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세소리는 자연성
삼일운동의 소리는 우주 생명의 자연성이요 세계 대세의 금할 수 없는 운동이다. 또 견딜 수 없어 살 수 없어 나오는 부르짖음이다. 우리는 나라 잃은 원한보다 나날이 심각해가는 일적들의 포학한 정치이다. 이것을 반항치 않고는 살수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죽지 않았다는 소리가 내외국에 자꾸 들려졌다.
우리는 역사가 있고 언어가 있다. 예전 고구려 백제 활동의 민족운동을 보시오 하고 외쳤다. 하물며 이상에 의논한 학정이랴 그 무서운 감시 중에도 우리의 활동은 쉬지 않고 계속하여 언제든지 회만 있으면 하고 기다렸다.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나고 독일이 꺼꾸러지고 1918년 1월 1일 미국 윌슨 대통령의 제출한 민족자결주의에 인하여 세계 피압박민족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는 이때 누구보다도 우리 조선 민족이 가장 예민하게 들려졌다. 이런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던 중 우리도 대세에 순응하여 해내해외를 물론하고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오랜 날짜를 두고 계획하다가 먼저 동경유학생으로부터 대표가 경성에 와서 손병희 외 여러 유지들과 암암리에 연락하여 가지고 조선 민족대표 손병희 이하 33인이 서로 연결하여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놓고 시기를 기다린다. 그 이듬해 1919년 기원 4252년 2월 22일에 고종제 승하 하시고 국장은 동 3월 3일이다.
이때 13도 인민들이 고종제 인산(因山)으로 모여들어 왔다. 3월 1일에 민족대표 33인이 경성 탑동공원에 모이고 약속하였던 학생과 인민 수만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높이 불렀다. 그날은 서울이 물끊듯이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각국 공관과 각 사회에 다 선언서를 보내고, 동경에도 국회와 정부에 대표를 정하여 보내고, 중국에도 대표를 보내고, 구미대표는 특히 현순으로 정하여 보내고, 국내 각 지방에 대표를 보내어 중앙으로부터 각 지방에 한날에 운동을 일으켰다.
미리 약속하였던 청년학생대가 중심이 되고 경성 시민 합하여 시위행렬을 시작하여 40-50만 명이 만세를 높이 부르며 종로와 덕수궁 앞과 진고개 남대문 통 전시 중 요지에 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대표들은 전화로 경시청에 기별하고 우리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처분대로 하시오. 일적들도 법률에 의거할 곳 없으니 검거치 않다가 오후에 가서 대표자를 검거하고 만세 부르던 자도 검거하였다.
이날은 일기도 청랑하고 장안에 들리는 것 만세소리 뿐이다. 민중들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나 하도 고생하던 끝이라 남녀노소 없이 만세를 부른다. 종일토록 장안에 흩어진 독립선언서가 눈같이 흩어진 것이 그 이튿날은 경시청으로부터 전부 압수하였으나 불구하고 자꾸 다시 인쇄하여 돌리니 경시청에서 집집마다 등사판을 압수하는 등 금할수록 만세소리가 들린다. 남에서 금하면 북에서, 북에서 금하면 남에서 암암리에 부르는 소리는 도저히 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