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궁중이 문란
공민이 원에 대하여 반항운동을 일으켜 원에 붙였던 잔당을 다 숙청함과 동북과 서북에 원의 점령하였던 땅을 도로 회수 하는 등 그런 일을 마친 후로는 마음이 게을러지고 또 자기의 아들없는 것을 슬퍼하여 왕비 익비(益妃)에게 아들을 얻으려고 하던 중 궁중이 문란하여졌다.
하루는 꿈을 이루어 몹시 고민하였다. 어느 장한이 칼을 들고 와서 왕을 해하려 하거늘 또 어느 장부가 와서 칼든 장한을 쳐 물리치고 왕을 구원하였다. 꿈을 깬 후 꿈에 보던 사람을 찾으려고 사방으로 찾다가 옥천사(玉川寺)에 중 한 사람이 있어 꿈에 보던 사람과 똑같은지라.
왕이 그 중을 불러 성명을 물으니 편조(遍照)라 한다. 궁중에 불러 들여 말하여 보니 총명하고 또 말을 잘하는지라 왕이 크게 기뻐하여 시승을 삼고 국정을 고문하더니 변조가 들어온 지 두 달 만에 변조의 참소로 인하여 무죄한 중신들의 파면이 심하였다.
시중 이공수(李公遂) 경천흥(慶千興)과 판삼사 이수산(李壽山)과 찬보사 이인복(李仁復)과 이귀수(李龜壽)와 장군 최영(崔瑩) 등이 다 편조의 참소로 인하여 파직을 당하였고 혹 귀양도 보내었다. 편조는 진평후(眞平侯)를 봉하고 삼중대관보국 벼슬을 주고 성은 신(辛)이라 하고 이름을 돈(旽)이라 하다.
왕이 신돈을 신임하니 신돈은 중으로 왕의 사랑을 얻고 그 후에 높은 벼슬에 올라 국권을 오로지하고 따라서 교만 방자하여 왕과 호상(胡床)에 마주 걸터앉으며 서로 대화 하는 고로 이조년(李兆年) 같은 직신이 있어 신돈을 보고 호령하되 네가 일개 신하로서 어찌 지존(至尊)과 같이 상에 걸터앉냐는 소리를 높이었다. 신돈이 두려워하여 땅에 떨어졌다 하니라.
왕이 일찍 격구장(擊毬場)에 계시사 결구하는 것을 구경하더니 신하는 다 일어서서 왕을 모시고 신돈은 말을 타고 누하에 와서 말에 내려 누상에 올라가 왕과 같이 마주 앉으며 유탁이 술을 나누되 신돈이 앉아 받고 신돈의 복식이 왕과 똑같은지라. 제신들이 다 두려워하여 말하는 자 없으며 하루는 왕이 돈의 집에 가서 돈과 같이 걸터앉아 재배와 같이 대우하니 일반 인사들이 절치부심하여 미워하더라.
왕이 일찍이 얼굴이 아름다운 소년들을 불러 모아 이름을 자제위(子弟衛)라 칭하고 궁중에 모여 놀고 비빈들과 교통을 허락하였다. 그 가운데 아들을 낳으면 자기 아들로 정하리라 하더니 하루는 환자(宦者) 최만생(崔萬生)이 왕께 아뢰데 익비가 태기가 있나이다. 왕이 익비에게 물으니 임신이 임의 5개월이라 한다. 왕이 가로되 환자 최만생을 죽여 그 입을 멸하리라 하니 만생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홍륜(洪倫) 한안(韓安) 권진(權瑨) 홍과? 노선(盧瑄) 등이 공모하고 침전에 들어가 왕이 대취하여 누운 것을 만생 등이 칼로 왕을 쳐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