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비유로 압축한 유전자 중심 진화관
2026. 9. 19. 00:30
이기적 유전자 : 5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
어떻게 대중과학서가 50년 동안 거듭 출판될 수 있을까. 그것도 본문을 거의 고치지 않은 채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50주년판을 읽으며 먼저 드는 질문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장수하고 있지만, 세이건의 글에는 거대한 우주 앞에서 한없이 작으면서도
그 우주를 탐구하기에 눈부신 인류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런 감동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도 책은 서문과 에필로그를 덧붙이며 판을 거듭했다.
그사이 유전학과 생물학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도킨스는 40주년판 에필로그에서 그럼에도 자신의 핵심 주장이 왜 살아남았는지를 자못 뿌듯하게 설명했다.
50주년판에서는 그 시선을 인공지능까지 넓힌다.
영문판 『이기적 유전자』가 처음 출간된 해(1976년)의 리처드 도킨스. [사진 을유문화사]
도킨스가 꼽는 이유는 하나다. 유전자 중심의 진화관이다. 돌이켜 보면 자명하게 옳은 생각이었다.
그가 누차 강조하듯 자신이 처음 만든 관점은 아니다.
여러 논문과 연구에 흩어져 있던 생각을 하나의 시각으로 묶어 일반 독자에게 내놓았다.
진화에서 개체가 얼마나 훌륭하거나 행복한지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다.
다음 세대의 유전자 풀에서 어떤 유전적 변이가 더 많아졌는지가 중요하다.
카메라를 이쪽으로 옮기면 개체에게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도 달리 보인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거는 부모, 번식을 포기하는 일개미, 서로 돕는 동물의 행동도 그렇다.
협동과 이타성은 자연선택의 반례가 아니라 자연선택이 낳은 결과들이다.
독자로서는 이유를 하나 더 꼽고 싶다. 탁월한 카피라이팅이다.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밈’. 복잡한 논의를 몇 글자의 강렬한 이미지로 압축한다.
문제와 논쟁도 바로 이 압축에서 생겼다. ‘유전자’부터 그렇다.
학교에서는 흔히 유전자를 DNA 염기서열 가운데 RNA로 전사되고 그 일부는 다시 단백질로 번역되는
기능 단위라고 배운다. 분자생물학적 정의다.
도킨스의 ‘유전자’는 다르다.
여러 세대에 걸쳐 함께 전달되며 자연선택의 단위로 다룰 수 있는 염색체의 한 구간이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분자생물학적 유전자 하나일 수도 있고,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덕분에 함께 복제되는
분자생물학적 유전자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유성생식에서 재조합이 거듭되면 그 경계도 달라진다.
고정된 부품이라기보다 일정한 시간 규모에서 복제와 선택을 추적하기 위해 잡는 단위에 가깝다.
이런 유연성이 역설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분자유전학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기적’이라는 말도 과감한 압축이다. 유전자는 욕망은커녕 외부 세계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학술적으로 정밀한 표현이라기보다 강렬한 비유다. 그렇다고 쉽게 틀렸다고 하기도 어렵다.
더 많이 복제된 유전자를 사후적으로 보면 마치 자신의 복제를 위해 행동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너무 성공한 표현은 무한경쟁과 개인주의를 자연의 섭리처럼 정당화하는 데까지 동원됐다.
도킨스가 그런 풀이를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오독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기적’이라는 말을 택한 면은 있다.
말은 글쓴이의 뜻보다 멀리 번식했다.
급기야 ‘밈’은 창안자의 손을 떠났다. 원래 노래와 관습, 종교와 아이디어까지 아우르는 문화적 복제자를 뜻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에서 복제되고 변형되는 이미지와 문구를 주로 가리킨다.
‘밈’이라는 개념 자체가 밈처럼 변이한 셈이다. 진화는 출발점에 충실할 의무가 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성취와 한계는 같은 곳에 있다.
복잡한 진화를 유전자의 눈으로 보게 하고, 그것을 잊기 힘든 말로 압축했다.
카메라의 위치를 가장 훌륭한 전망대로 옮긴 셈이다.
관건은 그 카메라가 세상에 단 하나라고 믿지 않는 데 있다.
덧붙여진 서문들과 주석, 에필로그들을 통해 도킨스 생각의 ‘진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출처>
이관수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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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인데.