.net/Wellspring/VfiY/8
에베소서 강해6. 하나님의 계획을 새롭게 소개하는 바울2
동영상: https://youtu.be/IPqpJ8gxtL4
설교안: http://cafe.daum.net/Wellspring/VfiY/10
에베소서 강해7.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동영상: https://youtu.be/MZO3wATXpuA
설교안: http://cafe.daum.net/Wellspring/Vfi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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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08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설교안) (1) (1).doc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