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해가 일어남
고구려가 멸하고 안동 도호부가 된 후에 대략 남쪽에 있는 각 고을은 항복하여도 북에 있는 각 고을은 항복지 않고 나라가 없어졌다는 소문만 들을 뿐이다. 북에 있는 백족들이 한데 뭉치여 반항운동을 일으키고 남쪽은 신라의 반대가 있어 도호부란 것은 꺼꾸러지고 흑수부(黑水部)와 백산부(白山部)를 중심하여 반항운동이 더욱 맹렬하였고 예전 고구려 장수 대중상(大仲象)이 아들 대조영(大祚榮)과 함께 운동을 일으켜 영주(營州)에 웅거하며 걸단(桀丹)의 힘을 빌어 당에 반항하더니 중상이 걸단과 같이 당을 치다가 걸단이 패함에 중심이 다시 조영과 함께 태백산북에서 말갈(靺鞨) 추장 걸비사우(乞比四羽)와 함께 다시 군대를 만들어 당을 치니 때에 당의 여주(女主) 무후(武后)가 대병을 보내어 막거늘 이때에 걸비사우는 전사하고 중산은 병으로 죽으니 조영이 이에 고구려 유민과 말갈사람을 다시 합하여 가지고 크게 당군을 파하니 적장 이해고(李楷固) 달아나거늘 조영이 이에 중경(中京=吉林)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진(辰)이라 칭하다가 고구려 백성들이 다 돌아오고 말갈 백성들도 다 와서 붙이니 고구려의 옛 땅을 거의 다 회복되어 큰 나라를 이루었다. 당이 이에 발해(渤海)라 칭함으로 인하여 발해로 이름 하니 이가 곧 발해 태조이고 때는 기원 3018년이니 고구려 멸한 지 17년이다.
조영의 위인이 큰 뜻이 있고 또 성품이 단후하며 또 활쏘기를 좋아하더니 이에 왕위에 오름에 크게 무비를 닦어 강병을 만들고 또한 문화를 일으켜 5경 15부를 두니 해동 성국(郕國)이라 칭하다. 예전 고구려의 땅을 다 차지하니 지방이 5천여리라. 신라와 돌궐에 사신을 보내여 건국을 통지하고 또 서쪽에 강병을 두어 걸단과 당을 막고 내정에 점점 완비되니 이때 우리 조선 안에는 엄연히 두 나라만 존재하여 있으니 남신라 북발해 남북 양조시대라 일컸다. 그 지역은 남은 신라와 접하고 동은 흑수 말갈과 접하고 서는 지라 당과 접하였다. 당에서는 늘 간섭하려고 조영의 아들의 입시(入侍)를 구하여 무슨 봉작을 주겠다 하나 다 받지 않고 다만 자제들을 당에 유학을 보내어 그의 문화를 배워오다. 모든 제도가 당을 모방하여 문화가 찬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